나는 이 매장을 왜 하고 있지?
코로나의 여파인지? 날씨가 추워서인지?
매장을 오픈한 지 1년이 된 시점에 매출이 꽤 줄었다.
그냥 넋 놓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여기저기 온라인을 샅샅이 찾아보다가 지금 모집 중인 정부지원사업을 알게 됐다. 오랜만에 노트북 앞에 앉아 한글을 켰지만, 키보드 위에 두 손은 무슨 내용을 써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작년 이 맘 때 매장을 준비하면서 미래에 대한 계획과 포부가 가득했었는데, 1년 사이에 현실과 마주하면서 열정이 많이 식었나 보다.
나는 이 매장을 왜 하고 있지?
'창업 목적을 작성하시오' 문항을 읽으며 마음 한 구석이 먹먹해졌다. 단순한 돈벌이 수단 외에 이 일을 하고 있는 이유가 명확히 떠오르지 않았다.
첫 줄을 지우고 쓰고 반복하기만을 사나흘...
“땡그랑, 안녕하세요”
동그란 안경에 질끈 묶은 머리, 앳된 얼굴의 손님이 매장에 들어왔다. 작년 수능이 끝난 여고생 손님으로 종종 젤라또를 포장해가는 단골손님 중 한 명이다. 오랜만에 오는 탓에 '수능은 잘 봤는지?', '입시는 잘 치렀는지?' 물어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입을 꾹 닫고 있었다. 여고생 손님은 오늘도 어김없이 젤라또를 포장하며 기다리는데, 매장에 비치된 1주년 이벤트를 보더니 내 속마음을 듣기라도 한 듯 근황을 이야기해주었다.
"저 여기 처음 열었을 때부터 왔었는데, 벌써 1주년이 됐어요? 저 올해 대학생 돼요."
원하던 대학에 합격해 올해부터 기숙사 생활을 시작한다는 학생은 홍성에 올 때마다 놀러 오겠다고 이야기하며 매장을 나섰다. 대학생이 되었다는 소식에 기쁜 마음으로 축하해주었지만, 단골손님이 홍성을 떠난다는 소식에 마음 한 구석이 싱숭생숭했다.
부우 우우 우웅... 요란한 핸드폰 진동소리에 헐레벌떡 전화를 받았다.
"사장님, 저 15분 뒤에 도착하는데요. 작은 사이즈로 포장 부탁드려요. 맛은..."
15분 뒤 매장 앞에 택시가 멈추고 긴 머리의 여성이 내린다. 방금 전 포장 주문을 했던 손님이다. 이 손님은 내포신도시에 사는데, 매번 전화로 주문을 한 후 택시를 타고 매장에 방문한다. 내포신도시와 홍성읍은 거리가 좀 있는 만큼 귀찮을 법도 한데, 젤라또 때문에 먼 길을 와주는 감사한 손님이다. 그런데 이때 전화가 마지막 주문이었다. 학교에서 근무하는 손님이었는데, 이번에 다른 지역으로 발령을 받아서 홍성을 떠난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그동안 모았던 쿠폰은 다른 선생님께 인수인계했다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이렇게 단골손님을 보낸 후 허탈한 마음이 들면서도 그동안 고민하던 문제가 조금은 정리된 것 같았다.
젤라부는 애초에 번잡한 도시가 아니라 조금은 한적한 지역에 자리를 잡았다. 근처 큰 길가에는 나름 번화가도 조성되어 있지만, 덜 복잡한 골목길 끝에 위치해있다.
번화가에 비해 찾아오기 힘들고 주차할 곳도 넉넉하지 않은 곳. 복잡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여유롭게 젤라또 한 컵 하면서 소소하게 일상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로컬푸드로 만든 젤라또 그리고 좋은 하루를 나눌 수 있는 공간 그것이 젤라부가 잠정적으로 추구하는 목표인 것 같다.
단골손님들은 새로운 도전 또는 꿈을 찾아 떠났지만 젤라또를 통해 젤라부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젤라또가 아직은 커피처럼 엄청 대중화된 디저트는 아니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 젤라또를 먹거나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마다 젤라부가 생각나겠지. 그러다가 다시 홍성에 놀러 오면 젤라부를 찾아줄 테니까. 언젠가 또 반갑게 찾아 올 손님들을 위해 하루하루 열심히 매장을 운영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