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처럼 번지는 순간

습도가 만들어내는 작은 숲의 생명

by 쉼결
도마뱀의 습도 분무하기.png 도마뱀에게 맞는 습도는?


가장 자주 손이 가는 일 중 하나는 바로 분무하기다.

아침 저녁으로 분무기를 들고 사육장 앞에 서서,

습도를 확인하며 작은 나무와 잎 위로

고운 물방울을 흩뿌린다.


그 순간 케이지 안은 마치 안개가 낀 숲처럼 변한다.

투명한 물방울들이 유리벽에 맺히고,

도마뱀은 그 방울을 핥아 마시며 천천히 움직인다.

물그릇보다도 이 순간의 물방울을 더 좋아하는 듯하다.


크레스티드 게코의 고향은 뉴칼레도니아의 숲이다.

늘 높은 습도와 잦은 비 속에서 살아온 아이들에게

분무는 단순한 관리가 아니라 고향의 공기를 흩뿌려주는 일이다.


습도가 너무 낮으면 탈피가 잘 되지 않는다.

작은 피부 조각이 발가락에 남아 돌처럼 굳어버리기도 한다.

먹이를 소화하는 힘도 떨어지고, 몸은 점점 지친다.

반대로 습도가 지나치게 높으면 곰팡이가 자라고,

숨 쉬기조차 불편해진다.

습도는 이 작은 생명에게 있어,

생존과 직결된 균형의 문제다.


그래서 나는 늘 습도계를 확인한다.

낮에는 50~70%, 밤에는 80% 가까이.

숫자가 그 범위 안에 있으면 안도감이 밀려온다.


처음에는 그저 하루에 두번! 의무처럼 분무를 했지만

하지만 지금은 알게 되었다.

분무의 순간은 단순한 돌봄이 아니라

마뱀이와 내가 함께 숲의 리듬을 나누는 시간이라는 걸.


분무기를 누를 때마다

투명한 물방울이 벽면과 공기 중에 흩어지고,

마뱀이는 그 속에서 숨을 고른다.

그 모습은 내 삶에도 고요한 쉼표가 되어 돌아온다.


작은 케이지 안의 안개가 사라지면,

나는 다시 일상의 속도로 돌아간다.

그러나 안개 속에서 쉬어가는 마뱀의 모습은

언제나 나를 기억 속에 붙잡아둔다.


습도는 마뱀이에게 생존의 조건이지만,

나에게는 돌봄의 의미를 일깨우는 작은 의식이다.

오늘도 나는 분무기를 들어

작은 숲을 불러내고,

그 숲에서 살아가는 아이와 함께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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