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보건교사 안은영_정세랑
알록달록한 표지라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다가 다시 들여다보니 뭔가 섬뜩하다.
'아니 이런 해괴한 그림은 뭔가..'
무서운 걸 좀처럼 가까이하지 않는 내가 이 책 표지를 자세히 들여다봤다면. 이 책을 쉽게 집어 들지는 못했을 수도. 중간중간 느껴지는 무서운 기운들을 꾹꾹 눌러가며 한여름 밤 단숨에 읽었다. 무서운 기운들이 자꾸 맴도는 것 같은 기분은, 달리 말하면 작가의 생생한 표현들 때문일지도.
비범한 능력을 지닌 보건교사 안은영. 학교에서 귀신과 맞서 싸우는 그녀의 무기는 다름 아닌 비비탄 총과 장난감 칼이다. 책 속에는 여러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작가 주변에 실제 존재하는 인물들의 이름을 빌려서 만든 캐릭터란다. 사람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남다르다는 뜻이겠지. 안은영이 주인공이긴 하지만, 각 챕터마다 그려진 인물들이 주인공 못지않게 캐릭터를 가지고 살아 움직인다.
'에너지, 사람, 기운'을 녹여낸 이야기들이 많다. 안은영은 인표의 손을 잡거나, 절에서 탑돌이를 하면서 순도 높은 에너지를 저장한다. 만나는 것만으로 기분좋고, 만나지 못할 땐 목소리만 들어도 기운이 나게 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아깝지 않다. 에너지를 저장하는 시간이다.
딱히 누군가를 물리치느라 힘을 쏟지 않는데도, 에너지가 쉬이 떨어지는 요즘이다. 그럴 때면, 반신욕을 하면서 책을 읽거나 강변을 달리거나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을 무한 반복하거나 그것도 안되면 고향집에 가곤 한다.이건 나의 안은영일 수도 있겠다. 엄마가 푸짐하게 정성 들여 내어 주시는 집밥을 먹고, 천천히 시간이 흐르는 것만 같은 곳에서 아무 생각 없이 쉬다 오면 다시 조금씩 기운을 얻는다. 누군가의 안은영이 된다는 건 의미 있는 일이다.
장난감 칼과 총에 은영 본인의 기운을 입히면 젤리 덩어리와 싸울 수 있었다. 비비탄 총은 하루에 스물두 발, 플라스틱 칼은 15분 정도 사용 가능하다. 이집트산 앙크 십자가와 터키의 이블 아이, 바티칸의 묵주와 부석사의 염주, 교토 신사의 건강 부적을 더하면 스물여덟 발, 19분까지 늘일 수 있다. 보건교사 안은영의 삶은 이토록 토테미즘적이다. P.14
두 사람이 놀토 오후마다 하는 일은 쉽게 말하면 명승지 관광이었다. 인표를 만나기 전에는 은영 혼자 하던 일이다. 주로 오래된 절, 사람이 많이 다니는 절에 가서 탑에다가 살짝 손가락을 댄 다음 충전을 한다. 푹 자고 일어나도 충전이 되고 인표의 손을 잡을 때마다 도 충전이 되지만 명승지에서의 충전은 정말이지 질이 달랐다. P. 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