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잊기 좋은' 이름은 없다

잊기 좋은 이름 | 김애란

by 심지

조금 더 아껴 읽을 걸 그랬다.


다른 책을 읽고 있던 중에 어제 바로 산 책이라, 반절 정도만 읽고 남겨두려 했는데 나도 모르게 다 읽어버렸다. 모든 페이지를 붙잡아 두고 싶은 마음. 밑줄 친 부분을 정리하다 하루가 다 가버렸다.


내가 잊고 있던, 잊혀졌던 이름들을 대신 불러내 준 듯하다. 떠오르다 사라지는 얼굴도 있고, 과거의 나와 노래, 향기까지도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글과 한데 섞여 한꺼번에 밀려들어왔다.


작가는 '잊기 좋은 이름'은 없다고 말한다. 부모님과 동네 주민들뿐 아니라 동료작가들, 책, 노래 모두 그녀의 따뜻한 시선에 스며들어 있다 애정하는 동료 작가의 '파란 손'을 기억하고, 복잡하고 씩씩하고 결함 많지만 누구보다 '자기 다운 삶'을 배우게 한 어머니를 사랑하고, 시골 어르신들이 작가에게 보내주는 '따뜻한 소동'을 좋아한다. 잊지 않고 기억한다.


그가 쓴 책을 아직 많이 못 읽어서 아쉽고, 못다 읽은 그의 글이 많아서 한편으론 다행이다. 김애란 작가가 '몹시도' 부사를 사랑하듯이, 앞으로 작가의 글을 '정말 너무 몹시도' 기다리게 될 것 같다.



나는 우리 삶에 생존만 있는 게 아니라 사치와 허영과 아름다움이 깃드는 게 좋았다. 때론 그렇게 반짝이는 것들을 밟고 건너야만 하는 시절도 있는 법이니까. p.12


한때 아이들이 시끄럽게 뛰어놀던 거실에는 어둠과 침묵이 짙게 깔리고, 이제는 미움도 사랑도 희석된 채 이따금 서로를 연민으로 바라보는 두 사람만이 오도카니 남았다. p.111

겨울의 옛말은 겨슬(겻+을), '집에 있다'란 말뿌리를 가졌다. 그러니까 겨울은 '집에 있는' 시간이다. 담요를 덮고 이야기를 듣는 시간. 밤이 길어 아이들은 착해지고 이야기는 모자란 계절. 예로부터 전해지는 이야기가 자꾸자꾸 바뀌고 보태지는 철. 그런 날들의 이름이다. p.115


나보다 젊었던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나와 동갑이었던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나보다 늙어버린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사랑의 마음을 전한다. p.122

글을 쓸수록 아는 게 많아질 줄 알았는데 쥐게 된 답보다 늘어난 질문이 많다. 세상 많은 고통은 사실 무수한 질문에서 비롯된다는 걸, 그 당연한 사실을 글 쓰는 주제에 이제야 깨달아간다. 나는 요즘 당연한 것들에 잘 놀란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려 한다.

서른,

기쁘게 한껏 부풀어 오르고 보니

곁에 선 부모가 바짝 쪼그라든 채 따라 웃고 있다. p.124


그러니 만일 제가 그때로 돌아간다면 어린 제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지금 네가 있는 공간을 오래 보고, 조금 더 자세히 봐 두라고. 그 풍경은 앞으로 다시 못 볼 풍경이고, 곧 사라질 모습이니 눈과 마음에 잘 담아두라 얘기해주고 싶습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사람을 만난 대도 복원할 수 없는 당대의 공기와 감촉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습니다. 하지만 철없는 저는 못 알아들을 테고 앞으로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살아가게 되겠지요.

p. 133


마치 '시간'이 아닌 '시간의 테두리'를 흔들어 보여주듯. 그래서인지 아무 때고 학교 종과 무방비로 만나면 내 안에 애써 고정해놓은 어떤 울타리가 넘어지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그 틈을 타 여러 가지 것들이 넘어온다. 그렇게 밀려오는 것 안에 정확히 뭐가 들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감정인 것도 같고 감각인 듯도 하고 정서 또는 기억인가도 싶다. 다만 내가 확실하게 알아챌 수 있는 건 그렇게 바깥에서 들어온 뭔가가 내 안에 마련해주는 '빈 공간'이다. 들어와 자리를 '채우거나', '차지하는' 게 아닌 '자리 자체'를 만들어주는 고요하고, 고유한 상태를 독려해주는 무엇. 그 기분이 익숙해 내가 이걸 언제 느껴봤더라 고민했더니 답은 의외로 금방 나왔다.

- 문장들. 좋은 문장들을 만났을 때.

누군가의 문장을 읽는다는 건 그 문장 안에 살다오는 거라 생각한 적이 있다. 문장 안에 시선이 머물 때 그 '머묾'은 '잠시 산다'라는 말과 같을 테니까. p.141

저녁에 집 앞으로 산책을 나갔다가 오랜만에 신선한 공기를 쐬었다. 순간 나는 '내가 아는 공기다'중얼대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내가 아는 저녁, 내가 아는 계절, 내가 아는 바람. 그러니까 어릴 때 엄마가 밥 먹으라고 하기 전, 늦게까지 밖에서 놀던 날의 날씨. 그러고 보면 시간은 정말 흘러가는 게 아니라 이어지고 포개지는 모양이다. 그렇게 돌아오고 어느 때는 나보다 먼저 저 앞에 가 있다 나를 향해 뚜벅뚜벅 자비심 없는 얼굴로 다가오고 때론 한없이 따뜻한 얼굴로 멀어지기도 하면서. p.148

어떤 문장에는 꽃술 위 꽃가루마냥 시공이 묻어난다. 글쓴이가 원고를 꾸리는 동안 맡은 냄새, 들은 소리, 만난 사람, 겪은 계절이 알게 모르게 배어난다. p. 227

나는 내가 줄 그은 책과 잘 헤어지지 못한다. 거기 남은 연필 자국이 왠지 저자와 악수한 뒤 남은 손자국같아.

p.240


연필을 쥔 손에 힘을 주면 책에 흐릿한 홈이 파인다. 그 홈에는 내가 어느 문장에 줄 그은 순간 느낀 시간과 감정이 고인다. 그래서 가끔 그 홈이 물고랑 밭고랑 할 때 '고랑'처럼 느껴진다. p.254

이해란 비슷한 크기의 경험과 감정을 포개는 게 아니라 서로 다른 옷을 입은 뒤 자기 몸의 크기를 다시 확인해보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작가라 '이해'를 당위처럼 이야기해야 할 것 같지만 나 역시 치수 맞지 않는 옷을 입으면 불편하다. 나란 사람은 타인에게 냉담해지지 않으려 노력하고, 그렇게 애쓰지 않으면 냉소와 실망 속에서 도리어 편안해질 인간이라는 것도 안다. 타인을 향한 상상력이란 게 포스트잇처럼 약한 접착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해도 우리가 그걸 멈추지 않아야 하는 이유 또한 거기에 있지 않을까. p.252

만일 우리가 타인의 내부로 온전히 들어갈 수 없다면, 일단 바깥에 서보는 게 맞는 순서일지도 모른다는 거였다. p.268

초를 켜는 마음 p. 288


만일 문학에 전통이란 게 있다면 그중 우리가 이어나갈 게 있다면 그건 단순히 소재나 형식이기 전에 사람이 이 세계를 대하는 어떤 태도 혹은 마음이지 않을까. 우리가 죽은 자를 기리려 한다는 건, 잘 묻으려 한다는 건 결국 삶을 귀하게 여긴다는 뜻과 다르지 않으니까. p. 292

그리고 문학이 할 수 있는 좋은 일 중 하나는 타인의 얼굴에 표정과 온도를 입혀내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p. 298


세상에 '잊기 좋은' 이름은 없다. p.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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