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먼 북소리_낭만과 감성의 유럽 여행 에세이 | 무라카미 하루키
마음 같아선 훌훌 떠나고 싶은데, 그렇다고 막상 갈 수는 없고 여행 기분을 내고 싶을 때 책 만한 게 없다. 가보지 않은 곳을 내 맘대로 상상할 수 있으니까. 여행 TV 프로그램을 자주 보지만, 마치 패키지 관광객이 된 듯 자유롭지 않은 느낌이 들 때가 많았다. 무언가 남들이 떠먹여 주는 느낌이랄까.
<먼 북소리>는 하루키가 3년간 유럽에서 먹고 자고 글을 쓰면서 든 생각들을 정리한 글이다. 여행의 로망만 나열해 주는 여행 에세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명소와 맛집 정보로 가득한 여행 가이드북도 아니다. 때로는 머무를 집을 잘못 고르거나, 아무도 찾지 않는 관광 비수기에 섬에 머무르면서 혹독한 겨울 날씨에 고생 고생하기도 한다. 로마의 소매치기와 이탈리아 우편시스템의 불편함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유럽의 여러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머무를 때마다 본인의 삶과 그 지역의 문화를 비교해보면서 이리저리 부딪히고, 현지 생활에 스며드는 모습이 <인간극장-하루키 편>을 틀어놓은 것 같다.
여행의 들뜸보다는 주로 현지에서 살면서 느끼는 일상의 희로애락(?)을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동네 주민들에 대한 캐릭터 분석이 맛깔나다. 사람과 경치를 관찰해서 디테일하게 묘사한 부분을 읽고 있노라면, 마치 내가 그 동네 주민의 한 사람이라도 된 것 같다. 까다롭고 섬세한 것처럼 보이는 음식 취향이나 음악, 술 이야기도 물론 재미있다. 여러모로 타지에서 '한 달 살기'를 부추기는 책이다.
떠나야만 비워질 것 같고, 그 안에 새롭게 다시 무언가를 채울 수 있을 것 같던 날들이 있다. 그래서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대충 짐을 싸서 기차역으로 무작정 향했던 날도 있었다. 물론 당시엔 생각만 많아져서 비우지도, 채우지도 못하고 돌아왔지만. 요즘같이 코로나 때문에 상황상 집콕 신세를 면치 못하는 날들이 이어질 때, 떠나고 싶어도 머물러 있어야만 할 때 그래서 책을 펼치는지도 모르겠다.
어딘가 멀리 떠나는 여행을 통해 늘 무언가가 채워지기 바라는 건 끝없는 욕심과 비슷할 수도. 하루키의 말처럼 먼 북소리가 이따금 들리면, 자기만의 방법대로 여행을 하면 된다. 머무르는 것도 여행이다.
내게는 지금도 간혹 먼 북소리가 들린다.
조용한 오후에 귀를 기울이면 그 울림이 귀에서 느껴질 때가 있다.
막무가내로 시 여행을 떠나고 싶어 질 때도 있다.
하지만 문득 이렇게도 생각한다.
지금 여기에 있는 과도적이고 일시적인 나 자신이, 그리고 나의 행위 자체가,
말하자면 여행이라는 행위가 아닐까 하고. P.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