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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지 Aug 02. 2021

골절일기 1주차 : 깁스는 처음이라

잠 못 이루는 밤

1일 차 |  7월 23일 : 일이 터지고 말았다.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뀌고 길을 건너려는데 차가 무섭게 달려왔다. '녹색불인데..!' 하며 허겁지겁 건너려던 찰나,, 울퉁불퉁한 횡단보도에 발을 헛디뎌서 그만 앞으로 고꾸라졌고, 발이 뒤틀려 넘어지고 말았다. 일상적이었더라면 넘어지지 않았을 횡단보도. 초록 신호에도 급히 달려오던 차를, 비정상적으로 울퉁불퉁했던 도로를 원망했다가도 내가 조금 더 조심하고 앞을 보고 천천히 건넜으면 될 일이었다 생각하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발을 보니 작은 상처가 났는데 통증은 좀 있는 것 같았지만, 길을 마저 건너는 게 우선이었다. 맞은편 버스정류장에 앉아계시던 아주머니가 나를 심각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저렇게 걸어가도 되나..?' 하시는 표정이었다. 나는 아무렇지 되도록 않은 척 표정을 신경 쓰며, 원래 가던 길로 절뚝이며 걸어갔다. 몇 걸음 지나지 않아 샌들 위로 드러난 발등이 이스트를 넣고 발효시키는 빵처럼 불룩 솟아오르는 게 아닌가..! 갑자기 철렁 내려앉았다. 가던 길을 멈추고 택시를 불렀다. 가장 가까운 정형외과로 향했다.


"CT 찍어봐야겠는데요."

엑스레이를 찍어 보고 나서 의사가 말했다. 살짝 삐었거니 생각했는데 의사가 의외의 진단을 내렸다.

'우측 족부 입방골 골절' '우측 족부 설상골 골절' 

어리둥절한 나를 두고 의사는 한 달은 반깁스를 하고, 발을 최대한 땅에 딛지 말아야 하며, 매주 엑스레이를 찍고 경과를 봐야겠다고 했다. 발을 땅에 디뎌서 뼈가 똑 부러져서 어긋나거나 하면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다고 겁을 주시니 의사의 말을 따를 수밖에. 발과 다리 모양에 맞게 틀을 짜고 붕대를 감았다. 그렇게 난생처음 목발을 짚게 되었다.


당장 일상의 스케줄에 변동이 생겼다. 회사에는   재택근무를 신청했다. 8월 초부터 시작하려고 등록해뒀던 장롱면허 탈출을 위한 도로연수도 일단 올 스톱이고, 주말에 가려고 했던 모두 취소다.  회복에만 집중하기로 한다. 의사 선생님은 붕대를 감아주며  가지를 지키라고 당부했다. 마라톤 강의를 들으면서 회복 원리에서 배웠던 'RICE' 같은 내용이었다.  와중에 아는 내용을 들어 반가웠다.


1. R (Rest : 안정, 휴식) : 발바닥 땅에 닿지 않게 한다. 걸을 때 목발 사용.

2. I (Icing : 냉찜징) : 통증 완화와 붓기 감소를 위해 냉찜질한다.

3. C (Compression : 압박) : 붕대로 압박해주면 붓기 확산 방지에 도움

4. E (Elevation :거상, 높이 듦) : 다리를 심장보다 높게 들어 혈액순환을 원활히 하고 붓기 확산을 방지

 

발등 다친 부위를 조금만 눌러도 통증이 왔다. 진통제 없이 밤을 어떻게 보낼 수 있을지, 난생처음 한 깁스에 적응할 수 있을지가 걱정됐다. 의사의 지시대로 높은 베개를 두고 다리를 올려두고 누웠다. 저녁부터 다리가 저리기 시작했다. 다리를 올려놓으면 저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런 거 없었다. 발은 붕대를 감아놔서 그런지 열이 나서 그런 건지, 아니면 아이싱을 해서 차가운지 감각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다. 내 발이 괜찮은 건지 잘 살아 있는 건지 걱정돼서 발가락을 계속 만져보았다. 자는 동안 2시~6시까지 여섯 번 정도 눈을 떠서 잠을 설쳤다. 고통의 밤이었다.


2일 차 |  7월 24일 : 발 뒤꿈치가 비명을 질렀다.


잠을 제대로 못 자서 내내 피곤했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아침에 붕대를 한 발 뒤꿈치가 통증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쓰라렸다. '다친 쪽은 발등인데 왜 발 뒤꿈치가 난리야?' 조금만 아파도 습관처럼 하는 검색에 들어갔다. 검색한 바로는, 발 뒤꿈치는 깁스하고 나서 발 뒤꿈치가 바로 바닥에 닿은 채로 계속 있게 되면 눌려서 생기는 문제로 오래 방치했다가는 괴사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괴사라니..??"

놀란 나는 남편을 깨워 병원이 문을 여는 시간에 맞춰 다시 병원을 찾았다. 병원 의사 선생님은 간혹 뒤꿈치가 아픈 경우가 있는데, 오길 잘했다는 식으로 말씀하셨다. 오는 길까지 '내가 유난인가' 싶다가도 '그래도 내 몸인데' 하는 생각이 오갔는데, 결론은 아프면 병원은 언제든 가는 게 좋다는 생각이다. 의사는 발 뒤꿈치에 살이 없는 경우에 더 아플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깁스를 풀어서 뒤꿈치가 바로 닿지 않게 솜으로 패드를 만들어 지지해서 뒤꿈치를 띄워줬다. 조금 살만했다.


3일 차 |  7월 25일 : 각종 깁스 생활 용품을 사들이다


아직 3일밖에 안 지났다. 한 달이 까마득하다. 깁스를 하고 나니 일상생활의 많은 부분에 제약이 생겼다.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 에너지가 드는 일이 되었다. 혼자서 이동을 하려면 실내에서 목발을 짚고 가야 한다. 매번 일어나고 앉을 때마다 손목에 무리가 가는 느낌이다. 머리라도 감으려 하면 앉을 의자도 필요했고, 발에 비닐을 칭칭 감아서 물에 닿지 않게 하는 건 너무 번거로운 일이라 대체할 게 필요했다. 깁스 라이프의 삶의 질을 높여줄 골절템 검색에 나섰다. 그리고 몇 가지 품목을 구입했다.


- 깁스 환자용 방수 샤워 부츠 : 샤워 부츠란 말은 내가 이름 붙인 건데, 종아리까지 비닐로 되어 있고 입구는 실리콘으로 되어 있어 다리를 넣으면 입구가 타이트해서 물이 들어오는 걸 방지해준다.


- 바퀴 달린 의자 : 컴퓨터용 의자를 썼었는데 등받이까지 있는 의자는 비효율적이다. 이동이 용이하도록 등받이 없는 동그란 의자를 주문했다.


- 플라스틱 의자 : 포장마차 의자를 구입했다. 목욕 시에 한쪽 다리를 들고 서서 샤워를 하는 건 엄청난 체력이 수반될 듯해서 앉아서 씻기 위해 구입했다.


- 미끄럼 방지 매트 : 목발로 욕실을 짚거나 한 발로 다닐 때 욕실이 미끄러우면 또 다른 참사가 생길 것 같아 구입했다. 물이 잘 빠지고 미끄럽지 않은 그물 형태로 되어 있어 욕실 다닐 때 한 결 마음이 편해졌다.

4일 차 |  7월 26일 : 또 다른 복병. 발목과 종아리가 아파온다

발등을 다쳤는데 그 고통보다 다른 곳들이 아파오기 시작한다. 이유를 역시 알 수가 없어 답답함만 차올랐다. 전날 샤워를 할 때 다리를 반듯하게 올려두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강이 쪽이 욱신거리더니 발목도 통증이 이어왔다. 붕대만 잘 감고 한 달 버티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지 못한 난관이다. 통증을 조금 누르고 잠에 들었는데 한 시간 만에 아파서 잠에서 깼다. 붕대를 세게 감아서인지 욱신거리는 바람에 다시 일어나 붕대를 감았다. 아직 아이싱을 해두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발에 얼음팩을 감았다.  15분 후에 떼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잠이 들어버렸다. 검색에서는 발에 얼음팩을 감으면 20분을 넘기지 말라고 했는데, ‘7시간이나 묶고 있었다니. 동상은 아니겠지..? 그럼 자다 깼겠지.’ 혼잣말을 주고받다보나 생각이 많아져서 다시 조금 걱정이 됐다.


5일 차 | 7월 27일 : 나는 프로예민러다.

낫고 있는 중일까. 발 저림은 계속 여전하다. 아침부터 새롭게 발견한 건 발가락이 조금씩 제멋대로 움직일 때가 있다는 것이다. 마치 원치 않았는데 눈 떨림이 있는 것처럼, 의도치 않게 약간의 틱처럼 발가락이 간간히 살짝씩 움직였다.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내가 힘을 줘서 움직이는 게 아니라 발가락이 제멋대로 움직이면서 갑자기 소화가 안됐다.  이건 또 뭔 소리..? 인가하겠지만, 2년 전쯤에 갑작스럽게 찾아왔었던 과호흡이 함께 찾아왔다. 스트레스를 한참 받았을 때 이유 없이 찾아온 것이 이번에 또 온 것이다. 공황장애는 겪어보지 않았지만, 약간 정신적인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다리를 계속 깁스로 꽁꽁 묶어 둔 상태에서 답답함이 심리적으로 스트레스로 다가와서 그런 것 같다. 잘 때도 결국 붕대를 아예 풀고 잤다. 과호흡은 조금 누그러졌는데 잠결에 다리를 뒤척일까 걱정돼 잠을 편히 잘 수 없었다. '이게 원래 이런 증상인가. 계속 이러면 어쩌나.' 별별 고민을 안고 다시 눈을 감았다.


아침에 역시 숨이 편히 쉬어 지질 않아서 답답함을 못 이기고 결국 다시 정형외과엘 찾았다. 의사 선생님은 내 증상에는 예민해서 그런 거 같다고 말씀하셨다. 그건 아무래도 정형외과 쪽 진료항목은 아닌 거 같아 더는 여쭤보지 못했다. 일단 발가락 움직이는 것도 시간을 두고 좀 더 지켜보자고 했다. 심각한 골절은 아니니 시간을 두고 지켜보자는 말만 듣고 돌아왔다. 오후쯤 되니 과호흡은 조금씩 평소로 돌아왔다. 다시 원점이다.


6일 차 | 7월 28일 : 골절 일기 아닌 감사일기

혼자 있었더라면 깁스 생활이 두 배 아니 세네 배는 힘들었을 것 같다. 신체 통증과 이동의 불편함과 정신적 스트레스와 예민반응 등으로 힘들어하고 있는 상황에서 남편은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었다. 결혼 후 이제 꽤 알아왔다 생각했는데 아플 때 챙겨주는 세세함에서 더 고마움을 느꼈다.


붕대를 감은 발이 쪼이는 느낌 때문에 갑자기 잠에서 깨어 소리 없이 다시 붕대를 감으려 하면 어느새 남편이 눈 비비고 일어나서 붕대를 새로 감아주었다. 청소와 빨래 설거지를 모두 아무 말 없이 도맡아 하고 있다. 아이싱을 해야 하니 주기적으로 얼음팩을 얼려 발에 채워주고, 내가 거실로 방으로 이동할 때마다 높은 베개를 가져와서 다리를 받쳐준다. 밤에 아픈 소리 끙끙대고 숨 깊게 들이쉬고만 있으면 짜증 날 법도 한데 야근으로 피곤해도 내 걱정만 계속한다. 그런 모습이 미안하기도, 고맙기도 하다.


그 와중에 유머와 위트를 놓치지 않으려 한다. 부정적인 이야기는 입 밖으로 내지 않고 늘 긍정적으로 말한다. 걱정많고 예민한 나를 위한 특별처방인 듯 싶다. 한 달 뒤에 나아서 맛있는 것도 먹고 보고 놀러 가자고, 빨리 낫자고 위로해준다. 서로의 곁을 내어 주는 일의 책임감과 감사를 잊지 않아야겠다고 다시금 생각한다. 내 손발이 되어주고 있는 그에게 감사를 표하는 하루다. 그만큼 통증은 조금 나아졌다는 뜻이다. 다른 생각들이 들어와 자리할 곳이 생겼다. 얼른 나아서 가고 싶은 곳들의 리스트를 적어봐야겠다. 집콕 6일 차. 가고 싶은 곳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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