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지 Mar 29. 2021

엄마의 받아듣기

엄마와 병원 동행기

3월 한 달은 병원의 달이었다. 엄마와 함께 여러 병원을 오갔다. 엄마의 귀 때문이었다. 지난달 말 친정에 놀러 간 남편이 조심스레 내게 말했다.


“어머니가 내 말이 잘 안 들리시는 것 같아. 입모양만 보고 계시더라고.”


어머니 뒤를 종종 따르며 말을 걸던 사위는 어머니가 아무 말이 없자 앞에서 얘기를 해보았고, 작은 목소리를 가늠할 수 없던 어머니는 입을 보며 말을 유추했던 것이다. 이명으로 소리가 잘 안 들리시는 건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터라, 목소리만 조금 크게 말하면 된다 생각했던 게 화근이었다. 이전보다 더 안 좋아지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처에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의사는 청력 그래프를 보여주며 수술이나 보청기를 해야 한다고 했다.


“보청기는 좀...” 보청기에 거부감이 있는 엄마는 어떻게든 할 수만 있다면 수술을 하고 싶어 했다. 세밀한 진단이 필요했다. 일단 이비인후과로 유명한 대학병원 두 곳을 모두 예약했다.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에 엄마가 입을 열었다.


“작년쯤부터 귀가 더 안 좋아졌어. 동네 사람들이랑 말해도 선명하게 절 안 들리고. 사람들도 잘 안 만나게 되고. 걱정할 것 같아 바쁜 일 좀 끝나면 혼자 조용히 병원 좀 가보려 했지.”


엄마는 우리 집의 긍정왕이었다. 어디가 아프다는 말도 자주 안 하셨다. 첫째 며느리는 아니었지만 마흔 명 남짓 드나드는 명절과 여러 번의 제사를 ‘조상을 모신다는 감사함’으로 일하셨다. 농사일로 매일 새벽 네시 반에 무거운 몸을 일으키면서도 “바쁜 게 좋은 거야. 일복이 많으니 좋지”라면서 말하셨다.


평생 싫은 소리, 부정적인 말을 엄마에게 들어본 적 없었다. 엄마는 혼자의 걱정들은 스스로 삼키셨으리라 이제야 짐작했다. 억지로 병원을 예약해서 부지런히 모시고 다니면서 그제야 엄마는 본인의 이야기들을 조금씩 털어놓았다. 엄마의 어렸을 적 이야기, 아빠와 만난 이야기들을 병원을 오가는 차 안에서 나누었다. 차 안은 조용했고 엄마는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조금 더 마음 편히 얘기할 수 있었다.


엄마는 새벽 네시에 일어나 서울을 오가고 병원에서 여러 번의 검사를 받았다. 엄마에게 힘들지 않으냐 물었더니,“수술을 하면 잘 들릴 수 있다는 희망이 있으니 서울을 오가는 보람이 있지.”라고 말했다. 엄마는 여전히 긍정적이다.


CT 찍고 여러 병원을 종합해서 결국 수술은 하지 않기로 했다. 수술한다고 해서 예후가 좋단 보장이 없다고 했다. 결국 보청기를 택했다. “그래도  들릴  있다는  그게 좋지.” 엄마는 잘게 쪼개진 긍정의 조각을 다시 움켜쥐었다.


보청기 가게에서 엄마가 청력검사를 받는 걸 지켜봤다. 어린 시절 가족오락관에서 헤드셋을 끼고 소리를 맞추는 게임 같았다. 헤드셋은 없었다. 한 걸음 정도 거리 앞에서 청능사가 말하면 들리는 대로  답하는 방식이었다.


“꿀 솥 조 밭 딸...”


“술 곳 촛 밭 딸..”


시력검사를 할 때가 문득 생각났다. 시력이 좋지 않은 나는 안경을 벗을 때면 작은 글자들은 흐릿하게 보이거나 아예 안보였다. 엄마의 귀가 그랬다. 엄마는 같은 음을 다르게 들었다. 받아 듣기의 채점표의 낮은 점수를 채워가는 그 와중에 밭, 이랑 딸은 신기하게 또 정확히 들으셨다.


때론 엄마가 로봇 같아 보였다. 힘들지 않냐고 유도 질문을 할 때면 엄마는 늘 괜찮다 고맙다 말하셨다. 바빠도 일 할 수 있는 게 감사하고 자식들이 건강한 게 고맙고, 이젠 앞으로 좀 더 들을 수 있게 된 게 또 고맙단다.


엄마는 그간 흐릿하게 들려도 마음으로 여과해서 엄마의 방식으로 답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내 말을 조금 더 선명하게 들을 수 있게 될 엄마에게 엄마의 이야기를 조금 더 선명하게 들려주기를 기대해본다. 차 안의 조용한 공간에서 엄마가 웃으며 어렸을 때 이야기를 나누어 준 시간처럼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가 숨어서 책을 본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