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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끄적 Feb 13. 2024

경조사는 품앗이인가요?

and 취중진담


언제부터인지 주변에 경사(慶事)는 끊긴 지 오래된 것 같다. 가끔 지인자제들이 벌써 결혼을 한다고 청첩장을 보내오는 거 외에는 마흔이 넘도록 아직 결혼 안 한 친구 놈들이나 지인들이 결혼할 가능성은 희박해보인다. 아직 두 번째 가겠다는 친구 놈들도 없다.


게다가 요즘은 돌잔치도 친인척들만 초대하는 분위기라서 그런지 돌잔치를 가본지도 오래된 것 같다. 이미 애를 낳을 사람들은 다 낳은 거 같기도 하다.


올 겨울에는 부고문자를 받고 장례식장에 세 번째 다녀왔다. 꼭 찬바람이 불 때면 어김없이 연락이 오는 것 같다. 예로부터 경사는 못 챙겨도 조사는 챙기라는 문화에 익숙해서 인지 나 또한 이유 없이 조사는 꼭 챙기려고 노력을 하는 중이다.


하지만 연락이 올 때면 아직도 누구까지 가야 될지 말아야 될지 결정이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또한 가게 되면 봉투는 얼마를 해야 될지 물가상승분을 감안해야 될지 말아야 될지, 가지 말고 봉투만 편부를 해야 될지 늘 고민이다.


얼마 전에는 중학교 동창 놈 모친 부고 문자를 받았다. 연락처에 저장도 되어있지도 않은 동창이다. 예전에 친구 놈들 결혼할 때나 어쩌다 식장에서 마주쳤던 동창, 그렇다고 학교 다닐 때 친한 것도 아니고 안 친한 편이 맞지만 그렇다고 싫어하지도 않은 친구 정도쯤(?) 그냥 무난한 동창인 셈이다. 그렇게 따지면 평소에 적을 두지 않는 나로서는 어쩌면 연락 오는 동창생들 전부를 챙겨야 될지도 모른다.


갈지 말지 한참 고민을 하다가 끝내 가기로 마음먹었다.

"에라, 가자." 가도 후회 안 가도 후회라면 가자는 생각이다.


가는 길에 불알친구 놈한테 전화를 걸었다.

나: "야, 너 오냐?"

친구놈: "뭔발, 뭐 하러 가냐? 뭔발, 연락도 안 하고 사는 놈까지 챙겨야 되냐?"

시끌시끌 술집인 모양임.

친구놈: "너네 부모님 돌아가시면 걔가 온대냐? 가신 다음에 사람 많이 오면 행복할 거 같냐? 난 품앗이 안 해도 돼. 니들만 오면 돼."

횡설수설 계속되는 욕...


친구놈이 술김에 한 얘기지만 왠지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우유부단함에 이 사람 저 사람 조사를 챙기는 나한테는 어쩌면 사이다 같이 속 시원한 말 같기도 하고, 도움 되는 현실적인 말 같기도 했다. 장례식장으로 가는 내내 차를 돌릴지 말지 한참을 생각하게 되는 말이었다.


일단 마음먹고 출발한 길이라서 가던 길 열심히 다녀왔다. 오만 년 만에 본 동창들과 반가운 척 인사를 하고 친한 척 서로의 안부를 묻고, 생전 연락 한번 안 하겠지만 연락처를 주고받고, 다녀오면 나름 의미 있는 시간임에는 틀림없다.


다음날 불알친구 놈한테 다시 전화를 걸었더니 친구놈 하는 말.

친구놈: "내가 어제 너랑 통화했었냐?? 내가 무슨 말했냐??"

나: "생각 안 나냐?"

친구놈: "어."

..........

이런 게 바로 취중진담인 건가. 의미심장한 친구의 말은 그동안 생각지 못한 경조사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품앗이란 힘든 일을 서로 거들어 주면서 품을 지고 갚고 하는 일. 일을 하는 '품'과 교환한다는 뜻의 '앗이'가 결합된 말.


"경조사는 품앗이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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