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카눈' 우리 가족을 겨누다

1화] 갈 수 있을까?

by 끄적


나는 일 년에 한 번 해외여행과 한 달에 한번 국내여행을 꿈꾼다.


"아빠, 우리 여행 갈 수 있는 거지?" "못 가면 어쩌지?" "나 잠 안 올 거 같아" "너무 슬프다..." 아이들은 잘 때까지 계속해서 물어본다. 이게 얼마만인가. 코로나 이후, 장인어른 칠순을 맞아 너무나 오랜만에 대가족이 놀러 가기로 했다. '코타키나발루'로 해외여행을 가기로 한 것이다.


여행을 가기 전 날 하필이면 내일, 꼭 그 시간쯤 우리의 비행기 출발은 태풍이 올라오는 시간과 맞물렸다. 비행기 출발시간은 8월 10일 저녁 19시 10분이었다. 연신 기사를 찾아보고 뉴스만 보면서 태풍위치를 확인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던지라, 뭐 이렇게 재수가 없을까 싶었다.


목적지인 '코타키나발루'는 6년 전에 형님네 식구들하고 이미 다녀왔던 곳이다. 그때의 기억이 너무나도 좋았던 나머지 이번 여행도 겸사겸사 '코타'로 정했다. 나는 원래 갔던 곳은 잘 안 가려는 성격이다. 굳이 갈 곳도 많은 데 갔던 곳을 또 가는 것은 별로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지금은 목적지가 중요하지 않았다. 비행기가 과연 뜰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인터넷 기사 캡쳐>


아이들 방학인데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어디 변변하게 놀러 한번 제대로 가지 못해 미안했건만. 그나마 여름휴가를 해외로 가는 것에 위안을 삼았고, 아이들이나 와이프도 내심 기대가 컸다. 기대가 큰 나머지 태풍소식에 실망도 컸다.


우리 여행멤버 가족은 장인 장모님, 우리 식구 4명, 형님네(와이프 오빠) 식구 4명 총 10명이었다. 아이들 4명에 어른 6명. 코로나 이후로 이렇게 다 같이 여행을 떠나기로 한 것은 처음이어서 모두의 기대도 컸고, 그놈에 '카눈' 때문에 실망도 이런 대실망이 없었다.


그 와중에 형님은 가족 단톡방에서 장난을 친다. 노랑통닭에 모두들 낚이고, 지극 정성이라고 한 마디씩 한다.


타이밍 참 절묘하게 여행사에서는 진짜로 문자가 날아온다.


"[Web발신] 2023-08-10 ICN(인천) 출발/BKI(코타키나발루) 도착 7C2507편은 제6호 카눈 태풍의 영향으로 결항 가능성이 있습니다. 출발 당일 기상상황에 따라 지연 혹은 결항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오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항공권 취소 및 변경은 최초 구매처로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취소 시에는 위약금이 부과되지 않으며, 1회에 한하여 수수료 없이 변경 가능합니다. 단, 변경을 원하시는 기간에 따라 운임차액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런 옘병... x라 짜증 나네... 우리 내일 공항 가봐야 되는 거지? 괜히 헛고생하는 거 아니야?" 와이프한테 투덜거렸지만 와이프는 이미 더 뿔나 있었다. "몰라. 짜증 나니깐 말하지 마..."


"어쩌겠어 짐은 싸야지?" 와이프와 투덜거리며 캐리어에 이것저것 담기 시작했다. 물놀이까지 하려고 스노클링장비며, 수영복이며 이것저것까지 사서 뜯지도 않은 것들이 많았다. "못 가면 다 환불해야지 머..."캐리어는 큰 거 하나, 작은 거 하나에 배낭까지. 3박 5일이라 짧은데 아이들에 맞추다 보니 짐은 계속 많아졌고, 챙길 건 모조리 다 챙겼다. 그렇게 새벽까지 잠을 설치면서 날이 밝았지만 그놈에 카눈 소식은 아침까지 변함이 없었다.



여행 당일 우리는 카니발 한대에 10명의 대가족이 낑겨탔다. 한 집당 캐리어를 두 개씩 들고 오니 총 6개. 테트리스를 하기 시작했다. 캐리어 큰 거를 바닥에 쌓고 작은 거 올리고 가로로 넣었다가 세로로 바꿔보고... "야 그러지 말고 뒤에 의자 다 접어" 형님은 뒤에 의자를 다 접고 벤으로 만들었다. "사람보다 캐리어가 먼저다." 역시 현명하신 형님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의자가 아닌 바닥에 앉아 마치 트럭을 탄 듯 덜컹거리는 카니발과 함께 우리는 공항으로 향했다.


"그래도 살건 사야지?" 우리는 공항에 가다가 마트에 들러 미니소주와 햇반 밑반찬 등등 샀다. 짐이 한 보따리가 더 늘어났다. "이거 공항 가다 차 퍼지는 거 아니에요?" 나는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가는 내내 창 밖에는 비가 계속 쏟아지고 있었다. 바람도 불고 비도 내리고 모두들 내려놓았다. "못 가면 삼겹살이나 먹자." 그렇게 우리는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 들어서자마자 모두의 눈은 전광판으로 향했다.



"오! 뜬다." 아이들이 신이 나서 난리다. 몇몇의 지연과 결항도 보였지만 대부분은 정상적으로 운항이 가능했다. 열명 모두 안도의 한숨을 쉬며 기뻐했다. "괜히 똥줄 탔었네." 기쁜 마음으로 여행 전 우리는 한식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갔다. "야. 다 시켜." 그렇게 우리는 여행 전 만찬을 즐기고, 은행에 들러 링깃으로 환전도 했다. 와이프와 형수님은 여유롭게 면세점을 향한다. 미리 구매했던 것들을 한 보따리 찾아온다. "그래 머니 걱정은 다녀와서..."


비행기는 무탈하게 이륙했다. 모두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폈다. 이런 게 행복이구나 싶었다. 한참을 지나 노을빛이 보였다. "드디어 가는구나."


"아빠. 코타키나발루는 코딱지나발러야. 웃기지? 히히"


"그래. 코딱지바르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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