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진 교수의 경향신문 칼럼을 읽고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이 언론사 입사 시험에 종종 나온다. 최근 가장 관심을 갖고 본 보도가 어떤 것이냐는 질문도 있다. 언론사 입사를 준비하는 사람들로서는 이럴 때 정말 제일 큰 문제라고 생각하는 걸 얘기해도 될지, 아니면 자기가 잘 아는 문제 중에서 골라서 말을 해야 할지 고민스럽다. 실수를 피하기 위해 자기가 잘 아는 문제를 얘기했다가 너무 시야가 좁다는 얘기를 듣지는 않을지, 반대로 너무 큰 문제를 얘기했다가 후속 질문이 나왔을 때 제대로 답을 못해 낭패를 당하지 않을지 걱정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럴 때는 그냥 솔직한 정공법이 답이라고 생각한다. 진짜 자기가 큰 문제라고 생각하는 걸 얘기하고, 비록 후속 질문에 답을 제대로 못해도 괜찮다는 쪽이다. 대신에 그런 문제에 대한 탐구와 고민을 계속하겠다는 자세만 보여주면 되지 않을까 하는 뜻에서다. 어차피 신입 기자를 뽑을 때 어떤 완성된 능력을 보려는 바보는 없을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언론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의 갈등 구조에 관심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누군가 잘못을 했을 때 그것을 고발하고 바로잡는 것으로는 구조적인 문제를 바꿔내지 못한다. 지역 갈등, 세대 갈등, 젠더 갈등, 그리고 산업간 계층간 등등 다양한 층위의 갈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구조 속에서 개별적으로 따져봤을 때 아무런 합리성도 발견할 수 없는 일이 태연하게 벌어진다. 어떤 구체적인 문제가 있거나 잘못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구조적 갈등 구조를 이용해 오히려 처벌을 피해가기도 한다. 말도 안 되는 예산 집행이 이뤄지기도 하고, 해서는 안 되는 대규모 공사판을 벌이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은 자기도 갈등판에 한 발을 끼워넣고 선수가 되려고 안달할 것이 아니라 그 판의 구조를 제대로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이 자신들이 벌이고 있는 우스꽝스러운 비합리적 행태를 직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떻게 하면 그런 갈등의 구조를 풀어낼 수 있는지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지금 진행되고 있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 관련 수사와 체포동의안 문제를 세 대결 양상으로 보도하는 행태는 이런 자세와 거리가 멀다. 노조 관련 문제도 마찬가지다. 야당 대표에 대한 영장 체포는 일단 잘못된 것이거나 정치적인 것이라고 단정하고 체포동의안의 처리 향방을 점치는 분석 기사를 아무리 쓴다고 해도 이 문제에서 갈등을 완화할 어떤 접점을 찾아내는 것도 어려울 것 같다. 노조 문제도 마찬가지다. 기존 노조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일단 노조 탄압이라고 전제하고 들어가는 것은 지금의 갈등 구조 속에서만 문제를 보겠다는 자세다. 사실 모든 문제를 이렇게 기존의 구조를 이용해서만 바라보는 건 편하고 안전해 보이기도 한다. 사회야 얼마나 혼란을 겪든. 이건 지식인도 마찬가지다.
그런 의미에서 아침에 읽은 장덕진 교수의 칼럼 같은 것은 좀 널리 읽힐 필요가 있다. 그냥 불체포특권 폐지를 주장하면 그것을 정치 개혁이라고 보도했다가, 나중에 야당 대표에 대한 영장이 청구되자 도주할 우려도 없는데 왠 영장이냐고 하거나 법대로 하자는 식의 기사와 칼럼을 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글이다.
나는 사실 구속영장 발부 전에 하는 사전 심사(이른바 구속영장 실질심사)에 앞서 체포동의를 받는 것만 바꾸면 되는 일이라고 오래 전부터 얘기해왔다. 판사가 심사를 거쳐 영장을 발부한 경우에만 비로소 체포동의 여부를 국회가 판단하면 많은 갈등이 해소될 것이다. 어떤 범죄 혐의가 어느 정도로 조사됐는지가 드러난 다음에 국회에서 표결을 해야지, 지금은 검찰이 영장 청구만 하면 바로 국회에서 체포동의를 하니 마치 법원을 검찰이 영장 신청하면 자동으로 발부하는 자판기로 취급하는 식이다. 그러니 대소동을 벌여서 체포동의를 가결시켰더니 법원이 영장을 기각해버리는 일도 생긴다. 국회에서 벌어지는 표결을 전후한 모든 일은 그야말로 소동에 불과한 일이 되는 것이다.
사실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은 장덕진 교수 지적처럼 함부로 폐지할 것이 아니다. 이것은 민주주의를 위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운용을 지금처럼 특정인들을 위한 방패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언론도 이런 점을 좀 더 명확히 하는 게 필요하다.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302210300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