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노조 문제를 다루는 방법에 대해
사회의 어느 부분이라도 부조리는 있다. 노조도 그 중의 하나일 것이다. 나도 노조위원장을 했었는데, 아무도 자발적으로 위원장을 맡으려고 나서지 않는 곳에서였다. 대충 동기들이 모여서 누가 위원장을 맡을지 논의하는데, 각자 자기가 맡지 못하는 사정을 얘기하다보니 마음 약한 사람이 맡는 구조였다. 더구나 노사관계가 원만하지 않았던 터라 후임도 나서지 않았다. 결국 당시 노사간 대립이 해결될 때까지 연임까지 했다. 하지만 그래도 뭔가 좋은 게 있으니 위원장을 하는 거 아냐? 하는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 사람이 절대로 먼저 손들고 ‘내가 하겠소’ 하는 법도 없다. 그런다고 그런 사람에게 맡길 수도 없었겠지만...
종종 어떤 노조에서는 얼마 되지도 않는 조합 공금을 위원장 등 집행부가 횡령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지난해에는 한 언론사에서 전직 노조위원장이 조합비 4억 원을 횡령한 것으로 드러나 해고됐다. 더 큰 돈을 횡령했다가 구속되는 대형 노조위원장들도 가끔 있다. 실제로 노조라는 곳이 일종의 투쟁 조직이다보니 내부적으로 꼼꼼한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을 위험성이 있다. 사람의 선의에 기대는 측면이 큰 것이다. 그러다 보면 누군가 제대로 회계 처리를 하지 않거나 돈을 함부로 쓸 위험이 있다.
실제로 현장에서 노조가 막강한 권력인 경우도 존재한다. 노조에 밉보이면 제대로 일감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조합에 가입해야만 고용이 유지되는 곳도 있다. 이런 경우는 조합이 바로 밥줄이 된다. 원래는 선의로 시작한 조직 원리가 권력화되면 견제조차 어렵게 되는 수가 있다. 이런 문제를 지적하는 것 자체가 반노동적인 것으로 보이거나, 혹은 노조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한꺼풀 들어가보면 분명히 문제인 경우들이 있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어떤 것이든 부패할 수밖에 없다.
갑자기 노조 얘기를 하는 건 요즘 벌어지고 있는 노조에 대한 논란 때문이다. 정부는 연일 노조를 비리 집단으로 지목해 공세를 벌인다. 이 문제를 다루는 언론은 친 노조, 반 노조로 딱 갈려져 있다. 노조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 자체를 닥치고 문제라고 하는 언론, 노조라는 것 자체가 닥치고 문제라는 언론. 두 언론 모두 문제다. 이를테면 정부가 하는 말 중에서 틀린 부분 하나만 잡아내면 노조와 관련한 정부의 주장 모두가 엉터리라고 몰아가는 것이나 노조의 문제 하나만 들추면 노조는 무조건 문제라는 식으로 몰아가는 것이나 내가 볼 때는 똑같다.
정말 이런 문제를 다룰 때는 실제로 문제가 되는 노조의 행태가 무엇인지 밝혀내고 지적하는 것과 함께 노조에 대한 잘못된 비판이 있다면 그건 그대로 지적을 하는 게 필요하다. 정부가 노조에 대한 비판에 동원한 주장은 또 허점이 없는지도 잘 따져봐야 한다. 이를테면 내가 링크한 다음 기사 같은 것이다.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7101104&plink=STAND&cooper=NAVERMAIN
노조의 운영에 ‘문제가 있을 수’ 있고, 그럴 경우에는 조합원 전체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는 이유로 아예 회계 장부를 다 공개하라고 요구하는 건 무리한 요구인 것 같다. 이건 그야말로 조합의 운영 상황을 모조리 들여다보겠다는 것으로 심각한 자율성 침해로 보인다. 정말 행정 당국이 감독권을 행사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 사안으로 국한되어야 할 것이다. 예방적 차원에서 모든 조합의 운영을 손바닥처럼 들여다보겠다는 생각을 어떻게 하게 됐을지 참 궁금하다. 문제적 노조가 있다고 해서 모든 노조는 문제일 수 있다는 식의 발상은 길 가는 사람 아무나 잡고 불심검문하고 가방 뒤져도 된다던 1980년대를 떠올리게 한다.
반면에 건설노조에서 최근 문제가 된 월례비를 비롯한 공사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잘못된 여러 관행들을 고치자는 것까지 무조건 노조 탄압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영역을 성역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노조의 관행 중에도 잘못된 것이 있다면 고쳐야 한다. 권력화한 일부 노조 집행부의 문제도 잘 따져볼 필요가 있다. 노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언론이라면 오히려 그런 문제를 잘 들여다보는 것이 진정성이 있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