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가 심층 보도한 극단적 정치 팬덤 문제
한국일보가 우리 사회의 가장 예민한 부분 중의 하나인 극단적 정치 팬덤의 문제를 심층 보도했다. 1면부터 사설까지 집중 보도를 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 표결이 가까스로 부결된 직후 벌어지고 있는 현재 진행형인 문제를 다뤘다. 이른바 비명계 의원 10명의 페이스북에 올라온 표결 관련 댓글 500개를 분석하는 방법론도 인상적이었다. 물론 우리는 이런 분석을 하는 수고를 하지 않더라도 문제가 무엇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짐작하는 것과 이렇게 실증적으로 분석해보는 것은 분명히 차이가 있다.
기사에는 부결 표를 던지지 않았을 거라고 의심되는 의원들을 향한 이재명 대표 지지 세력의 폭력적 행태가 생생하게 나온다. 단순히 댓글만 문제가 아니라 직접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 욕설을 하는 것도 다반사라고 한다. 급기야 어떤 의원은 자신이 부결표를 던졌다는 내용의 공지글을 SNS에 올리기도 했다. 나도 그 공지글을 읽었는데, 비밀 투표를 한 사안에 대해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이 ‘나는 부결에 표를 던졌다’고 고백해야 하는 상황은 매우 위험스러워 보였다. 강요된 양심 고백이나 마찬가지인데, 어차피 무슨 표를 던졌는지는 알 수도 없는 상황에서 그런 고백의 글을 올리게 만드는 것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오로지 자신들의 위력을 과시하는 것 이상의 효과는 없을 텐데, 저런 행태가 어떤 후과를 가져올지에 대한 생각은 해본 것일까?
하지만 집단적으로 어떤 생각에 빠져들면 이런 냉정한 판단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이번에 처음 나타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과거 문재인 전 대통령의 ‘양념 발언’에서부터 조국 전 법무장관 수사 과정을 거쳐 약간씩 표출의 방식만 달라질 뿐 우리 정치권에서 이런 식의 극단적 행태는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 모든 유권자가 참여하는 선거 국면을 제외하고는 이런 식의 극단적 팬덤이 우리 정치를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동력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런 팬덤은 언론과 미디어에도 영향을 미친다. 특정 팬덤의 마음에만 들 수 있다면 어느 정도 규모의 언론은 어렵지 않게 경영을 할 수도 있다. 실제로 조국 전 장관 사태 때는 방송사가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단 며칠 만에 시청률이 급변하기도 했다. 특히 후원 모델을 채택하는 언론사는 이런 식의 팬덤과 함께 가지 않으면 생존에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정파성이 강하지 않은, 가치 중심의 후원 문화가 없는 상태에서 후원 모델을 선택하는 것이 위험한 이유다. 흔히 유튜브 세계에서만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제법 큰 규모의 언론사들도 팬덤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일반적 의미에서 뉴스 소비자와 사회 여론을 신경 쓰는 것은 당연할 뿐만 아니라 필요한 일이지만 혹시 공연히 린치를 당하지 않을까를 걱정하고 실제 편집에 영향을 받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은 그야말로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것이다.
한국일보가 이 정치 팬덤을 일러 ‘여의도 훌리건’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만약 스포츠 경기였다면 경기장 출입을 금지당했을 것이다. 물론 경기장 밖에서 그런 행태를 보이는 것까지야 어쩔 수 없겠지만. 이런 현상이 우리 사회의 상식적인 논의를 위협하는 것에 대해서 이제는 조금 더 적극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언론의 이런 심층 보도도 이런 논의를 촉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활동을 하면서 마치 사회적으로 훌륭한 일을 한 것처럼 환상을 갖는 것에 대해서 분명한 메시지를 줄 필요가 있다. 아울러 정상적인 의미의 ‘정치 참여’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진지한 고민이 함께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이런 극단적 팬덤을 넘어선다는 것이 정치적 무관심으로 돌아가자는 것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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