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 3월 24일 헌법재판소의 결정 보도에 대해
뉴스 소비자는 자기가 자주 보는 언론이 중요한 사안을 어떻게 다루기를 기대할까? 두 가지 방향이 가능하다. 하나는 해당 사안에 대한 종합적인 내용을 전해주는 것이다. 최종 판단은 내게 맡기고 언론은 해당 사안의 여러 측면을 균형 있게 전달해 주면 된다. 언론이 나름대로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있더라도 사실관계는 종합적으로 알려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이다.
다른 하나는 자기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방향에서 해당 사안을 분석해 주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평소 그 매체를 자주 보는 이유가 바로 주요 사안을 바라보는 시각이 비슷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전제하면, 이번에도 자기 생각이 맞는다는 것을 재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부산대 조항제 교수께서 연구한 결과를 보면 언론 보도에서 객관적인 사실관계를 파악하기보다는 연대와 유대의 감정을 느끼려는 언론 소비자가 많다고 한다. 문제는 이렇게 되면 뭔가 새로운 내용을 접해서 인식의 지평을 넓히고 자기 생각에서 잘못된 부분이 없는지 성찰하는 것은 어렵다. 이미 정해진 자기 생각과 관점을 재확인하고 강화하는 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정치인 등이 불리한 내용이 보도되면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대신 오히려 ‘가짜뉴스’라고 보도를 공격하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도 이런 주장을 믿고 싶어하는 소비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 주류 언론도 이런 소비자들을 위해 종합적인 사실을 전하는 대신 자신의 소비자들이 원하는 방향으로만 기사를 쓰는 것이 흔하다는 점이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그 정도가 너무 심해 질적 차이로 보이기도 한다. 오늘은 검수완박법에 관한 헌재 결정 보도와 관련해 특별히 눈에 띈 한겨레에 대해 살펴본다.
오늘 한겨레의 관련 기사들이다.
1) 1면 머리 기사 <헌재 “수사권 축소, 검사 권한침해 아니다”>
- 부제1: 법무부·검사 권한쟁의 각하/ “헌법상 부여된 권한 아니고/입법으로 조정·배분할 사항”
- 부제2: 민형배 의원 ‘위장 탈당’ 관련/ 5대 4 “심의·표ㅕ결권 침해” 판단/ “법안 통과는 무효 아니다” 결론
2) 3면 머리 기사 <“헌법, 검찰에 수사·소추권 독점 부여 안해…입법 결정 사항”
부제 1: 헌재 ‘검사 수사권 축소’ 왜 손들어줬나?/ “검사의 영장 신청권 조항으로/ 헌법상 수사권 부여 도출 안돼” / 한동훈 주장의 전제 논리 깨져
부제 2: 재판관 4명은 ‘권한 침해’ 소수의견/ “헌법이 검사에게 수사권 부여해”
3) 사설: <‘검찰 수사권 축소’ 합헌 결정, ‘시행령 편법’ 바로잡아야>
이번에 헌재가 이 사건과 관련해 내린 결정은 5개인데, 한겨레는 세 건의 기사 모두에서 법무부 장관과 검사들이 이번 검수완박법 개정으로 검사의 헌법상 수사권이 침해됐다는 내용이 각하된 것만을 주로 다루고 있다. 1면에서 ‘한편’에서부터 국민의힘 의원들이 심의·의결권이 침해됐다면서 낸 권한쟁의 신청이 인용된 것을 언급하기는 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번 헌재 결정은 5가지 청구 모두에서 9명의 재판관이 5:4로 아슬아슬하게 갈렸다. 한 명이 어느 쪽에 서느냐에 따라 결론이 바뀌기도 했다. 한겨레가 주목한 법무부 장관과 검사의 권한이 침해되지 않았다는 결론이나, 법률 개정이 무효가 아니라는 결론, 법사위원장의 가결 선포가 무효가 아니라는 주장, 국회의장의 가결 선포가 무효가 아니라는 결론이 모두 이른바 진보로 분류되는 재판관 5명의 찬성으로 나온 것이다. 1명이 더 많은 것에 불과하더라도 5대 4로 다수가 되면 법적으로는 9대 0인 경우와 동일한 효과가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헌법 재판이라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헌법 해석은 항상 변화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했고 진보로 분류되는 이미선 재판관이 ‘법사위원장의 가결 선포가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들의 권한을 침해했다’는 결론에 동참하면서 이 청구가 인용된 것은 그런 의미에서 주목할 부분이다. 비록 이미선 재판관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사위원장의 가결 선포의 효력은 인정된다는 쪽에 동참했지만, 진보로 분류된 재판관까지 민형배 의원의 위장 탈당을 통한 비정상적인 법사위 의결을 잘못이라고 한 것은 앞으로 국회의 의결 과정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겨레는 이런 부분에는 거의 눈길을 안 준 셈이다.
이 부분은 헌법 해석은 항상 변화해 왔다는 것과 관련해서도 생각해볼 점이 있다. 이번 사건에서도 4명의 재판관은 검사의 수사권을 헌법상 권한으로 보고 검수완박 법안이 사실상 위헌이라는 취지의 의견을 냈다는 점도 주의할 필요가 있다.
여권에서 이번 결정을 이유로 헌재를 ‘정치재판소’ 운운하는 것도 분명히 과하다. 헌법 재판이라는 것은 어차피 엇갈리는 가치들의 충돌 속에서 그 시점에 주어진 재판관들의 가치나 정치적 지향 등이 반영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수도가 서울이라는 것은 관습헌법’이라는 논리를 내세워 헌재가 수도 이전을 막은 적도 있다. 어떻든 이번 사안에서는 국회가 검수완박 법안을 처리하는 과정에 분명히 문제가 있었다는 결론과 함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재판관 분포에서는 그렇게 처리한 법안의 효력을 부인하지는 않겠다는 결론이 나온 셈이다. 기묘하다고도 볼 수 있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헌재가 국회 본회의를 정상적으로 통과한 법안을 무효화하지 않는다는 기존 태도를 유지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여기에 이번 결론이 5대 4라는 재판관 1명으로 갈린 아슬아슬한 결정이라는 점은 그만큼 이 사안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의견이 강하게 충돌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묘한 헌재의 결정이 국회는 물론 우리 사회 전체에 많은 고민거리를 던져준 셈이다.
그런데도 이것을 한겨레가 “이것이 헌재의 결론이다”라며 마치 재판관들 사이에서 압도적인 지지로 결론이 난 것처럼 보도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볼 수밖에 없다. 특히 국회의 상습적인 절차 경시와 편법적 관행을 하나의 독립적 결정으로 지적한 것을 흘려버리는 것도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 국회가 다른 방향으로 절차적 편법을 저지를 때도 똑같은 태도를 취할 것인지 생각해보면 좋겠다.
다시 서두에 언급한 보도 방식으로 돌아가보자. 이번 한겨레의 보도는 어느 쪽일까? 적어도 이번 헌재 결정의 여러 측면을 종합적으로, 제대로 보도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겠다. 줄기차게 한동훈 장관과 검찰을 비판하고 검찰 수사권 축소를 외쳤던 연장선에서, 그에 부합하는 쪽의 내용만 부각한 셈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다수당의 횡포를 막기 위해 국회법에 도입한 안건조정위를 다수당 의원을 위장탈당시켜 실질적으로 무력화시키고 제대로 논의도 없이 절차를 진행한 것처럼 입법 과정의 문제점이 역시 헌재 결정으로 인정된 부분은 아주 부차적 문제로 흘려버렸다. 한겨레만 읽은 독자라면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할 기회를 갖기 어렵다. 상황이 바뀌어도 같은 태도를 취할 수 있을지 잘 생각해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