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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ture Oct 21. 2019

존경하는 상사가 있나요?

"내가 뭘 아나"

경력직으로 입사했다

나는 지금의 회사에 경력직으로 입사했다. 이전 회사는 규모는 비슷했으나 스타트업으로 시작해 단기간에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벤처회사였고, 이직한 지금의 회사는 전통적인 30대 그룹에 속하는 대기업 계열사다.
두 회사의 기업문화는 그야말로 180도 달랐다. 전 회사의 출근 시간은 10시-7시였으나 특별히 통제하는 사람도 없이 거의 자율근무에 가까웠다. 10시~11시 사이 자유롭게 출근하고 자유롭게 퇴근했다. 복장도 자율, 사실 자율복장이란 말도 의미가 없는 것이 처음부터 출근복장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반바지, 모자, 슬리퍼, 민소매, 스포츠 레깅스 등 특별히 제지당하는 일은 없었다. 본인이 알아서 판단해서 미팅이 많은 영업직군은 비교적 깔끔한 복장이었고, 사무실 근무가 많은 디자인, 개발자들의 복장은 그야말로 개성 넘쳤다.
반대로 이직해 온 지금의 회사는 출근 시간은 8시 30분이었고 그 시간에는 사내방송이 나와 모두 어텐션 하는 분위기였다. 사내방송 전 착석과 방송시간에는 자리를 지키는 것이 암묵적인 그라운드 룰이 있었다. 복장도 자율을 기본으로 비즈니스 캐주얼이라는 좀 이상한 단어의 복장 규정이 있었다. 자유롭게 입되, 청바지, 카라 없는 상의는 암묵적 금지 사항이었다. 슬리퍼나, 모자, 스포츠 의류는 논외 대상도 아닌 상식 밖의 행동으로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너무 다른 기업문화

이렇게 다른 기업 문화에 적응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업무 프로세스부터  일을 대하는 태도까지 너무 달랐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문제가 아니라 동료와 상사를 설득하는 과정이 이 전의 회사와 달랐다. 전 회사는 구두보고와 간단한 공유로 일사천리로 진행이 가능했다. 벤처회사답게 의사결정과 실행에 있어 스피드 하게 진행이 됐다. 그 속도에 맞춰져 있던 나에게 이 곳은 너무 과정과 절차에 치여 눌려 죽을 거 같은 속도였다. 내 생각에 하루면 될 일이 일주일이 걸렸고, 일주일이면 될 거 같은 일은 한 달이 걸리기도 했다. 의사결정과 타당성 검토, 보고를 위한 보고서 작성 등 내가 보기에 불합리한 일들이 많아 보였다.
그러나 지금의 나를 보면 이런 문화에 나 또한 동참하고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기업이 추구하는 문화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었다. 빠르게 대처 가능한 벤처는 그것이 장점이지만 그만큼 리스크가 크다. 반면 과정과 절차를 중요시하면 리스크를 줄이고, 공정한 신뢰도를 높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렇게 다른 기업문화에 한 달 동안 많은 고민 많았다. 월요병도 없던 자유롭던 직장과, 급여와 복지가 월등하게 좋은 지금의 회사.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나에게 이 회사에 있게 해 준 분이 계셨다. 새로운 팀을 구성하기 위해 입사한 나는, 아직 팀장도 없었고 팀원도 몇 명 되지 않았다. 그래서 사업부장님이 팀장대행을 하고 계셨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사업부장님은 임원급으로 팀장 단위의 업무를 하는 분이 아니셨다.


전문가는 당신이니, 믿고 가면 되는 거죠?

신사업을 위해 입사하게 된 나는 사업계획서와 신사업에 필요한 구입장비와 예산안을 보고해야 했다. 이렇게 보수적인 문화가 가득한 곳에 신사업에 대한 이해도가 낮을 것이고 예산 책정에 있어 비전문가인 관리자를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신사업을 어떻게 추진해야 하는 고민보다 관리자를 설득해야 하는 고민이 더 많았다. 대략 한 달여간의 준비를 마치고 보고서를 들고 사업부장님께 갔다. 전투력 가득한 의지로 항목 하나하나 따지지 못하게 부연설명을 준비했다. 이 예산이 왜 필요하며 어디에 사용되며, 장비는 왜 필요한지, 그리고 그에 따른  기대효과는 무엇인지. 꼼꼼히 준비했다.

"사업부장님 기획서와 예산, 그리고 장비 목록입니다."
"내가 뭘 아나, 전문가는 당신이니까 알아서 잘하셨겠죠. 믿고 가면 되는 거죠?"

심하게 뒤통수를 맞는 느낌이었다. 과거에도 비슷한 사업을 추진할 때도 비교적 유연하다는 벤처기업에서도 항상 챌린지가 있었는데, 이렇게 쉽고 가볍게 통과가 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이 정도 금액은 우리 회사에서 별일 아니다.라는 태도인가? 아니면 그리 중요한 사업 아니라는 건가? 순간 많은 생각이 지나갔다. 회사의 사활을 건 프로젝트는 아니었지만, 분명 적은 금액의 투자비도 아니었다.

"그래도 예산안 보시고 결정해 주셔야..."

"꼼꼼히 잘 책정하셨겠죠. 지금 이 예산안 책정되면 추가로 받기 힘들 수 있으니, 미리 많이 받아 두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신사업이 이래저래 주목도 많이 받고 힘들 거예요. 돈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일을 하는 사람을 보고 결정해요. 어차피 전문가는 당신이니까요. 전 그저 이 일을 하는데 장애요소를 제거하는 사람이에요. 그러니 힘든 일 있거나, 내가 해결해 줘야 하는 일 있으면 그것만 말해요."

두 번째  뒤 통수 맞고 더 이상 할 말을 못 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상사 같았다. 지금까지 많은 결정권자를 봤다. 회식이나 지나가는 말로는 자기가 바람막이가 되겠다. 도와주겠다 말은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이 되고 결재를 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모두들 생각과 행동이 바뀌었다. 그러나 이분은 그와 반대로 서류에 결재하는 순간에 가장 쿨하셨다.


여전히 회사 인간

그리고 5년이 지났고, 여전히 난 이 회사로 출근하고 있고, 그분은 여전히 존경받는 자리에 계신다. 물론 모든 상사가 저분 같지 않았고, 기업문화도 모두 불합리하지 않았다.  이제는 반바지도 허용되는 좀 더 유연한 문화로 바뀌어 가고 있고, 신입을 보는 내 눈은 더 꼰대스러워졌을지 모른다. 내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합리성을 따지기보다 조직에 적응하는 유연성도 필요했다. 여기서 배운 것 중 조직은 공동의 가치를 이해하는 룰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렇게 난 여전히 회사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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