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뮤지션의 찬란하고 불온한 무대

변화를 주저하고 있다면 <컴플리트 언노운>

by 성실한 관찰자


2014년 10월 27일, 출근 전부터 회사 단톡방에 많은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나버린 마왕 ‘신해철’. 그 안타까운 소식에 추모 메시지가 쌓여가고 있었다. 당시 알고 있는 그의 노래는 단 한 곡이었다. 내가 태어난 1988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전주가 나오자마자 모두가 대상을 직감했다던 <그대에게>. 단톡방의 대화는 어느새 업무로 넘어가 그와 관련된 콘텐츠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났고, 그 일은 뮤직 콘텐츠를 담당하고 있던 나에게 주어졌다. 온종일 그에게 푹 빠져있었다. 그에 대해 알면 알수록, 노래를 들으면 들을수록 뒤늦게 그를 알았다는 사실이 너무나 애석했다.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을 보고 문득 그날이 떠올랐다.


영화는 미국의 천재 뮤지션 ‘밥 딜런’의 이야기다. 그는 자신의 우상인 ‘우디 거스리’를 만나기 위해 뉴욕에 첫발을 내디딘다. 당시 그의 나이는 19살이었고, 영화는 그로부터 4년간의 시간을 담았다. 그는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시적으로 표현한 포크 음악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고, 어느새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자리잡는다. 어쿠스틱 기타와 하모니카로 연주하는 포크 음악에 갈증을 느낀 그는 다양한 악기로 실험적인 연주를 감행한다. 그리고 1965년,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의 무대에서 일렉 기타를 들고 등장해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음악 '포크 록'을 선보인다.


영화가 집중하고 있는 1961~1965년은 밥 딜런의 찬란하고 불온한 청춘의 한 조각이다. 동시에 미국을 넘어 세계는 격동의 시기이기도 했다. 당시 핵전쟁의 공포와 냉전, 베트남전, 전 세계적인 민권운동 등으로 많은 것들이 흔들리던 때였다. 이러한 시기에 그의 곁에는 ‘실비’가 있었고, 그녀는 인권 운동에 참여했다. 그에게 그녀는 뮤즈이자 연인이었고, 그런 영향으로 자신만의 음악적인 정체성을 쌓아갔다. 이런 시대적 배경과 뮤즈의 영향으로 그는 사회 부조리와 전쟁을 서정적인 언어로 비판하며 노래했고, 많은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가 되기 충분했다.


‘비틀즈’, ‘롤링 스톤즈’ 등이 이끈 록 음악의 인기가 절정이었던 1964년. 밥 딜런은 자신의 음악적 표현 범위를 넓히고자 변화를 시도했다. 이 변화는 당시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전통적인 포크 음악만을 위한 페스티벌에서 그가 연주하는 일렉 기타의 날카롭고 선명한 소리 위로 피아노, 베이스, 드럼 소리가 겹겹이 쌓여 다채로워졌다. 관객석은 당황했고, 이어 그를 향한 비난과 응원으로 나뉘었다. 다소 과격한 관객들은 무대에 온갖 물건을 던졌다. 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연주를 멈추지 않았다. 누군가는 배신자라 했고, 누군가는 시대의 천재라 불렀다. 이후 그는 지금 우리가 아는 밥 딜런이 되었다.



영화가 밥 딜런의 짧지만 강렬했던 시간을 집중적으로 다룬 이유도, 어쩌면 이 때문일 것이다. 그도 그랬듯이 우리도 언제나,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으며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선택을 하며 우리는 결국 안주하거나 비로소 변화한다. 두려움에 맞서 끝내 한 걸음을 내디딘 순간이 우리를 새로운 길로 이끈다. 언젠가 다시 지금을 돌아볼 때, 지금의 이 변화가 ‘다른 나’를 만드는 시간이 될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주저하고 있다면, 이 글이 당신에게 작은 용기이자 응원이 되어주길. 나에게도,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그런 시간이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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