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이 아픔에게

마음의 그늘에 건네는 위로 <리얼 페인>

by 성실한 관찰자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게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레프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다.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의 강렬함을 잊지 못한다. 나는 알고 있었다. 우리 집 또한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했으니까. 어려서부터 부모님은 자주 다퉜다. 이유는 매번 달랐지만 과정은 비슷하게 흘러갔고 마음속의 그늘은 날로 짙어갔다. 가끔 “왜 우리 집만 이럴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답이 없는 질문이라는 것을 깨닫고, 도피를 위해 혹은 자기 위로를 위해 영화를 찾았다. 그 안에서 다양한 사람의 어둠을 들여다보며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라는 동질감을 느끼기도 하고, ‘나라면 어땠을까’라며 크고 작은 고통을 견주어보기도 했다. 영화 <리얼 페인>은 우리가 저마다 품고 있는 어둠에 대해 이야기한다. 크기도, 모양도 다르지만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들에 대하여.


영화에서 사촌지간인 ‘벤지(키에런 컬킨)’와 ‘데이비드(제시 아이젠버그)’는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할머니의 유언으로 그녀의 고향, 폴란드로 향한다. 두 사람은 너무나도 다른 성향을 가졌다. 벤지는 직설적이고 즉흥적이다. 아슬아슬하게 선을 넘나드는 말과 행동으로 주변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분위기를 유쾌하게 만들기도 한다. 반면 데이비드는 내성적이고 소심하다. 불안과 강박 증세가 있어 벤지를 만나기 위해 공항을 향하며 답장 없는 음성 메시지를 계속 보낸다. 폴란드에 도착한 그들은 신청해 두었던 비극적인 역사를 주제로 한 가이드 투어에 참석한다. 한때 친형제처럼 자랐지만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레 멀어진 두 사람이 오랜만에 함께 보내는 시간이기도 했다.


일정으로 강제 수용소를 가던 날, 벤지는 불만이 가득했다. 무슨 일이 있는지 묻는 투어 가이드에게 그는 “그때는 꼬리칸에 가축처럼 갇혀 강제 이송되었는데, 우리는 일등석에 앉아 있는 것이 모순이지 않냐”라고 말한다. 이어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아픔을 철저히 외면한 채 살아간다”며 혼자 다른 칸으로 자리를 옮긴다. 투어가 계속되며 벤지는 몰아치는 감정을 절제하지 못한다. 함께하는 다른 여행객들도, 데이비드도 그런 벤지를 버거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여행 말미, 다 같이 모여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데이비드는 벤지를 향한 복잡한 감정을 털어놓는다. 그를 사랑하면서도 증오하는 마음. 몇 달 전에 자살 시도를 했던 그에게 묻고 싶은 말이 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 자신의 마음에 대해. 데이비드는 억눌러왔던 감정을 쏟아냈고, 목소리는 그의 불안의 한계치에 달한 듯 미세하게 떨려왔다. 영화는 데이비드의 시점, 타인의 시점으로 벤지를 비춘다. 영화가 끝나도 우리는 그가 ‘무엇’ 이 힘든지, ‘왜’ 죽음의 문턱까지 갔는지 자세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게 중요할까?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건, ‘얼마나’가 아닐까.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을까, 얼마나 외로웠을까.’


영화 <리얼 페인>은 홀로코스트라는 거대한 역사적 아픔과 벤지와 데이비드의 지극히 사적인 내면의 상처를 보여준다. 어떤 아픔이 더 크고 작은 지를 견주는 것이 아니라 어디서 비롯되었든, 모두 진짜 고통이고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게 영화 제목이 가지는 의미가 아닐까. 영화 제목 ‘리얼 페인(Real Pain)’처럼. 그리고 이어 어떤 이의 고통 앞에서 타인인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다정한 행동은, 여행을 마친 공항에서 두 사람이 나눈 그 깊은 포옹에 담겨 있다. 말보다 많고, 침묵보다 가까운 마음 하나.


“나는 너의 고통을 다 이해할 순 없어. 하지만 너의 고통이 진짜라는 걸 알아.”


그리고 영화를 보고 잊히지 않는 장면은, 영화가 시작하는 장면과 같이 공항의 벤치에 앉아 있는 벤지의 모습이다. 아무것도 응시하지 않는 텅 빈 눈과 얼굴의 반쪽에 올려진 그늘. 잠시 멀어졌던 그늘을 다시 마주했을 때의, 상처를 품고 사는 우리들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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