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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오 Oct 08. 2024

지나온 그들로 인한 나

부질없던 연애의 끝에 비로소 얻은 것

연애를 할 때마다 이런저런 고민에 시달리고 결국 또 어김없이 차인 친구 한 놈과 전화를 하던 도중 질문을 하나 던졌다.


“넌 그렇게까지 힘들어하면서 왜 또 연애를 시작하냐.”


그리고 돌아온 녀석의 대답에 잠시 생각에 빠졌다.


“힘들었지만, 그만큼 성장했으니까 괜찮아. “


지나온 연애들은 자고로 아련한 추억이면서 한편에 시린 아픔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대학교를 입학해 벚꽃이 만개하던 그날에 처음으로 잡아본 그녀의 손, 시원한 바람이 불던 한 여름밤 청계천을 걸으며 미래를 그렸던 그날의 대화, 둘만 알고 있는 농담을 하며 뭐가 그리 재밌었는지 한참을 웃던 그날.


나의 부모보다 나의 친한 친구보다 나를 더욱 잘 알고 있던 그녀들은 이젠 내 세상엔 존재하지 않는다. 부질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부질없던 이 만남들 속에서 무엇이 남았던 걸까. 평생을 사랑할 듯이 서로를 바라보다 결국 서로 상처를 주며 남이 되어버린 그때. 그 시간으로 나는 무엇을 얻었던 걸까. 끝을 맺을 때마다 눈물과 함께 후회를 흘릴 뿐이었다. 그리고 그날 친구와 전화를 끊고 밤길을 걷다 문득 한 가지 떠오른 생각과 깨달음.


나는 그 사람들로 인해 나를 알게 되었다.


사람은 사람을 대할 때 가면을 쓰며 연극을 펼친다.

사회적인 시선, 미움 당할 두려움, 좋은 인간으로 보이고 싶은 욕심. 이러한 모든 것에 에워싸인 나는 전형적인 사회적 인간이 된다. 하지만 그로 인해 나 자신 스스로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게 되어버리는 부작용이 존재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며 어떤 사람을 좋아하고 화가 날 때, 기쁠 때, 슬플 때 어떤 표정을 짓는지. 어쩌면 평생의 숙제와 같은 나 자신 찾기는 사랑했던 사람들로 인해 조금씩 알아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가장 가깝고 사랑하는 존재에게 솔직한 나를 드러낸다.


항상 신경 써서 대해야 하는 불편한 타인들과는 다르게 나를 사랑해 주는 이는 나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 줄 것 같다. 하지만 결국 그들도 다른 사람처럼 나와 다른 가치관을 가진, 다른 삶을 살아온 존재.  꽁꽁 감추었던 생각을 끄집어내서 보여주고 맞대어 보면 마찰이 생기기 마련. 그렇게 스스로도 몰랐던 자신의 본모습을 강제적으로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슬프게도 그 당시가 아닌, 시간이 꽤 지나서야 깨닫게 된다.


‘나는 이럴 때 화가 나는구나.’

‘나는 이런 말을 들으면 행복하구나.’

‘나는 이런 대화에 흥미가 있네’


자신의 닫혀있던 뚜껑을 열고 자각을 하게 된다.


누군가는 지금도 이별로 인해 자신의 인생을 한탄하고 술을 연거푸 들이켜고 상대를 저주하고 있겠지만

결국 그 욕과 분노는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는 비수일 뿐이다. 마음을 잡고 그 사람과 있었던 추억들로 나의 어떤 점과 마주하게 되었는지, 그로 인해 다음 사람에겐 어떤 자신의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을지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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