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기는 불편한 점들
사람과 사람의 인간관계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선을 지키는 관계가 가장 이상적이다. 동네 친구와 몇 달에 한 번 오랜만에 여유가 생겨 술 한잔 기울이며 추억 얘기, 여태 있었던 일들 등을 나누다 보면 그렇게 즐거울 수 없지만, 어릴 적처럼 매일 붙어있다 보면 할 얘기도 점차 없어지고 시간만 낭비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마련이다.
하물며 부모와는 어떤가. 유학을 가기 전 본가에서 생활하던 나는 항상 사소한 일들로 가족들과 티격태격하며 지냈지만 유학 길을 떠나 1년에 한 번씩 돌아오면 그만큼 반가울 수 없었다. 결국 사람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고 애절한 만남일수록 더욱 빛을 발하는 법이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알 고있음에도 나는 먼 타국까지와 그녀와 동거를 시작했다.
봄에서 여름으로 바뀌는 5월. 모모카라는 흔한 이름을 지닌 한 살 연상의 교토 출신 그녀를 처음으로 만났고 세 번의 데이트 끝에 연애를 시작했다. 그녀의 연애 스타일은 밀당 따윈 없는 오로지 직진. 전화도 매일 네 시간씩 하면서 일주일에 세 번 이상은 무조건 집들이를 하러 오는 그녀.
물론 그런 점이 싫지는 않았다. 도쿄에서 오사카로 이사를 온 지 얼마 안 돼 지인조차 한 명 없었고, 그렇기에 감기라도 걸리는 날엔 혼자 기침을 하며 우울함을 온몸으로 느껴야 했던 일상에 그녀는 한 줄기 빛과 같았으니. 그렇게 언 한 달이 지날 때쯤, 왕복 교통비와 월세가 아깝다고 느낀 우리는 서로 타협 끝에 동거를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서로 여유가 생기는 11월 겨울쯤 하려 했으나, 집 계약의 만료와 연애 초기의 불타는 감정으로 계획보다 네 달이나 더 앞서 실행에 옮겼다.
난 혼자 시간을 보낼 때 기력이 충전되는 내향적인 사람이다. 심지어 여태까지 타인과 같은 한 공간에서 지내본 경험은 군대 이외에 전무했다. 이런 인간이 언어와 문화가 같은 국적의 사람과 동거를 해도 걱정이 될 판국에 외국에서 외국인과 동거라니. 젊음의 패기인지 단순한 호기심인지 그녀를 향한 사랑인지 모를 동거는 예상대로 시작부터 몇 가지의 문제가 발생했다.
의사소통의 문제
사람들의 관계의 형성과 진척은 언어가 80 퍼 이상이라는 것을 외국에 오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이곳에 온 지 2년밖에 되지 않아 아직 능숙하게 구사하는 편은 아니다. 그렇기에 일본어를 써야만 의사소통이 되는 그녀와 함께 지내다 보면 여러 의사소통의 오해가 생긴다. 특히 갈등이 생길 때마다 말싸움이 오가고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더욱 심각한 상황을 초래했다.
예를 들어 勝手にして(캇테니 시테)라는 말은 한국어로 번역하면 마음대로 해라는 뜻으로 처음엔 ‘하고 싶은 대로 해도 괜찮아’라는 상냥한 의미인 줄 알았지만 서운함을 느낀 그녀의 표정에서 ’ 너가 알아서 하든지 ‘라는 제법 퉁명스러운 의미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처럼 비슷하지만 다른 그들의 언어를 쓰게 되면서 오해를 종종 불러일으키곤 했다.
더욱이 한국어를 한번 뇌에 거치고 일본어로 번역을 해서 입 밖으로 내는 입장인 나는 그녀와 말싸움을 한 번 시작하면 끝은 녹초가 되어버리고 만다. 물론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는 것처럼, 나 또한 일본에 잠시 공부를 하러 온 방문객이니 일본의 언어를 제대로 숙지해야 되는 것이 당연지사. 결국 이러한 문제는 나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 그 이후로 최근엔 의미가 제대로 숙지되지 않은 단어나 문장은 무조건 물어본 뒤에 사용하는 습관을 들였다.
식문화의 차이
음식의 문화와 식사 예절은 세계 각 국가마다 다르다. 일본과 한국 양쪽 모두 식사를 할 때 젓가락을 사용하고 쌀밥이 주식이지만 요리의 간과 사용되는 조미료는 선명하게 차이가 느껴질 정도다. 맵부심의 민족인 만큼 마늘, 고추장, 고춧가루등 식욕을 돋우는 매운맛의 양념을 주로 사용하는 우리와 달리 간장을 베이스로 하는 일본 음식은 한국 사람들에겐 심심하고 짜기만 한 느낌을 준다. 여행으로 방문해 경험으로 하루 이틀 정도야 신선함을 느끼겠지만, 결국 나는 어쩔 수 없는 한국인. 매일 웃는 얼굴로 요리를 해주는 그녀에게 엄지를 치켜세우며 칭찬을 하고 있지만 사실 본능에서 매운맛 결핍증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물론 현재는 아마존, 쿠팡등과 같은 쇼핑몰 사이트에 들어가기만 해도 타국에서도 한국 조미료 정도는 얼마든 쉽게 구하려면 구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 비하면 비쌀뿐더러 설령 구매를 해서 온다고 할지라도 그녀가 매일 정성스럽게 만들어준 음식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증거가 될 뿐이었다.
그렇게 내가 선택한 최후의 수단은 바로 七味(시치미)와 신라면. 신라면 이 놈 참 나의 유학 생활에서 도움을 많이 줬던 고마운 녀석이다. 다른 인스턴트 라면과 달리 롯데 제품이라 일본 어느 편의점, 슈퍼를 가도 존재했다. 한국 제품과 똑같은 얼큰한 맛이 나면서도 건더기 스프는 두 배 이상이 함유되어 있어 매운맛 결핍 증상을 어느 정도 해소 시켜줬다.
七味(시치미)는 한자 그대로 일곱 가지의 맛이라는 뜻으로 고추, 산초, 대파, 생강 등의 맛이 조화롭게 섞여있는 일본 대표적인 조미료 중 하나다.
한국의 고춧가루처럼 얼큰한 매운맛을 선사하진 않아도 국물 요리에 뿌리면 풍미 있는 매운 감칠맛이 느껴져서 이 녀석도 신라면과 같이 유학 생활에 도움을 준 향신료 중 하나다. 이래저래 불평불만을 늘어놓긴 했어도 결국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입맛도 변하기 마련이다. 처음 공항에 도착해서 먹었던 규동의 맛이 너무 밍밍해서 남겼던 규동집을 시간이 지나 다시 방문했더니 오히려 맛있게 느껴지고 한국에서는 그저 매콤하게 느껴졌던 신라면이 점점 맵게 느껴지는 것처럼.
오히려 여태까지 나의 입맛은 자극적이고 건강에 해롭기만 한 음식에 익숙해서 건강하고 간이 덜된 음식이 맛없게 느껴지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에 최근엔 그녀가 매일 정성스럽게 해주는 음식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 자신을 위해서 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