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호기심 많은 남편

(조금만 둔하면 어때?)

by 구슬 옥

9월 23일 까까 벨로스(Cacabelos) 16km

한밤중부터 남편이 가렵다고 아무래도 bed bug에 물린 것 같다며 방을 들락날락했다. 창문도 꽁꽁 닫혀있고 방문도 닫혀 있으니 4인실이 답답하고 더워서 그런 것 같았다.


문제는 남편이 답답해서 침실 창문을 열어놓으면 다른 외국인 순례자가 일어나 창문을 닫아버리고 하는 일이 몇 번 일어나자, 남편은 버그에 물린 것처럼 가렵다고 부스럭대며, 첫새벽에 배낭에 침낭까지 챙겨서 방 밖의 주방을 겸한 거실로 나갔다.


나는 모른 척하고 자다가 화장실도 갈 겸 일어나 나가보니, 거실에는 남편 말고도 여성 순례자 두 명이 담요 두르고 의자에 앉아 자다 깨다 하고 있었다. 남편은 결국 현관 쪽으로 나가, 의자에 앉아 자고 있었는데 거기도 들락거리는 사람이 많아 깊은 잠은 못 자는 것 같았다.


남편은 시원한 밖으로 나오니 가려운 것은 없다고 한다. 알베르게 방들이 4인실이다 보니 방이 답답하고 더운 탓이다. 그래서 민감한 사람들은 잠을 못 자고 드나드는 것 같았다.


나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 한 시간 남짓(?) 잠을 자다가 5시가 넘어서 가만히 일어나 옷을 챙겨 입고 이 층 침대에서 내려와, 배낭에 침낭과 남편이 두고 나간 몇 가지 물건들을 챙겨서 방 밖으로 나오는데 맞은편 1층에 자는(창문을 계속 닫았던) 외국인이 자기 나라 말로 구시렁구시렁 뭐라고 한다. 아마도 남편 때문에 잠을 설쳤는데 나까지 일어나 부스럭 대는 것이 못마땅 한가 보다.


외국에서 모르는 남자에게 알 수 없는 외국어로 불평하는 소리를 들으니 나도 기분이 좋지 않다. 예민한 남편이 새삼 답답해진다. 하긴 저 외국인도 예민하기는 피차 일반인 것 같긴 하다. 그래도 한숨 못 자고 가려워서 밖에서 자는 남편을 모르는 채 놔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마침 일찍 길을 나서는 사람들도 일어나 배낭을 정리하고 간단한 아침을 만들고 있어서, 나도 간단히 계란을 삶아 배낭에 넣어 놓고는, 남편 옆 의자에 앉아 어둠이 걷히기를 조금 기다렸다.


7시쯤 알베르게를 나섰다. 어제 늦게까지 뽄 페라다 성곽을 관람하느라 돌아다녔더니 더 피곤한 데다, 잠조차 푹 못 자서 오늘은 많이 걷기가 어려울 것 같다. 그래도 까까 벨로스 까지 16km는 걷기로 하고 주택단지를 끼고 상쾌하게 걸었다.


공동묘지도 지나고 아스팔트 길도 지나고 흙길을 걷다가, 또 아스팔트 길을 걷다가 다시 작은 언덕길을 따라 포도가 까맣게 익어가는 포도밭 사이 길을 걸었다. 풍성하게 열린 알이 작은 포도송이들이 포도나무에 주렁주렁 달려있다. 우리가 보기엔 다 익은 것 같은데 수확하는 사람들은 없다. 맛있는 포도향이 지나는 순례자들의 마음을 흔든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계속 이어지던 길을 걸어 비에르소 지방의 포도주의 중심지로 알려진, 그러나 우리의 기억 속에는 문어요리가 맛있었던 마을로 기억되는 까까 벨로스 마을에 도착했다. 지난번에는 조금 비싼 듯했지만 문어요리를 시켜서 넷이 먹으며 감탄을 했던 곳이라고 생각되어 그 식당에서 다시 한번 맛있는 문어요리를 먹고 싶었는데 그 식당을 찾을 수 없었다.


마을에는 사립 알베르게는 전혀 없고 공립 알베르게만 하나 있어 선택의 여지없이 성당 공립 알베르게에 들어갔는데 생각보다 마당도 넓고 훌륭하다. 칸막이로 방 하나에 2인씩 단층 침대에 잘 수 있게 베드가 두 개씩 놓여 있어 좋았다. 어제보다 훨씬 수월하고 다른 사람 눈치를 덜 보며 푹 잘 것 같다.


그러나 중간에 식사를 거르고 왔더니 너무 배가 고팠다. 걷다가 12쯤에 점심을 먹고 가자고 했었던 내 의견을 무시하고 알베르게를 먼저 찾기 위해 앞서 가는 남편을 따라 걷다 보니, 하나밖에 없는 공립 알베르게는 다리를 건너 마을의 출구쯤에 있었다.


재빠르게 씻고 빨래하고 밥 먹으러 나왔지만 시 에스터로 식당들이 모두 문을 닫았다. 가끔 이런 경험을 했었기 때문에 나는 남편에게 살짝 짜증을 내면서 뚱 한 채로 4시가 넘어도 닫혀있는 식당들을 지나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간신히 문을 연 집을 발견하고 들어갔다.


스파게티도 각자 하나씩 단품으로 주문해서 먹으면서 와인 두 잔을 홀짝홀짝 먹고 나니 조금은 기분이 풀려서 다시 남편과 하하 호호 화해하고 밖으로 나왔다.


광장으로 걸어가니 동네 축제가 있는 듯, 로마시대의 시저 복장을 한 사람과 장군 투구와 갑옷을 입은 병사들과 악대가, 제법 그럴듯하게 광장 공원 앞 마을 사무소 앞까지 와서 준비를 한다.

축제에 장군복장을 한 주민과 함께, 장애물을 넘어 선수가 들어오는 본부석이 있다

축제를 좋아하는 남편은 벌써 신이 나서 그 사람들과 사진도 같이 찍고, 장군의 투구까지 빌려 쓰고 폼을 잡고, 나까지 시저 복장을 한 사람과 포즈를 취하게 해서 사진 찍고 하는 등 엄청 바쁘다.


예쁜 여자 아이 두 명(시종 옷을 입은)이 배지랑 향주머니를 가져와서 우리에게 5유로라고 사라고 한다. 아마도 물건을 팔아 행사 비용에 보태는 모양이다.


권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하도 귀엽고 예뻐서 우리는 배지 하나씩 사서 모자에 달고 향주머니는 손에 들고 향을 맡으며 벤치에 앉아, 악대의 음악 소리에 맞춰 몸을 흔들며 축제를 즐겼다.

장애물을 넘어 제일 먼저 들어오고 있는 선수

곧이어서 여러 형태의 장애물을 통과한 선수들이 들어오고 있어 일어나 함께 박수를 쳤다. 등수는 없는지 똑같이 생긴 메달을 골라인에 들어오는 선수들에게 걸어주는데 자세히 보니 단체별로 들어온다.


처음 1,2,3,4등은 혼자 들어왔는데, 그 뒤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단체로 장애물을 통과하고 함께 도와주며 같이 들어오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공원 한쪽에 마련한 테이블에서 맥주와 음식을 한두 점씩 가져다 먹으며, 참가자들은 가족들과 사진도 찍고 음악에 맞춰 어깨도 들썩이면서, 공원 광장은 많은 아이들과 아가들, 엄마, 아빠, 노인들 그리고 관광객들과 우리 같은 순례자들로 가득하다.


흥겹게 사는 스페인 사람들은 햇빛이 늘 뜨겁게 비춰주고 맑고 파란 하늘 아래 사니 성격이 밝고 흥이 많은 듯하다. 그리고 아이들도 참 많다. 요즘 한국의 농촌마을과 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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