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한국의 현대 철학자가 누군가요?

(즐거운 고생)

by 구슬 옥

9월 24일 라 포르텔라(La Portela) 23km

어젯밤 편하게 푹 자서 그런지 아침 일찍 걷는 발걸음도 가벼웠다. 자동차 도로와 평행하게 걷는 도로를 걷다가 포도나무밭 사이의 흙길이 계속되는 길을 걷게 되었다. 중간에 아무것도 없이 오로지 포도나무와 다른 밭들 사이로 걸었다.


오랜만에 아스팔트 도로가 아닌 흙길을 걷는 거라 매우 상쾌했다. 언덕 위 포도나무 밭 사이로 예쁜 집이 하나 있고 부근에 호위병처럼 자라고 있는 키 큰 나무들과 어우러져 그림같이 아름다웠다.

포도밭 언덕 위의 그림 같은 집

포도나무를 흠뻑 보면서 작은 마을을 지나 아스팔트의 도로를 계속 걸어 내려오니 마을 초입의 눈에 익은 알베르게가 내려다 보인다. 비야 프랑크 델 비에르소 마을이다.


지난번 왔을 때 마을 초입의 꾸르실료 십자가 가 있는 알베르게에 들었는데 오늘은 이곳을 그냥 지나게 된다. 더 내려가니 커다란 산티아고 성당이 보이고 '용서의 문'이 보인다.

산티아고 성당--오른쪽으로 용서의 문이 있다

산티아고 성당의 이 문은 교황 칼릭스토 3세가 교서로 '병들거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순례를 더 이상 할 수 없는 순례자가 이문을 통과하면 산티아고에 도착한 것과 동일하다'라고 인정한 곳이다.


지난번에도 여기 앞에서 사진을 찍고 계속 순례할 수 있음에 감사했었다. 이번에도 우리는 함께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순례길을 걷는 여정이 끝나고 집으로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기를 기도했다.


오늘은 마을을 지나가면서 골목도 다시 걸어보고 넓은 광장에 있는 식당에서 맛있게 이른 점심도 먹고 쉬다가 왔다. 왔던 곳을 다시 지나게 되면서 추억이 새로운 것도 좋지만 시간의 변화에 따라 내가 느끼는, 보이는 마을의 모습도 달라서 그것이 어쩐지 서운하기도 했다.


마을을 벗어나기 전에 작은 성당에서 미사가 시작되고 있어 들어가니 대부분이 수녀님들이고 교우 몇 분만이 참례하고 계셨다. 우리도 배낭을 벗어 한쪽에 잘 놓고 미사 통 상문을 꺼내 미사에 참석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마을 뒤로 표시되어 있는 화살표를 따라 오르막을 올랐다.


힘들지 않은 오르막길을 오르며 뒤를 돌아보니 지나온 마을이 낮은 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모습이 그윽하고 아름답다.

마을을 지나 언덕 위에서 내려다본 비야 프랑크 델 비에르소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길의 숲길을 지나는데 작은 나무에 파란색 페인트를 칠한 건지, 원래 가을이 되면 나무의 색깔이 그렇게 변하는 건지 알 수 없는 덤불 같은 나무들을 바라보면서, 중세풍의 낡은 주택들이 양쪽으로 이어지는 마을을 걸어 나갔다. 좁은 길의 마을 끝에 알베르게가 있고 그 앞에 허름하지만 쉬어갈 수 있는 bar가 있어 들어가 시원한 주스를 주문해 먹으며 오랜만에 배낭을 내리고 쉬었다.


더운 낮시간에 시원한 음료를 마시고 쉬어가니 발걸음도 가볍고, 마침 밤나무 숲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마을을 하나 더 지나 8km를 걸어가니, 마을이 보이고 초입에 호스텔과 알베르게를 겸하고 식당도 겸하는 곳이 있었다. 벌써 오후 3시가 훌쩍 넘어가고 있어 오늘은 이곳에서 머물기로 했다.


호스텔 알베르게 비 각각 10유로. 이층 침대 하나만 있는 방에 욕실과 화장실이 같이 있어 사용하기도 편하고 무엇보다 우리만 사용하니 너무 좋다. 까미노를 걷는 동안 거의 만나기 힘든 방이다. 내일 오 세브레이로 마을은 산을 올라가야 되는 조금 힘든 길이라 오늘 우리만 푹 잘 수 있어 만족했다.


주방은 사용할 수가 없어서 호스텔에서 운영하는 식당에 저녁식사 예약을 하는데, 7시 30분에 식사할 수 있다고 해서 배는 고프지만 물 먹으면서 마을 근처를 돌아보고, 햇볕에 널은 빨래가 바삭바삭 말라 잘 거두어 정리하고 시원한 바람을 쐬며 동네 아이들 몇이 노는 걸 구경했다.


여기는 작은 마을이고 초입이다 보니 전체적인 서비스 시설이 되어 있지 않아 보인다. 우리가 묵는 호스텔과 근처에 몇몇의 집들이 있고 작은 가게 정도만 있을 뿐이다. Bar 도 오직 호스텔에서 운영하는 식당만 있다.


대부분 순례자들은 여기서 묵지 않고 산 밑의 베가 데 발 카르스에서 머물 것이다. 2년 전 우리도 그랬으니까. 그러나 이번에는 될 수 있으면 새로운 곳에서 머물고 싶었고, 오늘은 다른 날보다도 조금 더 걸어서 편의시설이 부족해 보였지만 다행히 숙소는 편한 곳이라 잘 된 것 같다.


그래도 함께 머무는 순례자가 거의 없어 보여 살짝 쓸쓸할 뻔했는데 다행히 스위스에서 오셨다는 우리보다 조금 더 나이 들어 보이는 아저씨와 젊은 브라질 아가씨가 있어 저녁을 먹으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어 즐거웠다.


주로 스위스 아저씨와 브라질 아가씨의 대화를 우리는 듣는 편이었지만 우리도 짧은 영어실력으로 되는 데까지는 자신의 의견을 표현해 보고자 애를 썼다. 스위스 아저씨는 철학 공부를 하셨는지 우리에게 한국의 현대 철학자는 누구냐고 물어보았다.


조선시대의 '퇴계 이 황' 선생이나 '율곡 이 이' 선생에 대해 영어로 설명할 수가 없었고, 최근 살아계신 철학자 중에서 대중적이신 '김용욱 선생'이나 '내가 젊은 때 그의 글을 좋아했던 '김형석 선생'에 대해서도 이름만 얘기할 수 있지 그분들에 대해 이렇다 할 설명을 해줄 수 없어 많이 안타까웠다.


우리들이 늦은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가 길어지자 저녁만 차려주고 직원은 퇴근했는지 보이질 않아 우리도 일어나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한국사람들이 많이 묵는 큰 마을의 알베르게가 아닌 작은 마을의 알베르게에 자주 묵게 된 우리는 생각지 않은 외국인들과의 대화에서 빈곤한 영어실력 때문에 때아닌 고초를 겪고 있지만 점점 들리는 것도 말하는 것도 나아지고 있어 즐거운 고생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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