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함께 걸을 수 있어 고마워

(세계인이 알고 있는 한국)

by 구슬 옥

9월 25일 오 세 브레이로(O Cebreiro) 16.5km

7시 30분에 출발하려고 하다가 어제저녁 메뉴 값 계산하는 걸 깜빡한 것이 기억나서 출발 전에 내려고 Bar를 두드려도 인기척이 없다.


마침 어제 함께 식사했었던 브라질 아가씨가 오늘 아침식사를 8시에 먹기로 예약했다고 기다리고 있어서 20유로와 방 열쇠를 그녀에게 대신 맡기고 까미노를 출발했다.


마을을 나와 한참을 걸어가다 갑자기 배가 아파, 지방도로가 있는 쪽에 주유소가 있고 편의점이 있는 곳이 보여 화장실 들리고 먹을 물도 사서, 밤나무 숲 그늘로 이어지는 산길로 들어갔다.


몇 km를 걸어가 지난번 왔을 때 머물던 베가 데 발 까르세 마을을 지나게 되었다. 예전에 왔을 때는 비를 피해 입구에 있는 공립 알베르게를 들어갔는데 주방시설이 조금 빈약했었다.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려면 가스를 먼저 틀고 라이터를 켜야 불이 붙어서 식사 준비를 할 때 많이 긴장했고, 다른 사람들이 주방에서 일할 때 신경이 쓰였었다.


오죽하면 방명록에 가스레인지를 하나 기증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고 쓰고 왔을까. 그것만 빼면 아래층에 벽난로도 있어 샤워하고 머리도 말리면서 몸을 따뜻하게 했던 기억이 난다.

20170925_085211.jpg 산 밑으로 안개가 피어오르는 발까르세 마을을 지나면서

그런데 오늘 맑은 날 걸어보니 집들도 더 좋아 보이고 산길로 가는 길에는 크고 멋진 가게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 지난번에는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우비를 입고 걸어서 제대로 곁을 구경하지 못해서 그런지 낯선 마을 같은 느낌이 든다.


상점들도 잘 정비되어 있는 산촌마을이다. 집들도 까미노가 활성화되면서 새로 많이 지었는지 깨끗한 건물들이다. 평화롭게 소들이 풀을 뜯고 있는 곳을 지나고 아스팔트 길을 지나 본격적인 산길로 한참을 올라가도 오 세 브레이로 마을은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2년 전에는 비를 맞으며 질척거리는 땅과 돌길을, 말똥이 흥건한 길을 쉽게 올라간 것 같은데 기억의 착각인가. 아마도 쏟아지는 비 때문에 주변 마을이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었나 보다.

20170925_120945 (1).jpg 해발 600미터에서 1300미터로 올라가는 길에서 돌아본 풍경

올라오면서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아니, 기억 속에서 잊었던 마을들이 나타나 쉬면서 식사를 했다. 지금도 여전히 말을 타고 산길을 오르는 사람들이 있고 봄보다 더 많은 순례자들이 계속 올라온다.


손을 들어 '부엔 까미노'를 외치고 어디에서 왔냐는 물음에 Korea에서 왔다고 하면 놀라는 표정과 엄지 척을 한 표정들을 보면서 이제는 Korea를 모르는 사람들이 없어 즐겁기도 하다. 오히려 아는 한국말 한 가지라도 얘기하며 궁금한 한국말 표현을 물어보는 적극적인 사람들도 있다.


이제 한국은 아시아에 있는 동방의 작은 나라가 더 이상 아니다. 자동차를 잘 만들고, 휴대폰도 잘 만들고, k-pop까지 선진 문화국으로 세계인에게 인식되고, 한국에 여행 다녀온 것을 자랑으로 여기게 된 그런 나라 가 되었구나 하는 것을 이렇게 외국에 나와서 더욱 알게 되니 가슴이 뿌듯하다.


우리는 유럽의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건축물과 자연과 어우러진 이국적인 것에 반해서, 우리나라가 갖고 있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잠깐이나마 잊지 않았나 되돌아보았다. 내 나라의 문화와 건축물에 대해 얼마큼 애정을 갖고 알고 있는지, 관심을 갖고 찾아보았는지 경사진 오르막을 오르며 생각했다.


20170925_134217.jpg 여기서부터는 갈리시아 지방이라는 표지석-힘들게 산을 올라온 순례자들이 까미노 표시에 환호하며 적어놓은 기록들

이곳에서부터 갈리시아 지방이 시작된다는 까미노 표지석을 보면서, 이제 조금만 더 경사진 오르막을 오르면 오 세 브레이로 마을이 나올 것을 알게 되니 순례자들이 모두 힘을 내며 걷고 있다. 우리도 다리에 힘을 모아 오르막을 올라오니 오 세 브레이로 마을에서만 볼 수 있는 탁 트인 전망이 보이고 절로 탄성이 터진다. 와~.

20170925_194042.jpg 해발 1300미터의 오 세 브레이로 마을에서 바라본 정경-저 멀리 지나온 산들이 보인다

우리는 공립 알베르게에 먼저 들어가 침대 배정받고 씻고 빨래해서 마당에 길게 늘어진 빨랫줄에 널었다. 햇살도 좋고 바람도 적당히 불어 우리는 오랜만에 침낭도 펼쳐서 뜨거운 햇빛에 널고 파아란 하늘과 어우러진 산들과 마을들을 바라보면서 행복감에 젖었다.


마을로 들어올 때 성당이 있었는데 우리는 알베르게부터 정해놓느라고 그냥 지나쳐와서, 빨래가 마를 동안 다시 마을로 들어가, 신비한 성체와 성배의 이야기가 있는 산따 마리아 라 레알 성당으로 들어가 촛불을 봉헌하고 다시 한번 이곳에 온 것에 감사했다. 성당 안을 둘러보다 한국어 성서가 스페인어 성서와 함께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고 또 한 번 놀랐다.

20170925_192829.jpg 성당 안에 전시되어 있는 성서들 중의 한국어 성서

특히 이 성당에는 오래전부터 전해져 오는 기적 이야기가 있다. 1300년 경에 비가 몹시 오는 날 한 순례자가 마을에 도착하여 성당에서 미사를 참례했고, 미사 중 신부가 빵과 포도주를 축성할 때 순례자는 성체의 신비가 실제로 일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고 한다.


그러자 빵은 살로 포도주는 피로 변했다고 한다. 이 기적은 유럽 전체에 널리 알려졌고, 수많은 참배객이 이 성당을 찾아왔고 은으로 만든 유물함도 봉헌했다 고 한다.


그 후 이사벨 여왕이 이 이야기를 듣고 산티아고를 순례하고 돌아오던 중에, 기적의 성배를 더 안전한 곳으로 옮기려 했으나, 성배를 실은 말이 마을 밖으로 전혀 움직이지 않아 하느님의 뜻으로 여기고, 그대로 이곳에 성배를 지금까지 보관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2년 전 비를 맞으며 이 마을에 올라왔을 때 전세버스로 자가용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다녀가는 걸 본 기억이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는 이 성당의 미사에 한 번도 참례를 못했다. 미사가 없는 날 일 수도 있고 우리가 미사 시간을 놓쳤을 수 도 있지만 너무 아쉽다.

촛불 가운데 은으로 만든 유물함에 보관된 기적의 성배

우리는 마을 식당에서 저녁을 사 먹고 알베르게로 돌아와 바삭하게 마른빨래와 침낭을 걷었다. 늦게 해가 지는 이곳은 넘어가는 붉은 햇살에 산과 하늘이 더욱 신비롭고 아름답다.


한참을 서서 노을이 지는 풍경을 바라보다 문득 2년 전 비를 맞으며 정신없이 여기 알베르게로 들어왔던 때가 생각났다.


우비를 벗어 아래층에 널고, 진흙투성이의 등산화를 벗어 정리하고, 씻고 갈아입은 4명의 빨래를 세탁기에 돌리고 건조기로 말리면서 우리끼리 신나고 흥분되었던 기억들이 조금 그리워진다.


100명 이상을 받을 수 있는 이곳의 알베르게는 순례자들로 가득한데, 우리와 함께 만났던 순례자들은 거의 만나지 못해 천천히 우리 부부만의 보폭으로 걷는 순례가 되고 있다.

그것이 좋기도 하고 조금 외롭기도 하다. 혼자 걸어보는 것도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을 가끔 했지만 그래도 계속 함께 걸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고 기쁨임을 다시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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