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 잠에서 깨어나기 전 우리는 평상시처럼 배낭을 메고 스틱을 짚고 선채로 아침 기도를 하고 출발했다. 오늘 사모스를 통과해서 가는 길은 처음 걷는 길이어서 까미노 표시를 잘 보면서 걸었다.
마을을 벗어나자 바위산 옆으로 난 고속도로를 끼고 계속 산길을 걷고, 오리 비오 강으로 가는 지류인지 물은 많지는 않지만 오랜만에 물이 흐르는 걸 보면서 1시간여를 걸었다. 길은 낙엽이 깔리어 푹신한 곳도 있어 걷기에 그리 나쁘지 않은 길이었다.
마을로 들어가는 작은 시멘트 다리로 강물(시냇물 같은)을 건너가니 오래되고 낙후된 주택들 사이로 길이 이어진다. 마을에는 아무 시설도 없어 주민이 많지 않은 듯 보였고, 인기척도 없어 부지런히 통과해 벗어나니 공동묘지가 있었다.
우리나라의 묘지와는 달리 작고 납작한 직사각형의 대리석 묘지 위에 작은 십자가들이 있고 고인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우리는 성호경을 하고 고인들의 영원한 안식을 빌며, 오솔길이 시작되는 산길로 들어갔다. 옆으로는 강물이 흐르고 오래된 참나무들이 하늘을 덮으며 빽빽이 서있어 시원하게 걸었다.
공동묘지를 지나며-고인들의 영원한 안식을 빌며
넓은 목초지며 울창한 나무들을 지나 잠시 오르막길을 걷고, 마을로 들어가는 도로를 따라 걷다가 다시 숲길이 이어진다. 내리막으로 이어지는 완만한 숲길을 힘들지 않게 내려오자 까미노 표시는 다시 마을로 향했다.
담벼락에 붙은 덩굴 잎에 화려한 작은 공작새와 백조 장식이 지나가는 순례자를 미소 짓게 하고, 창문을 둘러싼 등나무 덩굴 사이에, 부엉이 장식을 꽂아 멋을 낸 집들을 지나며 한 시간을 걸으니 터널이 보인다.
터널 위로 아침부터 함께 걷던 고속도로가 지나가고 있다.
터널을 지나며 순례자들의 낙서와 여러 개의 눈을 가진 그림을 본다. 잘 보고 가라는 뜻인지? 비슷한 길을 계속 걸어야 하는 순례자들이 지루함을 달래듯, 나름의 표시를 하고 지나간 흔적들이 있는 터널을 지나니, 계곡 옆으로 오래된 돌담들 사이의 좁은 오솔길이 나오고, 그 아래로 사모스 마을의 모습이 보인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베네딕토 수도원 건물이 맑고 파란 하늘에 아름답고 고요하다. 한달음에 내려가고 싶은 마음을 진정시키는 듯 길은 다시 돌담 사이 오솔길로 이어지는 내리막길이다. 마을이 가까워졌는지 돌담 위에 고양이 두 마리가 마을로 들어가는 순례자들을 맞이해 준다.
사모스 입구로 들어서면서 보이는 베네딕토 수도원 건물은 위에서 볼 때보다 더 웅장하게 산 밑에 자리 잡고 있다. 마을도 오밀조밀 작지만 평화롭게 자리하고 있어 오늘은 여기서 묵을까 고민하면서 흰색 페인트를 칠한 작은 목조건물 이층 bar로 들어가 주스와 빵을 주문했다.
bar의 이층에 앉아 주스를 마시며 창가로 보이는 풍경과 가끔 마을로 들어오는 순례자들을 보는 것이, 10km를 쉬지 않고 걸어온 것에 대한 보상처럼 위로가 되었다.
오늘 우리가 걷는 길은 두 갈래 길 중에서 5km를 더 걸어야 사리아에 도착하는 길이다. 라바날 베네딕토 수도원 신부님이 눈이 몹시 오는 겨울에 까미노를 걷다가몸이 아파 이곳 수도원에서 며칠 묵어갔다는 얘기를 듣고 이왕이면 수도원을 보고 가기 위해 사모스길을 선택했다.
간식을 먹고 수도원으로 들어갔지만 내부로 들어가려면 따로 기다려야 해서, 우리는 수도원 경내만 둘러보고 다시 밖으로 나와, 수도원 건물 옆으로 흐르는 작은 강 주변을 돌면서 중세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수도원의 오래된 숨결을 느껴보고자 했다.
아마 더 오래전에는, 지금보다 더 많은 울창한 밤나무와 어우러진 강물과 부드러운 흙길이 수도원을 감싸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수도원에는 많은 수도승들과 순례자들로 활기가 넘쳤을 것이다.
가운데 건물을 사이로 길게 직사각형으로, 두 개로 나눠진 건물의 창문들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수도원 주변은 아스팔트 길로 변하고 강 주변의 밤나무들도 많이 베어져 조금 쓸쓸한 모습이다.
미열과 잔기침을 하는 나를 위해 감기약을 사 갖고 알베르게를 찾아보려고 걷다 보니, 약국이 거의 마을 끝에 있어 할 수 없이 사리아 쪽으로 계속 걸어갔다. 사리아 까지 14.5km를 더 걷기로 했다. 그런데 시간은 어느새 12시다.
진땀도 나고 몸이 힘들어 알베르게가 그리운데 아무래도 오늘은 4시가 넘어서나 알베르게에 들어갈 것 같다. 앞으로 142km가 남았다는 표지석을 지나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마을을 지나다 보니, 길가 밭에서 커다란 호박을 수확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 너무 크고 많아서 포클레인에 담아서 운반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사모스 마을을 지나며 보게 된 풍경
우거진 나무들로 덥지 않고 낙엽으로 푹신한 길을 한동안 걸으니 집이 띄엄띄엄 몇 채가 있는 마을의 bar가 보인다. bar의 문에 쳐진 얇은 커튼을 손으로 올리고 들어가자, 안에 앉아있던 다른 외국 여성 순례자들이 나를 위해 힘껏 박수를 쳐준다.
갑자기 박수를 받으니 얼떨떨하고 당황스러웠다. 그녀들은 웃으며 어디서 왔느냐, 오느라 수고했다고 한다. 그들도 조금 힘들었는지 이곳에서 쉬기로 하고 앉아 있는 듯했다.
까미노를 걸으며 이렇게 환호해 주는 동료 순례자들을 만나기는 처음이다. 동양의 작은 여인이, 젊지 않아 보이는 여인이 땀과 먼지로 초췌해진 모습으로 들어오니 격려의 의미로 박수를 쳐준 듯하다.
감기 기운에 점심도 제대로 못 먹어 기운도 없었는데 누군가 나를 위해 수고했다고 환영의 박수를 쳐주니 나도 까미노의 천사를 만난 것 같았다.
간단히 음료를 먹고 다시 출발하려고 하자, 가게 앞에 앉아있던 노인 한분이 하늘을 가리키며 스페인어로 뭔가 말을 한다. 아마도 곧 해가 뜨거운 시간이 될 테니 여기서 묵고 내일 출발하라고 하는 것 같다. 염려해 주는 노인의 배려에 감사하면서 우리는 사리아를 향해 걸었다.
한 시간 이상을 걷고 걸어도 사리아가 보이지 않는다. 곧 마을이 나오겠지 하면서 걷다가 노인이 왜 우리에게 묵고 가라고 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시간이 4시가 넘어가서야 간신히 멀리 사리아 마을이 보였다.
그러나 멀리 보이는 마을은 아스팔트 도로를 부지런히 한참을 걸어가서야 마을 초입과 알베르게도 보였다. 시간이 5시가 되어가지 않았다면, 감기 기운이 없었다면, 사리아 구시가지로 더 걸어가 그곳의 알베르게에 묵고 싶었지만 포기하고 마을 초입의 알베르게로 들어갔다.
그리 쾌적해 보이는 건물은 아니었지만 샤워하고 잘 수만 있으면 무조건 머물러야 된다는 생각에 접수하고 들어갔다. 서둘러 샤워하고 숙소 옆에 있는 bar에서 식사하고 와인도 한잔하고 숙소 안쪽에 있는 넓은 마당의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우리가 있는 곳으로 마르고 약간 나이가 들어 보이는 여자분이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자신은 프랑스에서 왔다고 하면서 우리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궁금해한다. 나와 남편은 웃으면서 '꼬레아'라고 하니 반가워하며 얘기한다.
정확히 다 알아듣지는 못해도 대충 이해하는 데로 우리도 대답하면서 즐겁게 웃다가, 남편이 그 여자분에게 프랑스식 인사를 한다며, 여자분 옆얼굴에 살짝 뽀뽀를 하니 깜짝 놀란다. 와이프가 여기 있는데 왜 그러냐고 한다.
남편이 프랑스 사람들은 그렇게 인사를 하지 않느냐고 반문하자, 그녀는 얼굴을 서로 살짝 옆으로 비비는 정도지 얼굴에 뽀뽀를 하지는 않는다고 얘기한다. 다행히 큰 실례를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니 유쾌하게 받아준다.
까미노를 걷는 게 마냥 즐거운 남편은 이렇게 알베르게에서 만나는 외국인과, 영어가 서툴러도 얘기를 나누는걸 너무 신나 하다 보니 큰 실례를 했다. 그래도 남편은 무안하지도 않은 듯 어린아이처럼 싱글벙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