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네! 맞아요

(편견 아닌 편견)

by 구슬 옥

10월 1일 아르수아(Arzua) 15km

아침에 출발하기 전 간단히 식사를 하려고 1층의 작은 주방에 내려갔다가 올라오니, 같은 방에서 묵은 목소리 좋은 청년이 어느새 준비를 마치고 나가면서 먼저 출발하겠다는 인사를 했다.


모자까지 눌러쓰고 턱수염이 덥수룩하지만, 큰 키며 몸매가 보통이 아니고 목소리도 여지없이 그 탤런트를 생각나게 해서, 나는 그에게 잘 걸으라고 덕담하면서 '탤런트 이*윤 씨 닮았어요' 하자 그 청년은 보조개가 들어가게 미소 지으며 '네 맞아요' 한다.


나는 혹시 하는 마음에 말한 게 역시나 맞으니 반갑고 기뻤다. 얼마 전 끝난 드라마에서 김하늘과 주인공으로 나왔었다. 성당에서 자주 만나는 형님이 이 탤런트를 너무 좋아해서, 제주도 여행 갔을 때 촬영지로 나왔던 집을 가 보았다는 얘기도 들었던 터라, 서울 가서 까미노에서, 그것도 같은 알베르게 같은 방에서 함께 묵었다는 것을 얘길 하면, 지인들도 놀랄 것 같아 재미난 비밀을 간직한 듯 즐거웠다.


기분 좋게 안개가 살짝 끼여있는 멜리데를 출발해서 오르고 내리며 힘들지 않게 걸었다. 어젯밤 1층 침대에서 약 먹고 푹 자서 그런지 감기는 다 나은 것 같았다.


길도 험하지 않고 나무들로 자연스럽게 이뤄진 나무 터널을 지나 유칼립 투수 나무가 죽죽 뻗어있는 길을 걸어왔다. 살짝 비가 내렸지만 우비를 입을 정도는 아니라 걷기에는 나쁘지 않았다. 목축을 하는 마을을 지나면서 보니 싱싱한 풀을 뜯고 있는 소들이 건강해 보였다.

싱싱한 풀을 뜯고 있는 소들을 보며

우거진 숲을 지나 아스팔트로 이어진 도로를 걸으니 까스따녜다 마을이 나왔다. 8.5km를 걸어왔지만 많이 힘들지 않아 우리는 마을에서 쉬지 않고 계속 나와, 내리막길로 도로를 걷다가 숲길을 걷다가 하면서 1시간 30분 이상을 걸어와, 까미노 화살표가 가리키는 돌다리를 건너 바이쇼 마을로 들어갔다.


마을은 전원주택지인지 대부분 붉은색 기와지붕의 아기자기한 집들이 많았다. 길은 마을을 이리저리 구경하며 올라가도록 되어있는데, 걸으면서 보니 오르막 위로 오늘의 목적지인 아르수아 마을이 어렴풋이 보였다.

리 바디 소 다 바이쇼(Ribadiso da Baixo) 마을 입구

바이쇼 마을에서 보이는 곳이라 금방 도착할 것 같아도, 오르막으로 이리저리 올라가면서 마을을 구경하고 가느라 내걸음으로 두 시간 가까이 걸린 것 같았다.


마을 입구는 현대적인 건물들로 도시와 같은 조금 삭막한 느낌이지만, 순례자를 위한 여러 시설이 잘 되어있어서 쉬고 가기에는 좋은 곳이다.


지난번에는 파란 창문이 있는 공립 알베르게에 묵었었는데, 이번에는 새로 지어진 듯한 초입의 사립 알베르게에 들었다. 조금 더 마을 안으로 들어갔으면 좋았을 텐데, 유난히 bed bug에 민감한 남편이 깔끔해 보이는 사립 알베르게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스페인도 새로 짓는 건물들은 서울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현대적인 건물로 도시나 마을 초입에 들어서 있다. 대부분의 사립 알베르게처럼 주방은 사용할 수 없는 곳이지만 깔끔한 곳이라 마음에 들어 하며, 여유 있게 샤워하고 빨래해서 널고는 침대에 누워 쉬다가 이른 저녁을 먹기 위해 마을 안 쪽으로 걸어갔다.


가을이라 그런지 순례자나 여행자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아니면 산티아고가 가까워지는 지점이다 보니, 사리아부터 까미노를 걷는 사람들이 많아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다. 분위기가 처음 까미노를 걷기 시작하던 때 하고는 많이 다르다. 뭐랄까 산만하다고 해야 할까.


마을 안의 식당에도 손님들로 북적이고 거리도 사람들로 북적인다. 식사 후에 산책하면서 여기저기 돌아보다 미사가 시작되는지 성당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따라, 우리도 미사에 참례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숙소로 돌아왔다.


그런데 언제 들어왔는지 미국 젊은이들로 이뤄진 단체 팀이, 우리 방으로 들어와 주변 침대가 시끌시끌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일부러 조용하고 좋은 알베르게를 골라서 들어온다고 온 것이, 오히려 단체팀이 잘 들어가는 사립 알베르게였으니...


남편은 불 끄고 자는 시간에도 아랑곳없이 쿡쿡 웃으며 떠드는 젊은이들 때문에, 시끄러워 속이 상해서 조용히 하라고 말을 해 보았지만 그때뿐으로, 소곤소곤 쿡쿡하며 아랑곳하지 않는 젊은이들 때문에 귀마개를 하고 잠을 청하는 것 같았다.


2년 전 처음 까미노를 걸을 때, 알베르게에서 한국 젊은이들이 몰려다니며 시끌시끌 한 모습을 본 적이 있어 단체로 오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고 이해하면서도, 그러나 이렇게 잠잘 시간 침대에 들어서도 소리가 그치지 않는 걸 보면,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그나마 양반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지사지로 참는 것도 실제 닥치면 참으로 힘들다. 인간은 누구나 2개의 양면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때는 한쪽이, 다른 때는 또 한쪽이 더 강하게 보여, 이런 사람, 저런 사람으로 치부되는 건 아닐까. 그것이 나라가 포함되다 보면 아~ 저나라 사람들은 저렇구나 하는 편견 아닌 편견이 생기는 것 같다.


아마도 한국인들을 뒷담화 하거나 싫어하는 사람들도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어 전체적으로 한국인들에게 좋지 않은 오해를 하는지도 모르겠다. 오늘처럼 미국단체팀을 겪다 보니 요즘 미국 안도 시끄럽더니 역시 그 나라 사람들도... 하는, 안 좋은 기억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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