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발코니에서 만난 사람들

(그리운 공립 알베르게)

by 구슬 옥

10월 2일 뻬드로 우소(Pedrouzo) 19.5km

어젯밤 늦은 시간까지 장난하며 얘기하는 청년들 때문에 쉽게 잠을 못 잘 것 같았는데, 걷느라 피곤했던 다리의 욱신거림과 소란스러움을 뒤로하고 어느새 잠이 들어 상쾌한 아침을 맞았다.


청년들도 언제들 잤는지 모두 일찍 일어나 준비하고 떠날 채비를 한다. 어젯밤의 불편했던 느낌은 어느새 사라지고 청년들의 활발한 모습이 미소를 짓게 한다. 남녀 학생들이 단체로 여행을 하다 보니 흥분되고 마냥 즐거운 모양들이다.


우리도 평상시처럼 준비를 끝내고 밖으로 나와, 잠시 출발하기 전 기도를 마치고 안개가 끼여 어슴프레 밝아오는 마을을 빠져나왔다. 완만한 내리막길로 이어지는 숲길로 들어서기 전에, 동이 트면서 붉어지는 햇살과 안개로 아득해 보이는 주변을 신비롭게 바라보며 떡갈나무와 밤나무 사이로 들어갔다.

20171002_085429_Burst01.jpg 멀리 동이 터오고 안개로 바다에 잠긴듯한 주변이 서서히 깨어난다

완만한 오르막과 내리막길을 반복하며 작은 마을을 지나고, 도로를 옆으로 걷기도 하고 건너기도 하면서, 오늘 걷는 길에서 사고로 돌아가신 두 분의 추모비를 보았다.


힘겹게 여기까지 잘 걸어와서 차도를 걷다가,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하셨던 두 분을 잠시 추모하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산티아고 꼼뽀스텔라 까지 이제 하루가 남았을 뿐인데... 순례자들이 그분들을 추모하며 놓고 간 작은 물건들이 쌓여있다.


젖소들이 이슬 먹은 풀을 뜯고 있는 목장지대를 지나고 마을을 지나는 젖소들의 행진을 보기도 하면서, 산길에 지천으로 깔린 밤송이들과 빠져나온 윤기 나는 밤을 아까워하면서, 산타 이레네 언덕을 내려오다 잠시 마을로 들어서는 길을 못 찾아 숲 사이를 한참 걷기는 했지만, 늦지 않은 시간에 뻬드로 우소에 도착했다.

20171002_105109.jpg 산길에 떨어져 걷는 이들에게 밟히기도 하는 잘 익은 알밤

미리 점심을 든든히 먹은 탓에 배고프지는 않았지만 알베르게를 구하면서 잠시 남편과 얼굴을 붉히다가, 내일이면 산티아고에 들어가는데 하는 생각에 얼른 화해하고 사립 알베르게에 들었다.


이곳에 이렇게 크고 현대적인 알베르게가 있었나 하며, 발코니가 운동장 만한(약간 허풍을 떨자면)것에 놀란 알베르게였다. 안의 공간도 넓었는데, 여기는 방으로 나뉘지를 않고 이층 침대로 공간을 나눠 놓아, 개방감이 있어 좋기도 했지만 방이 주는 아늑함은 없었다.


2인실도 몇 개 있어서 물어보니 이미 예약이 다 되어있다고 해서 할 수 없이 다인실로 들어갔다. 조용한 곳이라고 찾아서 침대 정리하고 샤워하고 내려오니 어젯밤 늦게까지 시끄럽던 미국 젊은이들이 바로 우리 침대 맞은편으로 들어와 정리하고 있었다. 어제의 악몽(?)이 생생한 우리는 서둘러 다시 침대를 구석 쪽으로 옮기고 쉬었다.


잠시 나갔다 온다고 한 남편이 한 시간 남짓 지나 들어오는데 얼굴이 불그레하니 희색이 만연하다. 발코니에서 만난 이태리 청년과 맥주를 한잔하고 왔는데, 이태리 청년은 본인 집에서 자전거로 출발해서 지금까지 계속 자전거를 타고 순례를 하고 있다고 했다.


가구 인테리어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인데 신앙심도 대단한 것 같다고, 남편은 손짓 등 모든 걸 동원해 서로 알게 된 얘기를 신이 나서 내게 전해주었다. 더욱 대단한 것은 이태리 청년이 산티아고 꼼뽀스텔라를 거쳐 다시 자전거로 루르드 성지를 순례하고, 이태리 집으로 돌아간다고 했다는 것이다.


자전거로 까미노를 순례하는 사람들을 걸으면서도 많이 보았지만 출발부터 집으로 돌아가는 것까지를 자전거로 하는 사람들이 있는 건 처음 알았다.


여기는 발코니가 넓다 보니 여러 사람들이 나와서 쉬다가 서로 알게 되는데 우리도 역시 발코니에서 빨래를 널다가 만난 미국 이민자인 고선생 부부가 저녁으로 문어를 먹으러 가자고 해서 함께 나갔다. 고선생 부인이 미리 검색해 본 곳인지 안내하는 대로 따라갔다.


식사를 하면서 고선생 부부의 사는 얘기, 사업 성공 얘기, 노후 준비로 별장을 몇 채 지어 세를 받고 있다는 얘기 등을 재미있게 반찬 삼아 들으며 맛있는 문어요리를 먹었다. 술은 고선생 부부는 양주를 시키고 우리는 맥주 한잔씩을 주문해서 먹었다.


고선생은 부인이 어릴 때 이민 와서 영어뿐만 아니라 스페인어를 비롯해 5개 국어를 하는 바람에 어디를 여행해도 언어로 고생하지 않고, 숙소도 전화로 미리 예약을 할 수 있어서 까미노를 걷는 동안 사립 알베르게의 2인실을 이용해 충분한 수면을 취하면서 걷고 있다고 자랑을 했다.


자랑할만하다고 생각했다. 외국에서 언어 사용이 자유로운 것만큼 좋은 것은 없다는 걸, 까미노를 걷는 내내 절실히 느끼고 있는 터라 고선생의 아내에 대한 뿌듯한 자부심을 우리도 함께 인정했다.


고선생은 배낭도 직접 메고 걷지 않고 택시 딜리버리를 이용해 미리 알베르게로 보내서, 편하고 빠르게 걷는다고 신이 나서 자랑 아닌 자랑을 했다.


고선생 부부의 까미노를 걷는 이유는 다른 곳을 여행하는 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먼 여행지에서 만난 고국의 동포에게 뭔가 보여주어야 한다는 우쭐함인지 아니면 생활 자체인지는 모르지만 스페인에서 제일 맛있는 포도주나 맥주가 아닌 우리는 먹어보지 않은 이름 모르는 양주의 맛을 칭찬하면서 연거푸 주문해서 부부가 먹었다.


우리와는 생활 방식이나 생활 수준이 많이 다른 것 같았다. 오랫동안 외국에서 살았기 때문에 순종 토종인 우리와는 조금 거리감이 느껴졌다.


각자의 식사비를 계산하고 우리는 조금 더 마을을 걷다가 들어간다고 서로 헤어졌다. 미국 오면 전화번호 알려줄 테니 꼭 오라는 말만 있었고, 우리도 알려달라고 말하지 않았고 고선생도 알려주지 않은 채 그렇게 헤어졌다.


아마 내일도 그들은 가볍게 일어나 일찍 출발할 것이고 산티아고에서 묵을 때도 우리와는 다른 숙소에 묵을 것이니 다시 만나기는 어려울 듯했다.


내일이면 산티아고에 입성(?)한다는 생각에 저녁 늦은 시간까지 환한 동네를 요리조리 다니며 걷다가 숙소에 들어왔다. 저녁 먹으러 가기 전에는 비어있던 침대들이 모두 채워져 있어 늦은 시간인데도 뭔가 어수선하고 두런두런 말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어제와 같은 일이 오늘도 계속되었다. 우리 옆 침대를 차지한 사람들도 역시 미국인 중장년 단체였는데 취침 시간에 침대에 누워 전화를 받고, 서로 얘기를 나누고 하는 것이 똑같았다.


사리아에서부터 100km를 걷는 순례자들은 알베르게에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예의를 모르는 듯했다. 프랑스 생장에서 순례 증명서를 만들면서 봉사자들의 주의사항을 듣고 배낭을 메고 세계 각지에서 모인 순례자들을 바라보며 서로 설레어했던 그 마음을 이들은 알까?


왜 10시에는 모든 알베르게의 불이 꺼지고 침묵해야 되고 새벽이면 조용히 일어나 가방을 싸서 나가야 되는지 아직 감이 잡히지 않는 듯했다.


공립 알베르게의, 허름하긴 하지만 배낭을 메고 외롭게 걸어온 많은 순례자들이, 피곤해서 자신도 모르게 곯는 코 고는 소리만이 울려 퍼지는 그곳을, 새삼 그리며 애써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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