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리데의 문어 할머니)
9월 30일 멜리데(Melide) 26km
해가 뜨기 전 안개가 자욱하게 끼여 어슴푸레한 길을 조심스레 걸어 마을을 벗어났다. 아직 감기 기운이 남아있던 나는 걷다가 부슬부슬 오랜만에 내리는 비에 한기가 느껴져 중간에 우비를 꺼내 뒤집어썼다.
Airexe 마을을 지나 계속 도로 곁의 길을 걷다가 공동묘지를 지나가게 되었다. 납골당처럼 만든 묘지들인데, 까미노를 걷다가 숨진 분들도 가끔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이곳에 묻혔다고 들어서, 지나면서 성호경을 하고 잠시 고인들을 위해 기도했다.
차도와 나란한 길을 걸어도 차가 별로 지나지 않아 조용하고, 옆으로 펼쳐진 목초지와 나무들을 보면서 힘들지 않게 빨레스 데 레이 마을로 들어섰다. 두 시간 이상을 걸어왔지만 아직 이른 시간인지 시내는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아마도 어제 오후에는 순례자들이 이곳에서 많이 머물러, 마을은 활기가 넘쳤을 텐데, 그들이 떠난 지금은 너무도 고요하다. 이곳은 현대적인 건물들도 많고 알베르게도 큰 곳이 있어 여러 가지로 머물고 가기에 좋은 곳이라고 안내책에서 읽었었다.
우리는 마을에 들어가 필요한 물을 사고 잠시 bar에 앉아 카페 콘 레체 한잔씩 먹고 마을을 지나는데, 순례자들이 스틱을 들고 환호하며 서로 인사하는 돌로 만든 조형물이 서있는 것을 보고, 그 앞에서 나도 어린아이처럼 환호하며 함께 인사하듯 스틱을 들어 올렸다. 산티아고 꼼포스텔라가 멀지 않았음을 기뻐하며.
마을을 지나면서 공동묘지(납골당) 옆을 지나고 양쪽으로 너른 들판이 시작되는데, 한쪽에 곡식을 저장해 놓는 오래된 직사각형의 오레오를 보았다.
처음 길을 걷다가 오레오를 보았을 때는 저게 뭘까? 하면서 궁금했는데 곡식을 저장해 놓는 지방마다의 특색이 있는 오레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땅에서 조금 높게 만들어 습기가 올라오지 않도록 만든 농부들의 지혜가 돋보였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길의 숲길로 들어섰다. 오래된 소나무와 유칼립투스 나무들이 터널을 이루는 시원한 산길을 계속 걸어 내려갔다. 이끼가 끼여 나무들이 밑에서부터 위까지 모두 초록으로 어우러져 아름다우면서도 조금 으스스한 느낌이 들었다. 모두 초록으로 분한 나무들 사이를 걷는 것이 영화 속 한 장면 같다.
한참 산길을 내려오다 잠깐 앉아서 간식을 먹으며 배낭을 내려놓고 쉬었다. 길바닥에 떨어져 부서진 도토리들이 여기저기 수북하다.
아침에 걸어오면서도 보니 길가에 작은 알밤으로 → BUEN CAMINO를 써놓은 걸 보았다. 작은 알밤을 이용해 잠시 쉬면서 그것을 쓰고 간 고즈넉한 순례자의 마음이 조금 느껴졌다.
낮 12시가 조금 넘어 2년 전 머물렀던 까사노바 마을로 들어섰다. 그때나 지금이나 마을이라고 하기에는 몇 가구가 되지 않는 작은 마을이다.
지난번에도 비가 많이 오지 않았다면 여기를 지나쳐 갔을 텐데 비 때문에 들어갔던 작은 알베르게가 보였다.
아직 문을 열지 않았는지 문 앞의 의자에 앉아 피곤한 몸을 쉬고 있는 순례자를 보면서, 우리는 계속 걸어 다시 오르막길을 오르고 산길을 내려가 레보 레이로 마을에 도착했다.
감기 기운이 아직 가시지 않은 몸이라 출발하면서 오늘은 여기쯤에서 쉬려고 생각했는데 레보 레이로 마을에는 마땅한 알베르게가 없었다. 할 수없이 8km를 더 걸어 멜리데까지 가기로 했다.
감기에 걸려 걷는 내내 식은땀으로 흠뻑 젖고 26km를 오르막 내리막으로 걸은 탓에 두 사람 모두 지쳐 있을 때 멜리데에 도착했다. 번화하고 큰 마을인데 알베르게는 마을 출구에 있었다.
고생하며 공립 알베르게를 찾다가 못 찾고, 할 수 없이 사립 알베르게에 들었다. 사립이라 그런지 넓은 방에 이층 침대 몇 개만 있고 그것도 우리 부부만 있어 편하게 각자 1층 침대를 하나씩 차지하고 쉬었다.
샤워하고 빨래해서 널고 나서 저녁 먹으러 나가려고 1층으로 내려오니 턱수염이 더부룩한 키가 큰 남자가 알베르게에 들어오기 위해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 외국인도 혹시 우리와 같은 방을 쓰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나왔다.
아까 마을에 들어서면서 큰 식당에 많은 사람들이 맛있게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았는데, 특히 문어 요리가 일품인지 할머니 한분이 문어를 삶아 들어 올리는 모습이 눈에 생생했다. 먼저 먹고 오고 싶었는데, 알베르게를 들어가는 게 급하다 보니 참고 그 집을 지나쳐 왔었다.
이른 저녁시간인데도 식당 안은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도 간신히 자리를 하나 잡고 문어요리 하나와 왕돈가스를 하나 시켰는데 너무 맛있고 양도 많아서 배부르게 먹었다. 계산하면서 맛있게 먹었다고 엄지 척을 하니 웃으며 같이 엄지 척을 한다.
식당을 나오면서 문어를 삶고 있는 할머니에게 사진을 하나 찍어도 되냐고 하니, 삶는 문어를 하나 들어 올리며 포즈를 취해주셨다.
서로 웃으며 흥겹게 인사하고 식당을 나와 마을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구경하다가, 숙소로 가는 길에 성당 앞에서, 재미있게 엄마와 아빠 그리고 자녀로 보이는 가족이 놀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아, 한쪽에 서서 보면서 성당 밖의 모습도 구경하고 있었다.
마침 미사가 끝났는지 성당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하나 둘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는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광경을 보았다.
조금 전까지 가족들하고 재미있게 놀고 있던 아기 엄마가 성당 문 앞에 서서, 나오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면서 구걸하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 표정도 측은지심을 불러일으키게 슬픈 표정을 지으면서 말이다. 순간적으로 아이들과 아빠는? 하고 주위를 보니 아이들과 아빠는 한쪽에서 여전히 놀고 있었다.
까미노를 걷다 보면 가끔은 성당문 앞에서 손을 내밀며 '자비를 베푸소서'로 들리는 스페인어로 구걸을 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았는데 늙거나 행색이
남루한 모습의 사람들이었다.
2년 전에 처음 왔을 때 까미노를 다 걷고, 포르투를 들려서 관광하고 밤 버스로 마드리드에 새벽에 도착한 적이 있었다. 한인 숙소에는 아침시간이 지나야 들어갈 수 있어서 마드리드 오페라 역 근처 거리를 배회하고 있었다.
그때 말쑥하게 차려입은 아주머니 한분이 시내 성당 앞에 서더니 그 앞에 거적을 깔고, 입던 웃옷을 벗어 가방에 넣고, 찢어지고 더러워 보이는 옷인지 가운인지를 머리에서부터 둘러쓰고 거적에 앉았다. 그리고 조금 후에 성당에서 나오는 사람들에게 가장 구슬픈 소리로 구걸을 하면서 작은 그릇을 머리 위로 올렸다.
너무도 황당한 모습에 우리 가족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한참을 서서 구걸하는 여인의 모습을 새삼 바라본 적이 있었는데 오늘 여기 멜리데에서, 그것도 젊은 아이 엄마가 그렇게 하는 걸 보니, 직업적으로 구걸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다시 알게 되었다.
남편과 조금 전에 본 일을 황당해하면서 숙소에 돌아오니 나가면서 보았던 턱수염의 외국인이 역시 우리와 같은 방에 들어와 남편 옆 침대에 엎드려 있었다. 그 사람은 우리가 들어오는 걸 보면서 먼저 인사를 건넸는데 예상밖에 한국 청년이었다.
나는 얼굴은 자세히 못 보고 소리로만 인사하고 내 침대에 누워 쉬고 있으면서, 남편과 대화하는 젊은이의 말을 듣다가, 목소리가 어디서 많이 듣던 낯익은 목소리여서 나도 모르게 일어나 앉아 젊은이를 바라보았다.
그는 엎드려 핸드폰을 보면서 남편의 물음에 대답을 하고 있었다. 엎드려 있는 모습이 다리가 길고 늘씬해 보여서 꽤 멋진 젊은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다가, 설마 목소리를 듣고 지금 내 머릿속에 떠오른 그 탤런트는 아니겠지 하면서, 일어나 양치를 하러 세면대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