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일어나 침낭을 개고 배낭에 짐을 넣는 일이 자연스럽고 익숙하다. 오늘은 아침 9시에 무시아로 출발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 언덕 위에 있는 알베르게에서 천천히 내려와 항구 근처의 작은 bar에서 가볍게 아침을 먹고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서있었다.
해안 근처 마을을 둘러보니 단층부터 4~5층 정도의 건물들이 지형에 맞추어 자연스럽게 바다를 보며 자리를 잡고 있다. 건물의 색도 흰색과 붉은색 그리고 노란색 등이 들어가 전체적인 모습이 수수한 유럽의 아름다운 어촌마을이다.
피스 떼 라 마을은 인구가 3,500명 정도이고 어업과 관광업으로 생활하는 활기찬 마을이라고 안내책에서 읽었다. 그래선지 어제 유람선을 탔을 때도 그렇고, 식당에서 해산물을 먹을 때도 마을 주민들이 상냥하고 순수해 보였다.
아침 첫 차를 타기 위해 기다리며 보는 피스 떼라 해안 마을의 아침 풍경
아침에는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 탓인지 날씨가 제법 선선해서 따뜻하게 도톰한 바람막이 점퍼를 입었다. 버스 시간이 임박하자 보이지 않았던 사람들이 배낭을 메고 모여들기 시작했다. 산티아고에서 보지 못했던 한국인 순례자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어제 피스 떼 라에 도착하고 헤어진 미스 최 역시 버스를 타기 위해 나오는 걸 보았다. 반가운 마음에 손을 들어 보이니 환하게 웃으며 다가온다. 그녀도 오늘 무시아로 간다고 하면서 무시아에 새로 생긴 깔끔하고 좋은 알베르게가 있으니 함께 가자고 했다. 그녀는 한국 순례자들이 함께 정보를 나누는 카톡창에서 알베르게 정보를 빠르게 얻는다고 했다.
버스를 타고 일찍 무시아에 도착해서 미스 최를 따라간 Arribada 알베르게는 역시 최근에 문을 연 곳이라 여러 층으로 이루어진 깨끗하고 현대적인 건물이었다. 더구나 한방에 이층 침대가 몇 개가 들어있기는 한데 모두 커튼으로 침대를 가려주고 침대도 사이즈가 넉넉해서 좋았다. 샤워실 역시 깔끔하고. 배낭이나 물건을 두는 장도 따로 하나씩 붙어있고 잠금장치까지도 되어있었다. 까미노에서는 볼 수 없는. 물론 까미노의 알베르게보다는 숙박비가 비쌌지만 과하지는 않았다.
마을을 둘러보기 위해 나오면서 미스 최와 각자의 시간을 보내다 저녁에 만나 식사를 같이하기로 했다. 마을은 너무 조용하고 고즈넉했다. 시에스타 시간이라 그런지 주민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주택들도 단층집보다는 대개 2~3층이나 5~6층으로 다세대나 빌라로 지어진 주택들은 붉은색 지붕과 노랗거나 녹색, 흰색 등으로 외관을 칠해 화사하고 예뻤다.
이 마을의 주민은 6,000여 명이고 일 년 내내 순례객을 위한 관광산업과 해안가의 풍부한 연안 어장을 기반으로 주민들이 어업에 종사한다고 한다. 해안가에서 이어진 산책로를 따라 작은 원뿔 모양의 언덕을 올라 해안선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마을의 풍경을 감상했다.
언덕 위에서 바라보는 무시아의 해안과 주택들
2년 전에 까미노를 걷기 위해 왔을 때는 피스 떼 라와 무시 아를 들리지 않은 채 포르투와 마드리드를 여행하고 돌아갔었다. 산티아고 알베르게를 떠나는 날 아침에 주방에서 만난 한국의 여성 순례자들이 이곳이 아름답고 위로가 되는 곳이라고 말해서 그때 아쉬워하며 떠났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다시 순례를 오기로 했을 때 이곳을 꼭 들렀다 가기로 했었다. 들었던 대로 순례길을 다 걷고 이곳에 와서 보니 휴식이 되고 위로가 된다. 그저 언덕에 올라 바다와 마을 풍경만 내려다봐도.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여기 해안가로 포교활동에 지친 산티아고(야고보 성인)를 돕기 위해 돌로 만들어진 배를 타고 성모 마리아가 왔었다고 한다.
태양을 숭배하는 오랜 토속신앙을 갖고 있던 피스 떼 라의 주민들을 선교하는데 실패한 산티아고 성인이 이곳에 와서 기도와 명상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기도의 응답으로 성모 마리아가 돌로 된 배를 타고 와서 성인의 노고를 치하하고 이제는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아직까지도 무시아 해안가에는'돌로 만들어진 선체'와 '돌로 만들어진 키', '돌로 만들어진 돛'이 남아있다고 하고 중세에는 죄를 지은 사람들을 주민들이 '돌로 만들어진 선체'로 데리고 와서 죄의 유무를 심판했다고 한다. 우리는 다른 것은 보지 못하고 '돌로 만들어진 돛'을 보고 만져 보았다.
무시아 해안으로 성모 마리아가 타고 왔다는 '돌로 만든 배'의 '돌 돛'
해안 근처에 성당이 있어 들어갔다. 안내책에서는 바르까 성모의 성소와 산타마리아 교구 성당이 있다고 되어있는데 실려있는 사진이 똑같다. 그리고 우리도 무시아에서 해안에 있는 이 성당 밖에는 보지 못했다.
성당의 문이 열려있어 안으로 들어가니 내부가 화려하지 않으면서 아름답다. 제대 앞 바로크 양식의 장식들과, 아름다운 봉헌화 가 있다. 바르까 성모의 성소 성당이니 성모 마리아가 이곳에 오신 것을 기억하며 봉헌된 성당이 아닐까 생각했다.
바르까 성모의 성소 성당 내부
잠시 묵상하고 나오니 근처에 돌 두 개로 세워진 기념비가 보인다. 2002년 11월에 대형 유조선이 돌풍에 파손되면서 63,000톤의 검은 기름이 퍼져서 스페인과 포르투갈, 프랑스의 해안이 온통 기름 뻘로 변했을 때 여기 무시아도 크나큰 고초를 겪었다고 한다. 그 당시를 기념하기 위해 마주 보는 돌 두 개로 상처를 표현한 기념비였다.
우리나라도 태안에 기름이 유출되었을 때 온 국민이 그곳으로 달려가 바위의 기름을 닦으며 안타까워했는데 이곳도 그런 고통을 당했다고 하니 마음이 아프다. 그래도 지금은 그때의 기억이 생각나지 않는 아름다운 해안가 모습을 되찾았으니 다행이다.
많은 사람들이 일몰을 보기 위해 자리를 잡고 서있거나 앉아있다. 우리도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대서양을 어제처럼 붉게 물들이며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붉은 해를 보면서 잔잔한 마음으로 오랫동안 앉아 있다가 함께 일몰을 보기 위해 올라온 미스 최와 맛집 탐방을 갔다.
미스 최가 미리 추천을 받은 곳이라고 하는데 작은 어촌마을에 고급스럽고 깨끗한 식당이다. 비싸서 많이 먹을 수는 없었지만 조금씩 몇 가지 음식을 맛보면서 즐기는 기분 좋은 저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