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기억의 강에 담은 올리브 피클

(세계 문화유산의 도시)

by 구슬 옥

10월 7일~8일 살라망카(Salamanca)

무시아에서 산티아고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는 하루 두 번 있는데 첫차가 아침 7시 30분에 출발한다고 해서 그 시간에 맞추어 일찍 일어나 준비하고 정류장에 나왔다. 어제 무시아 마을을 다닐 때는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배낭을 메고 나온다.


이제는 까미노를 걷지 않아서 그런지 외국인들과도 특별한 인사 나눔이 없이 데면데면하다. 이런 걸 보면 산티아고 길이 좋은 이유가 확실히 있다.


버스를 기다리며 정류장으로 나오는 사람들을 바라보다 우연히 산뜻한 베이지색 모자를 쓴 훤칠한 키에 배낭을 멘 젊은이가 눈에 들어왔다. 이*윤 씨다. 그도 피스 떼 라에서 무시아로 어제 들어왔었나 보다. 수염은 깨끗이 면도하고 옷도 걷는 복장이 아닌 걸 보니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가는 것 같았다.


멜리데의 알베르게에서 남편과 얘기를 나눌 때 생각보다 빨리 걷게 되어 일정이 많이 여유가 있다고 하는 걸 듣고 남편이 포루투와 마드리드나 톨레도 등을 여행하고 가는 것도 좋다고 얘기를 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일정을 당겨 한국으로 들어가는지도 알 수 없다.


어디로 가는 줄은 모르지만 오늘 우리처럼 산티아고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일찍 정류장에 나와 있다. 모자를 눌러쓰고 있지만 나는 그를 단박에 알아보았다. 참 신기했다. 세 번째로 그를 보게 되었지만 이번에는 그에게 알은체를 하지 않았다. 그의 자유로운 여행을 위해. 그리고 까미노에서의 경험이 삶의 까미노에서도 많이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버스는 이른 아침 안개 낀 길을 잘 달려 두어 시간이 지나 산티아고 터미널에 우리들을 내려주었다. 미스 최와 나머지 여행을 잘하고 가라는 인사를 서로 나누고 우리는 서둘러 살라망카로 가는 버스표를 예매하러 매표소로 갔다.


다행히 버스는 많이 기다리지 않아도 돼서 우리는 남는 시간에 근처 가게에서 간단한 것으로 요기를 하고 Alsa 버스를 탔다. 버스는 직행으로 가는 게 아니라 고속도로를 달리다 마을로 들어가 터미널에서 잠시 쉬면서 고객을 태우거나 내려주고 다시 마을을 나와 고속도로를 달리고 하는 식으로 여러 마을을 들려가다 보니 꽤 오랜 시간을 버스를 탔다.


어느 마을에서는 집에 왔다가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학생들을 배웅하기 위해 엄마 아빠로 보이는 사람들과 자녀들로 보이는 학생들이 아쉬운 작별을 하며 버스에 오르는 걸 보았다. 가족들 간의 정이 끈끈한 것은 어느 나라나 비슷한듯하다. 우리가 살라망카 터미널에 내리니 오후 3시가 훨씬 넘은 시각이었다.


거리의 표지판을 보며 도로를 몇 번씩 건너 살라망카 구도시로 들어갔다. 살라망카 구도시는 198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고, 2002년에는 유럽 문화의 수도로 도시가 지정되어 유명하다는 것을 이곳으로 오는 길에 보았던 자료에서 알았다.


2년 전 순례길을 걷고 가족들과 포르투로 여행하고서 마드리드로 야간 고속버스를 타고 가면서 우연히 알게 된 살라망카를 남편이 스페인 교육의 도시이니 이번 순례길에는 꼭 가보자고 해서 일정에 넣고 나는 아무런 사전 지식도 없는 채로 남편을 따라온 거라 중세의 건물들이 즐비한 구도시에 들어서면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중세의 건물들 사이로 난 골목길을 걸어가며 오랜 시간 동안 그곳에 있어왔음을 알리는 고색의 건물들을 보면서 시간여행을 온 듯 걷고 있는데 한쪽 길가에 앉아 두터운 노트에 글을 쓰느라 집중하고 있는 긴 머리의 아름다운 여학생을 보았다.


자주 그렇게 했던 것처럼 너무도 자연스럽게 바닥에 앉아 글을 쓰고 있는 학생을 보니 이 도시가 스페인 교육의 도시이고 주민의 30% 가까이가 학생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 것 같다. 거리에서 지나치는 사람들도 젊은이들이 참 많다. 도시에 활기가 넘친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들렸던 대도시의 구도심과 비슷했지만 살라망카는 구도심의 역사적인 건물들을 잘 관리하고 있어 역시 '유럽 문화의 수도'로 지정될 만하다고 느꼈다. 살라망카도 기원전에 생긴 이래로 여러 나라의 침략과 지배를 받다가 로마의 지배하에 상업과 교역이 발달되면서 많이 융성했던 도시다. 로마시대에 건설된 긴 돌다리가 아직도 건재한 것을 보면 그 시대의 살라망카의 모습도 상상이 된다.


'대학(University)'이라는 명칭을 유럽에서 처음 사용하고 1218년에 살라망카 대학이 설립되어 유럽의 많은 학생들이 이곳에서 학문을 정진하고 꿈을 키웠다고 한다. 나는 예수회 창립자인 이냐시오 성인이 잠깐이지만 이곳의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 등을 공부했다는 걸 알게 되어 막연히 한번 가볼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었다.


시청이 있는 마요르 광장은 88개의 아치가 있는 바로크 양식의 아름다운 건물들로 광장을 둘러싸고 있다. 물론 아치를 직접 세어보진 못했다. 19세기 초까지 이곳에서 투우 경기도 있었다고 하고 시장이나 때로는 사형이 집행되었던 시민 광장이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다행히 '살라망카의 거실'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시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광장이라고 한다.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아케이드에는 카페, 레스토랑 그리고 다양한 상점들로 가득하고 그 앞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 커피와 와인을 먹는 사람들이 여유롭고 즐거워 보였다.


2년 전에 마드리드에 갔을 때 마요르 광장에서 음악회가 열려 관람한 적이 있었다. 굉장히 크고 여기처럼 카페와 레스토랑 등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 식구들과 음식을 먹으며 즐거웠던 기억이 있다.


살라망카 마요르는 마드리드 마요르 보다는 크기는 작지만 건물의 장식이나 보존이 더 아름답다. 유럽 최고의 아름다운 마요르라는 말이 틀리지 않는 것 같다. 88개의 아치가 있는 기둥 위에는 둥그런 메달리온이 있다. 중세시대 살라망카의 저명한 사람들과 살라망카가 자랑하고 싶은 사람들의 얼굴이 새겨진 것이라고 한다.


배낭을 멘 채 두리번거리며 거리를 걷는 사람들은 우리들 뿐인 듯해서 관광객으로 붐비는 거리에 어색해 보였다. 남편은 호텔이나 숙박할 곳을 정하지 않고 이곳에도 알베르게가 있다고 거기서 묵으면 된다고 하면서 계속 알베르게를 찾아다녔다.


순례가 다 끝나고 버스 타고 여행을 하면서 알베르게에 들어간다는 것은 말이 안 돼서 말려보았지만 스페인 '은의 길' 순례자들이 머무는 알베르게를 찾아 앞서가는 남편을 말리긴 어려웠다. 다행히 대성당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허름한 작은 건물의 알베르게가 보였다. (*은의 길: 스페인 남부 세비야에서 시작해서 산티아고까지의 길. 약 1000km에 이르는 구간으로 최소한 약 35~40일 정도의 일정.)

살라망카의 순례자 숙소-살라망카는 세비야에서 시작해서 산티아고까지 가는 '은의 길' 순례길에 들어있다.

다행히 인상 좋은 호스피탈 레는 우리의 순례자 여권에 스탬프를 찍어주면서 침대가 2층 침대의 윗자리에 2개 남았다고 각각 하나씩 쓰라고 했다. 숙박비는 기부 제라 알아서 통에 넣으면 되었다. 우리는 공립 알베르게에 들어갈 때 지불한 만큼의 유로를 넣었다.


시설은 그동안의 알베르게에 비하면 협소하고 좋지 않았지만 예약 없이 관광객이 많은 도시에 왔으니 다른 도리가 없었다. 작은 건물에는 숙소도 2층 침대 5개가 전부였다. '은의 길'을 걷는 순례자들이 많지 않아서 순례자 숙소의 여건이 좋지 않다. 배낭을 침대 곁에 놓고 저녁도 먹을 겸 도시를 둘러보러 밖으로 나왔다.


대성당 앞으로 다시 가보니 문 닫친 성당 앞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다. 무엇인가를 열심히 보는 건지 아니면 무엇을 찾는지 안내자의 설명을 들으며 모두 고개를 들고 보고 있다.


아마도 은을 세공하듯이 세밀하게 돌로 조각된 장식들도 보면서 20 세기 들어서 일부 떨어진 조각들을 새로 보수할 때 들어간 우주인과 아이스크림 먹는 사자 조각을 찾느라 그랬던 것 같았다. 우리는 영문도 모르고 같이 머물다가 그걸 찾은 사람들이 말하는 걸 듣고 알았다.


장엄하기만 한 대성당 출입문의 장식에 절로 미소를 짓게 하는 조각이 숨어있다는 것이 즐겁고 인간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미사는 없지만 신부님을 따라 스페인 다른 도시에서 순례 온 순례객들이 성당 밖에 서서 신부님이 하시는 말씀에 귀 기울이며 열심인 모습이 보기 좋았다.

살라망카 대성당 -왼쪽이 16세기에 새로 건축한 신 대성당이고 오른쪽은 구 대성당-두 개가 붙어있다.

우리는 점심도 거른 채 인상적인 건물들로 가득한 살라망카 구도심의 골목들을 여기저기 다니며 구경하다 야외 테이블이 놓인 골목의 한 식당에서 이른 저녁을 먹었다. 관광지라 순례길과는 달리 음식값이 비싸서 무엇이 맛있는 건지 여기 오면 먹어봐야 되는 음식이 무엇인지를 몰라 늘 먹던 대로 비슷한 걸 주문해서 먹었다.


맛은 그냥 그랬다. 열심히 살라망카를 연구했다는 남편은 도대체 무얼 연구하신 건지 알 수가 없다. ㅋ ㅋ. 그래도 요기도 하고 달달하게 와인도 한잔 했으니 기분 좋게 살라망카 대학을 밖에서 둘러보러 갔다.


여기도 사람들이 서서 열심히 대학 정문의 파사드(벽)를 사진으로 찍고 무언가를 찾느라 고개를 젖히고 있었다. 세밀하게 조각한 파사드의 장식들이 그저 아름답기만 한데 여기는 해골 위에 있는 개구리를 찾느라 모두 열심들이었다. 우리는 특별히 찾을 생각도 없어서 대학의 중정을 둘러보고 다른 곳으로 이동해 여기저기 열심히 다녔다.


공원도 들어가 산책하면서 성벽에서 멀리 토르메스 강을 바라보기도 하고, 거리 곳곳에 조명이 들어오고 도시가 더욱 화려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뀌는 걸 보면서 돌아오다 현지인들이 가는 맛집이라고 생각되는(남편의 직감) 식당을 내일 낮에 들리려고 눈으로 찍어놓고 골목들을 돌아 돌아 숙소로 돌아왔다.

살라망카 대학의 정문 파사드-은세공 방식으로 돌을 조각해 아름답고 섬세하다 (화질이 좋지 않다)

샤워를 하기에는 너무 장소가 열악했지만 그래도 간신히 씻고 침대의 2층으로 올라가 침낭을 펴고 들어갔다. 여성 순례자는 한 명도 없는 것 같고 벌써 곤하게 잠든 순례자들의 거친 코골이 소리에 잠을 잘 수가 없다. 건너편 침대의 2층에 있는 남편은 이어폰을 끼고 벌써 잠이 들었는지 절로 코를 곤다.


힘들게 걸어온 순례자들이 자는 작은 방은 푸푸 거리는 소리와 드르렁 거리는 소리의 이중주가 대단했다. 나는 세상 편하게 잠든 남편을 바라보며 속으로 많이 서운했다. 자기는 남자라서 이런 잠자리도 상관없다고 하지만 나는 코 골고 술냄새도 살짝 풍기는 이런 방에서 더 이상 머물고 싶지가 않았다. 나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남편에 대한 서운함과 원망을 안은채 어느덧 잠이 들었다.


습관처럼 아침에 일찍 일어나 보니 길을 떠나려는 사람들이 벌써 일어나 준비하며 나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도 일어나 침낭을 정리해 배낭에 넣고 아래층 세면대로 내려갔더니 여성 순례자 두 분이 있었다. 어젯밤에 늦게 와서 일층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잤다고 한다.


알베르게에 침대가 적다 보니 가끔은 그런 경우가 많은듯했다.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다. 숙소를 나오기 전에 호스피탈 레에게 배낭을 맡겨놓고 오후에 찾아가도 되겠냐고 하니 3시에 와서 벨을 누르라고 하며 친절하게 맡아주었다.


살라망카 역시 스페인의 다른 도시와 다름없이 구도심의 아침은 지나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이 조용하다. 어젯밤에 그렇게 많던 사람들은 아직 깨어나지 않고 알베르게를 일찍 나온 순례자 몇 명이 여기저기 골목을 다니며 도시를 구경하고 있다.


우리는 어제 사람들로 가득해 제대로 보지 못했던 마요르 광장에도 다시 가서 둘러보고 건물벽 위에 가리비 조개 문양이 모양 있게 붙어있는 조개집을 보았다. 조개가 300개가 넘는다고 했다. 각각의 특색 있는 창문들도 많은 이 저택은 1500년도 초에 소유주가 리모델링을 하면서 지금의 가리비 조개를 붙였다고 한다.


조개 조각을 붙인 이유에 대해 귀족 가문의 표시라는 얘기도 있고, 주인이 귀족이며 산티아고 순례길을 지키던 기사여서 그렇다는 등 검증되지 않은 여러 설이 있다. 이곳이 산티아고 '은의 길'에 있는 까미노이니 여러 추측들이 많은 듯하다.


그러나 생각 외로 이 주택은 군사시설로 쓰이기도 했고, 학생들의 감옥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공공도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말도나도(Maldonado) 가문의 집 일명 조개집-가리비 조개 문양 돌조각이 300개가 넘게 붙어있다.

문을 연 카페에서 간단한 아침을 먹고 나오니 여기저기 건물 앞에 줄을 선 관광객들이 보인다. 9시가 조금 넘은 시각인데 전망대가 있는 건물의 탑에 올라가기 위해 어린 학생들 단체도 있고 어른들 단체도 있다.


우리는 살라망카 시내 조망을 하는 대신 누에바(신) 대성당의 문 앞에 서서 미사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면서 문 위에 조각돼 있는 여러 작품들을 보았다. 너무 작고 세밀한 작품들은 사람과 짐승과 그 밖의 성서의 얘기들을 상상을 자극하며 조각해 놓았다.


미사는 누에바 대성당의 18개의 채플 중 하나인 그레이터 채플(Greater Chapel)에서 참례할 수 있었다. 채플마다 제대의 장식이나 화려함이 다른데 그레이터 채플은 제단 위의 벨벳 벽안에 성모승천의 성상이 있고 아래에는 스페인출신 두 성인의 유골함인 은색 항아리가 있다.

누에바 (신) 성당의 그레이터 채플에서의 미사

미사 후에 성당 내부의 다른 곳도 둘러보았는데 아름다운 양식으로 화려하기도 하고 정교하기도 한 여러 장식들을 보며 그 시대 예술가들의 솜씨와 상상력에 감탄했지만 그러나 나는 작고 소박한 성당에서 더 마음이 깊어짐을 느낀다.


우리는 어제 눈으로 찜해놓은 식당을 찾아가다가 상점의 유리벽 안에 전시된 타일로 정교하게 부조한 직사각형의 성모자상 액자를 보았다. 보는 순간 가게에 들어가 사고 싶었지만 밥 먹고 오다가 들리자는 남편의 말을 믿고 그냥 지나쳐 작은 식당 앞에 서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예약 없이 왔지만 다행히 자리를 만들어주고 검은색과 붉은색이 섞인 삼색 올리브 피클을 먼저 내왔다. 맛있었다. 식사를 기다리며 먹었던 올리브 피클의 그 맛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순례길을 걸으면서도 자주 사서 먹은 올리브 피클에서 이렇게 신선하고 향기롭고 지나치게 달콤하지도 짜지도 않은 맛을 본 적이 없었다. 주문한 음식도 정갈하고 맛있었다. 함께 먹은 '1906'이라고 쓰인 맥주의 맛도 일품이었다.

다시 한번 가고 싶은 살라망카의 'El Laurel' 식당

그러나 어리석게도 만족한 식사에 행복해하느라 식당을 나와 배낭을 찾으러 알베르게로 올라가면서 다시 들리겠다고 생각한 상점을 잊은 채 지나쳤다.


호스피탈 레에게서 배낭을 받아 부지런히 구도심의 골목을 빠져나와 버스터미널로 가기 위해 도로를 몇 번 건너고, 터미널에서 아빌라 가는 버스시간표를 확인하고 버스에 오르며 비용을 계산한 뒤 버스가 살라망카를 출발한 후에야 '아차' 하면서 탄식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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