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수님의 데레사 야)
10월 8~9일 아빌라(Avila)
남편이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떴다. 내릴 준비를 하라는 말에도 잠에 취해 눈을 껌뻑이다가 일어나는 남편을 따라 버스를 내렸다. 짐칸에서 꺼내주는 배낭을 어깨에 메고 두리번거리며 터미널을 빠져나왔다. 긴 단층 건물 위 한쪽에, 얹힌 것처럼 올라있는 작은 큐빅 모양의 초록색 설치물이 단조로운 터미널 건물을 인상 깊게 한다.
버스에서 잠깐 졸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오후 6시다. 서둘러 아빌라 구도심으로 들어가기 위해 도로를 건너 조금 걸어가니 정류장이 있었다. 버스노선표가 색깔별로 그려져 있고 도착시간도 표시되어 있다.
시내의 전체적인 도로표시를 보면서 우린 무슨 색깔의 버스를 타야 할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는데 노선표에 San Vincente가 들어간 붉은색 1번 버스를 타면 될 것 같아 기다리다 1번 버스를 탔다. 성벽이 보이는 정류장에서 내려야 하는데 확실히 몰라 망설이다가 버스는 다시 아래 주택가로 내려갔다.
숙박할 곳을 찾기 위해 두어 정거장 더 가다가 내렸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주택들만 있어서 다시 두 정거장을 걸어 올라왔다. 시간은 7시가 되어가고 하나 둘 거리에 가로등이 켜지고 있었다.
남편은 이곳에도 알베르게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 근처에 있는 상가에 가서 어렵게 물어보았지만 없다고 하면서 성벽 안으로 들어가면 호텔이 여럿 있으니 가보라고 했다. 저녁 7시가 넘어가니 조금 불안한 마음을 안고 성벽 안으로 들어갔다.
첫 번째의 호텔에서 방이 없다는 소리를 듣고 근심하면서 두 번째 호텔을 들어가 방이 있는지 물어보니 크기가 다른 두 개의 방이 있다고 해서 그중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오랜만에 호텔에 짐을 풀고 깔끔한 침대에서 잠을 자게 되어 기뻤다. 이곳에 알베르게가 없는 게 얼마나 고맙던지..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나오니 불빛을 받은 성벽이 아름답다. 성벽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시간은 지나서 성 밖을 산책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아빌라는 해발고도가 1132m인 산간도시인데 바위산 정상의 평지에 도시가 건설되었다고 한다.
오늘 떠나온 살라망카도 해발 800m가 넘는 곳의 도시였는데 이곳은 300m 이상이 더 높다. 그러나 고도의 차이는 느껴지지 않았고 산간마을 같은 느낌도 별로 없다. 성 밖에 나와 바라보면 낮은 지대에도 많은 건물과 주택들이 들어서 있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아빌라 역시 유럽의 다른 도시들처럼 중세 때에는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다가 이슬람에 점령되고, 다시 그리스도교인들에 의한 국토회복 전쟁 등을 통해 도시가 발전과 쇠퇴를 반복했던 걸로 알려져 있다. 성벽도 11세기 후반에 이슬람의 공격을 막기 위해 높이 12m, 길이 2.5km의 돌벽으로 마을을 완전히 둘러싸도록 요새로 지어졌다.
나는 아빌라를 '교회의 학자'라고 불리는 성녀 데레사를 통해 이름을 알게 되었고, 스페인에 다시 오게 된다면 꼭 한번 들리고 싶었던 도시이다. 성벽은 1000년이 되어가는 건축물이라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견고하고 보존도 잘되어있어 그 시대의 건축기술이 놀랍기만 하다.
이튿날 아침 조용하고 쾌적한 방에서 꿀잠을 자고 일어나니 온몸이 편안하다. 그러나 알베르게보다 호텔이 불편한 것은 빨래를 직접 해서 건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카운터에 부탁해서 세탁을 맡기고 호텔 내의 식당에서 아침을 먹었다. 호텔 숙박비와 별도로 계산하는데 간단한 아침이라 비싸지 않았다.
관광을 온 사람들도 있지만 마을 안에 살고 있는 현지인들이 많아 거리는 어색하지 않다. 내가 살던 동네처럼 조금 한가로우면서도 활기가 있다. 성 밖 광장으로 나가니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단체로 견학을 왔는지 데레사 성녀 조각상이 있는 곳으로 줄을 지어 걸어가 차례로 앉는다. 아마도 단체사진을 찍으려는 것 같았다. 밝은 얼굴에 재잘거리는 모습들이 절로 미소를 머금게 한다.
우리는 성 밖의 낮은 지대에 있는, 데레사 성녀가 수녀로 생활하던 '엔카르나시온 수도원'을 찾아 걸어갔다. 멀지 않은 거리에 있었다. 이곳은 1515년 아빌라에서 태어난 데레사 성녀가 20세에 수녀원에 들어온 후 1582년 선종하기까지 수도원 개혁에 노력하며 지낸 가르멜회 수도원이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었다. 여기도 한국인 순례자들이 많이 오는지 한국어 설명서가 준비되어 있어 들고 다니면서 관람했다.
제1실에서는 기둥에 묶여 채찍질당한 예수 그리스도를 그린 프레스코 벽화가 있었다. 어느 날 성녀는 기도 중 환시로 예수님의 모습을 본 다음 이곳에 그 모습을 그려주도록 부탁했다고 한다. 성녀는 이렇게 신비적인 그리스도 체험을 통해 수도생활의 쇄신을 시작했다고 한다.
*프레스코화:소석회(消石灰)에 모래를 섞은 모르타르를 벽면에 바르고 수분이 있는 동안 채색하여 완성하는 회화. 벽화 화법 중 대표적인 것.
그 밖에도 성 이냐시오의 전신사진이 들어있는 액자가 있었고 1982년 데레사 선종 400주년을 맞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방문하셔서 앉았던 의자와 데레사 성녀가 선종할 때 '마침내 주님, 교회의 딸이 죽습니다'라고 외쳤던 구절 등이 쓰여있다.
제2실에서는 개혁 이전의 수녀님들의 방인데 부엌이 하나씩 딸려있었다. 화덕 옆에는 수녀님들이 사용하시던 주방용품들이 걸려있었고 커다란 더블베이스가 놓여있었다. 철문으로 막혀있어 외부와의 소통 없이 사는 수녀님들은 외롭고 힘들었을 텐데 마음의 여유를 찾아 여가시간을 이용해 악기를 연주하며 봉쇄 수도원의 생활을 기쁘게 봉헌하신 것 같다.
나도 수유리에 있는 가르멜 봉쇄수녀원에 교우 자녀가 입회하여 서원하는 날 그곳에 참석 한 경험이 있다. 수녀님들과 함께 미사를 드릴 때도 창살을 사이에 두고 미사를 드려야 되었고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청년 꾸르실료 교육에 참석하고 돌아온 딸이 회심하여 수녀원에, 그것도 봉쇄수녀원에 들어가 평생을 기도하고 일하며 살겠다고 했을 때 우리도 매우 놀랐지만 수녀님의 어머니도 몹시 놀라셨었다.
그래도 어머니 역시 꾸르실료 교육을 받으시면서 회심을 통해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으셨는지 기쁘게 받아들이시고 따님을 위해 늘 기도하셨다. 오늘 이곳에 와서 데레사 성녀의 일생을 알게 되니 진정한 회심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느낀다.
(*꾸르실료 교육: 가톨릭 교회 내부에서 실시하는 평신도 재교육-회심을 통한 신앙생활의 쇄신)
수도원 중앙계단쯤에 데레사가 소년 예수님을 만나는 장면이 재현되어 있다. 어느 날 데레사는 이곳에서 그녀의 이름을 묻는 어린 소년을 만나게 된다. '수녀님 이름은 뭐예요?'라는 질문을 받고 '나는 예수님의 데레사 야. 그런데 너는 이름이 뭐니?' 하고 물으니 어린 소년은 '난 데레사의 예수예요.'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위의 액자는 성녀 가족 소유의 그림인데 예수님이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는 그림이다. 성녀는 어릴 적에 그 그림 앞에서 '주여, 제게도 그 물을 부어주세요'하고 간청했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남달리 신심이 깊었던 데레사임을 알 수 있다.
제3실은 옛날에는 종루였던 자리인데 성녀 데레사가 갖고 있던 여러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유리상자의 중앙부에는 성녀가 고통스러운 마음으로 바라보던 '온몸에 상처를 입은 예수'가 있다. 오른쪽 아래에는 성녀 데레사가 베개로 쓰던 낡은 목침도 있다.
또한 5년여 동안 이 수도원의 고해 신부로 있던 십자가의 성 요한 신부가 펜으로 그린 그림과 성녀가 생활하던 수도원의 방 열쇠 등도 있다. 또한 이 방에는 성녀가 수도원 개혁을 위해 '맨발의 수도회' 창립과 관련된 교황 비오 4세로부터 받은 승인장과 서류들이 벽장에 정리되어 전시되어 있다. 그 외에도 성녀와 관련된 몇 가지 소품들이 있었다.
박물관을 나와 수도원 성당에서 미사 참례를 하고, 멀리 보이는 성벽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마을의 모습을 보면서 데레사 성녀를 통한 중세 교회의 개혁에 대해 생각했다. 아빌라에는 성녀 데레사 외에도 십자가의 성 요한이 성녀와 같은 시기에 활동을 했다.
데레사가 '맨발의 가르멜 수도회'를 창립하고 스페인 전역을 다니면서 수녀원 16곳, 남자 수도회 2곳 등을 만들 때 십자가의 성 요한의 많은 도움이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맨발의 가르멜 남 녀 수도회가 있다.
데레사 성녀보다 24년 앞서 태어난 로욜라의 이냐시오 성인도 30대에 회심을 하고 예루살렘 순례 후 라틴어와 철학 신학을 다시 공부하고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리고 동료들과 '예수회'를 창립하여 지금은 거의 모든 나라에 예수회가 있고 교육과 영성 지도에 많은 헌신을 하고 있다. 이제야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때 들리던 많은 성당들의 모습이 화려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맨발의) 가르멜 수도회의 지향: 개인 성화에 머무르지 않고 교회 쇄신, 세상 복음화
*(맨발의) 가르멜 여자수도회:봉쇄 생활하며 묵상기도 침묵 속에 다양한 소임 실천
*(맨발의) 가르멜 남자수도회:관상 생활하며 외적 활동, 피정 지도, 영성 강의 등
수도원을 나와 마을에 있는 넓고 예쁜 공원에 앉아, 파란 하늘과 어우러진 녹색의 나무들과 붉고 노랗게 물들어가는 단풍들 사이로 보이는 붉은 주택의 지붕들이 햇살을 받아 더욱 아름답게 반짝이는 모습을 바라보며 쉬다가, 두시가 넘어서야 성벽 쪽으로 돌아오는 길에 중국 음식점으로 보이는 큰 식당이 있어 들어갔다.
바쁜 시간이 지나서인지 손님이 거의 없이 한가롭다. 익숙한 메뉴는 없어 대충 시켰는데 남편은 맛있다고 잘 먹고 나는 한국에서 먹는 중국음식에 비해서는 별로 맛이 없어 조금 먹었다. 종업원은 중국인이 아니고 덩치가 큰 아프리카 계 유럽인이었다. 어디를 가도 중국 식당이 있는 걸 보면 중국의 인구가 얼마나 많은지 실감이 된다.
성벽 안으로 들어가니 아빌라 대성당 앞에 한 무리의 한국인 여행객들이 깃발을 들고 설명하는 안내자를 따라 성당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도 곁에 가서 들으며 반갑게 인사했다. 그러나 안내자는 자유여행을 하는 사람들을 조금 경계하는 듯 사람들을 재촉해 다음 코스로 가면서 가다가 세비야를 들려야 돼서 바쁘다며 서둘렀다. 오랜만에 해외에서 한국인들을 만나 반가웠는데 단체라 가깝게 말을 섞을 여유가 없어 아쉬웠다.
우리는 마을의 골목들을 따라 걸으며 동네를 구경하고 야외 테라스가 멋지게 펼쳐져 있는 카페에 앉아 여유 있게 음료와 커피를 마셨다. 햇살은 뜨겁지만 습기가 없어 그늘에만 있으면 시원한 스페인의 날씨가 참 좋다.
여행사를 따라 해외여행을 다닐 때 내가 가장 부러웠던 것은 유럽인들이 한가롭게 카페에 앉아 얘기를 나누며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 깃발을 따라 바쁘게 움직이며 건물을 쳐다보고 설명을 듣다가 또 다음 코스로 이동하는 여행사의 스케줄이 나는 너무 버겁고 싫었다.
그래서 남편과 함께 미리 계획하고 준비해서 좌충우돌하면서도 이렇게 자유롭게 여행하는 것을 선택했는데 그러다 보니 의견 충돌로 가끔 서로 얼굴을 붉힐 때도 있다. 이제 일주일 정도면 두 달간의 긴 순례 여행도 끝나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의 일들이 새록새록 기억되며 그리워질 것이고 그때 왜 남편과 충돌했을까 하는 후회도 하게 될 것이다.
산타 데레사 광장 앞에 있는 데레사의 생가를 방문했다. 지금은 수도원과 성당 그리고 작은 박물관이 있다. 성당 외부는 바로크 양식인데 화려하지 않았다.
먼저 성당에서 미사가 있어 참례했다. 성당 내부의 둥근 아치로 되어있는 제단 위의 중앙에는 성녀 데레사가 다른 성인 성녀와 함께 천사들의 환호 속에 천상을 바라보는 장식이 있다.
미사 후에 성당 내부를 둘러보다가 한쪽에 어린 데레사가 잠자던 침대며 사용하던 물건들이 자연스럽게 전시되어 있고, 정원에서 소꿉놀이를 하는 어린 데레사와 오빠의 모습이 조각상으로 꾸며져 있다.
또한 십자가를 바라보며 한 손에 펜을 들고 글을 쓰는 데레사에게 비둘기 형상의 성령이 내리는 모습이 스테인드 글라스로 멋지게 장식되어 있는 것도 보았다. 성당 앞 광장에도 어딘가를 바라보며 금방 일어나 달려갈 준비를 한 데레사 성녀의 동 조형물이 있어 그 옆에 앉아 사진을 찍으며 그녀가 바라보는 것이 나에게도 보이는 듯 긴장했다.
성벽 밖으로 나가 2.5km에 달하는 성벽을 빙 둘러 걸었다. 성벽을 끼고 관광객이나 순례객들이 주차한 자동차의 줄이 성벽의 길이만큼 길게 이어져있다.
도시에 가로등이 켜지면서 화장한 여인들의 화사함처럼 성벽과 멀리 보이는 아랫마을들과 주변들이 아름답게 물들어가는 걸 오래도록 걸으며 지켜보다가 내일 마드리드를 거쳐 파티마로 들어가기 위해 호텔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