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국경을 넘어서

(마드리드 길)

by 구슬 옥

10월 10일~11일 마드리드, 포르투갈 파티마 성지


아빌라에서 직접 파티마 성지로 가는 버스가 없어 가까운 마드리드에 가서 파티마 행 버스를 타기 위해 9시쯤 성벽 앞 정류장에서 시외버스터미널을 경유하는 버스를 탔다. 평일이고 아침시간이다 보니 학생들이 많이 탔는데 살라망카 대학 아빌라 분교의 학생들로 활기가 넘쳐 보였다.


그들은 매일 천년이 넘는 시간의 성벽을 나와 21세기의 시간으로 오는 듯 맑고 밝았다. 터미널을 향해 버스가 지나며 보여주는 창밖의 풍경도 이제는 스페인의 다른 도시에서 볼 수 있는 지극히 현대적인 풍경으로 바뀌고 있었다.


마드리드까지 1시간 정도 걸려 도착해서 파티마 가는 버스를 알아보니 오늘은 이미 출발한 버스가 끝이라고 한다. 하루에 1대씩 아침 9시 30분에 출발한다고 했다. 마드리드에서 머물 생각은 못했지만 어쩔 수가 없어 2년 전 묵었던 한인 민박에 가기 위해 터미널에서 전철 타고 오페라 역에 내렸다. 지난번에 여기서 며칠을 머물며 동네처럼 돌아다녀서 그런지 낯설지 않고 반갑다.


숙소부터 급해서 한인 민박집에 가보니 도미토리 방은 여유가 없고 2인실 하나가 남았는데 1박에 100유로라고 했다. 망설이던 남편은 마드리드에도 알베르게가 있으니 거기로 가자고 앞서 걸어갔다. 2년 전에 식구들과 답사하듯이 여기저기 걸었던 길이라 처음 가는 알베르게도 잘 찾아갔는데 결과는 '안된다'였다.


이미 산티아고 순례가 끝난 사람들은 재워줄 수 없다고 했다. 마드리드 알베르게는 마드리드에서 시작해서 산티아고까지 640km를 걷는 마드리드 길의 시작 지점인데 비교적 짧은 길이지만 한국의 순례자들에게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우리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다시 순례 여권을 만들고 순례길을 또 걸을 것이 아니라면 조용히 나와야 했다.


이번에도 나에게 체면만 깎인 남편과 근처의 호스텔을 알아보다가 다행히 방이 있다고 해서 50유로 계산하고 들어갔다. 삐걱거리는 계단을 3층까지 걸어 올라가야 되지만 하룻밤 묵을 거니까 감수했다. 산티아고에 들어가는 정확한 일정을 한국에서 출발할 때 정하 지를 않고 떠나서 매번 이렇게 잠자리를 찾아 헤매게 되었다.


순례기를 쓰고 있는 지금이라면 핸드폰의 칩을 스페인의 대도시에서 일찍 사서 바꿔 끼우고 미리 예약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2017년 여름에 우리가 순례를 떠날 때는 그걸 모르고 해외 요금으로 로밍을 해서 갔었다. 그러나 로밍한 핸드폰은 와이파이가 터지지 않아 돈만 낭비했다.


산티아고 순례가 끝난 후 에라도 미리 호텔 예약을 했어야 했는데 여러 갈래의 순례길이 있는 스페인이라 가는 곳마다 알베르게가 있다고 혹신한 남편은 미리 호텔을 예약하지 않았다. 함께 준비하지 못한 내 탓도 있어 더 이상 불평은 못하고 다행히 숙소를 빨리 잡았으니 감사할 따름이었다. 배낭을 놓고 다시 오페라 하우스가 있는 곳으로 갔다. 왕궁 앞에서 하는 행사도 보고 궁 옆의 성당도 들어갔다.


미사는 없었고 자리에 앉아 기도하시는 분들이 있어 방해되지 않도록 조용히 성당을 둘러보고 잠시 묵상하다 나왔다. 바로크식의 높은 천장이며 황금색 띠가 벽 위에서 밑으로 줄처럼 장식이 되어있고 벽에는 성서의 이야기가 군데군데 그림으로 담백하게 그려져 있었다.


지나오면서 보던 스페인의 성당 장식과는 달리 금색 띠를 둘러 환하고 밝으며 화려해 보일 수도 있지만 전체적인 성당 안의 색깔이 부드러웠다. 제대 앞의 벽 장식도 성화나 성물이 있는 오래된 성당 양식이 아닌 절제 그 이상의 모습이었다.

조용히 기도하는 부인의 뒷모습에 마음이 고요해진다

며칠 전에 이곳을 다녀간 듯 훤하게 도시가 익숙한 것이 신기했다. 돌아다니다 마침 핸드폰 가게를 지나면서 남편과 핸드폰 칩을 사서 갈아 끼우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들어가서 물어보니 가격별로 칩을 살 수 있었다. 일단 15유로짜리를 사서 칩을 바꿔 끼우니 거리에서도 카톡이 되고 좋았다. 진작 이랬어야 했는데.


2년 전에는 몰라서 못 갔던 한국식당인 '사랑방'에 가서 교포 사장님과 인사하고 몇 가지 음식을 시켰는데 맛이 일품이었다. 지난번에 이곳에 가족들과 오지 못한 것이 먹으면서도 아쉬웠다. 오랜만에 소주까지 곁들여 상추에 제육볶음을 먹으니 행복했다.


우리가 식사하는 중에 테이블 한쪽에 단체손님이 예약을 했는지 준비가 되어있다. 아마도 한국인 단체 관광객이 오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역시 한 무리의 한국인들이 준비된 테이블에 앉고 일부는 2층으로 올라갔다.

'사랑방' 한식당에서 오랜만에 먹어보는 식사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했다. 그러나 단체로 오신 분들이라 긴 대화는 할 수 없었고, 그분들은 간단한 백반으로 식사를 빨리 마치고 쇼핑하러 가신다고 나가셨다. 우리도 쇼핑하는 곳에 함께 갈 수 있느냐고 가이드에게 부탁하니 안된다고 했다.


순식간에 왔다가 후다닥 떠나는 한국인 단체 관광객을 아쉽게 보내고 '사랑방' 사장님께서 알려주신 시내에 있는 가까운 큰 마트를 찾아갔다. 그곳에 가서 한국의 지인들에게 선물하고 싶은 몇 가지 소스류를 사고 밤늦도록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환한 광장과 거리를 지나 호텔로 돌아왔다.

늦은 시간에도 북적이는 광장

이튿날 아침 9시 30분에 출발하는 Alsa 버스를 타고 5시간 이상을 갔다. 도중에 포르투갈 국경 근처의 터미널에서 버스가 서면서 우리에게 여기서 파티마로 가는 버스로 환승하라고 했다. 당황하여 조금 불안해하니, 우리를 태우고 왔던 기사가 그 정류장에서 쉬는지 버스가 오면 알려주겠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다행히 30분 뒤 파티마행 버스가 도착해서 우리는 기사의 안내를 받아 탈 수 있었다.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의 시외버스에는 중간에 기사분들이 쉬어야 하는 시간이 있어 버스가 출발할 때 항상 2명의 기사가 운전석 옆에 같이 앉아 출발한다. 가면서 기사가 졸지 않게 하느라 얘기도 많이 하면서 간다.


그리고 중간 어디쯤 정류장에서 운전하던 기사는 내리고 같이 탔던 기사가 운전을 하고 또 다른 기사가 함께 버스에 타서 얘기를 나누며 계속 운행을 한다. 기사들이 쉬어야 할 시간을 철저히 지켜서 혹시 모를 졸음운전이나 여러 사고를 예방하는 것 같아 좋아 보였다.


스페인에서의 차창 밖의 모습과 포르투갈로 넘어가서 보는 창밖의 풍경은 조금 달랐다. 포르투갈이 조금 투박하다고 해야 할까. 그런 느낌이었다. 저녁시간이 다 되어 파티마 성지에 도착했다.


남편은 이번에도 알베르게가 있다고 찾아가자고 하고 나는 가지 말고 숙소를 알아보자고 서로 실랑이를 하고 있는데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났던 강화성당 부부를 길에서 만났다. 라바날 알베르게에서 본 이후에 처음 만나게 되어 너무 반가웠다.


그분들은 오늘 낮에 도착해서 파티마 근교의 호스텔에 있다고 하면서 거기 가면 방이 있을 거라고 가자고 했다. 남편은 성지 근처에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가 있다고 가지 말자고 했지만 마드리드에서 처럼 받아주지 않으면 그것도 곤란한 상황이 되니 버스 타고 근교로 가보자고 그를 설득했다.


그러나 40분가량 버스를 타고 따라간 호스텔에서도 방이 없다고 하는 바람에 난감해하다가 카운터에서 근처의 호스텔을 여기저기 연락해 보더니 한 군데에 방이 있다고 가보라고 했다. 그것도 그날 하루만 잘 수 있다고.


강화성당 부부가 묵는 호스텔은 밥도 해 먹을 수 있는 알베르게 같은 시설이라 다른 외국인들과 한국인 여러 명이 함께 있었다. 간단히 저녁도 같이 먹은 후에 우리는 카운터에서 소개해준 호스텔을 찾아가 하룻밤을 자고 내일 아침 일찍 다시 파티마 성지로 들어가 수도회 알베르게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그것 밖에는 다른 수가 없었다. 알베르게에 자리가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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