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 마리아와 세 어린이)
10월 12일~13일 파티마(Fatima) 성지 성모 발현 100주년 행사
아침 9시 버스를 타고 파티마로 들어가기 위해 터미널로 나오면서 동네를 둘러보니 아담하고 깔끔하다. 레이리아 대성당이 있고 문화센터와 큰 병원도 있고 맥도널드 가게며 레스토랑, 호텔, 호스텔, 민박집 등 파티마 근교 마을답게 관광객에게 필요한 것은 다 있는 것 같다.
빨간 지붕에 하얀색과 몇 가지 파스텔톤의 색으로 벽을 칠해 집을 예쁘게 가꾸며 사는 마을로 보였다. 이른 아침이라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먼저 파티마로 들어간다고 강화성당 부부에게 카톡을 넣고 버스를 탔다. 생각해 보니 오늘과 내일은 포르투갈의 작은 마을 파티마에 성모님이 발현하신 지 100주년을 기념하는 날이라 포르투갈 신자들 뿐 아니라 유럽의 많은 신자들이 성지를 방문해서 숙소가 없을 것 같다.
우리도 이번에 순례길을 계획할 때 이왕이면 발현하신 날을 전후로 파티마 성지를 방문하려고 했으니 사람들의 생각은 너나 할 것 없이 비슷한 것 같다. 숙소가 정해지지 않아 마음은 편치 않았지만 그래도 밖에서 이슬을 맞고 자지는 않겠지 하는 배짱으로 버스에서 내려 성지로 걸어갔다.
1914년부터 시작된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17년 5월 13일 포르투갈의 작은 시골 파티마에서 양을 돌보던 3명의 어린이 '루치아(10살), 프란치스코(9살), 히야 친타(7살)'의 앞에 성모 마리아가 나타나셔서 앞으로 5개월 동안 매월 13일에 이곳에 와서 평화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하셨고 아이들에게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기도와 고행을 바치라고 당부하셨다.
10월 13일까지 6번 3명의 아이들에게 나타나셨다. 어른들은 처음에 아이들의 말을 믿지 않다가 나중에는 7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아이들이 성모 마리아를 만나는 장면을 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3명의 어린이 외에는 성모 마리아를 볼 수 없었고 단지 성모 마리아가 아이들을 만날 때 하늘이 무지갯빛으로 빛나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체험했다고 한다.
성지 입구에 들어서니 흰색의 단층 건물 안으로 사람들이 계속 들어가고 있었다. 파티마의 성모 발현 90주년을 기념해 2007년에 봉헌된 성삼위 대성당이었다. 우리도 사람들을 따라 들어가니 성당 안이 굉장히 넓었다. 8000명 이상이 함께 미사 할 수 있는 규모라고 했다.
대성당 안으로 들어가니 제대를 향해 의자들이 질서 있게 배치되어 있었는데 규모가 대단했다. 루르드 성지의 '성 비오 10세 대성당'의 크기도 대단했지만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간결하고 정돈되어 있는 성당 안은 규모의 크기는 컸지만 질서 있고 고요했다. 제대 앞의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의 모습도 이전에 익히 보던 모습이 아니라 더욱 놀라웠다.
까무잡잡한 피부색에 머리칼도 약간 긴 곱슬로 뭉쳐있고 고개 숙인 모습이 아닌 우리를 바라보며 고통을 참고 있는 깊은 눈이었다. 십자가에서 늘어지는 중력을 견뎌내시듯 양팔에 핏줄이 도드라져 보이고 못 박힌 손바닥의 열 손가락을 쫙 펼치고 계셨다.
바라보는 나의 마음이 무겁고 힘들었다. 십자가 뒤로 보이는 그림에는 예수님을 상징하는 어린양의 그림과 성인 성녀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조용히 묵상하는 많은 순례객들을 바라보며 우리도 이 시간에 함께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그분께 감사했다.
미사는 아름다운 성가대의 합창과 함께 시작되고 강론도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아마도 성모님의 발현에 관한 말씀이거나 전 세계적으로 매일 같은 복음을 읽고 있으니 그에 관한 내용일 것이다. 우리도 때에 맞추어 한국어로 기도문을 합송 하며 미사 전례에 참례하고 영성체 했다. 감사와 기쁨으로 가슴이 벅찼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성당 밖으로 나오니 광장을 가로질러 저 멀리 로사리오 대성당이 보인다. 높은 종탑이 성삼위 성당의 M자 형 입구와 일직선으로 보인다. 성삼위 성당에서 로사리오 대성당 앞의 왼쪽으로 1917년 5월 13일 처음 성모 마리아가 발현하셨던 장소에 지은 발현 성당까지 하얀 대리석이 깔린 길이 보인다.
무릎으로 기어가면서 묵주기도를 하거나 자신의 죄를 회개하면서 발현 성당까지 가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순간 울컥하는 마음이었지만 나에게는 무릎으로 저 긴 길을 기어갈 신심도 욕심도 부족했다. 아직 숙소도 정하지 못해 등에 메고 다니는 배낭을 추스르며 광장을 가로질러 수도회 알베르게를 찾아갔다.
12시가 넘어서 찾아간 알베르게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입구에서 담당자로 보이는 남자분에게 산티아고 순례를 마치고 여기까지 순례를 오게 된 경위를 우리 나름대로 설명하느라 애쓰며 순례자 여권도 보여줬다. 담당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여기까지 산티아고에서 걸어왔냐고 묻는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왔다고 말하니 그도 그제서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본인은 결정할 수가 없고 오후 4시 30분까지 오면 담당자가 나올 거라고 했다. 우리는 배낭을 맡길 수 있냐고 하니 흔쾌히 사무실에 두고 가라고 안내해 주었다.
우리는 꼭 부탁한다고 다시 한번 말하고는 알베르게를 나와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하기 위해 성지에서 마을로 연결되는 길을 따라 상점들과 도로를 조금 지나가니 올리브 나무가 길 양쪽으로 줄지어 있는 곳이 보였다.
이미 앞에는 여러 나라에서 온 순례자들이 무리를 지어 기도하며 걷고 있었다. 신부님이 맨 앞줄 가운데 서시어 신자들과 함께 기도하면서 십자가의 길 14처를 다니는 경건한 모습에 한껏 흥분돼서 걷던 우리들의 마음이 진정되었다.
십자가의 길 14처를 다 돌며 기도하고 보니 이곳에도 작은 성당이 있는 것 같아 올라갔다. 십자가와 작은 제대가 있고 신부님과 함께 순례 오신 팀들은 이곳에서 미사도 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었다. 미사는 없었지만 모두들 각자 기도하고 계셔서 우리는 조용히 내려와 다시 오던 길을 되돌아 걸어갔다.
내려가는 길에서도 계속 기도하면서 올라오시는 많은 사람들을 보았다. 유럽의 성당들에 신자들이 없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루르드 성지에서나 이곳 파티마에서 보면 중세 때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신자들이 많은 것 같다.
우리는 4시 30분까지 약속된 시간에 늦을 까 봐 속으로 조바심을 하며 성지 근처의 상점에서 파는 성물이나 물건들을 구경할 엄두도 못 내고 부지런히 성지로 돌아와 수도회 알베르게를 찾아갔다.
*십자가의 길: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이 사형선고를 받은 후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까지 이동하면서 일어나는 일과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묻힐 때까지의 일을 14처로 만들었다. 각 처를 돌며 신자들이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기도한다.
바쁘게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여성분에게 인사하면서 낮에 다녀간 얘기를 했다. 그분은 들어서 이미 알고 있었는지 우리의 순례자 여권에 파티마 알베르게의 스탬프를 찍어주며 남자들 숙소에 침대가 하나 남았고 여성 숙소에 침대가 하나 남았다고 들어가라고 하면서 저녁을 먹으려면 7시까지 오라고 했다.
조마조마했던 가슴이 편안해지면서 너무 감사하고 기뻤다. 성지로 돌아오는 길에 보니 텐트를 치고 야영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고 아예 텐트 없이 노숙을 하는 사람들까지 있어서 은근히 걱정되었었다. 다행히 침대도 단층 침대로만 구성되어 있고 공간도 널찍하고 좋았다.
7시에 식당에서 한 그릇씩 주는 노란색의 수프를 먹었다. 씹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고소하고 맛있었다. 한 그릇을 다 비우니 배가 불렀다. 봉사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성지 광장으로 나왔다. 오늘 저녁 9시 30분에 야간 촛불 성모 행렬과 묵주기도 그리고 미사가 있다.
우리도 컵 초를 하나씩 사서 준비하고 발현 성당에서 신자들이 모여 기도하는 곳으로 가서 함께 기도하다가 다시 광장으로 나왔다.
*묵주기도: (rosary) 천주교 신자들이 예수님의 전 생애를 4개의 신비로 나누어 묵상하며 드리는 기도
넓은 광장에는 순례를 오면서 각자 준비해 왔거나 주위 상점에서 산 작은 의자들에 앉아 조용히 로사리오 대성당을 바라보는 많은 순례자들로 점점 채워졌다. 각 나라의 깃발을 들고 모여 앉아 준비하는 모습들이 장관이다.
발현 성당에서 출발한 성모 행렬이 성삼위 대성당 앞의 하얀 대리석 길을 지나 로사리오 대성당 앞에 있는 야외 제대의 왼쪽으로 올라와 미사가 시작되기까지 대성당의 성가대가 성가로 아름답게 불러주는 묵주기도 신비의 선창에 맞추어 광장에 모여있는 각국의 신자들은 촛불을 들고 아베마리아를 합송 했다.
묵주기도가 끝나고 미사가 시작되고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신부님의 발음이 부드럽게 음악적으로 발음되는 소리가 귀에 속속 들어왔다. 우리는 합송 기도를 할 때는 역시 한국어로 따라 하면서 기쁘게 참례했고 낮 미사에 이어 두 번째 영성체를 할 수 있었다.
파티마 성모 발현 기념일에 우리가 참석할 수 있다는 것이 꿈같고 표현할 수 없이 감사하고 기뻤다. 미사가 모두 끝나고 성가대의 아름다운 합창을 들으며 여운이 남아 광장에 남아 있다가 숙소로 돌아가려는데 특별한 순서가 시작되었다. 어쩐지 다른 사람들도 12시가 넘어간 시간에 미사가 끝났는데도 일어나지 않고 있어 이상했었다.
파티마의 성모 발현 100년간의 이야기가 홀로그램으로 로사리오 대성당을 무대로 전개되었다. 설명하는 말을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홀로그램을 통해 보이는 그림을 다 이해할 수 있었다.
세명의 어린이가 처음 성모님의 발현을 보는 이야기부터 계속 발현하신 성모님의 메시지를 듣고 교회가 그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성지로 선포되기까지의 과정과, 이 자리에 로사리오 대성당이 지어지고 많은 순례자들이 일 년 내내 순례를 하며 파티마 성지가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들이 새벽 1시가 넘도록 아름답고 감동스럽게 보였다. 끝날 때까지 모두 감격스러운 얼굴로 보면서 중간에 일어나 나가는 사람들은 없었다.
새벽 1시 30분이 넘어 숙소로 들어왔지만 바로 잠들 수가 없었다. 방에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지 않았다. 모두들 감동에 젖어 아직도 광장을 떠나지 못하거나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지 숙소에는 가방만 덩그러니 있는 침대가 제법 있었다.
어제 만났던 강화성당 부부를 광장에서 만나지 못했는데 늦은 시간에 숙소로 돌아갔는지 염려가 되었다. 함께하는 젊은이들이 있으니 괜찮겠지 하면서 잠이 들었다.
아침에 준비하고 100주년 기념일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다시 성지 광장으로 나갔다. 미사가 시작되기 전 갑자기 구름인지 안개가 가득히 성지를 에워쌌다. 로사리오 대성당도 보이지 않고 반대편의 성삼위 대성당도 보이지 않는다.
광장에 가득 모여있는 각국의 순례자들의 모습도 뿌옇게 가리어있다가 성삼위 대성당에서 신부님들의 긴 행렬 뒤에 장미꽃 가운데 모셔진 성모 성상의 행렬이 시작되자 구름 같은 안개는 서서히 사라지면서 로사리오 대성당의 모습도 드러나고 야외 제대의 모습도 선명히 드러났다.
미사는 어젯밤처럼 성모 행렬의 시작과 함께 아름다운 성가대의 선창으로 묵주기도 신비가 노래되고 후렴부를 광장의 순례자들이 아베마리아를 합창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각 나라에서 온 순례자들은 자국의 깃발을 흔들었고 순례자들은 아베마리아를 부르면서 손수건을 흔들기도 했다.
로사리오 대성당 앞 야외 제대에는 한쪽으로 커다란 스크린을 설치해서 광장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젯밤보다 더 많은 순례자들로 광장이 꽉 찼다.
성서의 독서를 읽는 사람들도 각국의 사람들이 나와서 자국어로 읽었고, 신자들의 기도 역시 각국의 사람들이 나와서 자국어로 했다. 한국말로 하는 기도소리가 들리지 않아 조금 서운했다. 광장 안을 둘러봐도 태극기를 흔들며 있는 순례자들이 보이지 않았다.
미사가 거의 끝나갈 때쯤에 단체로 온 한국인 순례자들의 작은 무리를 보았는데 미사가 끝나자마자 금방 사라져 대화를 나눠보지 못했다. 아마도 여기까지의 거리가 멀다 보니 한국에서는 교구마다 성지에서 파티마 성지 100주년 기념미사를 봉헌하는 것 같았다. 대표처럼 우리가 참석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했다.
미사가 끝난 후 차례대로 광장을 빠져나갔다. 그 많던 사람들이 서서히 빠져나간 광장에는 아쉬움에 발길을 돌리지 못하는 사람들과 늦게 도착해 미사에 참례하지 못해 똑같이 아쉬워하는 일부 사람들이 섞여 있었다. 우리는 가슴 뭉클하면서도 바로 떠나려니 허전해지는 마음을 추스르며 알베르게에 들어가 배낭을 메고 천천히 광장을 걸어 나왔다. 거리에 나오니 식당마다 점심을 먹으려는 순례자들로 가득했다. 우리도 버스시간을 알아보고 시외버스 터미널 근처에 있는 가게에서 간단히 식사한 후 몇 가지 기념품을 사고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보아로 가는 버스를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