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순례자여 누가 당신을 이곳으로 인도했는가?

(나를 끌어당기는 힘)

by 구슬 옥

10월 4일 산티아고 꼼뽀스뗄라(Santiago de Compostela)

정오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아침 일찍 식사를 마치고 알베르게를 나와, 익숙하게 해물이며 야채를 파는 큰 시장을 지나, 기념품과 각종 가게들로 이어지는 골목을 구경하면서, 대성당에 1시간 전에 들어가 앞자리에 앉았다.

자리가 채워지고 좌석이 없어 서있는 사람들로 성당 안이 꽉 채워지는 걸 보면서, 다시 이곳에 올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분을 생각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성당에 머물렀다.

이번에도 단체로 순례를 오는 나라가 있는지 중앙 제대 옆으로 길게 놓인 자리에는 같은 표시가 되는 옷을 입은 외국인 단체가 앉아있었다. 미사가 시작되고 신부님이 여러 방향에서 카미노를 걸어온 순례자들의 숫자를 나라별로 불러주셨다.


꼬레아가 세 번째로 많은 숫자로 불러졌다. 우리는 아직 저 숫자에 들어가지 못했다. 순례 여권을 보여주고 순례 증명서를 받는 곳의 줄이 너무 길어, 어제 도착하고 갔다가 포기하고 오늘 미사 후에 다시 신청하러 갈려고 했으니, 오늘 아침까지 집계된 통계에는 들어있지 않았다.

미사 후에 마지막으로 향을 받는 의식이 시작되었다. 수녀님의 성가와 함께 제대 앞에서 중앙 천장에 매달린 은 향로를 6~7명의 수사님들이 나와서, 여러 번 길게 잡아당기고 앉으면, 은 향로는 제대 좌 우로 넓게 회전하며 향을 순례자들에게 뿌렸다. 향을 받으며 내가 떨치지 못하고 여기까지 지고 온, 어리석음과 욕심과 두려움 등이 모두 떨쳐나가기를 바랐다.

예전 중세시대 때는,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800km를 걸어 도착하는 순례자들의 땀냄새를 없애기 위한 것일 수도 있었겠지만, 현재는 너무도 깔끔하게 씻고 걸을 수 있어 냄새 제거보다는 먼 길을 걸어온 순례자들을 정화시키고 강복하는 하나의 성스러운 의식인 것 같다.

'보 따 푸 메 이 로' 의식(향을 받는 의식)

미사 후에 먼저 순례자 증명서를 발급받기 위해 순례자 사무실을 찾아가 보니 오늘도 어제처럼 줄이 엄청 길었다. 사무실에는 여러 사람이 일을 하고 있지만 사무실 내부며 외부로 이어진 긴 줄을 보니 몇 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될 거 같았다. 그래도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줄 뒤에 얼른 서서 앞으로 천천히 전진해 들어갔다.

아는 얼굴들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 두리번거려 보았지만 눈에 익은 사람들은 만나지 못했다. 우리처럼 어제 도착해서 말쑥해진 차림으로 줄을 서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도착하자마자 순례 증명서를 받기 위해 배낭을 멘 채, 피곤하지만 할 일을 끝내서 개운하고 만족한 얼굴들로 모두 서 있었다.

여럿이 단체로 걸은 사람들은 한 두 사람이 돌아가면서, 여러 명을 대신해서 서 있었기 때문에 줄은 잘 줄어들지 않았다. 점심을 먹지 않은 채 서 있다 보니 배도 고프고 다리도 아파서, 카미노를 걸을 때보다 더 힘든 시간을 두 시간 이상 보낸 뒤에야 우리 차례가 되었다.


신청서에 영문으로 국적과 이름과 여권 번호를 쓰고, 남 녀를 표기하고, 순례자 여권을 만든 장소와 날짜를 적고, 까미노를 걸은 목적이 순례인지 여행인지 또는 둘 다 인지 체크하고, 총 걸어온 km를 체크한 뒤 순례자 여권과 함께 제출하고 기다리면, 라틴어로 쓰인 순례자 증명서(꼼뽀스뗄라)를 준다.

그런데 우리는 순례 증명서를 2장씩 받았다. 하나는 100km 이상 걸으면 누구에게나 발급되는 순례자 증명서 1장과, 처음부터 끝까지 걸은 사람들에게 주는 799km 완주 순례자 증명서를 함께 받았다. 증명서 크기도 더 컸다. 순례자 여권에도 순례 사무실 스탬프가 찍혀서 나왔다.

미노의 길이 중간에 많이 우회길도 생기고 바뀌어서 우리는 800km 이상을 걸어왔지만 증서에는 처음에 만들었던 카미노의 전체 거리 799km 만을 공식적으로 증명해 주는 것 같았다.

증서를 넣어 보관할 수 있는 원통형 상자에 떨리는 손으로 말아서 넣고는, 뿌듯한 얼굴로 사무실을 나와, 한참이나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가로 나갔다.

다행히 여기는 시에스타 시간에 구애 없이 식당이 문을 열고 있어 파스타와 샐러드를 주문해서 먹었다. 식사비는 더 이상 순례자 할인이 없어 대도시 산티아고에 도착해 있다는 실감을 느끼게 한다.

프랑스 생장 피에 드 포르에서 산티아고 꼼뽀스뗄라 까지 완주했다는 순례 완주 증명서
순례자 여권에 찍힌 알베르게 스탬프

이곳저곳 살펴보고 구경하기를 좋아하는 남편 덕에, 산티아고 구도심과 신 시가지를 카미노를 걷듯 걸어서 답사하고, 내일은 산티아고 도시를 벗어나 버스 타고 피니테라 마을로 가기 위해 버스 시간표를 알아보고, 버스 타는 곳까지 직접 미리 가 확인했다.

내일부터는 배낭을 메고 버스로 피니테라, 무시아, 스페인의 교육의 도시이며 이냐시오 성인이 머물렀었던 살라망카와, 성녀 대 데레사의 고향이며 수녀원이 있는 아빌라, 성모 발현 100주년을 맞는 파티마 성지의 행사에 참여도 하고 순례도 할 것이다.

그리고는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으로 4박 5일의 여행을 하고 한국으로 들어갈 것이다. 아직도 보름 가까운 일정이 남아서 긴장을 늦출 수는 없지만 이곳까지 잘 왔으니 남은 일정도 무난하게 잘 소화하고 건강하게 집으로 가기를 소망해 본다.

솔직히 아무리 좋은 잠자리라도 이제는 싫증이 나고, 무료할 수도 있는 나의 일상이 그립다. 그러나 내 나이에 이렇게 멀리 다시 여행해 볼 기회가 몇 번이나 있을지 알 수 없으니, 나에게 주신 좋은 기회를 감사하게 생각하며 남편과 사이좋게 남은 여행을 기쁘게 할 것이다.


미노는 화살표로 우리를 친절하게 이끌어주었지만 앞으로의 여행은 우리가 찾아다니며 조금은 모험적으로 다녀야 되는 곳이라 설렘과 흥분이 나를 들뜨게 했다.

늦은 시간에 간단한 식재료를 사 갖고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카미노를 걸을 때 보다도 즐겁고 흥분되었지만 나에게는 조금 고된 하루였다. 간단히 저녁을 만들어 먹으면서 주방에서 아는 얼굴이 있을까 보았지만 우리와 함께 걷기 시작한 사람들은 이미 이곳을 도착했다가 떠났고, 다른 한국인 순례자들도 거의 없어 주방을 정리한 뒤 방으로 들어왔다.

쉬면서 조금 허전하면서도 헤아릴 수 없는 내 마음을 돌아보기 위해 '예우 제니오 가리 바이 신부'가 쓴 순례자를 위한 시를 천천히 다시 읽었다.


먼지, 진흙, 태양과 비/ 산티아고 가는 길/ 수천 명의 순례자들/ 그리고 천 년이 넘는 시간/ 순례자여, 누가 당신을 이곳으로 인도했는가?/누가 당신을 이곳에 오도록 만들었는가?/그것은 별을 비추는 들판도 아니고/거대한 대성당도 아니다/

용감한 나바라도 아니며/리오하의 와인도 아니다/갈리시아의 해산물도 아니고/까스띠야의 언덕도 아니다/순례자여, 누가 당신을 이곳으로 인도했는가?/ 누가 당신을 이곳에 오도록 만들었는가?/그것은 까미노의 사람들이 아니고/시골의 관습도 아니다/

역사와 문화도 아니며/깔사다의 수탉도 아니고/가우디의 궁전도 아니며/뽄페라다의 성도 아니다/길을 지나며 그 모든 것을 보았고/그것들을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지만/나를 부르는 그 이상의 목소리가 있으니/마음속 깊이 그것을 느낀다/

나를 밀어내는 힘/나를 끌어당기는 힘/내가 그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단지 하늘에 계신 그분께서만이 아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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