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3 행동은 습관을 만든다
목차
프롤로그 숫자 5의 위험한 마술
장호원으로 보내는 메일 1 / ‘5고초려’와 ‘5개월’의 힘
Part 1 생각이 행동을 바꾼다
스페인 무적함대의 보복침공 / 아는 것과 믿는 것은 다르다 / 작은 촛불을 켜라 / 장호원으로 보내는 메일 2
Part 2 나이테가 늘수록 나무는 튼튼해진다
로버츠 등반대, 히말라야를 정복하다 / 오고초려, 다시 시작되다 / 하치의 충심도 생존의 문제였다 / 장호원으로 보내는 메일 3
Part 3 행동은 습관을 만든다
삼겹살집의 도원결의 / 실행은 복리로 수익을 돌려준다 / 장호원으로 보내는 메일 4
Part 4 미래에 대한 매력적인 그림을 그려라
직선도로와 우회도로 / 반응성 애착장애가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 / 장호원으로 보내는 메일 5
Part 5 습관이 되어야 변화는 완성된다
살얼음판 위의 스케이팅 / 따또빠니를 위한 성공의 아침 / 닭들의 회의를 멈춰라 / 장호원으로 보내는 메일 6
Part 6 습관은 우리에게 자신감을 심어준다
물타기 작전 / 백야를 부르는 승리, 혹은 향수 / 장호원으로 보내는 메일 7
에필로그 습관은 운명을 만든다
장호원으로 보내는 메일 8
Part 3 행동은 습관을 만든다
삼겹살집의 도원결의
“석 과장님이세요? 이로운 실장입니다.”
“아, 안녕하십니까?”
“사람을 꼬실 때 이런 방법을 쓰다니 당신 정말 지능적입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이 사람이 능청도 떨 줄 아네. 어쨌든 좋아요. 일본 개 하치가 충견이든 아니든 나와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말 그대로 우리 앞에는 생존의 문제가 더 중요하니 한 번 만납시다. 남자 대 남자로.”
도대체 어찌된 일일까. 석 과장은 이로운 실장과 약속을 정하고 전화를 끊으면서 어리둥절하여 현재의 상황을 도무지 실감할 수가 없다. 지능적이라니 그건 또 무슨 뜻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어제 택시에서 읽었던 기사를 이 실장에게 링크라도 걸었단 말인가. 일본 개 하치에 대해서 어떻게 알았을까? 어이가 없는 일이다. 석 과장은 정신을 차리고 조 소장에게 전화를 건다.
“소장님, 이 실장이 만나자는 연락이 왔습니다.”
“해냈군. 자네라면 그럴 줄 알았어.”
“아직 속단하기는 이릅니다. 그냥 만나자는 말만 했으니까요.”
“가벼운 친구는 아니니까 만나자면 이미 승낙한 거나 진배없어. 언제 보기로 했나?”
“지금이라도 올 수 있다면 오라는데요.”
“이 사람아, 그러면 당장 가야지 뭐하는 거야. 내가 차를 몰고 갈 테니 5분 후에 회사 정문에서 보자고.”
“같이 가시게요?”
“이런 중차대한 일에 내가 빠지면 되나. 5분 후에 보자고, 5분 후에.”
석 과장은 전화를 끊고 김 부장에게로 달려갔다.
“부장님, 이 실장이 만나자고 합니다.”
“뭐? 이 실장이 누군데?”
“말씀드렸잖습니까, 이로운 실장이라고. 아직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인증마크를 딸 수 있는 핵심 키워드입니다.”
“좋아, 좋아. 전화를 해놓을 테니까 총무과 들러서 법인 카드 받아 가. 돈이 얼마가 들던 룸살롱 데려가 술을 냅다 처먹여서 옭아매라고. 난 안 가도 되지?”
“조용원 소장님께서 함께 가시겠답니다.”
“내가 요새 보약을 먹거든. 술은 쥐약이야. 갔다 와.”
“예, 알겠습니다.”
석 과장은 서둘러 사무실을 나선다. 총무과에 들러 법인 카드를 들고 나오느라 늦었더니 회사 정문에는 고급 승용차가 정차해 있고, 조 소장이 뒷좌석에 앉아 있다. 석 과장이 차에 오르기가 무섭게 차가 출발한다.
“부장님께 보고하고 오느라 좀 늦었습니다.”
“늦기는 뭘. 그나저나 어떻게 했기에 저 친구가 한 달 만에 손을 들었지?”
“글쎄요. 전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저는 단지 실장님이 계시거나 말거나 매주 정해진 시간에 방문만 했습니다. 특별한 건 없는데요.”
“그래? 이상하네. 그래도 뭔가 특별한 계기가 있지 않았을까? 만나보면 알겠지.”
조 소장의 옆모습을 보니 예전보다 나이가 훨씬 들어 보인다. 석 과장은 얼굴에 늘 여유가 있어 보이고 젊잖게 늙은 중년 남자를 만나는 것은 그리 나쁜 일은 아니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히말라야 론칭 건으로 하루하루가 아까워 미칠 지경인 석 과장으로서는 마음이 조급할 수밖에 없다. 아침은 굶고, 점심은 폭식을 하게 되며, 저녁에는 피로를 풀기 위해 삼겹살에 소주를 찾게 된다. 그러니 자연히 운동을 할 수 없다. 언제나 암이나 각종 성인병에 걸린 것은 아닐까 걱정하게 된다.
특히, 암이 얼마나 무서운가. 간암과 유방암, 그리고 대장암을 굳이 내세우지 않더라도 암이라는 이름만 달아도 공포다. 건강이 중요하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안다. 사람들은 히말라야가 암을 예방한다는 얘기를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암을 미리 예방하고 건강을 위해 히말라야를 먹자는 논리가 형성돼야 한다. 결국, 히말라야를 먹으면 암은 걱정 없다는 공감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그럴만한 계기를 마련해 주면 광고의 역할은 그것으로 족할 일이다.
때문에 히말라야의 광고 타깃도 30~40대 직장인과 주부로 잡았다. 사회적 활동이 활발해짐에 따라 서서히 암에 대해 걱정이 시작되는 나이가 30대고, 늘어나는 체중과 더불어 바빠서 건강검진을 미루는 세대가 40대다. 그렇다면 담배와 술과 운동 부족에 시달리는 남성 직장인과 역시 운동 부족과 음식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여성 주부가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방법론을 찾아야 한다. 담배를 끊고 싶지만, 술을 줄이고 싶지만, 틈틈이 운동을 하고 싶지만 직장인들은 생활 습관 때문에 어쩌지 못한다. 집안일 때문에 늘 분주한 주부들도 생활 습관 때문에 늘 고민하기 마련이다. 생각은 그렇지 않은데 잘못된 습관이 일을 망치게 한다. 습관은 이성보다 정확하다는 말은 그래서 무섭다.
결국, 히말라야를 먹는 사람의 심리를 파악하는 것이 성공의 관건이다. 사실, 건강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 일을 하다가 스트레스를 받아 일찍 죽을 사람은 히말라야를 먹을 리 없었다. 담배와 술을 즐기기는 하는데 끊기는 어렵고 몸 생각이 나는 사람이 히말라야를 먹을 수는 있었다. 아울러 술과 담배를 끊고 운동을 시작한 사람은 스스로가 건강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히말라야를 먹을 리 없었다. 결국, 건강하고 싶은데 체중은 늘어나고 있으며, 술과 담배를 못 끊고 운동을 못 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히말라야였다.
“석 과장님의 따님 이름이 경흰가요?”
석 과장은 이 실장이 삼겹살집에 마주앉자마자 하는 말에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한다. 이 실장은 뒷조사를 한 모양이다.
“아니, 어떻게 제 딸의 이름을…… 아시죠?”
“나도 석 과장의 딸의 이름은 모르는데 어떻게 자네가 그걸 아나? 이 친구 아무래도 조폭하고 깊은 관련이 있는 게로군.”
조 소장이 옆에서 말을 거들자 이 실장은 어이없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참나. 속았네, 속았어. 석 과장님 반응을 보니까 나한테 메일을 보낸 게 지능적으로 보낸 게 아닌 모양이네.”
메일이라니? 메일을 누가 누구에게 보냈단 말인가. 그렇다면 새벽에 보낸 메일이 대학 선배에게 간 것이 아니라 이로운 실장에게 날아갔단 말인가. 그제야 석 과장은 무릎을 친다. 갑자기 새벽에 보낸 메일의 내용을 더듬었으나 잘 떠오르지 않는다.
“석 과장님은 딸을 입양한 모양이더군요. 참 쉬운 일 아닐 텐데 존경스럽습니다. 어쩐지 메일 내용이 너무 진지하다 싶었어요. 하하하.”
“…….”
석 과장은 할 말을 잃고 고개를 숙인다.
“대충 이런 얘기네. 이 실장은 석 과장에게 메일을 받았다. 이 실장은 그 메일을 보고 마음이 움직여 이 자리에 나왔는데 속았다. 그렇지? 석 과장, 메일에 뭐라고 썼는데?”
“아, 죄송합니다. 시골에 살면서 소설을 쓰시는 대학 선배님과 자주 메일을 주고받는데 그 메일을 이 실장님께 잘못 보낸 것 같습니다. 절대 고의가 아니었습니다. 죄,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죄송할 것까지는 없어요. 오전 내내 생각해 보았는데 차라리 감동적이었어요. 일본의 충견으로 불리는 하치가 죽은 주인을 기차역에서 10년 동안이나 기다렸다는데 사실은 주위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얻어먹기 위한 것이었고, 그건 생존에 관한 것이었다는 얘기를 들으니 여러 가지 생각이 나더군요. 따님이 파양을 당한 경험이 있고, 석 과장님에게만 죽자 살자 매달리는 것은 다시는 파양을 당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보인다는 말…… 그 말이 마음을 아프게 했어요.”
“그랬었군. 그 이야기는 나도 조금은 들었네. 우리 석 과장이 그 문제로 좀 힘들어했어.”
아닌 게 아니라 석 과장은 아이 때문에 죽을 맛이다. 아내의 말이 떠올랐다.
“나, 저 아이 못 키우겠어. 도저히 안 되겠어.”
석 과장은 아내의 말에 절망했다.
“자, 이렇게 하면 어떻습니까? 사적인 문제는 공적으로 풀고, 공적인 문제는 사적으로 풀어야 무난하다는 말이 있지요. 오늘 모인 것은 공적인 문제로 모인 것이 아니니까 사적인 문제는 그냥 넘어가고, 공적인 문제는 술이나 마시면서 사적으로 풀죠. 어떠세요?”
“좋지.”
“감사합니다.”
조 소장과 석 과장이 동시에 입을 열자 이 실장이 만족스러운 듯 큰 소리로 웃는다.
“아줌마, 여기 삼겹살하고 소주 왜 안 줘?”
이 실장은 큰 소리로 사람을 부른다. 아직 초저녁이라 그런지 삼겹살집에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 식당의 종업원들도 보이지 않는다. 이 실장의 소리를 듣고서야 아주머니 한 명이 쟁반에 이것저것 반찬을 담아 다가오고 있다.
“생각해 봤는데 석 과장님의 말대로 히말라야의 성공 여부는 제가 봐도 생존의 문제입니다. 나도 그렇고 두 분도 마찬가지겠지요.”
“이 친구 그 기획안을 통과시키려고 같은 기획안을 다섯 번이나 제출해서 우리 사장에게 제가를 받아냈다네.”
“정말이요? 같은 기획안을 다섯 번이나 제출했다고요?”
“기획안을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다섯 번이나 들이댔다니까.”
석 과장이 굳이 설명을 하려 하자 조 소장은 이 실장이 보이지 않게 식탁 밑에서 손으로 석 과장의 무릎을 꼬집는다.
“라만차의 돈키호테 사장이 기업의 모태가 식음료였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 집착이 심해. 영국에서도 먹혀서 지금 유럽에서는 선풍적인 인기야. 일반적인 물값보다 다섯 배나 비싼 데도 우리나라에서 껌 사먹듯이 유럽에서는 히말라야를 사먹고 있거든. 그러니 사장의 고민이 깊었겠지. 우리나라에서만 통하지 않는 이유를 알 수가 없거든.”
“자, 이 점은 분명히 하죠. 그룹 오너의 한을 풀고자 이 일을 하는 게 아니잖습니까? 중요한 문제로 즉각적인 결정에 도움은 되겠지만 오너의 심중 때문에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허다해요.”
“아, 그 점은 동감하네.”
“히말라야는 기능성 식품인 셈인데 마케팅 측면에서 어떻게 접근할 생각입니까?”
“솔직히 믿을만한 단체의 인증마크가 가장 절실합니다.”
“아,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신경 쓰지 마시고. 내가 궁금한 것은 전략적인 거 말고, 구체적으로 전술적인 것 말입니다.”
“그게…….”
“내 말뜻을 잘 못 알아들으시는군요. 그럼 질문을 좀 하죠. 히말라야와 경쟁하는 업체는 어디고 제품은 무엇입니까?”
“사실, 현재로서는 경쟁 업체나 유사한 제품은 국내에 없습니다.”
“녹차나 보리 같은 음료는 있잖아요.”
“엄밀히 따지면 기능성 음료는 아니죠.”
“햐, 땅 짚고 헤엄치기고 무주공산이네. 히말라야의 주원료가 뭡니까?”
“히말라야시다라고 암과 비만의 예방효과가 있습니다.”
“우유업체를 예로 듭시다. 제일 매출이 큰 업체는 굳이 다른 업체처럼 제품에 대한 특징을 강조할 필요가 없죠. 광고에 그냥 우유를 많이 먹자고 강조만 하면 외연이 넓어지니까 상대적으로 매출이 늘어나는 셈이 되니까요. 자, 암과 비만의 예방효과에 대한 음료가 없다고 했는데 이번 제품이 성공을 하면 반드시 다른 업체에서도 사생결단으로 뛰어들 겁니다. 그렇죠?”
“그렇지.”
“그렇습니다.”
조 소장과 석 과장은 동시에 대답했지만 그 누구도 웃지 않았다.
“지금은 기능성이 없는 식음료가 대세인데 히말라야를 재정비해서 암과 비만 예방효과라는 기능성을 강조하면 경우에 따라 외연이 폭발적으로 넓어지고 식음료 시장의 판도가 달라질 수도 있겠네요. 유럽도 그랬다고 얘기하셨으니까 제 예상도 그리 틀리진 않을 것 같군요.”
석 과장은 오줌보에 힘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이 실장의 판단과 분석에는 희망과 가능성이라는 마력이 묻어 있다. 조 소장이 성동격서를 활용할 인물로 이 실장을 꼽은 것은 탁월한 선택이자 뛰어난 안목임이 증명된 셈이다.
“히말라야의 원산지는 히말라야인가요?”
“예. 네팔이고 히말라야산맥에 주로 분포하고 있습니다.”
“좋네. 그러면 네팔이라는 오지와 신비화 전략도 먹힐 것이고. 가장 필요한 것은 주원료라는 히말라야시다를 음복하면서 암과 비만을 예방하는 부족이나 마을을 찾아내는 것이 급선무겠네요. 그런 부족이나 부락이 없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만들라고 하세요.”
“놀랍군.”
“예?”
“나하고 석 과장의 생각과 다르지 않아 다행이야. 없으면 당장 만들라는 생각은 좀 다르지만.”
“선배님, 프로끼리 왜 이러십니까?”
석 과장은 이 실장과 조 소장의 대화를 통해 실행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히말라야라는 목표를 가지고 무조건 덤비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건질 수 없었다. 이것저것 따지기 바빴다면, 일단 실행하지 않았다면 목표는 지금도 선명하지 않았을 게 분명하다. 역시, 실행은 상대방과의 대화다. 실전을 통해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석 과장 혼자가 아닌 상대방이 있을 때의 경험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그런 경험만이 실행을 위한 훈련을 의미 있게 만들어 준다는 사실이다. 테니스를 칠 때 상대방은 단순히 테니스 코트 저편에 있는 사람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테니스 코트의 길이, 바닥, 네트, 그리고 복식이라면 내 쪽 코트에 있는 파트너도 모두 상대방이다. 게임을 통해 우리는 그 모든 상대방과 대화를 시도한다. 물론 실행 후, 다시 생각하고 훈련하는 일이 반복되어야만 한다. 테니스 시합을 마친 후 연습을 한다던가, 골프 라운딩을 끝내고 연습장으로 달려갈 수만 있다면 승부는 거의 끝났다고 봐도 된다.
“사실, 네팔에서 히말라야시다를 복용하는 현지의 집성촌을 이미 찾고 있습니다.”
“그래요? 이미 일은 벌어졌구먼. 그렇다면 내 문제로 돌아가죠. 결국 한국암예방재단의 인증을 받아내느냐, 못하느냐의 문제인데 그래서 날 보자고 한 것일 테고. 내가 그곳의 사외 이사라는 건 다 아실 거고. 그렇죠?”
“솔직히 자네 말이 맞네.”
“…….”
석 과장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으나 이미 이 실장의 말을 통해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하고 있는 셈이다. 이 실장을 만나면 무엇을 얘기하고, 어떻게 얘기할까 수없이 고민했는데 그런 생각은 기우에 불과했다.
“그리고 확실히 해둘 게 있는데 내가 생존의 문제로 이번 일에 협조는 하겠습니다만 내게 돌아오는 게 뭐죠?”
“일단 우리 라만차식품의 사외 이사로서 합당한 대우가 있을 것이고 더 필요한 게 있다면 말해보게.”
“히말라야시다에 대한 다른 형태의 공급권 하나만이라도 제게 보장해 주세요. 이를테면 히말라야시다를 의료용 껌으로 만들 때 저한테만 독점권을 달라는 것이죠.”
“알겠네. 사장에게 보고하지.”
“그런데 솔직히 히말라야시다가 암과 비만의 예방효과가 있거나 말거나 영국 단체의 실험 결과로는 부족해요. 한국 의사들이 그 누구도 어찌할 수 없는 증거가 필요해요. 이를테면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과학 잡지에 게재된 논문이라든지 그에 합당한 연구결과가 필요하다는 것이죠. 선배님, 왜 웃으세요?”
“놀라워. 우리는 왜 일찍 만나지 못했을까?”
“무슨 말씀이세요?”
“그것도 나와 석 과장의 생각과 동일하네. 그 부분 담당은 날세. 준비하고 있어.”
“저기요…… 소장님, 실장님!”
석 과장이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말문을 열자 조 소장과 이 실장이 뜨악한 표정으로 눈길을 보내온다.
“저기요…… 삼겹살이 모두 타버렸는데요. 도저히 먹을 수 없겠어요.”
대화를 진지하게 하다가 보니 세 사람은 고기 한 점도 술 한 잔도 먹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삼겹살은 잘게 잘리지도 않은 채 시커멓게 타고 있고, 술병은 마개도 따지 않은 상태다. 갑자기 이 실장이 소리를 지른다.
“아줌마! 고기가 익었으면 말을 해줘야 먹지. 이 고기는 구워먹는 게 아니고 태워서 먹는 거요?”
종업원이 다가와 쩔쩔매는 사이 조 소장과 석 과장은 웃음을 흘린다.
실행은 복리로 수익을 돌려준다
핸드폰에서 모닝콜이 울린다. 석 과장은 침대 머리맡에 놓여 있는 핸드폰을 집어 들고 얼른 버튼을 눌러 소리를 잠재운다. 아내와 딸아이는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다. 입양한 지 두 달이 지났건만 딸아이는 여전히 아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석 과장도 예전과는 다르게 무턱대고 아이에게 살갑게 대하지는 않는다. 단 음식을 좋아하는 아이가 아이스크림 통을 들고 달려오면 엄마의 허락을 받고 오라고 돌려보내는 식이다. 아내가 허락하면 먹게 하고 그렇지 않으면 아이에게서 아이스크림 통을 빼앗아 냉동고에 집어넣는다. 그럴 때면 아이는 대성통곡을 하게 마련이지만 석 과장은 애써 모른 척한다. 정 시끄러워지면 참다못한 아내가 아이스크림 통을 들고 와 아이에게 건넨다. 석 과장의 돌변한 태도 때문에 아이가 혼란을 겪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지만 먼 길을 함께 가려면 어쩔 수가 없다.
석 과장은 아이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갖다 댄다.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냄새를 맡아본다. 잠들기 전에 목욕을 한 탓인지 유아용 샴푸 냄새만 풍길 뿐 아이에게서는 특별히 다른 냄새가 나지는 않는다. 아이 특유의 살냄새나 젖비린내가 날 법도 한데 그렇지 않다. 어스름한 어둠 속에서 석 과장은 딸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아이는 왜 아내를 거부하는 것일까. 파양의 후유증일까. 예전에 모진 엄마를 만난 것일까. 아니면 다정한 엄마를 만났는데 헤어졌기 때문에 복수를 하려는 것일까. 석 과장은 머릿속이 혼란스러워 저도 모르게 한숨을 길게 뽑는다.
“일어났어요?”
“응. 어제는 별일 없었어?”
“도저히 아이를 밖에 데리고 나갈 수가 없어. 사내아이처럼 휘젓고 다니는데 말려도 소용이 없다니까. 때려줄 수도 없고 이러다가 정말 내가 먼저 미치고 말 거야. 그러나저러나 어제는 무슨 술을 그렇게 마셨어?”
“술주정을 하던가?”
“들어올 때는 멀쩡하더니 잠든 경희를 쓰다듬으면서 울던데.”
“울어? 내가?”
“어깨를 들썩거리는 것을 내가 봤다니까. 회사에서 안 좋은 일 있었어?”
“일은 무슨. 그리고 어제는 내가 운 거냐, 술이 운 거지.”
“북어국 끓여 줄 테니까 오늘은 아침 먹고 가.”
“아냐, 늦었어. 회사에서 먹으면 돼.”
석 과장은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켠 후 화장실로 향한다. 오늘은 기획실과 마케팅부가 공동으로 히말라야 론칭 문제로 종합적으로 회의를 하는 날이다. 화장실에 들어선 그는 세면대로 다가가 물을 튼다. 흐르는 물에 손을 담그고 거울을 바라본다. 푸석푸석한 얼굴을 한 사내가 거울 속에 서 있다. 지치고 힘든 표정이 역력하다. 일단 이 실장은 우리 쪽으로 끌어들인 셈이다. 선배에게 보낸 메일이 어쩌자고 이 실장에게 날아간 것일까. 과정이야 어쨌든 긍정적인 결과가 나와서 다행이다. 삼겹살집에서 술자리가 끝나고 술을 더 하자고 권했으나 이 실장은 다음 날 사외 이사로서 회의에 참석하기로 한 이상 무리하고 싶지 않다며 사양했다. 이 실장을 배웅하고서 조 소장이 물었다.
“석 과장, 이 실장에게 보낸 메일은 실수였어, 고의였어?”
석 과장이 놀란 표정을 짓자 조 소장이 다시 말을 이었다.
“이 친구 표정을 보니 고의로 보낸 게 아니었군. 알았네, 알았어. 하하하.”
이제 줄기차게 밀어붙이는 일만 남았다. 지치고 힘들지만 기죽을 필요가 없다. 우울한 마음을 밀어내는 것은 절대긍정뿐이다. 마음을 바꾸자 거울 속에서는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의 사내가 미소를 짓고 있다.
*
“회의에 앞서 오늘부터 사외 이사로 참석하시게 된 분을 소개하겠습니다. 한국암예방재단의 사외 이사이자 한국식품문화경영컨설팅의 이로운 실장입니다. 박수로 맞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회를 맡은 마케팅 김 부장이 멘트를 날리자 회의실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모두 박수를 친다. 예정에 없이 회의에 참석한 사장도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박수를 치고 있다.
“먼저 현재까지의 진행 현황과 향후 일정에 대해서 마케팅부 석현우 과장의 설명을 들으시겠습니다. 설명을 들으시고 자유롭게 질문이나 지적사항이 있으시면 자유롭게 개진해 주시기 바랍니다.”
석 과장은 연단에 선 후 사람들을 향해 인사를 했다. 그는 리모컨으로 스크린을 내린다. 누군가 회의실의 불을 끈다.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이 날아와 스크린을 비춘다.
“지금 보시는 것은 이번 히말라야 재론칭 진행건을 도표로 만든 기획안입니다. 크게 3가지로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첫째는 국내 공식 의학기관으로부터 인증마크를 확보하는 과학적 인증방안이고, 둘째는 네팔을 연계한 신비화 전략방안, 셋째는 텔레비전 광고를 통한 론칭방안 등입니다. 먼저 과학적 인증방안은 중앙식품연구소에 의뢰하여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학술지에 게재된 암예방 사례와 히말라야시다 관련 논문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국내 의학기관에 인증을 부탁할 예정인데 이에 대한 진행은 사회 이사로 이 자리에 참석하고 계시는 이 실장님께서 맡아줄 것입니다. 둘째, 네팔을 연계한 신비화 전략방안은 히말라야시다를 음용하는 네팔 현지의 집성촌을 네팔 코리아의 박 대표가 찾고 있습니다. 셋째, 텔레비전 론칭방안은 이미 저희 계열사인 라만차애드컴에 의뢰하여 진행 중인데 여러 가지 시놉시스를 받아보았습니다만 마땅한 것이 없어 다른 광고회사에 의뢰할 것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질문 있습니다.”
마케팅부에서 기획실로 옮겨간 이석우 과장이다. 회의실에 불이 들어오면서 주위가 환해진다.
“현재 라만차애드컴은 국내 광고 매출에서 2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우리 계열사가 아닌 다른 광고회사에 의뢰한다는 것은 비용 낭비입니다.”
“이번 히말라야 재론칭 건은 저나 우리 라만차식품의 사활이 걸린 문제입니다. 히말라야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저는 어떤 짓도 다 하겠습니다. 히말라야의 텔레비전 론칭은 성공을 위한 마지막 단계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광고안이 나오지 않는다면 경쟁 업체의 광고회사든, 국내 매출 1위의 회사든, 심지어 외국계 회사든 가리지 않고 의뢰하겠습니다.”
“알겠어요. 너무 앞서간 것 같군요.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격이에요.”
보다 못한 사장이 한마디 거든다.
“순서를 보면 과학적 인증이 제일 먼저인데 영국에서 실험한 결과가 있습니다. 그걸로는 어렵겠습니까, 이로운 실장님?”
“어렵습니다. 국내 의사들이 영국에만 국한된 자료가 아니라 도저히 반발할 수 없는 입증자료가 있어야 합니다.”
“조 소장! 그러면 외국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 검증에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그런 게 있다는 보장도 없잖아요.”
“말씀을 못 드렸는데 찾은 거나 진배없습니다.”
“저, 정말이오?”
“예. 미국 엠아이티에서 동문수학한 교수에게 의뢰한 결과, 히말라야시다에 관한 심상실험 결과와 관련 자료를 분명히 보았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게재 논문을 빠르면 오늘이고, 늦어도 내일까지는 송부해주겠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누군가 박수를 치기 시작하자 회의실에 앉은 사람들이 다 함께 박수를 친다. 연단에 서 있던 석 과장은 가늘게 다리가 떨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한다.
“한 가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이로운 실장이다. 사장이 눈을 번득인다.
“신비화 전략은 제 관할은 아니지만 반드시 필요한 부분입니다. 녹차하면 보성녹차를 떠올리듯이 히말라야를 마실 때 떠올릴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고 그게 아니라면 특별한 현상이 드러나야 합니다.”
“특별한 현상이라면?”
사장이 이 실장의 말을 받는다.
“네팔은 세계 10대 최고봉 가운데 8개를 보유한 국가로 지형이 험악하기로 유명한 산악 국가입니다. 네팔은 우리나라처럼 쌀이 주식인데 음식문화가 발달한 편은 아닙니다. 걔네들이 주로 먹는 음식을 살펴보죠. 모모, 달밧타카리, 속티와라를 대표적으로 들 수 있겠죠. 모모는 우리나라로 보면 만두고, 달밧타카리는 밥하고 국, 반찬 등이 나오는 네팔인들의 일상식입니다. 그런데 속티와라는 주로 산악지역에 거주하는 네팔사람들이 즐겨먹는 것인데 밥에 여러 가지 야채를 섞어 넣어 먹는 것입니다. 정리를 해보면 네팔은 지형이나 음식의 형태가 우리나라와 기가 막히게 유사하다는 것이죠.”
“그래서요?”
“히말라야를 론칭할 때 유럽과는 다른 차원에서 신비화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는 것이죠.”
“좀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지금 히말라야의 집성촌을 찾고 있다고 했는데 찾지 마시고 지금 당장 만드세요.”
“집성촌을 만들라고요?”
“그렇습니다. 네팔 포카라에 가면 히말라야로 가는 길목에 따또빠니라는 곳이 있습니다. 따또빠니라는 지명의 뜻은 따뜻한 물이라는 뜻이거든요. 의미가 얼마나 좋습니까? 그곳에 집성촌이든 히말라야시다를 처박아두는 창고든 아니면 히말라야시다 원료 박물관이든 전시관이든 서둘러 만들어서 관광지로 활용하자는 것이죠. 그곳에 의사들이나 정부 당국자를 끌고 가서 특별한 현상을 보여주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대강은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특별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겠습니까?”
“눈에 보이는 게 없다면 그땐 통계자료를 활용하면 되죠. 네팔과 우리나라의 암 발생률, 비만지수, 평균 수명 등등 보여줄 것은 많습니다. 비슷한 음식문화와 지형을 비교해 주고 단지 다른 것은 이 나라 사람들은 히말라야를 즐겨 마신다고 설명하자는 것이죠.”
이 실장이 말을 마치자 사장의 입에는 가벼운 미소가 번진다. 이 실장의 제안에 모두 놀라는 눈치다.
“중요한 얘기는 다 나온 것 같군요. 오늘 참석해주시고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신 이로운 실장님께 감사드립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이것으로 회의를 마치겠습니다.”
김 부장이 회의의 종료를 선언하자 사장을 비롯하여 참석자들 모두가 밝은 표정들이다. 이윽고 사장이 일어나 이로운 실장 앞으로 다가가 악수를 청한다. 두 사람은 득의의 미소를 나누며 서로의 손을 잡고 흔든다. 그러다 사장이 이 실장을 이끌고 회의실 밖으로 나선다. 간부급들은 모두 그들을 따라나선다.
누군가가 어깨를 툭 친다. 석 과장은 나쁜 짓을 하다가 들킨 어린아이처럼 깜짝 놀란다. 돌아보니 기획실 박찬호 차장이 만면에 미소를 짓고 있다.
“석 과장, 커피 한 잔 할 수 있어?”
“아, 그럼요.”
박 차장과 석 과장은 전체 회의실을 빠져나와 소회의실로 향한다. 각자 커피가 들어 있는 종이컵을 앞에 두고 두 사람은 마주 앉는다.
“제법인데. 히말라야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저는 어떤 짓도 다 하겠습니다? 왜, 충무공 이순신이 계시는 광화문 네거리에서 스트립쇼를 하지 그러냐? 저에게는 아직도 열두 척의 거북선이 있습니다, 믿어주세요. 그렇고 소리를 치는 거야.”
“하지 뭐.”
“잘 났어, 정말.”
“괜찮았냐?”
“그래. 약간 전략적으로 아부도 섞여 있더라만 네가 내 동기라는 게 자랑스럽다. 정말이야.”
예상치 못한 박 차장의 칭찬에 힘이 솟는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근데 저 새끼 때문에 돌겠다.”
“누구?”
“누군 누구야, 니네 부서에서 온 저 이 과장 말이야.”
“왜?”
“위아래 없이 대드는데 저 새끼 사장 빽이 아닌가 모르겠어. 그쪽에 있을 때도 그랬지?”
“그렇게 심해?”
“회식 때 사람들이 모였어요. 그래서 내가 물었어. 술 마실 줄 아느냐. 마신대. 그럼 마셔라 그랬지. 못 먹겠대. 왜 그러느냐, 아프냐고 물었어. 그런데 그런 건 아니래. 그럼 마셔라 그랬지. 그런데도 못 먹겠대. 술은 마실 줄 아는데 회식이라 남들 다 마시고 있는데 한 시간째 너 혼자 술을 마시지 않는 이유가 도대체 뭐냐고 물었어.”
“그랬더니 뭐래?”
“낼 회의가 있어서 술 먹기 싫대. 그 회의에 여기 회식에 모인 사람 다 참석하니까 마셔라, 그랬어. 그랬더니 개인의 자유를 강요하지 말래. 야, 그게 할 말이냐? 직속상사인 차장이 명령하는데 그게 할 말이냐고? 뭐 저런 개새끼가 다 있냐. 그러더니 회식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혼자 가버리더라고.”
“영국에서는 꽤 활약한 모양이던데.”
“알게 뭐야. 영국에서 나고 자란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니고 외국물 처먹으면 어른 상투 잡고 놀아도 된다고 하던?”
“아이고, 나는 모르겠다. 알아서 하셔.”
“인사과에 우리 동기는 없냐? 저 새끼 어느 줄인가 한 번 알아봐야겠어.”
“그러시던가.”
고단한 하루였다. 오전과 오후에 걸쳐 자료를 준비하다 보니 맥이 빠진다.
“끝나고 와인 한 잔 어때?”
“오늘은 안 되겠다. 그동안 바빠서 딸 얼굴도 제대로 못 봤거든.”
“너한테 딸이 있었냐?”
석 과장은 종이컵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일은 그런대로 흘러가고 있지만 아무래도 가족의 일이 걱정이다. 석 과장은 퇴근을 하기 위해 사무실로 향한다. 그의 뒤를 박 차장도 따라붙는다.
“소장님, 여깁니다!”
석 과장은 조 소장이 와인 바의 현관에 들어서자 일어나서 손을 흔든다. 조 소장은 딱딱한 대리석 바닥 위로 뚜벅뚜벅 소리가 나게 걸어오면서 손을 들어 보인다.
“자네가 이런 곳을 알다니 좀 놀랐는걸.”
자리에 앉자마자 조 소장은 주위를 둘러보며 말한다.
“저도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와인은 아크엔젤이라는 게 있다는데 드셔보시겠습니까?”
“그러지. 안주는 배부르지 않게 치즈 같은 게 좋겠고.”
“여기 아크엔젤하고 치즈 안주 좀 주세요.”
“카베르네 소비뇽과 시라즈 두 개가 있는데 뭐로 드릴까요?”
“편한 걸로.”
“카베르네 소비뇽으로 주세요.”
“알겠습니다.”
종업원이 주문을 받고 사라지자 석 과장은 화제가 궁색해진다. 언제나 무엇을 말할까보다, 어떻게 말할까 더 고민스럽다.
“바쁘실 텐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도와주시는데 변변히 인사도 못 드려서 와인 한잔 사드리고 싶었습니다.”
“공치사는 뭐하러 해. 편하게 와인이나 먹자고. 일은 예정보다 빠르긴 한데 네팔 현지 사정이 문제네.”
“기획실에 박찬호 차장이 제 동기인데 문의했더니 당장 오더가 떨어졌답니다. 시토 박과 연계해서 현지에 히말라야시다전시관을 서둘러서 만들 모양입니다. 절차가 쉽지는 않겠지만 시토 박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 것 같습니다.”
“텔레비전 광고도 준비하고 있다며? 우리 계열사 말고 다른 광고회사에 일을 넘기면 반발이 심할 텐데 밀어붙이려고?”
“나중에 보시게 되겠지만 이번에는 철저히 경쟁 피티로 가겠습니다.”
“그래. 그때 가서 선택해도 늦지는 않겠지. 아참, 딸아이는 좀 어떤가?”
종업원이 와인과 치즈 안주를 가져오는 바람에 대화가 잠시 중단된다. 석 과장은 종업원이 잔에 와인을 따르는 사이에 상념에 휩싸인다. 나, 저 아이 못 키우겠어. 도저히 안 되겠어. 아내의 말이 머릿속에 바늘처럼 날아와 박힌다.
“사실, 그 문제로 상의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일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누굴 만나기도 쉽지 않고 아무래도 소장님의 말씀이 제게는 힘이 됩니다.”
“내가 힘이 된다면 다행이겠으나 그런 문제는 나도 어쩔 수 없는 문제라 난감하군. 어쨌든 자네와 안사람이 역할은 좀 바꿔봤나?”
“예. 처음에는 변화는 것 같더니 별 소용이 없습니다. 아내는 아이를 데리고 밖에 나가는 것조차 꺼리고 있습니다. 어떡하면 좋을까요?”
“파양할 생각은 없고?”
“절대로 없습니다. 네버.”
석 과장이 단호한 태도를 보이자 조 소장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윽고 조 소장이 운을 뗐다.
“실행의 복리 관계를 떠올려 보면 어떨까?”
“예? 실행의 복리관계라고요?”
“자고로 실행은 그 자체가 미래를 위한 투자라서 수익이 따른다는 말이 있네. 더구나 실행은 복리의 결과를 얻지. 복리란 이자에 이자가 붙으면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재산이나 이익을 증가하는 마술을 부린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겠지. 돈이 돈을 벌어들이는 구조를 만드는 사람들은 그런 능력이 있는 셈이야. 인간관계도 마찬가지 아닐까. 물론 자식을 키우는 문제로 무슨 논리와 이론으로 따지는 것이 우스운 일이네만 때로는 어떤 공식도 커다란 힘이 될 걸세.”
“무슨 말씀이신지 좀 어렵습니다.”
“자네가 한 일을 예로 들어보세. 자네는 히말라야 재론칭 건으로 실행에 나섰어. 앞서 말한 실행의 복리관계를 떠올려 보게. 가만히 앉아 고민만 하는 것보다 가장 잘 아는 것에 확신을 가지고 같은 기획안을 다섯 번이나 들이밀면서 실행에 옮겼다는 것이지. 그러니 자네의 실행은 미래를 위한 투자로서 사장의 제가라는 수익을 얻어냈잖은가. 뿐인가. 복리에 복리가 붙는 현상이 일어날 거야. 나도 자네를 도울 것이고, 이 실장도 가세했고,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이 복리현상으로서 자네를 도울 것이란 말이지. 이렇듯 아이 문제를 자네가 해온 문제와 견주어서 적용을 해보란 말이야. 가장 먼저 자네의 문제점을 살펴보고, 자네 아내의 문제점, 아이의 문제점을 냉혹하게 직시해야 옳겠지. 하지만 우리가 처한 현실에는 그런 복리 상품이 흔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만들어 내야 하네.”
“알겠습니다. 그동안 아이 문제는 일부러 피해왔습니다. 섣불리 간섭했다가는 서로 상처를 입을까 걱정했거든요. 문제를 냉정하게 살펴보고 제가 할 일이 있다면 당장 시작하겠습니다.”
조 소장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석 과장은 그렇다면 스스로에게 해야 할 말은 ‘지금 당장 시작하라’는 것이라고 다짐한다. 서둘러 아무것이나 하자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익혀 알고 있는 것들 중 확신하고 있는 것들부터,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열망하는 것부터 실행하자는 말이다. 시작만 한다면 실행을 방해하는 게으름과 두려움이 극복될 뿐 아니라, 조금씩 성과를 얻으면서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성공할 수 있다는 신념도 얻게 될 것이다. 일도 그렇고 가족의 일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다짐한다.
장호원으로 보내는 메일 4
선배님께.
저, 현웁니다. 실수가 전화위복이 되는 경우가 있더군요. 선배님께 보내려던 메일을 이번 프로젝트에 핵심적인 열쇠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보내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제 메일을 보고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거든요. 메일에는 제 개인적인 일을 두서없이 떠들었고, 일본에서 명견으로 불리는 하치라는 개가 급사한 주인을 기차역에서 10년 동안이나 기다렸는데 사실은 그 개가 주변에서 먹을 것을 던져주기 때문에 그곳에 출몰했다, 그래서 개는 충성심 때문이 아니다, 역 앞에 나타난 것은 다분히 본능에 충실한 생존의 문제였다는 뭐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실은... 제가 입양한 딸이 저에게만 집착하는 것이 파양을 두려워한 생존의 문제인 것 같다는 말을 하긴 했습니다. 일은 그런대로 풀려가는 것 같은데 이래저래 우울하군요.
어쨌거나 이번에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면서 생각이 행동을 바꾸고, 행동은 습관을 만든다는 사실을 많이 느꼈습니다. 특히 행동은 복리로 수익을 올려준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누가 그러더군요. 행동은 그 자체가 미래를 위한 투자라서 수익이 따른다고 말이죠. 더구나 행동은 복리의 결과를 얻는다고 합니다. 복리란 이자에 이자가 붙으면서 빠른 속도로 이익을 올려주잖습니까. 부자들은 돈이 돈을 벌어들이는 구조를 만드는 사람들이고, 그런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란 얘기겠죠.
어쨌든 다행스럽게도 행동은 언제나 복리로 수익을 돌려준다는 사실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군요. 행동을 통해 결과를 얻어낼 뿐 아니라, 경험에 의한 지식이 습득되고 습관이 만들어지겠죠. 거기다 경력이 쌓이고 명망이 생기기 시작할 것입니다. 더 나은 성과를 위해 행동과 동반되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목표의식, 긍정, 열정 그리고 인내와 같은 것들이죠. 꿈꾸는 사람과 실천하는 사람의 차이는 지속적이고 목적의식을 지닌 행동에 있을 것입니다.
제가 지금 진행하고 있는 히말라야라는 프로젝트는 목표가 뚜렷하고, 긍정과 열정이 있는 사람들을 끌어들였고,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시련에 대해 인내를 발휘하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믿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외치고 싶습니다. 꿈만 꾸는 자, 지금 주저하는 사람이여, 지금 당장 시작하라고요.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석현우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