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거울은 먼저 웃지 않는다

Part 4 미래에 대한 매력적인 그림을 그려라

by 삼전글방


목차


프롤로그 숫자 5의 위험한 마술

장호원으로 보내는 메일 1 / ‘5고초려’와 ‘5개월’의 힘


Part 1 생각이 행동을 바꾼다

스페인 무적함대의 보복침공 / 아는 것과 믿는 것은 다르다 / 작은 촛불을 켜라 / 장호원으로 보내는 메일 2


Part 2 나이테가 늘수록 나무는 튼튼해진다

로버츠 등반대, 히말라야를 정복하다 / 오고초려, 다시 시작되다 / 하치의 충심도 생존의 문제였다 / 장호원으로 보내는 메일 3


Part 3 행동은 습관을 만든다

삼겹살집의 도원결의 / 실행은 복리로 수익을 돌려준다 / 장호원으로 보내는 메일 4


Part 4 미래에 대한 매력적인 그림을 그려라

직선도로와 우회도로 / 반응성 애착장애가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 / 장호원으로 보내는 메일 5


Part 5 습관이 되어야 변화는 완성된다

살얼음판 위의 스케이팅 / 따또빠니를 위한 성공의 아침 / 닭들의 회의를 멈춰라 / 장호원으로 보내는 메일 6


Part 6 습관은 우리에게 자신감을 심어준다

물타기 작전 / 백야를 부르는 승리, 혹은 향수 / 장호원으로 보내는 메일 7


에필로그 습관은 운명을 만든다

장호원으로 보내는 메일 8



Part 4 미래에 대한 매력적인 그림을 그려라


직선도로와 우회도로

평일인데도 개천을 따라 걷거나 뛰거나 자전거를 몰고 가는 사람들이 많다. 석 과장은 오랜만의 휴식이라 그런지 출근을 하지 않고 한가하게 길을 걷는다는 게 죄짓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걸을 때 아이가 묻는다.

“아빠, 월차가 뭐야?”

“회사에서 수고했다고 한 달에 한 번 쉬라고 하는 날이야.”

“그럼 오늘 회사 안 가?”

“응. 오늘은 경희랑 하루종일 놀 거야.”

석 과장이 그렇게 말을 했는데도 아이는 좋아하는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아내에게 아이와 바람 좀 쐬고 오겠다며 집을 나설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내는 반색했고, 아이는 인상을 구겼다. 아이는 무슨 일이 벌어지나 겁먹은 표정이 역력했다. 아닌 게 아니라 석 과장은 태도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어젯밤에는 자다가 눈을 뜨니 아내의 자리가 비어 있었다. 아내는 경희와 자신이 한데 엉켜 잠든 모습을 지켜보다가 밖으로 나갔을 것이라고 직감했다.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섰다. 아내는 거실에 있지 않았다. 소리가 나지 않게 걸어서 딸아이의 방 앞으로 다가갔다. 아내는 울면서 기도를 하고 있었다. 석 과장은 아침 일찍 회사에 전화를 넣어 월차를 신청했다. 석 과장은 자신은 물론이고, 아내도 경희도 이제 생각을 바꾸지 않고서는 함께 지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아내는 하루가 다르게 야위어 갔다. 이러다 다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아빠랑 놀러 다니는 게 싫어?”

“좋아. 그런데…….”

“그런데, 뭐?”

“나…… 어디 가?”

“어딜 가? 어디 가고 싶어?”

영문을 몰라 아이를 내려다보다가 석 과장은 가슴 한쪽이 사늘해지는 것을 느낀다. 아이는 알고 있구나. 갈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구나. 더구나 엄마와 아빠가 자신을 버릴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구나. 네살박이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상황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구나. 그렇다면 얘기를 에둘러서 할 필요가 없다.

“경희야, 아빠 말 잘 들어.”

“…….”

“아빠는 하늘에 대고 맹세할 수 있어. 아빠는 널 절대 안 버려. 알겠어?”

“…….”

“왜 대답이 없어. 아빠는 죽을 때까지 경희랑 살 거야, 알겠지?”

“응.”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석 과장은 아이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주며 말을 잇는다.

“대신 너도 아빠가 원하는 것을 하나만 들어줘.”

“뭔데?”

“오늘부터 너는 네 방에서 자.”

“왜?”

“엄마가 너 때문에 힘들어. 너도 엄마를 도와줘야 해. 알겠지?”

“싫어.”

“엄마는 너한테 엄마야. 우리는 가족이고 엄마를 도와줘야 한다는데 왜 싫어?”

“엄마 싫어.”

“엄마가 싫어? 왜 싫어?”

“엄마한테 냄새 나.”

“냄새? 무슨 냄새? 화장품 냄새? 향수 냄새? 이빨 냄새? 엄마한테 무슨 냄새가 난단 말이니?”

“…….”

석 과장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아내에게서 무슨 냄새가 난단 말인가. 암내라도 난단 말인가. 아내는 방바닥에 떨어진 먼지 하나도 참지 못하는 성격인 데다가 냉장고를 여닫을 때 풍기는 냄새도 참지 못해 일주일이 멀다고 냉장고 청소를 해대는 성격이었다. 뿐인가. 아내는 청소며, 빨래며, 설거지며 하도 부지런을 떨어 석 과장으로서는 오히려 기가 질릴 때가 많았다.

“말해봐. 엄마한테 무슨 냄새가 나니?”

“몰라. 엄마 냄새 싫어.”

석 과장은 할 말이 없다. 싫어서 냄새가 나는 것인지, 냄새가 나서 싫은 것인지도 알 수가 없다.

“엄마한테 왜 냄새가 나는지는 나중에 또 생각해 보자. 그렇지만 이건 확실해. 엄마랑 살기 싫으면 아빠하고도 살기 어려워. 알겠니?”

석 과장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이는 울음을 터뜨린다. 때마침 바지 주머니에서 핸드폰이 진동한다. 그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어 액정화면을 확인한다. 이로운 실장의 번호다. 하필 이럴 때 전화람. 받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하는 수 없이 버튼을 누르고 핸드폰을 받는다.

“안녕하세요. 석현웁니다.”

“아, 석 과장! 이로운이오.”

“잘 계시죠? 찾아봬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좋은 소식을 제일 먼저 전하려고 회사에 들렀는데 마침 월차 중이시네.”

“좋은 소식이라뇨?”

“뭐긴 뭐겠소? 한국암예방재단에서 히말라야를 암 예방 식품으로 공식적으로다가 인증할 수도 있다는 결정을 내렸어요.”

“저, 정말이요? 그런데 인증할 수도 있다는 결정은 또 뭐죠? 인증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긴가요?”

“재단차원에서는 처음으로 이런 결정을 하는 것이라서 간단한 인증 절차가 있을 거요. 서류는 통과했으니까 면접을 좀 보자는 얘기겠지. 무슨 뜻인지 알겠소? 어, 조 소장님이 바꿔달라는데…… 잠깐만요.”

“나, 조 소장일세. 이 사람아, 축하하네. 우리가 해냈어, 해낸 거라고.”

“아이고,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군요.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모여서 술이나 한잔하자고. 얼른 나오게.”

“아, 그런데 집안에 일이 좀 있어서요.”

“왜? 아이 때문인가?”

“아, 네. 그렇습니다.”

“자넨 항상 바람 잘 날이 없군. 그러면 내일 내 연구소로 들르게나.”

“예, 알겠습니다.”

석 과장은 전화를 끊고 나서 입가에 번지는 미소를 감출 수가 없다. 구름 위에 뜬 것처럼, 라만차그룹에서 합격통지를 받았을 때처럼, 대학에 합격했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때처럼. 가슴이 쿵쾅거리면서 오줌보에 묘한 힘이 차오른다. 요식행위만 남았다면 암을 치료하는 의사들로부터 인증을 받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얘기다. 히말라야의 최대 난점을 일거에 해결하는 쾌거인 셈이다. 그는 아내에게 전화를 해야겠다고 핸드폰을 든다.

그러다 문득 돌아보니 아이가 보이지 않는다. 개천을 따라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 아스팔트 위에도 아이는 없다. 툭 트인 공간이라 아이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석 과장은 깜짝 놀라 개천 쪽으로 내려가는 재방을 향해 황급히 몸을 옮긴다. 재방 밑의 좌우를 살펴도 아이는 보이지 않는다. 물 위를 살펴도 마찬가지고, 주위 사방을 살펴도 아이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울음을 터뜨리던 아이가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석 과장은 땅이 풀썩 꺼지는 것처럼 다리가 휘청거린다.

그러다 개천을 가로지르는 다리 옆으로 난 언덕길이 석 과장의 눈에 들어온다. 그는 그 언덕길을 향해 내달린다. 언덕을 올라 다리 위에 다다르자 왼쪽은 신호등이 연결되었고, 오른쪽은 다리 위를 걸을 수 있는 길이다. 그는 한 마리 영양처럼 몸을 좌우로 튕기며 급히 신호등 건너편을 살핀다. 아이가 횡단보도 건너편에 직선거리를 향해 걷고 있는 것이 보인다. 석 과장은 신호등이 빨간 불이라는 것을 무시하고 몸을 날린다. 횡단보도를 거의 다 건너갔을 무렵 그는 오른쪽에서 좌회전을 하면서 달려오던 자동차가 급브레이크를 밟는 소리를 듣는다. 다행히 차가 몸에 부딪치지는 않았다. 잠시 주춤거린 석 과장은 아이를 향해 달리고 또 달린다.

“경희야, 자니?”

“…….”

석 과장은 아이를 업은 채 집으로 향하며 묻는다. 아이는 울다 지쳐 잠이 들고 말았다. 네 살짜리 아이와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이람. 석 과장은 혀를 끌끌 찬다. 석 과장이 달려들어 아이를 낚아채자 아이는 놀라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다 아빠의 얼굴을 확인한 아이는 얼굴에 금방 해맑은 웃음을 머금었다. 석 과장은 아이가 위험천만한 신호등을 건넌 걸 생각하니 화가 치밀었다. 그는 무심결에 손바닥으로 아이의 엉덩이를 호되게 내려쳤다. 아이는 다시 울음을 터뜨렸고, 그는 아이의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연거푸 석 대나 때렸다. 아이는 자지러지듯 쓰러졌다. 이윽고 공포에 질려 있던 아이의 하얀 스타킹에는 물기가 번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자 석 과장은 코가 뜨거워지면서 눈앞이 흐려졌다. 그는 아이를 향해 등을 내밀었다. 아이는 울면서 잠시 망설였다. 석 과장이 업히라고 소리를 지르자 그제야 아이는 다가와 그의 등에 달라붙었다. 걸을 때마다 아이가 싼 오줌이 그의 등에 번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는 석 과장의 등에 온몸을 밀착한 채 잠들어 있었다.

석 과장이 출입문에 들어서도 집안에서는 인기척이 없다. 아내는 시장을 보러 밖으로 나간 모양이다. 그렇다면 현관문을 열어 놓고 나갔다는 얘긴가? 그는 아이를 업은 채 안방 문을 연다. 침대에는 아내가 곤하게 잠들어 있다. 들릴 듯 말듯 코까지 골고 있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돌아서서 안방을 나온다. 아이는 거실 소파에 눕힌다. 아이의 젖은 스타킹과 팬티를 벗겼고, 옷장 서랍을 뒤져 아이에게 편안한 내복으로 갈아입힌다. 그때까지도 아내와 아이는 곤하게 잠들어 있다.


*


광고회사들로부터 전달받은 TV 광고용 계획서는 크게 두 가지였다. 공감이라는 주제로 한쪽은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것이었고, 다른 쪽은 우회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그중에서 2개의 회사가 좋은 점수를 받았고, 그 회사는 라만차애드컴과 대붕기획이었다. 광고비는 그리 많은 편이 아니었는데도 자존심 싸움이라고 판단을 했던지 두 회사는 한 치의 양보가 없었다. 광고매출 1위의 대붕기획에서는 직접적인 방법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겠다는 것이었고, 계열사인 라만차애드컴에서는 간접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먼저 회사에서 요구한 것은 히말라야에 대한 개념을 정리해달라는 것이었다. 경쟁 피티에 주어진 시간은 20분이었고, 광고를 제작할 팀장들이 직접 설명하기로 했다. 물론 양쪽에서는 서로가 발표하는 내용을 알 수 없었으며, 발표는 라만차애드컴이 먼저 시작했다.

“히말라야의 개념에 대해서 먼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히말라야는 한마디로 무엇일까요? 질문은 수없이 시작되었습니다. 히말라야는 자연이라고 가정하죠. 그런데 히말라야는 기능성 음료입니다. 암과 비만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 최대의 메시지입니다. 결국 필요한 것은 발상의 전환이었습니다. 히말라야는 ‘무엇’이라고 표현할 때 그 ‘무엇’에다가 ‘당신’이라는 말을 넣자는 게 발상의 열쇠입니다. 그러니까 히말라야는 무엇이라는 개념에 대한 정의를 하지 말고 이미 시대에 히말라야다운 것들이 있으니 그것을 히말라야라고 하자는 것입니다. 히말라야는 무엇이다가 아니라 ‘나와 이 시대’ 속에는 히말라야가 있다고 얘길 하자는 것입니다. ‘히말라야는 행복입니다’, ‘히말라야는 건강입니다’, ‘히말라야는 자연입니다’, 라는 얘기는 일반적이지만, ‘당신이 히말라야입니다’라는 말은 발상의 전환입니다. 그런데 내가 왜 히말라야일까? 그래서 히말라야다운 게 뭐냐 물으면 히말라야가 가지고 있는 기능들을 설명하면 되는 것입니다. 카피를 하나씩 소개해 보겠습니다. 운동하는 당신은 히말라야입니다. 야채를 먹는 당신은 히말라야입니다. 암과 결코 싸우지 말고 친구가 되려고 노력하는 당신은 히말라야입니다. 살과 결코 싸우지 말고 친구가 되려고 노력하는 당신은 히말라야입니다. 암을 완치했다는 말보다 '사라지거나 없어졌다'고 말하는 당신은 히말라야입니다. 살을 뺐다는 말보다 잠시 내보냈다고 말하는 당신은 히말라야입니다. 암과 살과 친구로 지내며 잠시 머물다 다시 돌려보내줘야겠다고 말하는 당신은 히말라야입니다. 항상 긍정적인 생각만 하는 당신은 이미 히말라야입니다. 사실, 자신감 있게 ‘히말라야답다’는 얘기를 하기 위해서는 제품을 생산하는 업체의 기업 정신과 이미지가 받쳐주지 못하면 오히려 역효과를 부를 것입니다. 그러나 다행히 라만차의 히말라야는 지난 20여 년 동안 스낵, 아이스크림, 콩나물, 두부, 녹즙에 이르기까지 깨끗하고 자연과 환경 친화적인 제품 이미지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이상입니다.”

어쨌거나 경쟁은 경쟁이었다. 광고를 만드는 사람들이 의사의 입장이라면 진단은 치밀해야 하고 처방은 정확해야 하며, 효능은 즉각적이라야 했다. 라만차애드컴의 담당 팀장이 서류를 챙긴 후 회의실을 빠져나가자마자 대붕기획의 담당 팀장이 바로 들어섰다. 그는 정중하게 인사를 한 후 바로 설명에 들어갔다.

“먼저 히말라야의 개념을 설정해 보았습니다. 히말라야는 단순히 물입니다. 물에 히말라야시다를 첨가한 기능성 음료입니다. 히말라야의 핵심은 자연 중심적이면서도 자연 친화적이라는 것은 부동의 사실입니다. 따라서 히말라야는 깨끗한 것을 좋아하고, 환경 공해를 싫어합니다. 다시 개념을 부언하자면 히말라야는 네팔입니다. 히말라야는 네팔에 있는 깨끗하면서도 환경공해가 없는 산맥이고,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이 저녁마다 공복에 마시는 물입니다. 암과 비만을 예방하는 히말라야시다가 첨가된 기능성 물입니다. 그래서 저희가 잡은 카피는 다음과 같습니다. 네팔에서는 암과 비만을 예방하기 위해서 어린이들도 잠자기 전에 히말라야를 마십니다. 한국에서는 어떻습니까? 이상입니다.”

대붕기획의 담당자의 설명은 5분으로 끝났다. 광고에는 정답이 없다. 경쟁 프레젠테이션에서 광고주의 마음에 들어 광고제작권을 획득했다고 해서 그들이 만든 광고가 옳거나 정답이라고 결코 말할 수 없다. 반대로 경쟁 프레젠테이션에서 졌다고 해도 광고주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뿐이지 그들이 만든 광고 자체가 잘못되었다거나 오답은 아니라는 얘기다.

광고회사에 대한 오더는 석 과장도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내려졌다. 사장과 임원들, 그리고 이로운 실장까지 압도적으로 대붕기획을 지지했다. 석 과장은 라만차애드컴의 컨셉이 처음과는 180도 바뀌어서 왔기 때문에 은근히 기대했다. 그는 시청자의 일상이나 개인사를 개입시킨 라만차애드컴의 콘셉트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석 과장은 고집하지 않았다. 요컨대 광고에는 정답이 없는 것이다. 다만 라만차애드컴이 경쟁 프레젠테이션에서 지기는 했으나 광고주의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들이 만든 광고 자체가 잘못되었다거나 오답은 아니라는 얘기다. 경쟁 프레젠테이션은 대붕기획의 승리로 돌아갔다. 그들이 만든 카피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네팔에서는 건강을 위해서 어린이들도 잠자기 전에 히말라야를 마십니다. 한국에서는 어떻습니까? 한국암예방재단 의사들이 인증했습니다. 암과 비만 예방 음료, 히말라야!’


*


“야, 내가 인사과에 아는 사람이 있어서 알아봤는데 그 새끼 현직 장관 아들이라네.”

“누가?”

“누구긴 누구야. 이 과장 그놈 말이야.”

“아, 그래?”

“내일 이 과장님 대신에 따또빠니에 간다는 거 아니냐. 내 참 더러워서.”

“전시관 설립 건 때문에?”

“왜 아니겠어. 내가 상전을 모시고 살아요.”

“그 건은 사안이 중대해서 부장급이나 최대한 너 정도는 가야지. 그렇게 생각해. 홍콩이나 방콕을 경유한다며?”

“아냐, 일주일에 한 번 인천에서 직항로가 있어. 그래서 내일 가.”

“그래? 내가 잘못 들었나? 직항로가 없는 줄 알았어. 언제 오는데?”

“최소 일주일이지 뭐. 근데 한국암예방재단 이사진들이 네팔을 방문한다며? 언제래?”

“씨에프 제작 기간도 있고, 아직 한두 달 시간은 있어. 그쪽에 간다 해도 꼭 전시관을 방문한다는 보장도 없어. 그런데 그런 일을 왜 기획실에서 하냐?”

“낸들 알아, 까라면 까는 거지. 하여간 너 이 과장 조심해라. 정권에 아부할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마냥 무시할 수도 없어요.”

“근데 조금 있다가 피피엠이 있거든. 갔다 오면 또 통화하자.”

석 과장은 박 차장과의 통화를 끝내며 입맛이 쓰다. 그런데 다시 전화벨이 울린다. 석 과장은 다시 수화기를 집어 든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마케팅부 석현우 과장입니다.”

“안녕하세요, 기획실 이석우 과장입니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는 말이 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이 과장은 호랑이다.

“웬일이야, 기획실 일은 마음에 들고?”

“석 과장님 때문에 미치겠어요. 라만차애드컴 사장님이 직접 전화로 항의가 들어왔어요. 이런 불경기 때 계열사를 도와줘야지 이런 경우가 어디 있냐는 거죠.”

“그게 왜 나 때문이야?”

“경쟁 피티를 제안하신 건 석 과장님이 맞잖습니까? 라만차애드컴에서 대붕기획의 텔레비전 론칭 계획서를 받아보고 싶답니다. 무엇 때문에 떨어졌는지 알아보시겠다는 거겠죠. 보내주실 수 있죠?”

석 과장은 속이 부글거리기 시작한다.

“그건 좀 곤란한데.”

“왜죠?”

“이건 업종 간에 지켜야 할 도리가 아닐까? 결정은 이미 났고, 오늘이 피피엠인데 상대 업체의 계획안을 넘겨달라는 것은 상도의가 아닌 것 같은데.”

“저는 상도의 같은 거 모르겠고요. 주실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것만 말해주시죠.”

“내가 결정할 문제가 아닌 것 같군. 김 부장님께서 오더를 내리면 보내줄 수 있겠지만.”

“알겠습니다, 절차를 밟겠습니다.”

참, 할 일도 없는 자식이다. 석 과장은 전화를 끊고 저도 모르게 짜증이 난다. 절차를 밟겠다는 이 과장의 말이 거슬린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짧은 시간에 빨리 화가 나게 만드는 인물이다. 석 과장은 회의실로 가기 위해 의장에서 몸을 일으킨다.

촬영 직전에 마지막으로 실시하는 점검 회의를 흔히 PPM(Pre-Production Meeting)이라고 불렀다. 광고에 대한 계획을 다 짜면 제작진들이 한데 모여 그 계획을 구체적으로 논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광고 계획을 실제로 옮기기 전에 광고주와 제작진이 가지는 사전 미팅을 의미한다. 이 과정을 통과해야 광고는 실제 제작에 들어가게 된다. 사실, 광고작업에서는 PPM이 상당히 중요하다. 조명은 어떻게 할 것인가, 몇 시부터 촬영에 들어갈 것인가, 모델은 누구를 쓸 것인가, 음악은 쓸 거냐 말 거냐, 현장 사운드 동시녹음 할 거냐, 나래이터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점검을 다 마무리한다.

미팅에서 정해진 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촬영은 네팔 현지에서 진행한다는 것이었고, 둘째는 현장 사운드 동시녹음으로 진행한다는 것이었다. 현장답사를 위해 촬영감독과 광고 스텝이 내일 기획실 박 차장과 합류하기로 한 것까지 따지면 회의에서 결정된 것은 세 가지였다.

회의를 끝내고 사무실로 돌아와 자리에 앉자마자 석 과장은 김 부장의 호출을 받았다.

“부르셨습니까?”

“이번 마케팅 건으로 기획실 이 과장과 호흡 좀 맞추라니까 그게 그렇게 어려워?”

“이 과장에게는 특별히 요청할 사안이 없었습니다. 아시잖습니까?”

“그래도 좀…… 알았어, 그건 알겠고 대붕기획 계획서 보내달라는데 보내줘.”

“한 번 더 해야겠지만 오늘 피피엠도 마쳤습니다. 이제 달라질 게 없는데 그걸 보내줄 필요가 있을까요?”

“달라질 게 없으니까 보내줘. 돌 과장, 왜 그렇게 세상을 빡빡하게 사냐. 바쁘면 좀 우회도로로 돌면 되지 꼭 그렇게 직선로로만 달려야 되냐? 좀 부드럽게, 유연하게 살자고. 잉?”

“알겠습니다. 이 과장에게 보내겠습니다.”

석 과장은 자리로 돌아와 앉는다. 맥이 탁 풀린다. 하루의 무게가 한꺼번에 몰려온다.


반응성 애착장애가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

석 과장이 와인 바인 인와인에 들어서자 이번에는 조 소장이 먼저 와서 자리를 잡고 있다. 조 소장이 손을 들어 보이자 석 과장은 고개를 숙여 인사를 보내며 그에게로 다가간다.

“아이고, 어쩐 일이십니까, 전화를 다 주시고.”

“지난번에 와인 맛이 마음에 들더군. 이곳도 썩 괜찮은 것 같아. 편하고 조용하고 양주나 소주 안 먹어서 좋고. 그나저나 수고했네. 인증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 같고 텔레비전 광고하고 전시관 설립만 서두르면 될 것 같은데?”

“광고 촬영은 네팔 현지에서 진행할 생각인가 봐요. 일이 순조로워 다행입니다.”

종업원이 다가오자 조 소장은 예전에 만나 시켰던 것을 그대로 주문했다. 아크엔젤과 치즈 안주였다. 석 과장은 만족스러웠다.

“『리더』라는 책을 본 적이 있나?”

“아니오.”

“그 책에 그런 말이 있지. 사람들을 비전에 동참시키고 싶다면, 미래에 대해 매력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 이번 히말라야 건으로 한 달 매출을 얼마나 잡고 있나?”

“그게 아직 모르겠습니다. 많으면 한 50억 정도요?”

“50억이라…… 1년이면 한 600억이 되나?”

“그렇죠. 무모합니까?”

“왜 그렇게 생각하나? 더 잡아, 이왕 벌린 일인데.”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좀 우울해 보이십니다.”

“집안일 때문에 요새 마음이 좀 무거워.”

“집안일이요?”

그때 종업원이 와인과 안주를 들고 다가와 말이 중단되었다. 종업원은 조 소장과 석 과장이 눈에 익다는 것인지 말없이 미소를 짓는다. 종업원이 사라지자 조 소장은 와인을 한 모금 마신 뒤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에게 말을 못했네만 딸아이가 결혼한 지가 5년 됐는데 아직 아이가 없어든. 사돈댁은 손이 귀한 집안이라 솔직히 이혼에 대한 압박이 좀 있는 모양이야.”

“저 때문에 마음에 걸리시는군요. 입양이나 시험관 아기 같은 게 쉬운 문제는 아니니까요.”

“바로 보았네. 자네에겐 미안하지만 딸에게 입양도 권하기가 조심스러워. 사람과 사람의 갈등이라는 게 인위적으로 되는 게 아니라서 말이야. 입양도 작은 문제는 아니지. 요새 자네 가족은 어떤가?”

“사실, 쉽지 않습니다. 요새 아이 때문에 이것저것 자료도 찾아보았는데 반응성 애착장애라는 게 있다더군요. 아이가 2세 정도가 되면 애착을 주변에 가까운 사람들에게 보이게 된다는데 이를테면 할아버지, 할머니, 정규적인 양육자에게 애착을 보인다는 것이죠. 그런데 지금 제 딸아이와 집사람은 그 과정이 없기 때문에 힘든 것 같습니다. 아이는 집사람에게서 냄새가 나서 싫다고 말하더군요.”

“냄새가 난다고?”

“글쎄요. 실재로 냄새가 난다기보다 비탄반응 같습니다.”

“비탄반응?”

“예. 상실로 인해 반응을 보이는 것이라는데 좀 병적이면 그 아픔이 크다는 얘기겠죠. 이 아이는 가만히 보니까 지금 집사람과의 갈등이 자신에게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아요. 저에게 심하게 집착하는 걸 보면 자신의 생존 문제로 여기는 것 같습니다.”

“아이가 자신이 위험한 상황을 안다면 본능적으로 자네 집사람에게 집착을 보여야 상식이 아닐까?”

“파양에 대한 경험이나 선험(先驗)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분명히 앞서 받은 파양에 대한 슬픔 때문에 영향이 있는 것 같은데 구체적으로 알자면 대화가 돼야 하는데 그걸 알 수가 없어 답답하죠. 사실, 아이를 기르고 못 기르고는 아빠에게 달린 게 아니라 엄마에게 달린 것 같습니다.”

“그렇겠네. 엄마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낼 테니까. 아이를 키우고 못 키우는 결정권도 엄마한테 있을 것이고.”

“저도 그게 가장 염려가 됩니다. 집사람이 끝까지 버텨줘야 할 텐데 지금 거의 우울증 증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살이 바짝바짝 마르고 있어요.”

“아, 그 정도로 심각한가?”

“그렇다고 입양이 마냥 어렵고 실망할 문제는 아닐 겁니다. 집사람이 다정다감한 성격이 못 되거든요. 아이에게 편하게 대하지 못하는 괴로움도 있나 봐요. 다분히 제 생각입니다만 소장님 따님의 경우 굳이 입양을 생각하신다면 아주 어린 영유아를 선택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요?”

“자네 말처럼 경우에 따라 반응성 애착장애가 서로 필요하단 얘긴가?”

“그런 셈이죠. 저도 이번 일 때문에 유아 발달장애와 관련된 책들을 닥치는 대로 사들이고 있습니다. 집사람에게도 권했지만 경황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하루하루가 전쟁이니까요.”

“이런 일에도 공부가 좀 필요하겠군. 치밀하게 모든 걸 준비한 다음에 실행에 옮겨도 좋겠지만 현실이 그리 녹록하지는 않지. 아까 말한 『리더』라는 책에도 그런 말이 나온다네. 모험가나 탐험가가 되어라. 조직에서 당신이 가보지 않은 곳은 어디인가? 지역 사회에서 당신이 가보지 않은 곳은 어디인가? 이런 장소들을 탐험하는 데 필요한 계획을 세워라. 어렸을 때는 이것을 소풍이라고 불렀다. 공장, 창고, 배급소 또는 매장으로 소풍을 떠나라. 가까운 곳에 학교가 있으면 당신이 예전에 가장 좋아했던 과목의 수업 시간에 들어가 수업을 참관해 보라. 지금은 무엇이 달라졌는가? 시청에 있다면 당신의 흥미를 유발하는 부서에 찾아가 봐라. 전문적 서비스 조직에서 일한다면 다른 직종에 있는 사람과 함께 현장을 방문하라. 소풍은 다른 사람들과 같이 가면 더 재미있는 법이다. 팀원들을 데리고 가는 것도 좋다. 오고 가는 길에 차 안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버스를 타거나 벤을 빌리는 것도 좋다. 지금 당장 모험을 시작하라!”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나도 자넬 통해 배우는 게 많네. 고맙네.”

“아이고,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석 과장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붉은 와인을 한 모금 마신다. 와인 바에 듬성듬성 켜있는 촛불이 하나씩 눈에 들어온다. 가볍게 흐르는 클래식 음악도 마음에 든다. 그동안 음악이 흐른다는 것을 왜 의식하지 못했을까. 언젠가 그런 생각을 했던가. 어둠은 맞서 싸울수록 우리를 지치게 하고 힘들게 할 뿐이라고. 어둠을 몰아내기 위해 가슴에 작은 촛불을 켜라고.

그러다 석 과장은 깜짝 놀란다. 아이가 신호등을 따라 횡단보도를 건너 정처 없이 걷다가 석 과장과 마주하고서 해맑게 웃던 모습이 떠오른 것이다.

“얘기 좀 해요.”

선배에게 오랜만에 메일을 보내려는데 아내가 서재로 들어선다. 아내는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다. 아이를 입양한 이후로 아내가 얼굴에 한 번도 미소를 짓는 것을 보지 못했다는 생각에 이르자 석 과장은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래. 오늘은 별일 없었어?”

“회사 일은 잘돼? 광고도 나오는 것 같던데.”

“응. 그런대로 잘 풀리고 있어.”

“오늘 아이를 놀이방에 맡기고 어디 좀 다녀왔어.”

“아이를 놀이방에 맡겨? 적응을 잘하던가?”

“하루 종일 텔레비전만 보더래.”

“어딜 갔다 왔는데?”

“…….”

“왜?”

“내 말 끝까지 들어줘. 사실, 입양기관에 갔다 왔어. 상담을 했는데 그런 갈등이 있었으면 왜 이제야 왔느냐고 반문하더라고. 그쪽 말이 파양은 흔한 일이고 그 문제로 죄책감을 느낄 필요도 없대. 경희의 경우는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금방 잊는대.”

“미안하지만 그 말에는 동의 못 해.”

“미안하지만 당신 내 말을 끝까지 들어줘야 해. 그쪽 말이 아이를 키우기가 고통스럽다면 포기하래. 그게 서로를 위해 좋다는 거야. 물론 나도 그쪽 말을 다 믿는 건 아니야.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니 내 잘못도 많아. 네 살이나 먹은 아이가 이불과 옷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오줌을 싸는 건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어.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잖아. 언젠가 당신하고 밖에 나갔다온 후로 아이가 다시 오줌을 싸기 시작했거든. 당신이 아이를 잃어버렸다가 화가 나서 때렸다고 했잖아. 지금 그날 이후로 아이가 상당히 심각해. 잘 생각해봐. 아이가 당신한테도 냉담해졌어. 그 일이 아니더라도 상황은 심각해. 잠깐만 한눈을 팔아도 냉장고에 있는 음식들을 죄다 밖으로 쏟아내고 조금만 야단쳐도 하루 종일 울고, 이제 자기 방에 처박혀서 밖으로 나오지도 않아. 텔레비전이나 틀어주면 밖으로 나올까. 당신이라면 저런 아이를, 온종일 지켜봐야 하는 저런 아이를 어떻게 하겠어. 어쨌든 입양기관에 들렀다가 하루 종일 돌아다녔어. 당신이랑 처음 간 커피숍도 가봤고, 당신이랑 처음 만난 우리 대학에도 가봤고. 그뿐이야? 그동안 새벽마다 새벽기도회에 나가 기도도 했었고, 틈만 나면 울면서 기도했지만 소용없더라고. 나, 결심했어. 파양하기로. 당신이 내 결정에 따라주지 않는다면 나 당신도 포기할 거야.”

“내가 저 아이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지금 나와 이혼하겠다는 거야?”

“맞아.”

“분명히 말해 두는데 난 이혼하지 않아. 그리고 저 아이도 포기 못 해. 알겠어?”

“지금 상황을 좀 냉정하게 봐줘. 부탁이야.”

“나도 부탁 좀 하자. 아이를 데리고 정신과도 가보고, 카운슬러도 만나보고 그러자. 아이를 잘 키우는 책도 보면서 연구도 좀 하고 그러자.”

“난 충분히 고민하고 내린 결정이야. 이제 당신 선택만 남았어.”

“야, 박지영! 너 정말…….”

석 과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내는 서재를 나가버린다. 그는 화가 치밀어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그는 손에 잡히는 책을 집어 들고 책꽂이를 향해 힘껏 던진다. 책꽂이에 달린 유리창이 박살난다.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가 석 과장의 의식 속으로 새벽에 느닷없이 울리는 전화벨처럼 파고든다.


장호원으로 보내는 메일 5

선배님께.

저, 현웁니다. 음주운전도 무섭지만 음주메일도 무서운 법인데 이렇게 메일을 보내네요. 어떤 시인이 그런 말을 했다고 하더군요. 음악은 시가 가지 못하는 길을 간다고요. 지금 서재에 앉아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습니다. 무슨 궁상이냐고요? 집사람과 아이 문제로 싸웠거든요. 사실 싸운 것도 아닙니다. 일방적인 통보를 받은 셈이니까요. 아이를 포기하지 않으면 저와 이혼을 하겠답니다, 집사람이요,

아, 정말 미치겠어요. 집에 남아 있는 양주 한 병을 다 먹었는데도 취하질 않는군요. 아닙니다. 취했는데 정신은 멀쩡하군요. 딸아이에게 약속을 했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포기하지 않겠다고요. 평생 같이 살겠다고요. 성격이 맞지 않으면 평생 같이 살 수 없나요? 선배님,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합니까.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현우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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