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거울은 먼저 웃지 않는다

Part 5 습관이 되어야 변화는 완성된다

by 삼전글방

목차


프롤로그 숫자 5의 위험한 마술

장호원으로 보내는 메일 1 / ‘5고초려’와 ‘5개월’의 힘


Part 1 생각이 행동을 바꾼다

스페인 무적함대의 보복침공 / 아는 것과 믿는 것은 다르다 / 작은 촛불을 켜라 / 장호원으로 보내는 메일 2

Part 2 나이테가 늘수록 나무는 튼튼해진다

로버츠 등반대, 히말라야를 정복하다 / 오고초려, 다시 시작되다 / 하치의 충심도 생존의 문제였다 / 장호원으로 보내는 메일 3


Part 3 행동은 습관을 만든다

삼겹살집의 도원결의 / 실행은 복리로 수익을 돌려준다 / 장호원으로 보내는 메일 4


Part 4 미래에 대한 매력적인 그림을 그려라

직선도로와 우회도로 / 반응성 애착장애가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 / 장호원으로 보내는 메일 5


Part 5 습관이 되어야 변화는 완성된다

살얼음판 위의 스케이팅 / 따또빠니를 위한 성공의 아침 / 닭들의 회의를 멈춰라 / 장호원으로 보내는 메일 6


Part 6 습관은 우리에게 자신감을 심어준다

물타기 작전 / 백야를 부르는 승리, 혹은 향수 / 장호원으로 보내는 메일 7


에필로그 습관은 운명을 만든다

장호원으로 보내는 메일 8



Part 5 습관이 되어야 변화는 완성된다


살얼음판 위의 스케이팅

“찾았습니다. 트샴파스트족 일부가 히말라야산맥에서 집성촌을 이루면서 살고 있었고, 모두 히말라야시다를 음복하고 있었습니다. 따또빠니에서도 그리 멀지 않아요. 이건 행운입니다. 제가 고생은 좀 했지만요.”

시토 박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석 과장은 덩달아 가슴이 뛰었다.

“트샴 무슨 족이요?”

“트샴파스트족이라고 부탄 정부의 탄압을 받았던 부족인데 난민 문제로 시끄러웠었거든요. 그 부족이 부탄 쪽으로 넘어가기 전에 일부가 히말라야산맥으로 이동했었다나 봐요. 조 소장님이 번역해서 보내준 논문에 그 부족에 대한 임상실험 얘기가 있길래 샅샅이 뒤졌더니 나왔어요. 논문을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히말라야시다를 음복하는 이쪽 사람들은 최근 20년간 암 환자와 비만 환자가 보고된 바가 없대요. 정부쪽 사람이나 암예방재단 소속 의사들을 이쪽으로 몰고 오면 인증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경관이 수려해서 관광지로도 안성맞춤이라 걸림돌도 없고요. 그런데 김 부장님은 왜 전화를 안 받으시죠?”

“수고하셨습니다. 보고하겠습니다.”

석 과장은 시토 박과의 전화를 끊고 가슴을 쓸어내린다. 한국암예방재단은 이 실장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공식 인증을 차일피일 미뤘다. 서둘러 따또빠니에 전시관을 만들었지만 정부 기관이나 의사들의 흥미를 끌지 못했다. 석 과장은 마지막 카드를 회사에 제안했다. 그러나 그룹 차원에서 암 연구에 상당한 비용을 연구비로 지원한다는 통보를 했는데도 재단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텔레비전 광고도 마무리 단계인데 절망적이고 암울한 상황이었다. 결국, 외국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을 뒷받침할 만한 어쩔 수 없는 증거인 집성촌을 찾는 게 관건이었고, 시토 박은 그걸 해낸 셈이었다. 석 과장은 김 부장에게 달려가 보고했다.

“그래? 근데 그 인간이 왜 직접 전화를 안 했지?”

“아, 전화를 했다는데 받지 않으신다고 되레 묻더군요.”

“아참, 그게 그거였나? 핸드폰으로 무슨 전화가 왔길래 보이스 피싱인 줄로만 알았지. 사장한테 보고하고 올 테니까 사진이나 문서로 준비할 게 있으면 준비해봐. 인간들이 눈에 보이는 것을 디밀지 않으면 믿질 않아요.”

“지금으로서는 준비한 게 없는데 사장님께 직접 가시게요?”

“급하면 립 서비스라도 열심히 해야지 어쩌겠어.”

“텔레비전 광고 쪽에는 통보하지 않아도 될까요?”

“편집이 다 끝났을 텐데 뭐. 후속타를 준비하면 되지 뭐가 걱정이야. 급한 건 재단의 인증이라고, 인증. 그거 없으면 광고도 내보낼 수 없잖아.”

김 부장은 서둘러 사장실로 향했다. 그 사이 석 과장은 조 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이군. 어쨌든 지켜보세.”

석 과장이 상황을 설명했으나 조 소장의 반응은 의외로 시큰둥하다. 조 소장은 회사의 지시와는 상관없이 현지 집성촌을 방문할 연구 조사단을 구성하겠다는 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는다. 석 과장은 마음이 급해져 이로운 실장에게도 전화를 넣는다. 이 실장도 반응은 별반 차이가 없다.

“연구소 측과 공동 조사단을 파견하자고요? 생각은 나쁘지 않은데 재단이 받아들이지 모르겠군요. 일단 제안은 해볼 테니 상황을 지켜봅시다.”

석 과장은 이 실장과 통화를 끝내고 내심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두 사람 다 지켜보잔다. 인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네팔 현지 집성촌을 발견했다는데도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석 과장은 아무리 곱씹어도 답을 얻을 수 없다.

“일단 연구소에 연락해서 연구조사단을 꾸리라고 해.”

사장에게 보고를 하고 돌아온 김 부장이 말한다. 그나마 김 부장의 마음만 급해진다.

“전화했습니다. 조 소장님은 당장 조사단을 만들겠다고 하셨습니다. 이로운 실장에게는 공동 조사단을 만들면 어떻겠냐고 물어봤는데 재단에 제안은 해보겠고 일단 기다려 보자고 하는군요.”

“공동 조사단? 그거 좋은데? 좋아, 이럴 땐 또 빠르군. 그러나 저러나 사장님이 직접 가신다니 어떻게 하나?”

“사장님께서 직접 가신다고요?”

“응. 아무래도 이번에는 내가 직접 네팔에 가봐야겠어. 그럼 이렇게 하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번에 암예방재단 의사들하고, 정부 쪽 인사를 끌어들여 공동 조사단에 포함시키라고. 그리고 사장님 지시니까 기획실하고 공동으로 집성촌 발견에 대한 보도자료 만들어서 준비하는데 제품 출시 전까지는 비밀이 새나가면 낭패니까 대외비로 하라고.”

“알겠습니다.”

석 과장은 자리로 돌아와 컴퓨터를 켜고 자료를 취합한다. 보도자료에 활용할 수 있는 히말라야 제품의 특징이나 외국 학술지에 게재된 히말라야시다와 관련된 논문을 요약했고, 영국암센터에서 공인받은 자료들을 정리해서 파일로 만든다. 아울러 시토 박에게는 발견된 집성촌에 관련된 내용과 사진을 반드시 보내달라고 메일을 보냈다. 그렇게 마무리하자 퇴근시간이 임박했다. 컴퓨터를 끄고 막 일어서려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석 과장님? 기획실 이 과장입니다.”

“어, 웬일이야?”

“보도자료 관련 파일을 보내주신다고 들었는데 저희 폴더에 아직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아, 그거? 정리는 끝났는데 네팔에서 사진도 아직 들어오지 않았고, 그거 들어오면 한꺼번에 올릴게.”

“그거라도 보내주시죠.”

“컴퓨터를 껐어. 내일 출근하자마자 올려놓을게.”

“지금 보내주시죠.”

석 과장은 갑자기 신경이 곤두선다. 촌각을 다투는 일도 아니었고, 컴퓨터를 끈 마당에 다시 부팅을 하자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번거로울 것 같다.

“컴퓨터를 껐다니까. 내일 받아도 되잖아?”

“컴퓨터는 키면 되잖습니까?”

“야, 부팅을 하자면 시간이 걸리잖아?”

“저한테 함부로 야야 하지 마세요! 직급도 같잖습니까?”

“뭐, 뭐가 어쩌고 어째?”

석 과장은 머리끝까지 화가 치민다. 입사 후배이기도 하고, 한때 같은 부서의 부하 직원이었으며, 나이도 서너 살이나 어린 이 과장이 앙짜를 부리는 이유를 알 수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무심결에 야라고 호칭한 것은 잘못이라면 잘못이다. 석 과장은 억울하고 분해서 말문이 막혀 어쩌지 못한다. 그는 감정을 최대한 절제하며 이윽고 말을 잇는다.

“이거 보세요, 이 과장님. 저는요 자료를 만들어서 보관은 하고 있지만요 이걸 이 과장님께 넘기라는 지시를 받은 바 없습니다. 그리고요 저는 이 과장님을 아끼는 후배로 여겨서 야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네요. 그 점은 사과드리고요. 마지막으로 제가 만든 자료를 받으시고 싶으시면 앞으로 컴퓨터를 끄기 전에 공손히 부탁하시거나 이 과장님 좋아하시는 절차를 밟으시거나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세요. 그러면 전 바빠서 이만 전화를 끊겠습니다.”

석 과장은 사정없이 전화를 끊는다. 화가 나 몸이 부들부들 떨리던 것이 점잖게 대거리를 하고나자 조금은 진정이 된다.


*


사무실의 분위기는 폭풍 속 전야처럼 숨을 죽인 듯이 고요했다. 연구소 측의 주도로 일주일 만에 꾸려진 공동조사단이 네팔로 떠났다. 조 소장의 활약이 컸던지 조사단에는 정부의 주무부처 담당 과장이 포함되었고, 이로운 실장의 노력이 컸던지 한국암예방재단 소속 의사들이 합류했으며, 이 실장 본인도 동행했다. 사장은 주변의 만류로 조사단에서 빠졌다. 조사단의 구성원들이 사장을 부담스러워 할 것 같다는 임원들의 지적에 따른 결정이었다. 반면 김 부장은 사장이 이번 조사단에서 빠질 것이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자청한 까닭에 조사단에 포함되었고, 석 과장은 그런 김 부장 때문에 조사단에서 빠져야 했다.

집안 분위기는 살얼음판이었다. 석 과장은 일주일 동안 아내와 한마디도 나누지 못했다. 침대를 같이 쓰기는 했지만 아내가 말을 건네 오는 일은 없었다. 경희도 아내와의 갈등을 눈치챘는지 자신의 방에서 잠을 잤다. 석 과장은 석 과장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딸아이는 딸아이대로 침묵을 지켜야 했다.

석 과장이 양가 부모로부터 전화를 받은 것은 어제였다. 오전에는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왔고, 오후에는 장모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시골에 사시는 부모님은 아이를 키울 수 없다면 자신들이 아이를 키우겠다고 선언했다. 부모님들은 단단히 화가 나셨고, 아이와 융합하지 못하는 아내를 탓했다. 그러나 처갓집은 반대였다. 장모님은 아이의 성격을 문제 삼았고, 입양을 준비할 때부터 반대하지 않았느냐고 따지듯 물었다. 석 과장이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자 장모님은 읍소를 하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손녀는 둘째치고 자신의 딸을 잃게 생겼다고 걱정했다. 장모님은 한 번 마음을 먹으면 결코 물러서지 않는 아내의 성격을 상기시키기도 했다. 평소에 고집을 부리는 성격은 아니지만 한 번 고집을 부리면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는 점에서 석 과장이나 아내나 딸아이는 마찬가지였다.

상념에 빠져 있는 사이 전화벨이 울린다. 석 과장은 전화기를 든다.

“기획실 이 과장입니다.”

석 과장은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잠시 망설인다.

“무슨 일입니까?”

“히말라야 론칭 관련 자료 일체를 넘겨주셨으면 합니다. 김 부장님께서 말씀 안 하시던가요?”

“급하게 네팔에 가셨고, 그런 지시는 받지 못했는데요.”

“죄송하지만 석 과장님의 컴퓨터는 켜 있나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석 과장님께서는 컴퓨터가 켜있을 때만 자료 제공을 하실 수 있다면서요? 김 부장님께는 제가를 받은 사항입니다. 보도자료를 시급히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급합니다. 보내주시죠.”

석 과장은 이 과장이 이죽거리자 다시 속이 끓기 시작했다.

“김 부장님께서 핸드폰 로밍을 해서 네팔에 가셨을 테니까 확인되면 바로 보내겠소.”

“석 과장님께서는 지금 고의적으로 기획실 업무에 방해를 하고 계십니다. 바로 보내주시죠.”

“확인이 되지 않는 한 절대 보낼 수 없어요. 확인하고 바로 보내겠소.”

“석 과장님, 정말 이러실 겁니까? 더 이상 참을 수 없군요. 저도 가만있지는 않겠습니다. 두고 보시죠.”

이 과장은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는다. 전화가 끊기자 석 과장은 바로 김 부장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넣는다.

“아, 내가 깜박했네. 아직 급한 상황은 아니라서 갔다 와서 보내려고 했지. 보내줘.”

석 과장은 전화를 끊고 관련 자료를 기획실 자료실 폴더에 바로 올린다. 후배에게 채근을 당하고 애써 만든 자료를 허무하고도 굴욕적으로 보내줘야 하는 상황에 화가 났으나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한 30분이 지났을까. 기획실장과 이 과장이 사무실로 들이닥친다. 석 과장은 대번에 아이들 싸움에 부모가 나선 꼴이라는 것을 알아채자 인상을 구긴다.

“석 과장, 우리 이 과장이 정식으로 자료 요청을 했는데 거부했다면서요?”

“김 부장님께 확인하고 바로 보냈습니다.”

기획실장은 주춤했으나 이왕 벌어진 일이라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풍긴다.

“내가 듣기로 이번 일만 그런 게 아니라 기획실 일이라면 사사건건 걸고넘어진다는데 그 이유가 뭡니까?”

김 부장도 없는 마당에 마케팅부는 어쨌거나 선장 잃은 배다. 직원들의 시선이 함부로 덤벼온다. 그러나 직원들의 표정도 불쾌한 것이 역력했고, 석 과장도 속이 편할 리 없다.

“저는 기획실 일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 이유가 없습니다.”

“이거 봐요, 석 과장! 우리 이 과장이 자료 요청을 했는데 후배라고 욕을 했다면서요? 지금 당장 사과하세요.”

“사과할 수 없습니다.”

“석 과장, 이곳은 지성인들이 모여서 만든 사회이고 조직입니다. 서로를 존중하지 않으면 질서가 무너지는 법이에요. 지금 당장 사과하세요.”

“저는 욕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이 과장에게 야라고 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야라는 말이 욕입니까, 충고죠.”

석 과장이 대꾸하자 상황을 지켜보던 몇몇 직원이 낄낄거린다. 그러자 기획실장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면서 목소리의 톤을 높인다.

“석 과장, 지금 나랑 말장난하자는 겁니까? 지금 당장 사과하세요.”

“사과도 했습니다. 저쪽이 받아들이지 않았나 보죠.”

석 과장은 어이가 없어 시선을 돌려 이 과장의 눈을 노려본다. 비웃는 듯한 이 과장의 시선이 느껴지자 아닌 게 아니라 주먹이라도 날리고 싶은 심정이다. 공적인 일은 공적으로, 사적인 일은 사적으로 풀 필요가 있다.

“은행 문 닫았는데 뒷문으로 들어와 돈을 찾겠다고 하면 마감 다 했는데 일하는 사람이 기분이 좋겠습니까? 그래도 해줄 수 있지만 사장님께서 대외비로 하라고 지시하셨다는데 그런 자료를 어떻게 함부로 내보냅니까? 이 과장은 입사 후배라서 믿을 수야 있지만 컴퓨터를 끄고 퇴근하는 선배한테 당장 컴퓨터를 켜고 자료를 보내라니 야라는 말이 안 나온 게 이상하죠.”

사장의 지시가 있었다는 말은 효과가 있다. 기획실장은 화는 나지만 어쩌지 못한다.

“그리고 이 과장에게 저는 분명히 말했습니다. 오늘 자료 요청 건은 저희 부장님께서 네팔에 가셨는데 확인하고 바로 보내겠다고 했습니다. 또 그렇게 했고요.”

기획실장은 이 과장을 잠시 매서운 눈으로 돌아본 후 화를 누그러뜨리며 말한다.

“좋소. 일단 자료를 보냈다니까 참겠습니다. 그렇지만 분명히 해둘 게 있소. 기획실에서 자료요청을 하는데 고의로 업무를 방해하거나 지연시키면 나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이번 건은 잘잘못을 분명히 따질 겁니다. 그렇게 아세요.”

기획실장은 그렇게 말하고서 휑하니 사무실을 나선다. 이 과장도 주춤주춤하더니 기획실장을 따라나선다.

“석 과장님, 우리 일에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건 이 과장 저 새낍니다. 여기에 있다가 간 놈이 왜 저러는지 모르겠어요. 속은 시원하지만 어쩌자고 기획실장을 건드리십니까. 기획실장 파워를 모르고 그러세요? 아휴, 미치겠네.”

누군가의 말이 귓전에 흘렀지만 석 과장은 아무 대답을 하지 않는다. 서로의 말다툼을 기획실장에게 일러바친 이 과장이나 그런 문제로 다투는 석 과장 본인이나 아무리 생각해도 유치하다는 생각이 든다. 무력감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따또빠니를 위한 성공의 아침

제품은 출시되었고, 텔레비전 광고가 방송을 탔다. 히말라야는 콜라보다는 다섯 배나 비쌌고, 일반 물값의 10배로 책정되었다. 500원짜리 껌이 5,000원으로 상승한 격이었다. 한국암예방재단 공식인증 기능성 음료라는 것을 전면에 내세웠고, 영국암센터의 추천 상품으로 뒷받침했다. 텔레비전 광고도 처음의 안에서 큰 틀은 바뀌지 않았지만 다소 수정은 있었다.


Na : 지금 네팔 따또빠니에서는 잠자기 전에 반드시 히말라야를 마십니다. 청정무구지역 네팔 따또빠니가 암과 비만 예방을 약속합니다. 한국암예방재단 의사들도 인증한 기능성 음료, 히말라야!


네팔 트샴파스트족이 살고 있는 히말라야산맥 인근의 따또빠니를 배경으로 한 광고였다. 실재로 트샴파스트족 사람들도 광고에 동원했다. 카피가 너무 평범하고 약하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따또빠니에 펼쳐지는 풍광과 부족들의 생생한 비주얼에 승부를 건 셈이었다. 물론 15초 동안에 방송되는 광고에 모든 메시지를 담자니 그도 죽을 맛이었을 것이다. 광고는 먼저 <트샴파스트족 편>이 먼저 나갔고, 후속으로 <어린이 유치원 편>이 제작에 들어갔으며, 향후에 <성인용>과 <노인용>도 연타로 광고방송을 내보낸다는 복안이었다.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제일 먼저 반응을 느낄 수 있는 곳은 인터넷이었다. 원료인 히말라야시다는 물론이고, 따또빠니라는 지명에 대한 관심도가 거세게 일어났다. 일부 네팔에 갔다 온 배낭족들의 따또빠니 전경 사진이 인터넷 카페에 올라오면서 관심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났다. 발 빠른 여행사에서는 따또빠니로 떠나는 여행상품을 내놓았다. 인터넷 검색어 순위도 따또빠니, 히말라야시다, 트샴파스트족 등 3개가 순차적으로 10위 안에 올랐다. 애초에 소비자 타깃은 운동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30~40대 직장인과 주부로 삼았지만 남녀노소를 따질 것도 없이 암과 비만을 예방한다는 음료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영국암센터의 후원 상품이라는 것과 한국암예방재단 암 전문의의 인증 상품이라는 것도 주효했다.

히말라야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은 곧장 매출로 이어졌다. 전국 각지의 지점으로부터 쉴 새 없이 주문이 쏟아졌다. 갑자기 늘어난 주문 때문에 제품 출하부서에서는 새로운 직원을 뽑기가 바빴다. 한 달이 지나자 매출이 50억 원으로 집계되었다. 다시 열흘이 지나자 쉽게 50억 원이 달성되었다. 공장 증설에 따른 논의가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말이 나돌았으나 도대체 어느 정도의 규모로 잡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반발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었다. 경쟁 음료 업체로부터 불공정 제소가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특별히 문제를 삼는 부분은 제품의 효능이나 기능이 아니라 가격이었다. 회사에서는 경쟁 업체가 특별히 가격을 문제 삼는 것이라기보다 자신들도 제품을 만들겠다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였다.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하면서 매출은 하루가 다르게 껑충 뛰었다.

사장의 호출을 받고 마케팅부 김 부장과 석 과장은 사장실 입구에 도착한다. 그곳에는 이미 라만차식품중앙연구소 조용원 소장도 당도해 있다. 조 소장은 석 과장과 눈이 마주치자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악수를 청한다.

“석 과장, 수고했네.”

석 과장은 조 소장의 손을 굳게 잡는다.

“덕분입니다.”

“안으로 들어오시랍니다.”

조용원 소장, 김 부장, 석 과장이 사장실로 들어선다. 임원들과 협의를 하고 있던 사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일행을 맞는다.

“이번 대박의 공신 3인방이시로군. 어서들 오세요.”

사장은 조 소장, 김 부장, 석 과장의 순서로 일일이 악수를 나눈 후 의자에 앉을 것을 권한다. 모두 자리를 잡고 앉자 이윽고 그는 다시 입을 연다.

“더 일찍 불렀어야 했는데 보시다시피 너무 정신이 없어요. 수고들 많았습니다. 라만차의 돈키호테처럼 불굴의 의지로 이 난관을 해쳐나간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잠시 뜸을 들인 후, 사장은 말을 잇는다.

“어이, 석 과장! 당신 성깔 내가 일찍부터 알아봤다니까.”

주변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모두 웃음을 터뜨린다. 석 과장은 잠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인다.

“이번 공로를 치하해서 라만차식품중앙연구소 조용원 소장은 부사장으로 임명합니다. 연구소는 그대로 맡아주세요. 에, 그리고 마케팅부 김동원 부장은 업무를 원만히 처리한 공로를 높이 사서 이사로 임명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히말라야 재론칭 기획안을 처음으로 입안하고 진행한 석현우 과장은 차장으로 임명하고 포상금으로 1억 원을 하사합니다.”

사장이 잠시 입을 다물자 사람들이 탄성을 지른다. 더 놀란 것은 석 과장이다. 진급은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었지만 포상금은 상상을 초월한 액수다.

“분명히 말하지만 석 과장처럼 회사에 막대한 이익을 발행시킨 부분에 대해서는 앞으로 직원들에게 더 파격적인 예우를 할 것입니다. 필요하다면 10억 원도 줄 것이고, 100억 원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이상입니다.”

사장이 말을 마치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잠시 후, 사장은 다시 말을 이었다.

“아, 그리고 내일 히말라야 제2 공장 기공식에 3인방 모두 참석해 주시길 바랍니다.”

사장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모인 사람들도 모두 일어선다. 다시 사장은 사람들과 일일이 악수를 한다. 사장실에서 빠져나온 사람들도 서로 악수를 하기가 바쁘다. 그러다 마케팅부 김 부장이 석 과장의 엉덩이를 장난스럽게 찰싹 때리며 말한다.

“아이고, 요 예쁜 것!”

석 과장은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으나 내심 흐뭇하다. 구름 위에 올라탄 기분처럼 마음이 들뜨기 시작한다. 김 부장과 석 과장이 사무실에 들어서자 박수가 터져 나온다. 이미 소문은 퍼질 대로 퍼져 있었다. 여기저기서 한턱내라는 말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히말라야의 성공에 관해 굳이 공치사를 따지는 문제가 있었다면 3인방이 아니라 4인방을 운운해야 옳았다. 재론칭을 기획한 석현우 과장이 첫째라면, 과학적 입증과 토대를 마련한 조용원 소장이 둘째, 원료의 공급과 따또빠니를 발견함으로써 히말라야의 붐을 조성한 시토 박이 셋째, 그리고 한국암예방재단 소속 의사들의 추천으로 인증마크를 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로운 실장이 그 뒤를 이을 수 있었다.

그러나 각자 맡은 역할들이 어느 것 하나 빠져서는 곤란했지만 보상이 다 같았던 것은 아니었다. 최소한 석 과장과 김 부장과 조 소장은 파격적으로 승진을 했다. 반면 네팔 코리아의 시토 박은 물질적 혜택의 최대 수혜자였다. 네팔에서 공급하는 원료 히말라야시다의 독점권을 가지고 있었는데, 영국에서의 성공도 모자라 한국에서의 폭발적인 반응은 어마어마한 이익을 가져다주었을 것이 뻔했다.

어떻게 보면 가장 억울한 사람은 이로운 실장이었다. 그는 히말라야시다를 의료용으로 활용할 경우에 대한 독점권은 받아냈지만 당장 실용화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사외 이사로서 월급 형태로 섭섭하지 않을 정도의 비용만 지급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석 과장이나 조 소장 역시 이러한 대우가 내심 미안하고 불편한 부분이 있었다.

직원들의 축하를 받는 사이 석 과장의 책 상 위에서 전화벨이 울린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마케팅부 석현우 과장입니다.”

“대한일보 박인후 기잡니다. 히말라야를 성공으로 이끈 장본인라고 들었습니다. 포상금도 1억 원이라면서요? 집중인터뷰를 하고 싶은데 시간을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상한 일이다. 사장실에서 나온 지 30분도 되지 않았는데 포상금의 액수가 알려진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저…… 실례지만 기자님 그런 내용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무슨 내용이요?”

“포상금이 1억이라는 것을 어떻게 아신 거죠? 결정된 것은 채 30분도 안 되는데요.”

“아닙니다, 오전에 라만차식품 기획실 명의로 이미 보도자료가 배포됐어요. 아마 연합뉴스에는 이미 기사가 나갔을 겁니다.”

인터뷰 날짜를 정하고 기자와의 전화를 끊고서야 석 과장은 상황을 유추하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진급이나 포상금은 이미 결정한 일이었고, 언론에 보도자료가 나간 후 기사가 나오기 전까지는 모두에게 함구령이 내려진 셈이다. 자신을 화제로 한 이야기들이 남몰래 돌아다니기 시작한 것을 의식하자 석 과장은 얼굴이 굳어진다. 이윽고 다시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한다.


닭들의 회의를 멈춰라

핸드폰에서 모닝콜이 울린다. 석 차장은 침대 머리맡에 놓여 있는 핸드폰을 집어 들고 얼른 버튼을 눌러 소리를 잠재운다. 아내와 딸아이는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다. 결과가 좋으면 제아무리 부조리한 과정도 다 좋은 법일까. 석 차장의 히말라야 성공신화가 알려지자 일단 모든 갈등은 봉합되었다. 아내도 남편의 성공이 나쁘지 않았는지 표정이 밝아지면서 먼저 말을 건네 왔다. 딸아이 문제로 앙금이 남아 있는 것은 사실이었으나 아내는 아이가 다시 침대로 건너와 잠잘 수 있도록 허락했다.

석 차장은 조심스럽게 아내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갖다 댄다.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냄새를 맡아본다. 로션이거나 향수이거나 살냄새이거나 뭔가 얇게 흐르는 향기가 느껴진다. 그렇다고 강렬한 것도 아니었고, 굳이 코를 바짝 들이대지 않고서야 맡을 수 없는 냄새다. 그는 다시 아이의 얼굴에 코를 들이댄다. 잠들기 전에 목욕을 한 탓인지 유아용 샴푸 냄새만 풍길 뿐 아이에게서는 특별히 다른 냄새가 나지 않는다. 아이 특유의 살냄새나 젖비린내가 날 법도 한데 아무리 애를 써도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는다. 어스름한 어둠 속에서 석 차장은 딸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아이는 왜 아내를 거부하는 것일까. 파양의 후유증이 그렇게 깊었던 것일까.

“일어났어요?”

“응. 아이 때문에 힘들지?”

“아이도 전처럼 막무가내는 아닌데 여전히 냉랭한 기분은 남아 있어. 처음에 비하면 지금이 어디야. 그나마 습관이 들어버렸어. 그러나저러나 하루도 안 빠지고 그렇게 술을 마셔대니 몸이 어디 버티겠어?”

“술주정을 하던가?”

“술주정이라기보다 기분이 많이 좋았나봐. 아이하고 나한테 입을 맞추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니까.”

“내가 그랬나?”

“어머님이 홍삼을 보내오셨어. 오늘부터 그거 마시고 당분간 술 좀 끊어. 북어국 끓여 줄 테니까 오늘은 아침 먹고 가.”

“아냐, 늦었어. 회사에서 먹으면 돼.”

“당신 늘 그렇더라.”

“뭐가?”

“늦지도 않았는데 맨날 같은 말만 해. 아냐, 늦었어. 회사에서 먹으면 돼.”

“당신도 늘 그렇더라. 한 번도 끓여주지 않으면서 같은 말을 반복해. 북어국 끓여 줄 테니까 오늘은 아침 먹고 가.”

석 차장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켠다.

“그런데 시사프로그램 예고편 봤어?”

“시사프로그램? 그게 왜?”

“히말라야가 암과 비만 예방에 정말 효과가 있나, 없나 다음 주에 방송을 한다고 예고편을 내보냈던데?”

“글쎄? 나는 들은 얘기가 없는데. 정말 예고편이 나갔어?”

“응. 어젯밤에 떴으니 당신은 못 봤겠지.”

석 차장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화장실로 향한다. 화장실에 들어선 그는 세면대로 다가가 물을 튼다. 흐르는 물에 손을 담그고 거울을 바라본다. 술에 찌들어 일그러진 표정을 짓는 사내가 거울 속에 서 있다. 석 차장은 일이 잘 풀려 왔는데 아무래도 심상찮은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시사프로그램에서 히말라야에 대한 효능을 따지겠다는 말이 아닌가. 방송에서 정면으로 히말라야에 대해 다룬다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그는 쓴웃음을 흘린다. 그러자 거울 속에서는 풀이 죽은 표정의 사내가 얼굴을 구기고 있다.


*


히말라야는 몇 달 사이에 최고의 히트 상품으로 주목을 받았고, 과장이 된 말이긴 하겠으나 히말라야 때문에 경쟁 업체들의 식음료 판매 실적이 초토화 됐다는 얘기도 떠돌았었다. 인터넷에 소개된 바에 따르면 히말라야의 성공 요인은 크게 3가지였다. 첫째는 맛이었다. 히말라야는 기존의 전통 차나 당분이 많이 함유된 음료가 가지고 있는 극단적인 맛을 상쇄했다는 지적이 먼저 뒤따랐다. 맛이 전혀 없거나 쓴맛이 아니고 그렇다고 당분이 강한 음료의 성격도 아닌데 거부감 없이 은은하게 달콤한 맛을 내는 원인을 알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둘째는 두말할 것도 없이 기능성 음료로서의 효능이었다. 암과 비만을 예방할 수 있다는 효능은 그 어떤 업체도 따라올 수 없는 메리트였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나 암과 비만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고, 이 같은 걱정을 풀어준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셋째는 생소하지만 청정무구지역인 네팔의 따또빠니에 대한 동경이 소비를 자극할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그러나 텔레비전 시사프로그램에서 히말라야의 효능에 대한 취재가 진행 중이었고, 예고편이 나간 후로 진실과는 상관없이 매출이 3일 동안 20%씩 떨어졌다는 보고서가 마케팅 부서에 나돌았다. 아직 히말라야에 대한 성분 분석도, 건강을 위한 기능성 여부도, 그렇다고 사람에 대한 유해성 문제도 제기되지 않았고 단지 방송국 프로그램에서 정면으로 진단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매출이 매일 20%씩 떨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회사에서는 총체적 난국으로 규정하고 종합대책회의가 소집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히말라야 공장에 대한 증설이 전격적으로 단행되어 기공식이 있었고, 연말까지 매출이 1,000억 원까지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 상황이었다. 히말라야에 대한 시사프로그램의 방영은 경우에 따라서는 회사의 존립 근거를 가늠할 수 있는 문제여서 여간 심각한 게 아니었다.

“골치 아프네, 골치 아파.”

대책회의가 열리기에 앞서 조용원 부사장이 석 차장과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혼잣말을 한다. 사안이 중요했던 만큼 네팔 코리아의 대표 시토 박도 귀국했고, 사외 이사인 이로운 실장도 불려왔다.

“어떻게든 방송국 쪽에 손을 써야 하지 않을까요? 맥없이 당할 수는 없잖습니까?”

“그러게. 방송에서 식품을 다룬다고 했으면 부정적인 면을 부각하지 결코 긍정적인 내용을 소개할 리가 없겠지. 골치 아프네, 골치 아파.”

석 차장은 이로운 실장이 다가오자 가볍게 목례를 한다. 그러자 이 실장은 웃는 낯으로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한다. 석 차장은 이 실장과 악수를 나누며 얼핏 가까운 기억을 떠올린다. 무턱대고 이 실장의 사무실로 찾아가던 장면이 머릿속을 스친다. 특별한 혜택도 없는데 물심양면으로 애를 써준 이 실장을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든다.

“바쁘다는 핑계로 그동안 찾아뵙지 못해 정말 송구합니다.”

“이렇게 회의 때 보는데 뭘. 나중에 한잔합시다.”

이 실장이 자리를 옮겨 조 부사장과 악수를 나누는 사이 김 이사가 대책회의의 시작을 알린다.

“대책회의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자리에 앉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자리를 정돈하는 사이에 몇 가지 사항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지는 못하셨지만 사장님께서는 이번 사항을 예의주시하시고 계시며 대책을 강구하라는 지시가 있으셨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이번 NBS 방송국의 시사프로그램인 <소비자시대>에서 ‘히말라야 효능은 있다, 없다’가 앞으로 4일 후에는 방송을 탈 예정입니다.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이번 회의의 안건입니다. 오늘 모이신 여러분들께서는 한 분도 빠짐없이 의견을 개진해주시기 바랍니다. 회의의 순조로운 진행을 위해서 제가 서 있는 오른쪽 기획실장님부터 저 끝에 조용원 부사장님까지 순서대로 말씀을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흐른다. 작심한 듯 기획실장이 포문을 연다.

“에, 이번 사건은 우발적으로 생긴 사건이 아닙니다. 이미 예견된 상황이라는 것이죠. 제가 보기에 방송국에서 우리 제품 히말라야를 다룬다면 틀림없이 암과 비만의 예방 효과가 정말 있느냐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에 대한 준비가 완벽할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암 예방에 관한 효능을 살펴봅시다. 물론 연구논문과 임상실험 결과가 있다고는 하나 이와 같은 효능이 있다는 것은 소비자들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절차와 방법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러자면 오래전부터 국내에 학술단체를 조직한다거나 그러한 연구결과를 지속적으로 언론을 통해 발표함으로써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했던 것입니다. 하나의 음식문화가 그 나라, 그 사회에 스며들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과 치밀한 전략이 선행되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번 히말라야 론칭건은 마케팅 부서가 전담하여 진행함으로써 객관적이고도 과학적인 전략과 전술을 적용하지 못했으며, 그에 따라 반발적 차원에서 방송국에서 취재가 시작된 것입니다. 이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마케팅 부서가 져야 할 것입니다.”

사회를 보고 있던 김 이사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김 이사는 반론을 펴고 싶다는 표정이었지만 순차적으로 발언을 하기로 한 이상 어쩔 수 없다. 기획실장이 직격탄을 날리자 기획실 이 과장의 발언이 이어진다.

“그동안 저도 마케팅부에서 전담하고 있었던 히말라야 론칭건을 지켜보면서 답답한 마음을 어쩔 수 없었습니다. 마케팅부는 방송국이 얼마나 무서운 줄도 모르고 안이한 대처와 정보를 독점하는 태도를 일관되게 보여 왔습니다. 예를 들어 보도자료 하나를 쓰려 해도 마케팅부의 담당자는 컴퓨터를 방금 껐다는 이유만으로 자료요청을 거절했습니다. 사안이 급하거나 말거나 자신만은 제 시간에 퇴근을 해야겠다는 태도에 저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쨌거나 이번 방송국 보도건은 마케팅부의 정보 독점력이 빚은 결과라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사회자로서 한마디 하겠습니다. 마케팅부가 정보를 독점했다는 것은 오해입니다.”

그러자 기획실장이 나섰다.

“이 자리는 변명을 위한 자리가 아닙니다. 순차적으로 발언을 하기로 했고, 이유나 설명이 어찌되었든 처음부터 하고 싶은 말을 막으면 어쩌자는 겁니까?”

화가 난 표정이 역력한 김 이사는 가까스로 참으며 말을 잇는다.

“알겠습니다. 어쨌든 순차적으로 돌아가면서 발언을 해주시되 비난만 하실 게 아니라 방송국에서 보도할 내용에 관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그 점을 염두에 두시고 말씀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자 기획실 박 차장이 말을 이었다.

“저는 방송국에서 히말라야 효능에 대한 진실을 가리려고 들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반박자료를 준비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볼 때 암 예방에 대한 반박자료는 어느 정도 준비가 되었다고 봅니다만 비만에 관한 근거가 매우 약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제품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비만이면 비만, 암이면 암, 효능을 말할 때 이 둘 중에서 하나만 골랐어야 했는데 너무 욕심을 부렸다는 것입니다. 저는 마케팅부에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석 차장은 동기인 박 차장의 발언이 뼈아프다. 박 차장은 어차피 기획실 직원이고, 그의 질문도 사실 무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박 차장에게서 평소에 들었어야 할 얘기가 지금 흘러나왔다는 사실이 석 차장으로서는 못내 아쉽다.

“저도 마케팅부에 묻고 싶습니다. 이번 광고를 보니까 동시녹음 방식으로 촬영을 했던데 비용문제도 그렇고 도대체 이런 방식이 무슨 효과를 올렸는지 알고 싶습니다.”

“사회자로서 다시 한번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회의는 광고의 효과를 따지는 자리가 아니고 방송국에서 시사프로그램을 내보낼 예정인데……”

그때 다시 기획실장이 김 이사의 말을 자른다.

“이거 보세요, 김 이사님! 그렇다고 이 자리가 마케팅부의 변명이나 듣자는 자리는 더더구나 아니잖습니까? 여기에 모인 분들이 궁금한 것이나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것까지 입을 막으면 어쩌자는 것입니까?”

“실장님, 누가 지금 입을 막았다는 겁니까?”

“돌아가면서 발언을 하고 있는데 지금 이사님께서 진행을 못하게 하시는 거 아닙니까?”

화가 치밀어 오르는지 김 이사는 얼굴이 더욱 붉어진다.

“좋습니다. 일단 돌아가면서 모든 분들의 말씀을 듣겠습니다. 단 한 분에 2분씩만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잠시 침묵이 이어지다가 누군가가 말한다.

“저는 이번 론칭의 담당자이신 석 차장님의 언론적 태도가 이번 사건의 빌미를 제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히말라야의 성공신화를 소개한 신문 기사를 봤는데 포상금을 1억 원이나 받게 되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밝히고 있었습니다. 지금 세계 경제는 물론이고 국내 경제도 어려운 마당에 1억 원이라는 큰돈을 받게 되었다고 떠들어대니 방송국에서 가만히 있었겠습니까? 이것은 분명히 괘씸죄에 걸린 것이 분명합니다.”

다음 차례는 다행히 석 차장이었다.

“마케팅 담당자로서 이번 일에 심려를 끼치게 된 것에 대해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쨌든 저는 신문에 나가서 1억 원의 포상금을 받게 되었다는 말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실재로 아직도 그 돈은 받지 못했고요. 제가 알기로는 이미 기자를 만나기도 전에 기획실 명의로 보도자료가 배포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이것 봐요! 기획실에서 보도자료가 나간 것은 사장님의 지시 때문이었어요. 그것을 왜 기획실 문제로 돌립니까?”

기획실장이 나서자 이번에는 김 이사가 말을 자른다.

“다시 한번 강조해 드립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든 상관없으니까 한 분에 대해서 2분간 발언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이를 지키지 않으신다면 사회자 직권으로 대책회의를 끝내겠습니다. 다음은 사외 이사이신 이로운 실장님께서 발언해 주십시오.”

김 이사가 이로운 실장을 소개한다.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이로운 실장은 짧고 단호하게 말한다.

“뭐라고요?”

“저는 어떤 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이 실장이 단호한 태도로 다시 말하자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잠시 후, 이 실장은 벌떡 일어나 자신이 들고 온 서류를 들고 회의실을 빠져나간다. 이 실장이 밖으로 나가자 조용원 부사장이 그를 따라나선다. 석 차장도 자리를 털고 일어나 회의실 밖으로 나간다. 회의실 밖에서는 이로운 실장과 조용원 부사장이 마주선 채 대화를 나누고 있다.

“상처가 난 닭은 따로 격리시켜야 합니다. 주변에 있는 다른 닭들이 상처 난 닭의 상처를 번갈아 가면서 쪼아대기 때문이에요. 저 회의실 안에서는 지금 닭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고 있는 겁니다. 저렇게 마케팅부만 계속 쪼아대면 대책이 나옵니까? 사장님도 문제가 있어요. 지금 사안이 얼마나 심각한지 모르시는 겁니까? 왜 회의에 안 나오시는 겁니까? 저대로 방송 나가면 히말라야는 물론이고 라만차식품이 다 날아간다는 사실을 모르세요?”

“무슨 묘책이 있는가?”

“대책도 없이 여길 왔겠어요? 내가 무슨 닭대가리인 줄 아십니까?”

“자, 이렇게 하세. 내가 직접 사장님을 만나겠네. 닭들의 회의는 이걸로 끝내고 사장님을 모시고 오후에 진짜 대책회의를 하세. 됐는가?”

이로운 실장은 조용원 부사장의 말을 듣고서야 고개를 끄덕인다. 조 부사장은 회의실로 다시 들어간다. 마이크를 잡은 조 부사장이 회의를 오후로 연기한다는 말이 흘러나온다.


*

“조용원 부사장님께 보고를 받았습니다. 오전에는 난타전이 꽤 심했다고 들었습니다.”

사장이 말문을 열자 회의실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린다.

“미안하지만 이번 회의는 제가 사회를 맡겠습니다. 회의에 앞서 몇 가지 당부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지금 방송국 시사프로그램에서 히말라야에 대한 방송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첫 번째로 당부 드리고 싶은 것은 이번 회의는 잘잘못을 따지는 자리가 아니라 방송국 프로그램이 미칠 영향을 살피고 그 대책을 마련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둘째는 오늘 어떤 식으로든 대책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회의실을 나가실 수 없다는 것을 알아주십시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대책안을 발표하시는 분은 시간에 구애받지 마시기 바랍니다. 필요하다면 1시간도 좋고 10시간도 드리겠습니다. 어느 분이 제일 먼저 발표하시겠습니까?”

“사외 이사인 이로운입니다. 제가 먼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말씀해 주시죠.”

“방송국과 대기업이 전쟁을 벌이면 열에 아홉은 방송국이 이깁니다. 지금 라만차식품이 방송국과 전쟁을 벌이겠다는 생각이 있다면 당장 그만두십시오. 어쨌든 라만차식품은 생존의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 상황을 벗어나는 길은 차도살인(借刀殺人)뿐입니다.”

“차도살인이요?”

“그렇습니다. 아시겠습니다만 차도살인은 남의 칼을 빌려 사람을 죽인다는 뜻이고 음험한 수단을 이르는 말이죠. 상황을 냉정히 돌아볼 때 이번 싸움은 방송국과 라만차식품의 전쟁도 아닙니다. 방송국과 한국암예방재단이나 의사들과의 전쟁으로 몰아가야 한다는 것이죠. 현재 방송국에서는 한국암예방재단 소속 의사들은 물론이고, 암전문의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이철승 박사님께도 취재 일정이 잡혀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라만차식품은 간접적인 방법과 직접적인 방법을 동시에 추구해야 합니다. 먼저 간접적인 방법은 히말라야의 효능에 관한 과학적 인증 싸움은 라만차식품이 직접 나설 게 아니라 의사들에게 맡기자는 것입니다. 다만 방송국에서 왜곡할 수 없도록 조치가 필요합니다. 일단 저는 한국암예방재단 소속 의사들께는 방송국 인터뷰에는 응하되 녹음기를 휴대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물론 기자들에게 인지를 시켜달라고 했고요, 만약 녹음된 인터뷰 내용이 왜곡 보도가 될 경우에는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할 것을 기자들에게도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이철승 박사나 방송국 출연이 예상되는 다른 인터뷰이들에게도 이 같은 조처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직접적인 방법도 필요합니다. 대책위를 구성해서 방송국 프로그램 담당 피디를 오늘이라도 찾아가서 직접 만나야 합니다. 그쪽에서 준비한 내용도 탐색할 수 있고, 그에 따른 대책도 마련할 수 있습니다. 직접 담당 피디를 만나 압박도 하고 설득도 해야 합니다. 이상입니다.”

이로운 실장이 말을 마치자 사장의 얼굴에는 웃음이 한가득 피어오른다.

“방안은 다 나와 버렸군요. 이 실장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자, 이렇게 하겠습니다. 기획실을 중심으로 방송국에 출연하게 될 유명한 암 전문의 예상 명단을 모두 뽑아주시고 그분들에게 연락해서 상황을 설명하세요. 인터뷰에는 녹음기를 반드시 휴대해 줄 것과 왜곡이 되지 않는 선에서 인터뷰가 정상적으로 마무리된다면 연구비 지원을 약속하셔도 좋습니다. 그리고 이로운 실장님을 중심으로 연구소 조용원 부사장님, 마케팅부 김 이사님, 석 차장님께서는 오늘 당장 방송국 담당 피디를 항의 방문해 주시고, 상황을 보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방송국 프로그램이 끝날 때까지 매일 오전과 오후에 대책회의를 열겠습니다. 오늘 대책회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장호원으로 보내는 메일 6

선배님께.

저, 현웁니다. 그동안 연락을 못 드렸군요. 잘 계시죠?

저는 다시 또 바빠졌습니다. NBS 시사프로그램인 <소비자시대>에서 ‘히말라야 효능은 있다, 없다’가 방송될 예정인데, 보나마나 우리 제품의 효능에 대해 물고 늘어질 것이라서 고민입니다. 언론사를 상대로 싸움을 벌인다는 것이 무모한 일이겠지만 걱정입니다. 오늘 방송국에 찾아갈 예정이었습니다만 내일 정식으로 그쪽 프로그램과 인터뷰를 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그야말로 내일은 방송국과의 결전의 날이 될 것 같군요.

상처가 난 닭은 따로 격리시켜야 한다면서요? 주변에 있는 다른 닭들이 아픈 닭의 상처를 번갈아 가면서 쪼아대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오늘 회사에서는 닭 회의가 열렸습니다. 이번 히말라야 론칭 문제로 가장 공이 큰 저와 마케팅부를 사람들이 사정없이 쪼아대는데 정말 미치겠더군요.

그런데 이번 위기 때 대안을 내놓은 사람은 회사 내부의 직원이 아니라 사외 이사였습니다. 그 사람을 볼 때마다 저는 깜짝깜짝 놀라게 됩니다. 뭐라고 해야 할까요...... 그 사람은 위기를 즐기는 사람 같다고나 할까요? 위기가 오면 당황하기 마련인데 그 사람은 그럴 때 더 침착해지는 모양입니다. 모르긴 해도 그 사람은 위기 대처 능력이 습관화된 인물 같아요.

습관이 되어야 변화는 완성된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것 같습니다. 생각하고, 훈련하고 실행하는 것들이 반복되면 우리에게 습관이 생기게 마련이겠죠. 물론 저 자신도 위기에 대한 대처능력이 습관화 되지 못해 늘 우왕좌왕하는 편입니다.

어쨌든 저는 사외 이사를 옆에서 보면서 습관 그 자체가 지속적인 실행의 결과인 동시에 다음 실행을 위한 에너지가 된다는 사실을 느꼈습니다. 실행이나 행동에는 운동의 관성법칙이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아시겠지만 정지 상태에 있는 바위를 움직이게 하려면 엄청난 힘이 필요하죠. 반대로 굴러가고 있는 바위를 멈추게 할 때도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구르기 시작한 바위에는 작은 힘만 가해도 가속도를 붙일 수 있습니다. 처음으로 무엇인가 실행에 옮기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첫 번째 실행에 옮기고 나면 점차 가속도가 붙게 되어 있고, 결국은 습관이 만들어 지겠죠. 이런 상태에 이르면 우리는 멈추지 않는 바위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습관 자체가 우리의 에너지가 되는 셈이죠. 의식보다 효율적이며 지속적인 무의식에 업무를 위임해 놓은 덕분일 것입니다.

선배님, 습관이 생기면 우리는 변화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리스토델레스는 “사람은 반복적으로 행하는 것에 따라 판명되는 존재”라고 했다고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특히 “우수성이란 단일 행동이 아니라 바로 습관”이라고 단정했다고 하더군요. 즉 한 사람의 인격은 단 한 번의 행동으로 판단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되는 행위에 의하여 평가된다는 것이죠. 저도 내공이 쌓이면 사외 이사처럼 될 날이 오겠지요. 너무 거창한 얘기만 해서 죄송합니다.^^;;

최근에 보낸 메일을 보니 얼굴이 화끈거리더군요. 회사 일이 잘 풀려서 그런지 딸아이 문제는 덩달아 잘 풀린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아내도 딸아이도 이제 서로에 대해 습관이 돼가고 있는 모양입니다. 또 소식 전하겠습니다. 석현우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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