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의 흐림, 밤의 흐림, 모호한 흐림, 모호한 마음, 모호한 나날
회사 창문으로 보이는 풍경
새로 일하게 된 회사는 강남역이 내려다보이는 19층에 있다. 이 회사의 화장실은 문을 열고 나오면 강남이 내려다보인다. 삼성전자의 서초사옥도 보이고, 대신증권의 건물도 보인다. 온통 전면이 유리로 된 두 건물의 벽은 낮에는 하늘빛을 밤에는 강남대로의 빛을 반사한다.
오늘 아침 날씨는 최근 다른 날에 비해 꽤 맑은 편이었다. 비록 푸른색 보다는 하늘색에 가까웠지만 구름은 한 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지문 자국이 두어개 찍힌 안경을 써서 뿌옇게 보이는 것 같기도 한 날씨였다.
점심을 먹고 창문을 보자 왼쪽 끝에 있는 삼성사옥에 태양이 걸쳐 있었다. 어제 저녁에 때신증권 쪽으로 태양이 지고 있었고, 오늘 점심에 왼쪽에 태양이 보이는 것을 보아 내가 보는 창문은 서쪽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흐린 하늘이 싫다 모호한 하늘은 더 싫다
약 10년 가까이 취미로 삼고 있는 천체관측에서 하늘의 선명함은 절대적이다. 그 어떤 아름다운 천체, 우주쇼가 펼쳐져도 하늘이 흐리면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태양도 보이지 않을 때도 많지 않은가. 일식이나 월식, 슈퍼문, 레드문 등 모든 현상이 그러하다. 그래서 나는 흐린 하늘이 싫었다. 그 중에서도 오늘처럼 모호하게 흐린날은 정말로 싫다.
낮의 하늘이 흐리면, 그날의 밤하늘도 흐릴 확률이 높다. 그래서 천체관측을 하러가려다가도 낮의 하늘이 흐리면 쉽게 포기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처럼 모호한 날씨에는 포기가 어렵다. 이런 날에는 "제발 맑아져라 하늘아"라고 기도하면서 꾸역꾸역 관측지에 갔다가 허탕을 치는 일이 발생한다. 그래서 이런 날이 싫다.
그런데 요즘은 내 마음이 그렇다
모호하게 흐리다. 실력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해보니 나의 자신감에 근거가 없었다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그래서 나의 현재도 모호하다. 나는 어느정도 인간인가? 나는 얼마나 부족한가? 하고 자문한다. 상황을 알고 나의 능력을 알아야 앞으로 나아가며 문제를 해결할텐데 나는 상황도 모르고 나도 모른다. 그래서 흐리다. 그런데 이게 노력하면 맑아지는지, 노력해도 맑아지지 않은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모호하다. 나의 현재가 그렇고, 나의 미래가 그렇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야하는가?
모호한 나날의 연속
새로운 직장, 새로운 자리에 앉은지 2주가 되었다. 2주 동안 나는 새로운 동료와 나의 실력차이를 가늠해 보았다. 내가 좋아하는 만화인 '드래곤볼'의 스카우트가 이 차이를 측정했다면 아마 터져버렸을 것이다. 이들은 프로고 나는 주니어다. 프로들의 리더, 그러니까 대략 마스터(?)정도 되는 분은 말씀하신다. "정말 많이 노력해야 한다. 정말 많이! 최선을 다해라! 한마디로 존나해라!" 일단, 노력은 한다. 그런데 최선은 다해지지 않는다. 왜냐면, 모호하니까. 맨날 틀리는 기상청이라도 좋으니, 나의 내일을. 내일의 하늘을 알아봐주는 이들이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런 내가 한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