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내리는 크리스마스를 기대하며
눈의 느낌
눈이 내렸다. 펑펑 내리는 눈이었다. 요즘 나라가 너무 뜨거워서 내리자마자 모두 녹아버렸지만, 하얀 눈은 어두워진 내 마음을 닦아주었다.
눈이 내리는 하늘을 보고 있자니 처음 카메라를 잡았던 해가 떠올랐다. 나보다 먼저 카메라를 잡았던 친구에게 사진 대결을 신청했었다가 심사위원 5명의 판정 5대 0으로 완패했었다. 눈이 내리는 날 카메라를 들면 그 날 찍었던 사진이 떠오른다. 새가 알을 까고 나왔을 때 처음 본 사람을 어미로 생각하는 것처럼 나는 뷰파인더로 처음 담았던 겨울을 나의 첫겨울로 기억하는 것 같다.
눈이 내리는 날이면 자주 올라오는 사진이 있다. 펑펑 내리는 눈송이를 큼직하게 담는 사진이다. 아웃포커싱과 인 포커싱을 사용해서 배경과 조화롭게 그러면서 눈송이가 돋보이게 찍은 스타일인데, 이는 우리가 봄이 되면 <벚꽃엔딩>을 부르는 것처럼 사진쟁이들에겐 국민 컷이 되었다.
나는 청개구리다. 그래서 남들이 찍는 사진을 찍고 싶지 않았다. 눈이 펑펑 내리니까 눈의 기분을 담고 싶지만 눈 자체를 찍고 싶지는 않았다. 눈이 보이지 않지만 눈이 느껴지는 사진을 찍고 싶었다. 그런 사진은 눈이 내리는 순간에는 찍지 못한다. 눈이 내리는 동안에 눈을 담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그래서 눈이 그치길 기다렸다.
눈이 그쳤다. 눈의 기운은 남아있지만 눈은 내리지 않았다. 적막한 가운데 눈이 남겨놓은 자취를 담았다.
사진을 담고 나니 화려한 도시 야경에 가려져 있던 작은 달동네가 눈에 들어왔다.
하얗게 내린 안개가 눈을 대신해 프레임을 채웠다. 무겁게 내리쬐는 가로등이 겨울의 적막감을 더 짙게 만든다. 겨울은 외로운 계절이다. 겨울은 차가운 계절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겨울이 되면 행복해한다. 길을 어지럽히게 될 눈이 내려도 행복해한다. 추위가 손가락과 두 뺨을 아프게 해도 즐거워한다. 겨울의 시적 의미는 냉혹함이면서 동시에 따뜻함이다. 팜므파탈 같은 나쁜 남자 같은 겨울의 매력을 담아봤다.
차가우면서도 따뜻하고 날카로우면서도 부드러운 겨울. 그 감성을 코크에 담아.
생뚱맞은 이야기지만 나는 길을 참 좋아한다. 길 중에서도 골목길을 가장 좋아하는데 이유는 모퉁이를 돌았을 때 나오게 될 전혀 다른 풍경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사진 속의 언덕길은 골목길도 아닌 주제에 모퉁이를 돌았을 때 보일 모습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조금 이른 트리
나는 알레르기가 생기는 봄이 싫지만 꽃 향기가 풍기는 봄은 좋다.
나는 찌는 듯한 더위의 여름은 싫지만 빗소리가 들리는 여름은 좋다.
나는 외로운 가을이 싫지만 조용한 가을이 좋다.
나는 겨울이 그냥 싫지만 메리 크리스마스는 좋다.
겨울의 유일한 장점은 크리스마스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오직 크리스마스 때문에 겨울을 기다리고 1년 중 유일하게 챙기는 기념일도 크리스마스뿐이다. 올해의 크리스마스는 혼자 보내게 될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리스마스에 대한 나의 기대감을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