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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툰남편 김광석 Feb 06. 2017

'하트'의 <크레이지 온 유>가 슬픈 노래인가요?

장 마크 발레 作 『데몰리션(Demolition)』에 대한 생각

 잠깐, 이 이야기의 시작은 어디지?

"잠깐, 이 이야기의 시작은 어디지?"

스토리가 있는 작품을 볼 때, 그러니까 그림이나 사진 같은 작품에 들어 있는 함축적인 스토리 말고, 소설이나 영화처럼 비교적 넓은 스토리가 있는 작품을 볼 때 드는 생각이다.

물론 항상 드는 생각은 아니다. 이 생각은 스토리가 있는 작품 중에서도 심하게 몰입해서 본 작품의 경우에 기-승-전-결 중 '승'과 '전' 즈음에서 갑작스레 찾아온다. 어제 읽은 최은영의 단편 소설 「쇼코의 미소」에서 한 번, 오늘 본 장 마크 발레의 영화 『데몰리션』에서 한 번 찾아왔다. 이야기의 시작이 어딘지 궁금하다는 것은 이야기 자체를 조금 더 깊게 생각해보고 싶어 졌다는 신호다. 보통 맘에 드는 작품을 만나면 한 동안 곱씹어 느끼는 스타일이라서 이틀 연속으로 이런 느낌이 드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에 조금 특별했다. 그래서 리뷰를 남긴다. 먼저 방금 마친 영화인 『데몰리션』이다.


성공한 투자 분석가의 m&m 초콜릿 환불

제목부터 파괴적인 이 영화『데몰리션』의 시작은 어디일까? 스크린이 열리고 처음으로 들린 대사인 "소리 좀 줄여도 돼?"일까? 아니면, 어딘가 불안한 오프닝 중에서 순식간에 찾아온 줄리아(주인공 데이비스의 아내)의 죽음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아내와 처음 만난 순간 들렸던 말이자, 아내의 마지막 말인 "내 거 아니다, 내 문제 아니다, 그거지?"라는 대사일까?


나처럼 이야기의 시작이 어딘지에 의미를 두는 사람이 얼마일지는 모르겠다. 학교에서 배운 것도 아니고, 어디에 쓰여 있던 것도 아니다. 그저 언젠가부터 오프닝 씬이 반드시 시작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근거로 '모든 사람이 서로의 첫 만남 에피소드를 똑같이 기억하지 않듯, 영화를 본 관객의 첫 순간도 서로 다르다.'라는 논리도 생각해냈다.

나의 경우 이 영화의 시작은 데이비스가 고장 난 m&m 자판기의 연락처를 찍는 순간이었다. 이와 같은 나의 기준에서 이 영화의 시작과 끝은 아래 두 장의 사진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왼쪽 : m&m 초콜릿이 자판기에 걸리자 연락처를 찍는 데이비스
오른쪽 : m&m 자판기의 주인인 칼에게 돈을 받는 데이비스


나 때문에 이 영화의 시작과 끝을 알아버렸다고 불쾌할 필요는 없다. 내 기준에서의 시작과 끝은 당신의 그것들과 전혀 다들 것이니까. 또한 대부분의 이야기는 그 매력이 시작과 끝에 있지 않으며, 매력을 느끼는 포인트도 사람마다 다르다. 그러니 당신의 발견을 기다리고 있을 이 영화의 포인트를 찾아보기 위해서라도 영화를 감상하길 바란다.


아이러니

나의 경우 이야기에 가장 큰 매력을 느끼는 포인트는 내가 이야기의 시작이 어딘지 궁금해 한 시점이었던 '승'과 '전'의 중간 어딘가이다. 『데몰리션』의 경우 이 장면이 그 역할을 했다.


장 마크 발레 作 『데몰리션(Demolition)』중에서


아내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거리에서 춤을 추는 데이비스의 모습으로, '파괴', '폭파', '폐허'라는 뜻을 갖고 있는 '데몰리션'이 데이비스의 내면에서 외면으로 표출되는 신호탄 같은 장면이다.

재미있는 것은 『데몰리션』에는 이와 아주 흡사한 프레임이 세 차례 더 등장한다는 것이다. 처음엔 아내가 죽기 전 자신을 묘사하는 모습이며, 두 번째는 아내가 죽은 직후 데이비스의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신호탄이 발사되기 며칠 전의 데이비스다. 나는 이 흐름이 '아이러니하다'라고 생각했다. 아내를 잃은 남자라면 멀쩡했던 모습에서 점점 초췌해져야 하는데 데이비스는 오히려 안정을 찾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제목인 'Demolition'보다는 'Construction'이 더 어울릴 정도다.



분해

나는 데이비스의 변화가 데몰리션인지 콘스트럭션인지 모호하게 보이는 것이 감독이 의도한 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이 영화의 메시지가 '파괴는 건설의 시작'이나 '모든 파괴의 끝에는 새로운 시작이 있다' 같은 뻔한 것은 아니길 바랐다. 그래서 변화 과정을 천천히 살펴봤다.

데이비스는 자신의 집을 해머, 드릴, 불도저로 파괴하는데 본격적으로 집을 파괴하기에 앞서 크고 작은 물건을 분해했다. 데이비스가 처음으로 분해한 물건은 아내가 고쳐달라고 했던 '물이 새는 냉장고'였다. 하지만 고쳐주기는커녕 파괴에 가깝게 냉장고를 분해한 데이비스는 이어서 회사 화장실에 삐그덕 거리던 문과 오류가 발생했던 컴퓨터, 깜빡이던 처갓집의 전등, 2천 불짜리 카푸치노 머신 등을 분해한다.



데이비스가 전자제품을 분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주변인들은 그를 미친 사람으로 보기 시작한다. 하지만 데이비스는 타인의 시선에 아랑곳없이 어린아이 같은 표정으로 여러 가지 물건을 분해한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관객의 입장에서 데이비스의 모습은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그의 이상 행동에는 그 만의 타당한 이유가 있고 영화 속 등장인물과 달리 데이비스를 꾸준하게 관찰해 온 관객은 데이비스가 이러한 행동을 하는 이유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영화 초반에서 편지를 통해 "장인어른께서 말씀하시길 '뭔가를 고치려면 분해한 다음 중요한 것이 뭔지 알아내야 해'"라고 자신이 전자제품을 분해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를 알고 있음에도 데이비스의 행동이 이해가 안 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냉장고, 화장실 문, 컴퓨터 따위의 잔고장보다 가장 고쳐져야 할 것은 데이비스 자신일 텐데 애꿎은 전자제품은 왜 분해하는 거야?'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이들의 눈에 데이비스는 자신에게 처한 상황을 회피하려고 파괴를 일삼는 겁쟁이로 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데이비스의 행동이 굉장히 합리적이고, 데이비스 다운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데이비스는 영화의 자신이 얻은 사회적 지위가 장인어른의 '가족경영'에 의한 것이라고 말했지만, 감독은 필과 데이비스의 언행을 통해서 데이비스가 '실력 있는 투자자였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랬던 그가 아내의 죽음으로 이후에 보이지 않던 사소한 것들이 보이거나 모든 것이 메타포로 보이는 등 자신의 내면 어딘가에 고장 난 부분이 있음을 깨달았다.



경험해보지 못한 리스크 앞에서 적은 양의 투자로 결과를 유추해보는 행동은 전략 투자의 기본적인 매뉴얼이다. 굳이 유능한 전략 투자자가 아니라도 인간이라면 자신의 위협 앞에서 여러 가지 실험적인 시도를 한다. 예를 들어 깊이가 보이지 않는 벼랑 아래로 뛰어내려야 하는 상황이라면 바닥 아래로 소리를 질러보거나 돌멩이나 모래 따위를 굴려 볼 것이다. 소리를 통해 깊이를 가늠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인간 중에서도 꽤 똑똑한 편에 속하는 데이비스의 실험은 자기 자신을 분해해 보기 전에 다른 것들을 분해하며 연습하는 실험으로 굉장히 합리적인 행동이다.


발견

그런데 이상하다. 뭔가를 고치기 위해서 분해했다면 고장 난 부분을 고친 다음 재조립하는 것도 연습해야 하는데 데이비스는 자신이 분해한 것을 재조립하지 않는다. 심지어 나중에는 아예 재조립이 불가할 정도로 사정없이 부숴대다가 이베이에서 불도저를 구입해 집의 일부를 허물기까지 한다.



그런 그의 행동에 주변 사람들은 웅성대기 시작한다. 고장 난 것은 분해해 보라고 가르쳐 주었던 필 마저도 그에게 휴식을 강요하는 등 불만 가득한 모습을 보인다. 그럼에도 데이비스는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을 답답해하는 장인어른을 어이없어한다. 혹시 데이비스가 필의 말을 잘못 알아들었던 것은 아닐까 우려되어 데이비스와 필 사이에 오갔던 말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봤다.


뭔가를 고치려면,
전부 분해한 다음
중요한 게 뭔지 알아내야 해.
자넬 강하게 할 그것.


아, 아까는 기억나지 않았던 마지막 문장이 생각났다. '자넬 강하게 할 그것.' 이 문장이 떠오름으로써 분리 후에 재조립을 하지 않는 데이비스의 행동이 이해가 됐다. 데이비스가 필의 말을 잘못 알아들었거나 정말로 미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장인의 말을 그대로 실천하는 아주 모범적인 사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은 데이비스에게 '분해'후에 '수리'하라고 가르쳐 준 적이 없다. 그는 "분해한 다음 중요한 게 뭔지 알아내야 해"라고 말했다. 그리고 발견해야 할 중요한 것으로 "자넬 강하게 할 그것"이라고 집어 주었다.

이 말에는 깊은 지혜가 담겨 있다. 무언가 고장이 났을 때, 그것을 수리한다면 파괴는 막을 수 있지만 원래의 기능에서 업그레이드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교체한 부품이 기존의 부품과 합을 이루지 못하면 기능이 다운그레이드 되기도 한다. 결국 기존의 상태에서 머무르는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필의 가르침대로 업그레이드가 가능한 부분에 투자한다면 기존의 고장 난 부분보다 더 나은 발전에 대한 가능성이 열린다.



전자제품을 분해하고, 집을 분해하면서 데이비스는 점차 더 나은 사람으로 발전해 간다. 타인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게 되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가며, 무심했던 자신이 알지 못했던 삶의 일부분도 인지해 간다.

데이비스는 아내의 무덤 앞에서 아내를 숨지게 한 운전자를 만난다. 그와 헤어진 후에 "바쁜 척 그만하고 나 좀 고쳐줘요"라고 적힌 메모지를 발견한다. 아내가 냉장고에 붙여 놓았던 쪽지다. 데이비스는 결국 눈물을 흘린다. 그러면서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따뜻한 웃음을 짓는다. 냉장고를 고쳐달라고 투정 부리는 아내에게 보여주던 건조한 웃음과도 다르고, 물건을 분해하며 보여주던 차가운 웃음과도 달랐다. 삶의 반쪽을 송두리째 파괴당했지만 전혀 허전하지 않은 꽉 찬 웃음이다.


'하트'의 <크레이지 온 유>가 슬픈 노래인가요?

이 글의 제목은 데이비스가 회사에서의 미팅 중에 "궁금한 것이 없냐"는 필에게 던졌던 질문이다. "'하트'의 <크레이지 온 유>가 슬픈 노래인가요?" m&m 자판기의 고객센터인 '캐런'의 말 때문이었다. 이 질문에는 '이 노래를 왜 슬프다고 생각하지?'라는 캐런에 대한 의문이 담겨 있다. 데이비스에게 이 노래는 전혀 슬프지 않았기에, 이 노래에 담긴 슬픔을, 그것을 느끼는 캐런의 마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하트'의 <크레이지 온 유>를 들어봤다. 이 리뷰를 쓰는 3시간여 시간 동안에 계속해서 들었다. '너에게 미쳤다'라는 내용의 가사와 멜로디에서는 '애절함'은 느껴질지언정 '슬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부족한 영어 실력 때문에 가사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지금 누군가에 미쳐있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이 노래를 다시 들었을 때, 슬픔을 느끼고 있을지 궁금하다.


『데몰리션』은 꽉 찬 영화였다. 이미 충분히 많은 이야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나 많이 남아 있다. 하지만 여기까지 읽은 사람도 드물 것 같고, 여기까지 읽은 사람이 있더라도 그를 더 이상 괴롭게 하면 안 될 것 같다. 나머지는 이 영화가 다시 보고 싶어 지는 날이 오면, 다시 한번 본 다음에 적겠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어서 당신만의 『데몰리션』을 만나고, 만약 이미 본 사람이라면 이 글의 제목에 대한 답변을 남겨주면 좋겠다. 당신에게 '하트'의 <크레이지 온 유>는 슬픈 노래인가?


장 마크 발레 作 『데몰리션(Demolition)』 공식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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