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윤 감독, 『재심』, 2017
뭐 이런 삼류 소설 같은 스토리가... 실화였어!?
2010년 영화감독 류승완은 자신의 작품 『부당거래』를 통해 범죄영화 역사에 기리 남을 명대사를 남긴다.
너 오늘부터 범인 해라
이후로 진짜 범인을 잡기보다 가짜 범인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공권력과 법조계의 모습은 영화, 드라마, 개그, 소설 등 각종 장르를 뛰어넘어 범죄물의 교범처럼 사용되고 있다. 덕분에 영화 『재심』이 시작과 동시에 드러낸 '가짜 범인의 억울한 사연'이라는 설정이 거북하게 느껴졌다. 영화 『부당거래』를 따라 만든 삼류 영화가 아닐까 우려됐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세상 털털한 변호사 준영(정우)과 세상 억울한 청년 현우(강하늘)가 이어가는 뼈대부터 말도 안 되는 설정에 '조작된 사건'의 내용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거기에 중간중간 어설픈 복선은 오락영화를 다큐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처럼 보여 안쓰럽기까지 했다.
영화가 끝나고 화면이 어두워지자 나는 '시간을 버린 것 같다'와 '내가 더 억울하다'라는 표현 중 어떤 것을 타이틀로 잡아야 나의 불만을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어두워진 화면 위로 엔딩 크레디트 대신 올라온 두 줄의 자막은 나를 다시 자리에 앉게 만들었다. 자막은 나에게 "네. 삼류 소설 같은 이 영화는 명백한 '실화'입니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부당거래』를 넘었더니『변호인』의 아류라고?
이 영화를 미리 본 어느 기자는 1천만 관객을 동원했던 영화 『변호인』과 같은 형식의 영화라고 말한다. '정의로운 변호사'가 '억울한 사건'을 위해 노력한다는 부분이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변호인』이 실제 재판 과정을 중심적으로 다루고 있다면, 이 영화 『재심』의 경우는 '재심을 열기 전'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이점이 나타난 배경은 「제작노트」에서 소개됐다.
<재심> 프로젝트는 제작에 돌입하던 당시만 하더라도 재심 판결 확정 전인 것은 물론, 사건의 진범이 잡히지도 않은 상태였다. 이 사건을 취재하던 한 기자의 제안으로 영화화가 결정된 『재심』은 영화보다 더 영화적인 소재로, 제작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 영화 『재심』의 「제작노트」 중에서
김태윤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은 가상의 재심을 열어줌으로써 청년의 억울함을 달래주고 명확한 목표를 세워주려 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실존인물이자 영화 속 주인공인 '박준영 변호사'가 영화의 개봉보다 먼저 사건을 해결해버렸으니 영화가 만들어진 후에 상황이 비슷해진 것이지 제작진이 『변호인』을 따라 만들 것일 수가 없다.
진실이 밝혀졌는데, 왜 현재 진행형인가?
그런데 제작노트를 보면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제작진은 영화를 '현재 진행형 휴먼 드라마'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아무리 제작 전에는 완료되지 않았더라도 지금의 시점에서는 이미 몇 개월 전에 종료된 사건인데 어째서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일까?
나는 이 문구가 제작진이 전하는 메시지라고 생각했다. 비록 물리적 한계로 인하여 이 사건 하나밖에 다루지 못했지만, 아직 풀리지 않은 억울함들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애원이면서 재심을 준비하는 이들에 대한 응원인 셈이다.
또한 재심이 열려야 하는 사건의 특성상 공권력의 무능 또는 부패가 주요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지금 우리나라에는 그 원인이 믿을 수 없을 만큼 거대하게 작용한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이 거대한 사건 속에는 무수히 많은 억울한 사람들이 끼어 있고, 아주 더러운 방법으로 부당이익을 취한 가해자가 포함되어 있다. 영화 『재심』은 그들 모두를 향해 '진실을 밝히기 위한 노력'은 현재 진행형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사진출처 : 재심 영화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