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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툰남편 김광석 Jan 22. 2017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도깨비에 홀렸다가 깨어난 소감

솔직히 처음엔 웬 삼류 액션 활극인줄 알았다. 고려시대 무신이라는 설정과 도깨비라니 망작이 하나 나올 줄 알았다.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은 건 첫방송이 나온 다음 주 월요일이었다. 팀원들은 도깨비에 홀린 사람처럼 하루종일 도깨비 이야기를 했다. 내가 도깨비를 보게 된 것은 그 이후로 한참 뒤였다. 우연히 보게 된 장면에서 지은탁은 김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꾹꾹 누르는게 아니라, 이렇게 쓰다듬어야 하는거야" 어린시절 위로가 무엇인지 나에게 알려주었던 그녀의 말과 비슷했다. 그 장면을 본 후에 나도 도깨비에 홀린 사람이 되었다.

TVN드라마 <도깨비>의 한 장면

이 장면이 좋아서, 이 장면이 나온 장소가 좋아서 이곳에 가 보았다. 이 장면에 나온 장소가 동인천역 인근의 헌책방거리, '배다리'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인천에서 자란 국문학도에게 배다리는 이들이 다녀가기 전부터 충분히 낭만적인 장소였기 때문이다.

동인천역 인근 헌책방거리 '배다리'에 있는 도깨비서점

오랜만에 찾아간 추억의 장소는 온통 도깨비에 홀린 사람으로 가득했다. 사람들이 빠지고 나면 서점을 한 장 담고 싶어서 기다렸다.  그러다가 한 커플이 서로를 찍어주는 모습이 예뻐 그들도 한 장 찍어주고, 대만에서 온 여행자도 한 명 찍어주고, 사람들을 찍어주면서 오랜시간을 기다린 다음에야 원하던 사진을 담을 수 있었다. 사람들이 빠지길 기다리면서 도깨비에 홀려 여기까지 온 사람들과 그들이 모두 떠나길 기다리는 나를 돌아보며 이 드라마의 힘을 실감했다. 

도깨비서점에서 만난 커플


그랬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 야속한 드라마는 겨우 16부작을 끝으로 방영을 마쳤다. 남겨진 자의 마음을 아느냐고 말하던 900년 묵은 도깨비도, 언제부터인지 기억나지 않을 오랜 시간동안 사람들의 죽음을 인도했던 저승사자도, 곧 어른이 될테니 기다려달라던 재벌3세도 누구하나 인사 한 마디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들은 모두 떠나간 이들을 그리워하며 슬퍼하고, 그런 모습을 나에게 보이며 나의 동정을 사 갔으면서 말이다. 


기승전결의 '결'에 해당했던 14,15,16화에서는 사람을 죽였다가, 살렸다가, 기억을 없앴다가, 회복시켰다가, 숨겼다가 드러냈다가 했다. 객관적으로 논리적으로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김치싸대기 이후로 이렇게 막장인 스토리의 드라마는 또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주인공이 기억을 잃을 때 나도 이성을 함께 잃어버려서 그들이 울면 나도 울고, 그들이 웃으면 나도 웃었다.

TVN드라마 <도깨비> 중

여느 사랑 이야기가 그렇듯, 이들의 이야기도 행복한 결말을 맞으면서 끝을 맺었다. 마음이 공허하다. "도깨비가 되는 것이 무슨 형벌이야 축복이지!"라고 생각하면서 "오래 살면 무조건 좋은거 아닌가? 영생이라는 특혜를 누리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내는 정도는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거 아닌가?"라는 의문을 품었던 내게 아름답고 훌륭하신 작가님이 내린 형벌인가 싶다. 


주인공들은 천년만년 오래가는 슬픈 사랑의 끝에서 서로를 만났다. 전생과 이생 그리고 후생을 넘나들며 서로를 만나고, 또 만나고, 또 만났다. 그런 그들의 만남이 너무 만족스럽다. 내가 하지 못한 사랑을, 내가 하지 못할 사랑을 만들고 이뤄내는 그들이 기특했다. 그들을 다시 만나고 싶었다. 밝게 웃으며 떠나가는 그들을 보면서 서로를 떠나보내던 그들의 마음이 더욱 이해가 갔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이렇게 훌륭한 작품과 생생한 인물들이 넘쳐나는 드라마를 또 만날 수 있을까? 이렇게 말도 안되는 이야기 속에서 이렇게 닮고 싶은 사랑을 그려내는 인물들을 만날 수 있을까? 기억의 저 편으로 사라져가는 나의 첫사랑을 바라보듯, 매몰차게 돌아서 나를 떠나갔던 연인의 뒷모습을 정리하듯 이 작품을 떠나 보낸다.




드라마 도깨비에 등장한 '한미서점'과 '배다리'가 궁금하다면 아래 글에서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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