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향기가 내 코를 때려

in 버스

by 서툰남편 김광석

너무 재미없는 이야기만 하는 것 같아서

오늘은 평소에 하지 않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다소 농담처럼 이어지는 이야기이지만

흡연자들에게 강렬한 인사이트를 하나 안겨주고 싶어 쓰는 글이다.


약간 변태처럼 보일 수 있겠으나...


나를 스쳐간 다른 사람의 향기가

내 코를 자극하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변태가 되지 않기 위해 변명을 좀 하자면


대게 이런 향기는

다우니나 쉐리 같은 섬유유연제에서 나거나

헤드 앤 숄더 같은 향기가 강한 샴푸에서 난다.

애초에 다른 사람들의 기분이 좋으라고 만들어진 향기니

이를 맡고 기분이 좋은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게다가 이런 향기를 맡은 순간이

출근 버스에서라면 기분좋음은 더욱 강화된다.


대부분의 경우 출근 버스에서는

땀에 쩔은 냄새, 우산의 퀘퀘한 냄새, 머리카락에 가득 찬 담배냄새

그리고 이 모든 냄새가 섞인 입냄새가 나를 괴롭히기 때문이다.

나는 후각이 둔감한 편인데도 불구하고

만원으로 가득 찬 출근 버스에선 이런 냄새를 피할 수가 없다.


오늘은 불행히도 다우니가 아닌 던힐로 추정되는

묵직한 담배냄새가 나를 괴롭혔다.

냄새의 정체는 나의 모교인 大동인천 고등학교 학생의 모발이었다.


웬만하면 향기든 냄새든 처음 맡았을 때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린다.

기분이 좋든 싫든 다른 사람의 냄새를 맡는다는 건

뭐랄까 죄를 짓는 기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고개를 왼쪽으로 90도 오른쪽으로 90도

도합 180도를 돌려가며 피해도 피해지지 않았다.

가능하다면 270도를 넘어 360도까지 돌려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차에는 적정 인원을 한참 넘은 인원이 낑겨 타 있었고

어느쪽으로도 몸을 돌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온 몸이 결박된 채 녀석의 기름지고 담배진(?) 머리냄새가

내 코를 폭행하고 있었다.


더 곤욕스러웠던 건 이 학생이

벨을 누른 후 부터였다.


나는 간절히 바랐지만 절대로 하지 못했던

360도 회전을 녀석은 해낸 것이다.

그동안 뒤통수를 보며 욕해왔던 내 자신이 멍청해보일 정도로

강렬하고 폭력적인 냄새가 내 코를 강타했다.

녀석의 인중 바로 아래에서 나는 냄새였다.

이 악취를 본인은 맡지 못한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도무지 아침의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묵직하고 또 묵직한

인생의 무게를 모조리 축약한 것 같은 무게의 악취가

녀석의 숨결을 타고 내 코로 진입했다.


다행히 냄새가 나를 공격한지 1분이 채 되지 않아

녀석은 차에서 내렸지만

내 몸에선 이미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고

미처 떼어내지 못했던 잠기운도 모두 놓쳐버렸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저녁 8시에도

아침 8시에 맡았던 그 냄새가 코 끝을 멤도는 것 같다.

킁킁



=



사진은 버스에서 내리고 난 다음

거의 반쯤 풀려버린 내 다리다.


2018. 03. 19

in 버스

아그파 200


* 한 달 느린 필름사진집입니다.

사진은 한 달 뒤에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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