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있어도 자라고 있어,
그러니 넌 잘하고 있어

한 달 느린 필름 사진집 시즌2

by 서툰남편 김광석

가만히 서서 하늘을 올려다 본다.

나는 가만히 서 있는데 구름이 분주히 움직인다.

지나가는 새 한 마리는 그것보다 더 빨리 움직인다.

나는 생각한다.

아...

나도 움직여야 하는 건가?

모두가 분주히 움직이는 이 시점에서

나만 가만히 서 있어도 되는 것인가?


그러다 목이 아파 고개를 내렸다.

스트레칭을 하던 중에 풀숲을 봤다.

이름은 모르지만, 정체도 모르지만, 뭔지는 모르지만

매년 여름을 푸르게 푸르게 만들어주는 녀석들.

겨우내 잠들어 있던 녀석들이 스믈스믈 올라온다.

가만히 서 있는 줄 알았는데 스믈스믈.

속살에서부터 바깥으로

푸른 빛을 채우며 올라온다.


그렇다.

녀석들은 가만히 서 있는 동안에도

분주하게 자라고 있었다.


움직이지 않으면 변하지 않으면 높지 않으면 빠르지 않으면

가만히 있으면

나는 잘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걱정했는데...

가만히 있으면서도 자랄 수 있다.


가만히 있는 나.

가만히 있는 너.

우리도 이미 자라고 있다.


있는 것 만으로도 우린

잘하고 있다.


<가만히 있어도 자라고 있어, 그러니 넌 잘하고 있어>

2018.03.29
아그파 200

*지난 달 어느 날 생각하고 찍었지만
바빠서 적지 못했던 한 달 하고도 반 느린 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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