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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툰남편 김광석 Mar 20. 2016

야경사진이 제일 쉬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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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경사진이란?

  네이버 국어사전에 '야경사진'을 검색하면 '야경'과 '사진'으로 나누어 해석해준다. 야경(夜景)은 '밤의 경치'로 풀이되고, 사진(寫眞)은 '물체의 형상을 감광막 위에 나타나도록 찍어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게 만든 영상' 또는 '물체를 있는 모양 그대로 그려 냄. 또는 그렇게 그려 낸 형상'으로 풀이된다. 이 둘을 합쳐 사진의 본질을 정리하면 '물체의 형상을 기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것을 야경이라는 단어와 조합하면 '밤의 경치를 기록한 것'이 되겠다.(물론 여기서 말하는 기록이란 '사진기(카메라)'를 사용한 기록을 뜻한다.

  즉, 본질적으로 카메라를 이용해서 밤의 경치를 기록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야경사진이라 부를 수 있다. 그런데 이를 착각하고 꼭 도시의 고층빌딩에 올라 찍어야만 야경사진이라 여기는 사람이 있다. 빌딩에 오르지 않고 빌딩을 올려 찍어도 야경 사진이고, 멀리서 빌딩이 보이는 경치를 찍어도 야경사진이다. 심지어 빌딩 하나 없이 산 정상에 올라서 밤하늘의 별과 어우러진 산의 경치를 담아도 야경사진이다. 굳이 빌딩에 올라 밤의 경치를 기록한 사진을 분류하자면, 도시야경사진이 적합하지 않을까 한다.


천체사진으로 입문한 사진

  나는 2003년부터 사진을 취미로 해왔다. 1회용 필름카메라로 시작된 취미가 카메라폰, 디지털카메라, 스마트폰을 거쳐 지금의 DSLR이 되었다. 본격적으로 사진을 취미로 삼은 것은 2006년 천체관측 동아리에서 천체사진을 찍었을 때 부터였다. 우연히 찍은 별 사진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천체망원경을 구입한 것이 나의 사진입문이었다.(당시 구입한 천체망원경은 10만원 안팎의 실습용이다.)

첫 달사진 - 203mm 반사망원경 + 접안렌즈 + 2G폰


달을 찍으려고 구입한 실습용 천체망원경


천체망원경 +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달사진

   이렇게 찍고보니 천체사진을 찍기에는 나의 장비가 너무 형편없었다. 마운트 장비가 없어서 망원경 접안렌즈에 맺힌 상이 핸드폰이나 디지털카메라의 렌즈로 들어가게 하려면 최소 5분은 낑낑거려야 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책이나 인터넷에서 보던 성운, 성단, 은하 같은 대상을 찍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런 대상은 수 분에서 수 시간의 장노출이 필요한데, 마운트 장비가 없는 나로서는 그 시간 동안 카메라를 고정하는 것은 어려웠다. 또한 지구의 자전속도에 따라 움직이는 천체를 담아내려면 전자식 적도의와 컴퓨터가 필요했는데, 당시 내가 이런 장비를 갖출 확률은 두 발로 점프해서 달에 착지할 확률과 비슷했다.

   그래서 방향을 틀어 접근한 것이 점상 천체사진과 일주사진이었다. 1회용 필름카메라를 구입해 천체사진용으로 개조한 다음 삼각대에 올려놓으면 웬만한 고급 카메라 부럽지 않은 천체사진을 얻을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별 사진을 점으로 찍으려면 초점거리에 따라 노출시간을 조절해야 하는 것과(평균 15초) 안된다는 것과 주변에 인공적인 불빛이 많으면 사진을 망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자잘한 것들을 배워가니 사진에 대한 큰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사진은 결국 빛을 담는 것이기 때문에 빛을 다스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개념도 갖게 되었다.

  이렇게 2006년이 07, 08, 09하며 숫자를 키워갔다. 이 숫자가 높아질수록 내가 갖게 되는 장비와 실력과 지식도 1씩 성장했다. 이들이 1씩 성장함에 따라 2정도씩 커져가는 것도 있었는데, 그것은 사진에 대한 열

망이었다. 처음엔 그저 재미있는 놀이였던 것이 어느 때에는 꿈이 되었다가 어느 때에는 희망이 되었다가 하면서 점점 더 '중요한 것'으로 발전했다. 그런데 가진 장비가 너무 형편없는 것이 나의 불만이었다. 그 마음을 적어 낸 에세이가 공모전에 당선되어서 나는 100만원이라는 상금을 얻었다. 이 상금에 5만원을 더해서 DSLR을 구입했다. 비록 보급형에 번들렌즈지만, 이제야 진짜로 사진에 입문한 기분이었다.

첫 DSLR, CANON EOS 550D / EF 18-55mm


허구언날 야경만 찍었던 2년

  DSLR이 생긴 후 대략 1만장을 찍기까지는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그 중에서 누군가에게 보여줄만한 사진이라 생각할 만한 것은 대략 10장 정도였다. 10장중에 8장은 야경을 찍은 사진이었는데, 지금 다시보면 초점도 맞지 않고 ISO에 대한 개념이 없던 때라 노이즈가 너무 심하다. 그 다음 해에는 2만장 정도를 찍었다. 역시 뽑아보니 30장 정도의 사진만 괜찮았고, 나머진 구도와 초점, 빛조절 등 각각의 이유로 수준미달이었다. 두 해동안 뽑은 40장에서 반 이상이 야경이었다. 3만장 쯤 찍었을 때부턴 나 혼자 보기에는 좀 아쉬웠다. 남을 보여줘야 피드백도 받고 실력도 늘 것 같았다. 그래서 40장 중에 2장을 선별해 규모가 작은 공모전에 출품했다.

  1안으로 잡았던 사진은 육교 위에서 찍은 야경(제목 :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매직아워에 맞춰 올라간 육교에서 2시간 동안 바람과 씨름한 끝에 그나마 괜찮은 사진을 얻었다. 싸구려 삼각대가 바람에 흔들리고, 육교에 지나가는 사람들 발소리에 흔들렸다. 삼각대를 고정하고, 사람이 없는 타이밍에 자동차가 예쁘게 지나가는 타이밍을 기다리다보니 2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매직아워의 아름다운 색감은 모두 사라지고 순식간에 완전한 어둠이 되어버렸다.

  2안으로 잡았던 사진은 청계천의 역광사진(제목 : 향수)이었다. 지는 태양이 청계천을 금빛 카펫으로 바꿔주고 그 위로 어린친구들이 건너갔다. 서울의 도심 한 가운데에서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사진을 찍으러 나왔던 것은 아니지만, 운이 좋게 카메라가 손에 있어서 담아낼 수 있던 장면이다. 공모전에서는 2안이 가작으로 당선됐다. 그렇게 얻은 상금으로 50mm, f1.8 단렌즈를 구입했다.


다치고 죽고 움직이고 도망가는 살아있는 피사체

  나름대로 오랜 기간 사진을 찍다보니 한계에 부딪혔다. 내가 담는 풍경 사진에는 감성이 느껴지지 않거나, 주제가 모호한 것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다음으로 찍었던 것은 꽃이었다. 감성이 없으니 감성적인 것을 찍겠다는 단순한 논리였다. 그런데 꽃이라는 피사체는 그동안 찍었던 풍경과 야경보다 어려웠다.

  일단 내 부족한 실력으로는 예쁜 것을 찍어야 예쁘게 나올텐데, 꽃이라고 다 예쁜게 아니었다. 모진 풍파와 해충으로부터 살아남은 꽃들은 아름다움 속에 크고작은 상처를 간직하고 있었다. 멀리서 볼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사진으로 담으려니 흠으로 보였다. 가끔 다치지 않은 꽃들은 자체로 예쁘지 않거나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곳에 자라고 있었다. 이 조건들이 모두 만족되면 날씨가 좋지 않거나 카메라가 내 손에 없었다. 언제가도 그 자리에 있는 별과 육교와 청계천과는 달랐다. 오늘 찍고 보정하다가 아쉬워서 다음날 가면 시들어있는 경우도 있었다. 이처럼 변덕이 심한 꽃을 찍다보니, 자연스레 낮에 카메라를 들고 나오는 일이 많아졌다.

비오는 날 만났던 건강미 넘치는 꽃님
고된 겨울을 이겨내고 피어난 꽃님

  카메라를 들고다니는 날이 많아지니 주변에서 내가 사진을 찍는다는 것을 알게됐다. 그래서 웨딩사진도 찍고, 제품사진도 찍었다. 물론 실력이 낮아서 돈은 받지 않았고, 규모도 작았다. 그럼에도 작은 피사체를 찍는 것은 어려웠다. 크기와 상관없이 움직이는 피사체의 경우는 항상 더 많은 집중력을 요구했다. 삼각대 위에 올려놓고 차분하게 셔터를 누르던 야경사진과는 달랐다. 움직이는 피사체를 따라가기 위해 내 몸도 움직여야 했기 때문에 셔터타이밍을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


백령도에서 찍은 갈매기(새는 참 작고 빠르다)
백령도에서 찍은 어선(바위 옆을 지나가는 배를 기다리는게 힘들었다)

  움직이는 피사체에 어려움을 느껴 도전했던 것은 낮에 건물을 찍는 것이었다. 일단 사진을 찍는 기본자세부터 다지기 위해서 움직이지 않는 피사체를 선택한 것이다. 카메라를 흔들리지 않게 잡는 자세와 황금비율, 화각, 그리드 등의 개념을 이 때 익혔다. 특히 고궁은 야경만큼이나 매력적이었다. 꽃도 많고, 예쁜 건물도 많았다. 그만큼 사람도 많았어서 사람을 피해 찍는 센스도 필요했다.


광화문의 수문장(안움직여서 편했다)

  사진을 찍기 위해 기차를 타고 전국여행을 하기도 했다. 전국에 다양한 포인트를 찾아다니다가 남이 개발한 포인트를 따라다니는 것은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 남들이 안가본 곳도 가봤다. 가끔 남들이 찍지 않은 사진 중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도 했지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데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 내가 갔던 포인트 중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곳은 경주의 안압지였다. 가장 아름다워 보이는 뷰에 삼각대를 설치하고 매직아워를 기다렸다. 여기저기서 셔터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렇게 많은 카메라는 난생 처음봤었다.

경주 안압지의 반영


야경사진이 제일 쉬웠어요

  여러가지 사진을 찍어보니, 야경사진이 가장 쉬웠다. 움직이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는다. 보정하다가 아쉬움이 생기면 다시 가서 찍으면 되고, 더 멋있는 뷰를 원하면 발로 뛰어서 찾으면 된다. 밤하늘의 별은 움직여 사라져도 하루가 지나면 다시 그 자리에 있다. 하지만 새가 날아가는 풍경은 지나가 버리면 끝이다. 그 새를 다시 불러서 똑같은 방향으로 날아달라고 부탁할 수 없다.

  추운겨울, 밤새도록 밤풍경을 담아내는 것은 춥고 고된일이다. 새로운 포인트를 발견하기 위해 떠나는 여행은 막막하다. 그러나 그 막막함은 어려움이 아니다. 새로운 즐거움을 찾아가는 설렘이다. 나는 꽃 밭에서 건강한 꽃을 찾아 헤매는 것보다 야경을 찾는 것이 쉽다. 꽃은 찾으러 나서자마자 바로 찾을수도 있고, 무리지어 사니 찾기도 쉽지만 찾아나서는 발걸음은 즐겁지 않다. 하지만 높은 산이나 건물을 올려다보며, 여기는 어떤 뷰가 나올까 연구하며 파는 발품은 즐겁다. 즐겁지 않으니 어렵고, 즐거우니 쉽다.

  내가 사진을 한 시간은 길지 않은 시간이다. 한 분야를 깊게 파지 않아서 대체로 얕은 경험이다. 그래서 지식이 많이 부족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천체사진으로 사진에 입문하고 야경으로 사진을 배웠다. 카메라의 가장 기본적인 셔터스피드와 초점거리, 조리개, ISO, 색온도 등을 야경을 통해 배웠다. 그래서 나에게 야경은 사진의 기본기다. 그래서 야경사진이 가장 쉽다.

  자칭 10년도 넘게 사진을 해 왔지만, 사실 전문가에게 배운 것도 아니고, 사진에 올인해서 공부한 것은 아니다. 사진은 글과 사진 그리고 경험으로만 배웠다. 그런 내가 쉽다고 하면, 네가 뭘 몰라서 그런다고 말할수도 있다. 혹은 이제 아마추어에 '아'를 겨우 깨우친 놈이 쉽게 말한다고 할 수 있다. 다 맞는 말일 수도 있다. 나의 사진을 보고 개념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나 신선하다고 말하는 사람이나 다 맞다. 의견이 다른 것이 틀린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애초에 정답이란게 없는 문제가 아니던가. 나에겐 쉬운 것이 누군가에겐 어려울 수 있고, 나에게 좋은 사진이 누군가에겐 나쁠 수 있다.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말하던 괜찮다. 다만, 그가 틀림과 다름의 차이를 알고 다름에 관용을 베풀 줄 아는 어른이냐 아니냐의 차이일 것이다.



글이 너무 많아서 지루했던 분들을 위한 사진

강원도의 밤 / canon EOS 550d / 18-55mm
아라뱃길의 라이더 / canon EOS 550d / 18-55mm
센트럴파크의 번개치는 밤 / canon EOS 550d / 18-55mm
새벽출항 / canon EOS 550d / 18-55mm
독립문 / canon EOS 550d / 18-55mm
설악산의 봄 / canon EOS 550d / 18-55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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