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 남편의 자서전 D+580
아빠는 가끔 말씀하셨다
인생의 쓴맛을 알게 되면
소주 한 잔의 단맛도 알게 된다고
그런데 인생의 쓴 맛을
뼈져리게 느끼는 요즘에도
나는 소주가 참 쓰다
반대로 아빠가 달콤하다 생각하는 것이
나에게는 굉장히 쓰다는 걸 알게 됐다
그것은 정말이지
세상 처음 느껴보는 쓴맛이었다
아아
그것이 생에 처음으로 나에게
온전한 한 잔이 할당되던 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첫 맛은 역겨웠고
두 번째는 토할 뻔 했다
토하느니 버리자 생각해서
세 모금을 마시기 전에 그냥 버렸다
약이라고 하면
몸에 좋은 맛으로라도 먹지
이건 몸에 해로운 게 분명한데
왜 먹는 걸까?
하지만 인간은 말이지
정말 멍청하게도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나는 그 다음 주에도
한 잔을 사 마시다 버렸고
그 다음주에도 한 잔을 버렸다
그 반복은 어느새 습관이 되었고
그 쓴 것을 하루에 몇 잔을 마셔버린다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열에 여섯은 겪는 문제라고 하니,
신이 인간을 만들 때
뭔가 하나 부족하게 만드신 게 분명하다
식물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품은 독성을
적당히 희석해서
꾸준히 주입하는 꼴이라니
과학적으로도 참 한심하다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한 잔을 시킨다
아아 한 잔 주세요
아니요 뜨겁게 말고 차갑게요
아아잖아요
<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