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막내는 거실 한 복판에 걸린 7살 위인 언니의 그림을 보며 자신도 이번에 상을 받으면 거실을 자신의 작품으로 장식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것도 자신이 좋아하는 환경 그리기 대회라고 크레파스, 사인펜, 색연필 등을 꺼내 3일에 걸쳐 그림을 완성했다. 또한 공고문에는 어른이 도와주면 수상을 취소할 수 있다고 해서 아이는 문을 닫고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도 하지 않은 채 작품 만들기에 몰두했다.
남편과 나는 이번 막내의 작품이 8살 나이치 고는 너무나 잘 그렸다고 생각했다. 푸른 바다에 지구를 띄우고 구름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쓰레기 분리수거와 자전거 타기 등 실천방안이 그려졌다. 그래서 당연히 상을 받을 것이라 생각했고 나도 결과가 나오길 간절히 기다렸다.
문자에 링크를 터치한 순간 수상자 명단이 나왔다.
유치원생, 초등학생 등 아이들의 이름이 보이기 시작했다. 위부터 아래로 천천히 훑어봤는데 아이의 이름이 안 보인다. 아마 내가 눈이 나빠 못 찾는 것으로 생각하고 컴퓨터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그런데 100명의 가까운 명단을 복사해 엑셀에 넣어 단어 찾기를 했는데 '찾는 단어가 없습니다'라는 메시지가 화면 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 믿기지 않아 주최 측에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우리 아이 수상 여부를 확인하고 싶어요. 너무 잘 그렸는데 명단에서 잘 찾지 못하겠네요"
"아 그럼 어머니 이번에 수상하지 못하신 거예요. 2000점 가까이 작품이 들어왔거든요'
"그러면 작품을 찾아갈 수 있을까요?. 제가 직접 방문할게요"
"저희 공모전은 공모요강에 작품은 돌려주지 않는다고 적혀 있어요. 워낙 많은 그림이 들어오니 수상하지 않은 작품은 폐기 처분합니다"
폐기처분! 그 말에 내 심장은 쿵 내려앉았다.
어떻게 우리 아이의 첫 도전이 이대로 무너져야 하는가. 작품이라도 다시 받아 액자에 넣어 거실에 걸고 싶은데 이것도 안된다니 내 마음이 찢어지는 거 같다. 이럴 줄 알았으면 사진을 잘 찍어 저장할 걸 후회막급이다.
혼란스럽고 슬퍼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편은 고심하더니 나에게 팁을 줬다.
"아이에게 절대 말하지 마. 아마 기억 못 할 거야."
막내는 가족들과 보드게임을 하더라도 자신이 지면 눈물을 흘리며 안 한다고 울 정도록 승부욕이 강한 아이다. 아마 사실대로 말하면 다시 그림을 그리는데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이 모습은 내 어렸을 적 모습과 거의 닮아 있다. 난 초등학교 때 글짓기 대회, 그리기 대회 등에 나갔지만 소소하게 동상, 입선만 많이 했다. 어쩔 때는 명단에 없어 밤에 혼자 울면서 잠든 적도 있다.
대학입시에서도 원하는 대학과 학과에 가지 못해 차선을 선택했고, 대학교 졸업 후 첫 직장에 들어가기까지 이력서는 거의 50번 넘게 쓰는 등 실패의 연속이었다. 자라는 과정에서 나는 늘 태연한 척했지만 누구보다도 상실감은 컸다.
수상 발표가 있은 후 일주일이 지났다.
막내가 학교에서 돌아온 후, 손과 발을 깨끗이 씻은 후 나에게 물어본다.
"엄마! 환경 그리기 대회 발표 언제 나와?"
이 시간이 오지 않기를 바랐는데, 결과를 말해야 한다.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연하게......
"이번에 4학년에서 6학년까지 언니 오빠들이 그림을 많이 냈나 봐 초등부에서는 거의 고학년이 다 탔어."
" 고학년 언니 오빠들이?"
사실 수상자 명단에 유치원생과 저학년 명단도 있었다. 하지만 난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아이는 아무 말이 없었다. 아마 실망을 한 거 같다.
"내년에 또 도전하면 돼. 언젠가는 상을 받을 거고 거실에 엄마가 예쁘게 걸어줄게!"
"알았어!"
오늘도 우리 아이는 여전히 그림을 그리고 있다. 도화지를 오려서 산을 만들고 산에 그림자를 표시하며 결과에 아랑곳하지 않고 좋아하는 것을 하고 있다. 아니면 내가 어렸을 적 실망했을 때 슬픔을 참았던 것처럼 엄마에게 약한 모습을 안보이려고 애쓰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또한 살면서 극복해 가야 하는 것이니 마음 탄력성을 갖고 아이가 이겨내길 바랄 뿐이다.
'다음에는 결과와 상관없이 그림을 그리면 사진을 찍어 액자에 담아줄게!' 나는 조용히 혼잣말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