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일의 자유. 소중한 누림

시곗바늘이 돌아가는 모습마저 초조한 첫날

이게 얼마만의 휴식인가?


매일매일 회사일과 가사로 정신없이 지내다가 아직 낯 설은 여유를 평일에 누리다니... 첫날부터 아이를 학교에 보낸 후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베란다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과 아름다운 마을 전경을 내 눈에 담으면서 책을 읽으리라 했건만 실패다.


사실 난 휴직하기 한 달 전부터 설레기만 했다. 휴직을 하는 이유는 한글도 못 뗀 아이의 공부를 잡아주고 오랜만에 영어공부와 독서 그리고 글을 쓰려고 했다. 하지만 첫날부터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나니 밀린 집안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오전 내내 청소기를 돌리며 아이들 침대 이불빨래를 하며 육아휴직 첫날을 장식하고 있다.


야속하게 묵묵히 돌아가는 시곗바늘이 얄밉기만 하다.

이 상황이 익숙하지 않은지 마음이 여기저기 불편하다.


청소를 다 끝내니 이젠 음악을 들으면서 책을 읽으려고 테이블 위로 내가 좋아하는 책 몇 권을 올려놓았다. 앉자마자 카톡! 하며 메시지가 찾아온다. 회사 동료가 자료를 찾는다고 알려달란다.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그 자료를 어떻게 찾고 처리해야 하는지 카톡과 자료를 넘기고 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재택근무하면서 하루 이틀 육아휴직을 늦게 신청할 걸...' 물론 혼잣말이다.


이제 150일이 시작인데 왜 나는 불안한 걸까? 아직 이런 자유를 못 누려 봐서 그런 건가? 아니면 내가 육아휴직 기간 환상적으로 잘 보내고 싶은 욕망 때문일까?


잠깐이나마 힐링되는 음악 대신 유튜브의 부동산 영상을 보며 고 이어령 선생님의 마지막 수업 책을 읽었다.

이어령 선생님은 죽음 가운데서도 너무 여유로우시고 빛나는 말을 선사하셨는데, 나는 육아휴직에도 불안해하고 쩔쩔매고 있다.


다시 아이들의 귀가를 돕고 맛있는 집밥을 선사하며 공부를 봐주고 잠을 재운다. 아이들은 엄마가 집에 있어서 편한지 이것저것 요구한다. 큰 아이는 같이 책을 읽자며 숙제를 나에게 내주고 작은 아이는 핸드폰으로 자기를 자꾸 촬영하라고 한다. 싫은 표정을 안 하고 들어주니 아이들 표정이 좋아지는 것 같다. 잠깐이나마 엄마가 보여주는 여유로움에 아이들이 안정을 느끼는 걸까?


어둑한 밤이 창으로 밀려오고 아이를 재우니 아직도 나는 컴퓨터를 켜고 이 작은 창에 일일이 내 감정을 오롯이 담고자 노력한다. 역시 이마저도 직업병이다.


휴직 하루 전 회사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집에 와서도 이메일을 썼다. 나의 휴직을 직원들에게 알리고 관계자들에게 전하고자.... 야근수당도 받지 않는데 왜 이러는지 아직 모든 게 낯설기만 하다.

동료가 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선배, 하얗게 불태우고 휴직 들어가시네요!"


육아휴직 첫날 오늘 그래도 내가 한 일을 정리해 본다. 남들 보면 보잘것없는 일상이지만 생각하면 바쁘게 살아왔다. 이것이 나의 150일 육아휴직 기록 첫날이다.


1. 8살 둘째 딸 학교 보내기

2. 이불빨래 및 옷장 정리하기

3. 둘째 딸 가정교육을 위해 책 구매하기

4. 초등학교 선생님과 전화상담

5. 책 조금 읽다가 첫째 딸이 읽으라는 '레디메이드 인생' 책 읽고 독서감상문 쓰려고 머리 굴리기

6. 저녁상 차리기

7. 둘째 딸 공부 가르치기

8. 책 읽어주기

9. 아이 씻기고 잠재우기


KakaoTalk_20220429_135429275.jp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