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빗속에...눈물처럼

by 선향


모든 영혼의 운명은 성장이라고 한다. 강렬한 결핍이 있어야 강렬한 갈망이 지속되고 영혼은 영생을 통해 추구하는 자신의 성장 테마, 정체성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고 한다. 성장을 위한 내 생의 강렬한 결핍과 강렬한 갈망은 무엇일까?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고 어느 한 구석에서 가려지듯 자라났기에 내가 내 멋대로 활개쳐도 괜찮은 내 자리, 내가 키크고 마음껏 꽃 피울 내 자리를 원했다. 내 인생의 강렬한 결핍은 보여지고, 인정받고, 사랑받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보여지지 않고, 들려지지 않고,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결핍은 보여지고, 들려지고, 내가 여기 있다고 손을 흔드는 강렬한 표현의 욕구를 부추기는 것 같다. 내가 받은 최초의 제대로 된 인정은 중학교 1학년 때 쓴 '꽃은 핌으로써, 별은 헤어져서 아름다운 이 밤'이라는 일기 글귀에서 시작되었으니까.


보여지고 들려지고 싶은 욕구와 그 표현 수단으로서의 글과 시, 이것이 내 강력한 결핍과 갈망일까? 그 결핍과 갈망은 이번 생에서 시작되었을까, 아니면 이전 생에서부터 씨 뿌려지고 발아된 것일까? 이 표현욕구는 영생의 삶을 살아가는 영혼에 새겨진 갈망일까? 아니면 이번 생에서 채워지면 족할 갈증 같은 것일까?


대학 졸업 후 오랫동안 엉크러진 감정을 풀어놓는 용도로 일기를 써왔을 뿐 시를 쓰지도 남에게 보이기 위한 본격적인 글쓰기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렇게 글쓰기를 동경하면서도 한 발 떨어져 있었을까?

짐작해보면 작가는 '치열하게 사는 특별한 사람들'이고 '시대와 역사의 정신을 반영하는 진실의 수호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인 듯 하다.


학창시절 문학을 동경하며 읽기 시작한 헤르만 헷세, 루이제 린저, 윤동주, 까뮈, 시몬느 베이유, 전혜린, 실존주의 문학들은 삶의 고통에 대해 얘기했고 작가들은 특유의 감수성으로 고통스러운 불행한 삶을 불꽃처럼 살다 간 사람들로 보였다.


대학에 와서 민중문학을 접하며 시인과 작가란 김지하, 신경림처럼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의지와 민족애로 가득한 시대의 양심이자 투사'여야 한다고 배웠다. 그런데, 체질적으로 그 투쟁적이고 선동적인 언어들에 거부감이 생겼다. 이러한 인식들로 인해 글쓰기는 점점 나의 영역이 아닌 것 같았고 내가 감히 어떻게 작가를 꿈꿀 수 있겠어 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하지만 글쓰기에 대한 욕구, 특히 자신을 탐구하고 글로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는 언제나 살아 있었다. 현실의 나는 언제나 불만족스러웠고 스스로가 충분치 못하다고 생각했으며 다른 '무언가'를 해야 할 듯 했다. 내 정체성이 만족스럽지 못하고 항상 부족하게 느껴졌다.


어떤 일을 해야 진정으로 만족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한동안은 번역이 내 길이라고 생각했다. 번역서를 몇권 내기도 했고 원래 북구문학을 전공하고 싶어했으니까. 그런데, 라이프 코치 한 분이 물어보셨다.

진정으로 그걸 하고 싶으세요? 그때, 알았다. 진짜 하고 싶었던 건 내 글과 시를 쓰고 싶은 것이라는 걸. 눈물이 울컥하고 솟았다.


나는 지금 왜 글을 쓰려 하는가? 나의 글쓰기는 여전히 나의 정체성을 찾고 싶다, 나를 표현하고 탐색하는 수단을 갖고 싶다, 진정으로 내가 기여 할 수 있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다라는 욕구에 기반한다. 그리고, 나는 나 자신과 나와 공명할 수 있는 누군가에게 글이라는 나날의 '창조물'를 선물하고 싶다.


존재가 너무 가볍거나 너무 무겁게 느껴지는 날, 글을 쓰고 있으면 흔들거리는 저울이 적당한 균형을 찾아가듯 자신을 바라보는 적당한 거리감이 생겨난다. 글쓰기라는 완충제를 통해 생각과 느낌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다. 글쓰기는 길 없는 길을 걸어가는 내가 남겨놓는 발자욱이기도 하다. 나를 구성하던 삶의 족적이 고스란히 기록되는 것이다.


1982년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 함께 싸우던 해리슨 포드를 구해주고 죽어가며 (작동을 영원히 멈춰가며) 사이보그 전사가 하는 말이 있다.


나는 너희들 인간들이 믿지 못할 많은 것들을 보았지

오라이온 성좌 자락 너머로 공격을 퍼붓는 함대.

탠하우저 게이트 근처 어둠 속에서 c 빔이 빛나는 것도 보았어.

이런 모든.. 순간들이 시간 속에 사라져가겠지, 이 빗 속에... 눈물처럼.

이제 죽어야 할 때이군.


이렇게 우리 삶의 아름답고도 사소한 혹은 장엄한 모든 순간과 기억들이 빛 바래 사라져 가는 것, 그 안타까움이 글을 쓰려는 인간의 보편적 동기가 아닐까 한다.


비누방울


아침 나절의 빛 줄기 함께

휘감도는 시간을 고이 넣어

저 비누 방울에

간직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흩어져 날아가는

아침이슬의 눈빛을

담아 모을 수만 있다면


생생한 생명을

두고 두고 둘 수 있어서

못견딜 듯한 아름다움을

안타까이 흘러 버리지

않을 수 있다면


비록 먼 후일

터질 듯한 그리움에

톡 건드려

사라져버릴 꿈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