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

by 선향

스웨덴 서해안의 항구도시인 예테보리 근처에 그레베스타드라는 조그만 바닷가 마을이 있다. 그레베스타드의 상주 인구는 대략 천여명 남짓인데 여름 휴가철에는 열 배가 넘는 만여명의 사람들이 이 곳에 있는 바닷가 여름 별장으로 피서를 온다고 한다. 근처에는 스웨덴 출신의 유명 배우였던 잉그리드 버그만의 여름별장도 있다고 했다.


북구의 서늘하고 검푸른 물결이 넘실대는 이곳 그레베스타드에 내가 다닐 학교가 있었다. ‘폴크 허크 스콜라’ 얼추 우리말로 ‘대중고등학교’쯤으로 번역할 수 있는 이 학교는 스웨덴의 독특한 성인 재교육 과정의 학교였다. 고등학교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경우, 뒤늦게 대학을 가거나 공부하고 싶은 특수 분야가 있는 경우 등 많은 사람들이 이 학교를 다니며 나이 제한 없이 공부를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복지제도로 이름난 스웨덴의 다른 모든 교육과정과 마찬가지로 학비는 무료였다.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인 팔월에 스웨덴에 도착했다. 서울의 대도시 생활에 지친 나는 조그만 바닷가 시골 마을에서 보낼 한적한 시간을 기대했다. 구름바다를 날아 스톡홀름 근교의 올란다 공항에 내린 후 출발하려는 에테보리행 기차를 가까스로 탈 수 있었다. 서투른 영어와 몸짓 발짓을 섞은 스웨덴어로 물어 물어 기차역으로 가는 길을 찾았다.


발차시간이 급해 표도 사지 못한 채 기차에 탔다. 역무원이 서두르라고 재촉하며 나를 기차 안으로 밀어 넣고 여행 가방을 실어주곤 미처 고맙다는 인사를 받기도 전에 급히 기차에서 내렸다. 기차가 덜컥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빈자리에 앉고 나니 드디어 안도의 숨이 새어 나왔다. 검표원이 오길래 더듬 더듬 사정을 설명하고 표값을 지불했다. 모든 일들이 당황스럽고 낯설기만 했다.


창 밖을 지켜보며 마음을 가라앉히니 드디어 스웨덴에 도착했다는 사실이 즐겁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바깥에 펼쳐지는 스웨덴의 들판, 나무, 집들 심지어 하늘에서조차도 뭔가 이국적이고 새롭고 신기한 것을 발견할 것만 같은 기대감으로 마음이 설레었다.


지붕을 오렌지색으로 칠한 나무로 만든 집들과 나즈막한 언덕, 여기저기 무리를 지은 나무들이 스쳐 지나갔다. 쭉쭉 위로 뻗어 올라간 이름 모를 나무숲들이 내 눈에 무엇보다도 신기하게 다가왔다. 꿈틀 꿈틀, 구불거리며 갈라지고 터져 자라나는 우리나라의 소나무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일까? 나무와 식물들이 쑥쑥 곧게 뻗어 자라난 모습이 신기하기만 했다.


기차 객실 안의 좌석은 테이블을 하나씩 사이에 두고 네 명이 마주 앉게 배치되어 있었다. 내가 앉은 자리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좌석이 가득 차 있었다. 대부분 홀로 여행하는 듯 기차 안은 조용하기만 했다. 기차가 어느 역에 정차하자 아랍계통의 한 여자가 여자아이를 데리고 올라타 내 앞 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머리에 검은 천을 수건처럼 두르고 검은색 옷을 입은 삼십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여자였다. 아랍인 특유의 윤곽이 뚜렷한, 약간 살찐 얼굴은 수심 어린 표정으로 피곤해 보였다. 자리에 앉자 마자 여자는 보온병과 빵을 꺼내 아이에게 먹이기 시작했다. 아이가 무어라고 보채자 다른 사람들이 돌아볼 정도의 큰 소리로 여자는 아이를 야단쳤다. 조용하던 차 안의 분위기가 그 여자와 아이로 인해 소란스럽게 변했다. 나는 마음이 불편해졌다. 가만히 있어도 눈에 띄는 검은 머리의 그녀와 아이가 주시의 대상이 되면서 함께 앉은 검은 머리의 나역시 주시받는 느낌이었다.


그것이 스웨덴 사회를 접하는 나의 첫 느낌이었다. 스웨덴인들이 나와 똑같은 감정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아닌 나와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이질적인 존재들로 느껴졌다. 그것이 외국인이면 누구나 느낄 그런 타국에서의 이질감이었는지 아니면 배타적인 시선에 대한 본능적인 움츠러듬이었는지 그때는 잘 몰랐다. 이제 와서 돌아보면 거기에는 내 안에 또아리 틀고 있던 인종적인 배타의식과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겨울 정원에 들어서면

마음이 맑다.


그 속에서만 돋는 봄을

다시 발견할 수 있을까

두려움과 설렘이 뒤섞인

어두운 겨울 정원


붉은 싹을 돋우는 도토리처럼

부푼 손가락을 내밀면

칼날처럼 시리게 번뜩이는

얼음의 위협


봄은 그렇게 발견되는 것

눈시울 붉힌 채 터트리는 노란 꽃망울의 웃음처럼ㅡ

월,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