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by 선향

울라 선생님이 일러주신 대로 아침 8시에 식당으로 갔다. 밀짚 같은 노란 머리를 한 스웨덴 아이들과 까만 머리의 흑인들이 식당에 있었다. 전날 밤에 만난 기숙사 아이들이 보이는 곳으로 가 인사하고 자리를 잡았다.

어색한 기분으로 우유와 오트밀을 먹고는 8시 30분쯤 교실로 가보았다. 그곳에는 스웨덴인으로 보이는 사람들과 이민자들로 보이는 다양한 나이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흑인, 백인, 남미인, 남아시아 계통으로 보이는 동양인이 뒤섞여 있었다.


학교는 대학진학을 위해 역사, 사회, 과학 등을 공부하는 일반부, 선박과 항해술, 잠수 등을 공부하는 해양반, 가구만들기와 목공기술을 배우는 목공반, 베틀을 놓고 천을 직조하는 베짜기반, 그리고 이민자들의 언어 연수를 목적으로 한 이민자반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연령제한이 없는 듯 한 과정에 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소녀부터 육칠십대로 보이는 연세드신 분들까지 다양하게 섞여 있었다.


안경을 쓴 뚱뚱한 몸집의 여자가 와서 이민자반 담당교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후 나에게 수강신청카드를 주었다. 그 다음엔 날카로운 인상의 또 다른 여자분이 오더니 스웨덴어 테스트를 한 후 이민자들이 모여 있는 한 교실로 나를 데리고 가서 금발 머리의 여자애를 소개시켜 주었다.


그녀는 곱슬거리는 단발에 은테 안경을 끼고 어딘지 소심해 보이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영국에서 온 엠마라는 이름의 그녀는 런던대학 북구어과에서 스웨덴어를 전공하는 19살의 여학생이었다. 그애도 나처럼 스웨덴연구소의 장학금을 받고 온 어학 연수생으로 스웨덴어를 공부한지 8개월이 되었다고 했다. 그애와 나는 월요일, 화요일엔 이민자반에서 스웨덴어 과정을 공부하고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아무거나 듣고 싶은 과목을 선택해도 좋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영어, 예술사, 역사, 컴퓨터, 도예과정을 선택했다.


수강신청을 마치고 나오니 배나무 그늘에 어제 기숙사에서 만난 학생 중 한 명인 안나가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배나무 가지 사이로 비친 햇살을 받아 그녀의 바랜 금발과 같은 머리칼이 흰색으로 빛났다. 안나는 짙은 회색빛 눈에 얼굴은 갈색으로 그을려져 있었고 큰 키에 균형잡힌 몸매를 가진 전형적인 스웨덴 아가씨였다. 몹시도 의젓하며 성숙한 분위기를 풍기는 안나가 무척 멋있어 보였고 첫눈에 나는 그녀가 몹시 좋아졌다.


스웨덴어를 전공하며 어제 스웨덴에 도착했다고 하니 안나가 놀라며 왜 스웨덴어를 공부하게 되었는지를 물었다. 스웨덴은 조그만 나라인데 스웨덴어를 배워서 무얼 할 거냐며.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받아본 질문인지라 쉽게 대답했다. 북구문학을 공부하고 싶었는데 북구어 중에 스웨덴어 과정만이 대학에 있었다고. 그리고는 토를 달아야 했다. 대학에 들어갈 때 생각은 그랬는데 지금은 졸업 후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가능하면 스웨덴 회사에 들어가 2, 3년 돈을 벌어 스웨덴으로 다시 유학 와서 공부를 계속하고 싶다고 했다.


사실 스웨덴어과를 선택하게 된 계기는 두 가지였다. 고등학교 때 범우사에서 나온 문고판 ‘시인 닐스 리네’를 읽었다. 책 속에 그려진 주인공의 맑고 깊은 심성에 탄복한 후 역자 후기를 읽어 보았다. ‘시인 닐스 리네’는 덴마크의 작가 야콥슨이 썼는데 우리나라에도 북구의 위대한 작가를 소개하기 위해 북구 문학을 전공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글이었다. 그 책은 영어 중역본이었다.


또 한가지의 계기는 삼촌이 70년대에 정기 구독한 문학잡지에 실린 덴마크 작가 이삭 디네센의 ‘반지’와 ‘노기사’라는 단편이었다. 미묘한 순간을 포착해내는 마술사와도 같은 작가의 섬세한 시선에 끌리는 한편 이삭 디네센의 삶도 무척이나 궁금했다. 그러던 중 ‘아웃 오브 아프리카’라는 영화를 보고 그 자막에서 카렌 블릭센 남작부인의 필명이 이삭 디네센이고 그 영화가 그녀의 자전적인 소설을 토대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북구문학을 공부하겠다, 그녀의 작품과 생애를 우리나라에 소개해야겠다는 희망을 고3 내내 가지게 되었다. 같은 북구어라는 생각에 덴마크어가 아닌 스웨덴어를 결국 전공으로 선택하게 되었다. 닐스의 모험을 쓴 라아게를뢰프의 소설 속에서도 북구는 신비한 자연 속에 맑은 영혼을 가진 사람들이 신화처럼 살아가는 강한 끌림을 주는 곳이었다.


그러나, 들뜬 감상으로 가득 차 있던 내게 기초 문법과 언어강독으로 이루어진 수업시간은 지루하기만 했다. 당연한 언어 과정의 시작인데 과정을 무시한 채 꽃만을 바란 내 성급함 때문에 나는 학과 공부를 충실히 하지 않고 1, 2학년을 보내었다. 그래도 다행히 2학년을 마친 겨울방학에 어학연수 장학금을 목표로 착실히 문법공부를 했고 스웨덴에 올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북구문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내 목소리가 스스로 낯 간지럽게 느껴질 정도로 나는 그 동안 학과 공부를 등한시했다. 사실 대부분의 과 선배들은 전공은 손도 대지 않은 채 영어와 상식책을 펴고 취직 시험 공부에 매달렸고 교수님들께서도 졸업생들에겐 전공 공부에 대한 부담을 덜어 주고 있었다. 전체적인 과 분위기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쓸모 없는 학과 공부는 그만 해도 된다는 것이었고 스웨덴어가 우리 사회에 쓰일 곳이 도무지 없다는 데 의견 일치가 되어 있었다.


스웨덴어를 전공으로 공부해서 도대체 뭘 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스웨덴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그들은 도대체 스웨덴어를 공부해서 어디에 쓸 것인지를 첫 대면에 물어보곤 했다. 스웨덴 대사관에서도 스웨덴어 전공자를 굳이 쓸 필요가 없는 것이, 한국 직원들과는 영어로 대화한다고 하였다. 한국과 스웨덴의 거리는 비행기를 타고 28시간이 걸리는 시간 상의 거리뿐 아니라 문화, 역사, 경제적으로도 멀고도 멀기만 했다. (당시 인도를 경유해가서 하루 이상이 걸렸지만 지금은 핀란드나 다른 나라를 경유하여 14시간 남짓 걸린다.) 어쨌든 이제 나는 멀고 먼 스웨덴 땅 맨 서쪽의 외진 시골 바닷가 마을에 홀로 와 있게 된 것이다. 한국인이라고는 나 이외에 아무도 없었고 동양인이라고는 필리핀과 태국 사람 몇 명뿐이었다.

안나는 10살까지 네덜란드에서 살다가 스웨덴으로 왔다고 했다. 아빠가 네덜란드인이고 엄마는 스웨덴인이라고 했다. 그래서 말 못하는 답답함과 소외감을 잘 안다며 그녀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고 쩔쩔 매며 더듬거리는 나를 격려했다. 안나는 해양반에 등록했는데 이곳에서 1년 정도 공부할 거라고 했다. 잠수와 항해술에 관심이 많다며 스킨 스쿠버를 지난 1년간 배웠다고 했다. 그녀는 무척이나 어른스럽고 성숙해 보였지만 나이는 나와 동갑이었다.


그녀의 성숙함 앞에서 나는 스스로가 무척 미숙하고 어리게 느껴졌다. 한참을 앉아 있으려니 곱슬머리의 어떤 흑인이 건들거리며 와서 안나에게 인사했다. 임마누엘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그는 ‘에리트레아(Eritrea)’에서 왔다고 했는데 나는 처음 들어보는 나라였다. 에리트레아는 에티오피아에 속해 있다가 분리 독립한 나라로 전쟁을 피해 임마누엘의 가족 모두 2년전 스웨덴으로 망명해 왔다고 했다.


임마누엘은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가죽 끈으로 만든 팔찌, 금 목걸이와 귀걸이를 하고 있었다. 날렵한 몸매에 코가 오뚝했으며 문법이 맞지 않는 스웨덴어를 해도 알아 듣기는 곧잘 들었다. 그는 안나에게 관심이 있는 듯 그녀에게 드라이브를 가자고 청했다. 그녀는 쾌히 승낙하고 내게도 같이 가자고 했다. 안나는 낡은 암청빛의 차를 운전하였다. 그녀의 차라고 했다.


언덕을 내려가니 도로 주변에 가게들이 있었고 오른편에 바다가 보였다. 아침에 본대로 왼쪽으로 가파른 바위산이 자리잡고 있었다. 바다 위에 지은 수상 가옥들도 보였다. 여름 별장들인데 이제 휴가철이 끝나 사람들이 모두 떠나가 텅텅 비어 있다고 했다. 해안선을 따라 한참 언덕과 들판을 달린 후 다른 바닷가 마을에 도착해 차를 세웠다. 그곳은 둥그런 광장과 같은 곳이었는데 그레베스타드와 마찬가지로 왼쪽은 가파른 바위 절벽이었고 오른쪽으로는 바다가 훤히 보였다.


바위 아래에 하얀 대리석 흉상이 하나 보이길래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 봤더니 바로 잉그리드 버그만의 흉상이었다. 임마누엘의 얼치기 설명에 의하면 그곳은 잉그리드 버그만이 생존 시 매년 찾아오던 여름 별장이 있는 곳으로 그녀의 유해도 태워져 그곳 앞바다에 뿌려졌다는 것이다. 팰바까라는 지명이었다. 우리나라 말로 하면 산언덕이다.


학교로 돌아오니 어느덧 저녁식사 시간이었다. 기숙사에 사는 학생은 모두 서른 명쯤 되었다. 내가 있는 기숙사에 14명, 남쪽에 위치한 기숙사에 16명 정도가 입주해 있다고 한다. 그 중 삼분에 일 정도가 아프리카, 남미, 아랍 등지에서 온 이민자였다.


저녁 식탁은 음식이 차려진 중앙 탁자를 기점으로 해서 동서로 나눠져 있었다. 스웨덴 아이들 모두가 한쪽에 앉아 떠들썩하게 식사를 하고 있었고 이민자들은 모두 다른 쪽에 앉아 조용히 먹고 있었다. 임마누엘과 나는 안나를 따라 스웨덴 아이들이 앉아 있는 식탁으로 갔다. 나뿐 아니라 임마누엘도 계속 어색한 모양인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식사를 했다. 나는 곧 내 방으로 돌아와 부모님과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며 학교에서 보낸 첫 날을 마감했다.


꿈꾸는 애벌레


결국 나는 조그만

잎사귀를 갉으며

실을 뿜어내는

애벌레 아닐까


내 희미한 꿈은

나를 둘러싸버리는

은빛 실뭉치가 되어 버린다


하루를 먹어 치우고

뱉어내는 것들이

어둠을 만들어낼 때


누가 약속했을까

오랜 어둠 뒤에

춤추는 봄이

나비를 기다리리라는 것을


나의 죽음이

나를 기다릴 뿐인지도 모른다

고치 속의 죽음이




월,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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