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선향

배나무 옆에 놓인 하얀 벤치에 어떤 노인이 개를 데리고 앉아 있었다. 아직도 환한 저녁 햇살 속에 정적이 고요하고 따스하게 느껴졌다.


등에 갈색의 누런 점이 있는 개는 하얀 털이 눈을 거의 덮고 있었다. 나는 개를 쓰다듬었다.


“개 이름이 스띵땅이야.” 노인이 말했다.

“스띵땅요? 이름이 이상해요. 무슨 뜻이에요?”

“글쎄, 산에서 젖 짜는 여자들을 스띵땅이라고 했는데 거기서 따온 이름이야.”

“이 근처에 사세요?”

“그래, 아가씨는 어디서 왔지?”

“한국에서 왔어요. 스웨덴어를 배우려구요.”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스웨덴어를 배우려고 한다는 내 말에 놀라 이유를 물었다.


젖은 짚과 같은 머리에 약간 구부정한 어깨, 세월이 모질게 흘러 갔음을 말해주는 듯한 암울해 보이는 얼굴 표정이 6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분이셨다. 코는 길쭉한데 부러진 듯 가운데에서부터 살짝 구부러져 있었고 가래가 끼는 듯 자주 마른 목기침을 했다. 그분의 이름은 셸이었으며 학교 근처에 살고 있다고 했다. 언제 놀러 오라는 말과 함께 스띵땅과 셸은 사라졌다.


다음날 수업이 끝난 후 남쪽 기숙사의 지하실로 빨래를 가지고 내려갔다. 지하실에 탁구대가 설치된 방에서 동양인으로 보이는 두 사람과 임마누엘이 탁구를 치고 있었다. 임마누엘이 나를 불러 들어가보니 태국여자라고 하는 아주 조그마한 여자가 나를 경계하듯 쳐다 보았다. 함께 탁구를 친 후 여자에게 물어 보았다.


“스웨덴에 언제 오셨어요?”

“한 삼 년 되었어요.”

“스웨덴 사람들과 지내기 어때요?”

그녀는 표정이 야릇하게 변하며 주위를 둘러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나는 스웨덴인들을 증오해요.”


어둑어둑해질 무렵이 되어 우울한 기분으로 내 방으로 들어왔다. 커튼을 모두 닫고 책상 앞에 앉으니 지난 삼일 동안 만난 사람들의 얼굴과 부모님, 친구들의 얼굴이 눈 앞을 스쳐갔다.


여전히 흑백으로 갈라진 학교 식당에서의 식사 시간은 갈 때마다 남다른 각오를 필요로 하는 선택의 상황을 요구했다. 아침, 점심, 저녁 나는 스웨덴인들과 합석해 보기도 하고 이민자들과 합석해보기도 했으나 어느 쪽하고도 어우러질 수가 없었다.


책상에 가만히 앉아 있으니 기숙사 안의 스웨덴애들이 떠들썩하게 왔다갔다하며 질러대는 웃음과 고함소리가 들렸다. 나는 당장 문을 열고 나가 그들과 어울리며 함께 TV를 보고 얘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러나 기숙사 안의 TV가 놓인 휴게실에 앉아 스웨덴인들이 저희들끼리 얘기를 나누며 내게 낯선 시선을 던지고 나 역시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멀뚱히 앉아 있다 나오는 것도 고역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좋은 하루를 보내야지 하고 각오했지만 밤에 잠들 땐 약간의 불안감을 없앨 수가 없었다. 떠들썩한 소리를 들으며 책상에 앉아 있자니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렸다.

놀랍게도 셸이었다.


“아, 셸, 어쩐 일이세요?”

“바깥에 파티가 벌어졌는데 나가자꾸나.”


그를 따라 나가보니 어느새 마련했는지 모두들 배나무 밑 잔디밭에 식탁을 펴고 앉아 술과 과일을 먹고 있었다. 내 옆방에 묵고 있는 케니뜨가 나에게 술병을 건네었다. 그리고는 술 취한 음성으로 웃으며 슬며시 내 허리와 엉덩이로 손을 돌리는 것이었다. 손을 탁 치고 자리에 앉으니 케니뜨는 ‘어이쿠’하며 낄낄 웃고는 다른 자리로 가버렸다. 그렇게 나를 불러낸 후 셸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얘기 나누며 하모니카를 불었다.


나는 안나에게 인사하곤 그녀와 잠시 얘기 나누다 가만히 앉아 있었다. 모두들 옆 사람과 떠들며 즐겁게 술을 마시고 웃고 있었다. 아무도 상관하지 않겠지 싶어 나는 다시 내 방으로 돌아왔다.


말이 제대로 통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나 스스로 느끼는 위축감과 함께 나는 대부분 스웨덴 사람들에게서 무관심과 닫힌 눈길을 느꼈다. 눈길만 마주쳐도 헤이(Hej, 안녕) 하지만 내가 가만히 있으면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는 않았다. 쉽게 지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너무 성급히 그들을 알려고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음날에 한쪽 눈이 아침부터 욱씬 욱씬 쑤시기 시작했다. 빨갛게 충혈되고 머리도 함께 아파오는 것이었다. 수업시간 틈틈이 스웨덴 사람들은 양지바른 바깥으로 나가 담배를 피우곤 했다. 거의 대개가 얇은 종이에 담배를 직접 말아서 피우는 것이었다. 필터가 있는 담배보다 그것이 더 싸다고 했다. 열여섯 살인 아그네스와 열일곱 살인 바넷사는 지독한 줄담배 꾼이었다. 3, 40대의 아줌마들과 십대의 어린 소녀들이 함께 담배를 피우며 때로 보온병에서 커피을 따라 마시는 것을 쉬는 시간 틈틈이 볼 수 있었다.


대부분 20대 초반인 남자들은 금발의 긴 머리를 곱슬곱슬하게 어깨까지 늘여놓고 있거나 뒤로 묶었고 금이나 은으로 보이는 동그란 귀걸이를 귀에 달고 있었다.


대부분의 여자애들은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들이었고 옷차림은 검소했다. 엷은 꽃무늬나 체크무늬의 헐렁한 원피스를 걸친 소녀들이 많았다. 꽉 끼는 꽃무늬 타이즈를 입고 치마를 걸치거나 헐렁한 티셔츠를 입고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들은 가느다란 금발머리를 아무렇게나 위로 올려 하얀 잔머리를 날리며 담배연기를 피워 올렸다.


학교 여기저기에는 끼리끼리 무리를 지어 어울리고 있는 스웨덴 사람들, 흑인들, 아랍인들, 남미인들을 볼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스웨덴 사람들과 이민자들의 수는 엇비슷했다. 기숙사에 살지 않는 이들도 점심은 돈을 내고 학교식당에서 사먹곤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엠마, 루이스, 빌마 등 이민자반의 우리 그룹 사람들과 식사를 같이 하기 시작했다.


마치 겁먹은 토끼가 움츠리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엠마는 수업 일정이 나와 비슷해서 함께 다니곤 했다. 그녀는 이민자 그룹과 식사를 함께 하는 유일한 백인이었다. 나중에는 그것이 불편하고 신경 쓰였던지 내가 이민자 식탁에 자리를 잡을 땐 스웨덴 식탁으로 가버리곤 했다.


수업 후 눈이 아픈 나는 일찌감치 자리에 누웠다. 그때 방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있었다. 문을 열어 보니 안나였다.


“안녕, 많이 아프니? 이거 셸이 전해 주라고 해서. 그럼 내일 보자.”


그것은 흰 봉투 안에 든 마늘과 간단한 안부 쪽지였다. 오후에 눈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고 했더니 걱정이 된 모양이었다. 마늘을 보낸 것이 우습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지만 다시 자리에 누우니 눈물이 났다. 그 분의 따뜻한 마음이 너무도 고맙게 느껴졌다.


다음날 교장 선생님과 함께 병원에 다녀왔다. 잘은 모르겠으나 그저께 알렉산드르와 바닷바람을 쐬고 온 후 알레르기가 생긴 듯 했다. 약을 사니 안대를 함께 주었다. 마치 애꾸눈 해적선장이 사용하는 안대처럼 계란 모양의 시커먼 천에다 검은 줄이 매달린 험상궂은 물건이었다. 그걸 끼고 다닐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그래도 할 수 없이 끼고 다니니 사람들이 ‘해적’이라며 한마디씩 웃고 지나치는 것이었다.



난 네게 한마디 말도 주지 못한다

난 네게 고운 쓰다듬음 주지도 못한다

나는 네게 다가가지 못한다

나는 네게 아픈 눈짓 하나 주지 못한다

나는 쓰라린 미소 하나 빚어내지 못한다

나는 눈도 없고 귀도 없고

다리도 없고 입도 없어

나는 마음만 탄다

한겨울 차가움과

한여름 열기를

품을 수 있는 나는


월,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