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을 마친 후 오후에는 주로 도서실에 갔다. 월, 화요일의 이민자반 수업은 다른 반의 수업보다 일찍 끝나기에 저녁 식사 시간까지 세 시간 정도 사전을 펴고 스웨덴어로 쓰여진 책을 읽었다. 쉽게 읽어볼 만한 책이 있을까 싶어 말괄량이 삐삐의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동화책들을 뒤적뒤적 거리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도서관에 들어왔다. 처음 보는 얼굴의 흑인 남자였다. 까만 얼굴에 넓적한 코, 전형적인 아프리카인 같으면서도 지적인 분위기가 풍겨났다. 서로 잠시 지켜보다 웃으며 인사를 나누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에서 왔어요. 어디서 오셨어요?”
“케냐에서 온 무사라고 해요.”
그는 32살이라고 했으나 내 눈에는 그 보다 훨씬 젊게 보였다. 그렇게 말했더니 그가 웃으며 동양인과 아프리카인은 서로 나이 구별을 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내 나이를 정확하게 맞추었다.
무사는 케냐의 신문사에서 파견된 현지 특파원이었다고 했다. 원래 영국에서 해외 특파원을 하며 틈틈이 글을 발표하곤 했는데 케냐의 독재 정권을 비판하는 글을 쓰다가 스웨덴으로 망명하게 되어 그레베스타드에서 스웨덴어 교육을 받게 된 것이다.
다음 날은 아직 서로 낯선 학생들끼리 얼굴을 익히고 그레베스타드 지역의 역사와 지역환경을 익히게 할 목적인 듯 조그만 행사가 열렸다. 그레베스타드 부근은 바이킹시대에 해적활동으로 유명한 곳이라고 했다.
곳곳의 바위에 암석 그림이 새겨져 있었고 학교 주변의 들판에 마치 영국 스톤헨지의 축소판인 듯 돌이 무더기로 우뚝 솟아나 있는 곳이 있었다. 학교에서부터 마을을 둘러싼 바위절벽과 들길을 걸어 가면서 교사들이 미리 표시해둔 곳을 따라가면 나무나 바위 위에 질문을 적은 쪽지가 걸려 있었다. 주로 그레베스타드가 속한 보휘스랜의 역사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렇게 답을 적어 마지막 집결지에서 맞춰보도록 되어 있었다.
가다가 나는 셸과 무사를 만나 그들과 함께 문제를 풀며 들길을 걸었다. 셸은 풀과 들꽃들의 이름을 내게 간간히 일러주며 나로서는 이해조차 힘든 질문들에 대한 답 또한 가르쳐 주었다. 무사는 별 말 없이 따라오며 문제까지 꼼꼼히 기록해가며 신중히 생각하고 관찰하는 듯 했다. 건성건성 지나치는 대부분 사람들에 비해 자그만한 것에까지 왕성한 호기심을 보이는 그의 지적 탐구심이 놀랍게 느껴졌다. 나는 셸을 따라다닌 덕분에 16 문제 중 13개를 맞추었다.
돌아오는 길에 무사와 나는 셸의 초대로 그의 집에 가서 커피를 마셨다. 그의 집을 나서며 나는 다음 토요일엔 그의 집을 말끔히 청소해 주리라 생각했다.
여자
여자는 달마다 자신의 생명을 본다
먼 어둠의 불덩이 같은 피
날 선 아픔 위에 흐르는
생명의 떨림
어린 짐승이 되어
몸을 곤두세운다
여자의 마음은 여린 실버들 가지
물을 향하듯
생명들이 내지르는
아픔의 음향을 향해
파르르 떨며 조금씩 가까워진다
그리하여 어느 날
아픔과 하나가 되어
먼 어둠 속에서
생명 하나를 끌어왔을 때
여자는 달마다 자신의 죽음을 보기 시작한다